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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대생의 심야서재 Aug 11. 2021

아내가 가출했다 9

어둠, 빛, 피라미드, 분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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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 있으라”


분명히 그 문장이었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온 것은. 기시감을 느끼게 만드는 문장, 마음속에서 동질성 비슷한 물질이 고여있다가 불상의 이유 때문에 이윽고 발화되는 문장, 그 말과 함께 어둠이 산화되고 빛줄기가 희미하게 쏟아내리기 시작했다. 밤 하늘 끝에서 유성우가 시작되다 사멸하는 것처럼 빛이 비처럼 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인간은 어떤 환경이든 적응할 내적 힘을 가지고 있다. 한동안 내가 어둠에 순응했듯 이제 밝음에 적응하면 그만이다. 나는 그저 적응의 동물로 살아가면 그만인 것이다.


“테이블 위에 봉투를 올려두시고 뒤쪽 의자에 앉아 다음 오더를 기다리세요”


오더? 지금 나한테 명령을 내린 것인가? 근데 왜 경어체였을까? 명령(오더)과 경어체, 서로 어울리지 않는 나쁜 조합이다. 게다가 그 목소리는 마치 독성을 품은 듯했다. 목소리에서 수분이 모두 빠져나온 그러니까 사막에서 사나운 모래 폭풍이 한차례 모든 자리를 휩쓸고 지나간 다음, 그 폐허 속에 남겨진 희미한 발자국 같은 메마름의 조합이, 바로 그녀가 내게 건넨 것이었다.


고개를 돌려 보니 뒤쪽에는 철제로 만든 의자들이 10개 정도 일렬로 서 있었다. 가운데 앉는 것이 좋을까, 오른쪽이나 왼쪽 제일 끝에 앉는 게 좋을까. 나는 지금 땅속 몇 미터 지점, 아니 몇 백 미터 깊이쯤에 처박혀 있는지도 모르면서 어디에 앉을 것인지에 대한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 중이다. 선택은 늘 사소한 것에서 출발한다. 맥도널드에서 상하이 스파이스 치킨버거를 먹을 것인가, 빅맥을 고를 것인가,라는 문제와 어떤 사이즈의 프렌치프라이를 선택하는 것과 같은 조합의 문제다. 나에게 선택이라는 것은... 단지 지금 생각나는 것은 콜라다. 거품이 가득한 탄산과 얼음이 가득 찬 콜라 한 잔의 조합.


끝도 아니며 중간도 아닌 어정쩡한 의자에 앉아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이곳은 방이나 거실이라기보다는 홀이었다. 콘서트홀, 혹은 커다란 공연장의 느낌이었다. 물론 이곳엔 내한 공연도 열리지 않으며 오페라를 위한 거창한 무대도 열리지 않는다. 다만 공간적으로 그렇게 구성됐을 뿐이다.


내가 위치한 곳이 지하라는 사실을 인지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내가 만약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깊숙한 곳으로 내려가지 않았다면 이곳은 창문이 없는 건물의 어디쯤이라고 상상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은 외부에서 빛이 드나들 수 없는 그러니까 완벽하게 외부와 차단된 어쩌면 구덩이라고 표현해도 무방한 그런 공간이고 그럼에도 얼마나 깊이 내려왔는지 객관적으로 가늠할 수 없는 공간이기도 했다.


나는 이리저리 시각화가 가능한 모든 곳을 스캔하기 시작했다. 공간이 어떻게 구성되었으며 각각 어떤 기능을 담당하는지 관찰하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것은 안다고 해도 의미가 없다.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백지 한 장 차이가 아닌가. 그러니 모르거나 모른척하며 살아가면 그만이다.


이곳엔 창문이 벽마다 장식되어 있었다. 물론 그것은 창문으로서의 본연의 기능을 수행 중이지 못했다. 그것은 인간에게 무용할 뿐인 장식품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다만 외부를 잠시 꿈꿔보거나 저 바깥에서 이 안쪽까지 빛이 스며들지는 못하겠지만 단순하게 의미론적으로 빛이 도달할 여지를 남겨뒀다는 점에서 본래의 기능엔 충실하다고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이상한 것은 벽이 수직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공간이 사각형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나 수직벽은 직각이 아닌 사선, 그러니까 옆벽의 기울기는 대략 50도 가까이 된 것 같았다. 말하자면 나를 둘러싼 4개의 벽이 모두 앞쪽으로 기울어져 있다는 얘기다. 형태적으로는 꽤 언밸런스한 형상이었지만 그렇다고 균형미를 갖추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설마 이곳이 무너지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앞섰지만, 딱히 그런 일이 당장 벌어지지는 않을 것 같았다. 물론 내가 모든 벽들을 두루두루 살펴본 것은 아니다. 단지 내가 지금 앉아 있는 의자 뒤쪽의 벽과 왼쪽과 오른쪽 끝 벽이 그렇게 구조화되어있다는 것으로 나는 공간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예측할 뿐이었다. 그 정도는 누구나 파악할 수 있지 않을까. 그때, 내가 엘리베이터에서 피라미드 모양의 버튼을 누른 것이 기억났다. 그래, 지하 5층은 피라미드다. 나는 피라미드 제일 밑바닥에 앉아 있는 것이다. 기묘한 기운과 알 수 없는 자장이 흐르는 피라미드 한 쪽 벽에 의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 이곳은 기능적으로 피라미드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어느 누가 봐도 이곳이 피라미드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다만 왜 피라미드여야 하는지 그 당위성에 대해선 대답을 좀체 할 수 없다. 그것은 건축가의 철학이든, 소유주의 성향이든 뭐, 적당한 이유에 달려있을 테니까.


딱딱하고도 잔뜩 냉기가 서린 철제 의자에 앉아서 나는 어쩌면 이곳이 거대한 무덤이 아닐까 생각했다. 왕이 죽은 다음 묻히는 장소, 내세를 꿈꾸며 그들이 고이 잠든 곳이 여기가 아닐까,라는 생각. 나는 그런 쓸데없는 상상 혹은 집착에 매달려 있었다. 그런 상상은 이런 거대한 이름 없는 어느 왕의 무덤 속에서도 자라날 것이다.


갑자기 짠, 하듯 정면, 10미터 정도 떨어진 지점에서 조명이 들어왔다. 어둠 속에 잠든 본질이 스스로 깨어나기라도 한 듯 일어선 것이다. 투명한 알이 껍질을 깨며 세상에 자신의 존재를 외치듯, 불빛은 피라미드 가운데에서 눈을 감았다, 떴다. 가운데에는 또 다른 피라미드가 놓여 있었다. 철제로 이루어진 폭 1미터 높이 1미터 내외, 정확하게 피라미드라는 공간 내에 어떤 여자가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기묘하다. 이곳은 모든 것이 피라미드적 구조다. 계층적이면서도 체계성이란 것을 갖췄다.


여자는 회색 티셔츠와 회색 반바지를 입고 있었다. 얼굴은 전혀 화장을 하지 않았는지, 작은 피라미드 꼭대기에서 비추는 조명이 건재함에도 불구하고 지극히 어두워 보였다. 조명이 환하게 그 여자를 비추었으나 꼼짝도 하지 않았고 눈도 뜨지 않았다. 마치 주변의 기를 모조리 빨아들일 기세였던 것이다. 그 여자는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여자는 한숨을 크게 몰아쉬더니 마치 문을 여는 것처럼 오른손으로 손잡이를 돌리듯 허공에서 오른손을 사용했다. 물론 공기 중에선 먼지 날아가는 소리도 그 여자가 흘리는 땀방울 떨어지는 소리 같은 것도 들리지 않았다. 그 여자는 어떤 행위를 정해진 대로 반복할 따름이었다. 그리고 마치 왕가의 무덤 속에서 천 년 넘게 잠들어있다, 깨어난 사람처럼 지극한 한숨을 한꺼번에 몰아세웠다.


잠시 후, 다시 일어나서 내 쪽으로 걸어오기 시작했다. 그녀의 동작은 마치 부지런한 새가 새벽을 맞아 이슬을 마시려고 공중을 날아가는 느리면서도 부지런한 반응과 같았다. 분명 그랬다. 발자국 소리도 공기 중을 가르는 어떤 박자와 동작도 외부로 표현되지 않았다. 그녀의 소리란 것은 어디론가 빨려 들어갔을지도 모른다. 진공청소기 같은 것으로 완전무결하게 소거됐을지도 모른다. 무덤 속에서 소리란 것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바깥쪽에서는 아무것도 모른다. 이곳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더라도. 나와 같은 사람이 영원히 이곳에 묻힐지라도 관심이 없는 것이다.


그 여자는 테이블 위에 놓인 물건을 천천히 들었다. 나에게 눈길을 한 번 주더니 다시 물건을 살피고 고개를 아래쪽으로 돌리지도 않고 눈만 내리 까는 동작을 취하더니 테이블 왼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옆에 분쇄기 보이죠? 봉투 안에서 내용물 좀 꺼내주실래요?” 그녀는 나에게 오더를 내렸다. 물론 나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가 원하는 대로 행동을 취했다. 분쇄기 위에는 페이퍼 나이프가 있었다. 나는 그것으로 봉투를 찢은 다음 내용물을 바깥으로 꺼냈다.


“여기 회사에서 보내준 자료는 빼두고 제가 쓴 소설만 분쇄하면 될까요?” 내가 물었다.


“아, 당신이 쓴 소설이 있었죠. 그건 그냥 두시고. 나머지는 모두 분쇄기에 갈아주세요” 그녀가 메마른 목소리로 말했다.


“아 참 저 소개도 하지 않았네요. 저는 ‘제니퍼 리’라고 해요. 다들 저를 그렇게 부르죠. 제 이름이 언제부터 ‘제니퍼 리’였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하필이면 왜 ‘제니퍼 리’ 여야 했는지 참… 대중들은 이상하다니까요. 자기들 마음대로 왜 남의 이름을 짓는 걸까요? 작명 센스하고는 고작 그 수준밖에 안된다니까요. 대중들은 참으로 어리석어요.”


제니퍼 리는 자신의 이름에 대해 스스로 말해놓고 그것의 불만 사항들을 나열하기 시작했다. 마치 자신이 가진 오래된 정체성을 부정하는 인상이었달까. 나로서는 이름이 어쨌든 아무 상관이 없었다. 나는 배달을 마쳤으니 제니퍼 리가 물건을 분쇄하든 말든 아무 상관이 없었다. 그런데 그 와중에 내가 쓴 소설은 왜 남겨두라고 했는지 의문이었다.


“당신은 왜 소설을 남겨두라고 한 건지 궁금했겠네요? 뭐 저는 소설을 참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말해두죠. 물론 세상엔 소설이 참으로 많아요. 도스토옙스키, 발자크, 헤밍웨이, 셰익스피어와 같은 작가들이 남긴 작품들이 즐비하죠. 물론 나는 그런 책들을 학창 시절부터 줄곧 읽어왔어요. 근데 그거 아세요? 그런 소설들이 지닌 어떤 공통적인 속성들과 한계들, 그들은 자신을 소설가라는 프레임안에 가둬두고 이야기를 썼어요. 그들의 이야기엔 위대함이 서려 있지만, 그래서 평범함은 막을 제거해버렸죠. 또한 그들의 이야기는 후대의 사람들이 가공해버렸어요. 변질됐다는 말이에요. 성경이 어느 순간 왜곡됐듯이 말이에요. 그러니 그들의 이야기는 살아 있는 셈이 아니에요. 이런 무덤 같은 곳에 죽어서 누워있죠. 왜 내가 죽은 사람의 이야기를 읽어야 하는 거죠? 난 살아있는 사람의 살아 있는 글을 읽고 싶어요.” '제니퍼 리'가 말했다.


“물론 살아있는 사람들은 지금도 세상에 널려 있죠. 그들은 문단의 어떤 보호를 받고 있어요. 단단한 장치이자 시스템이죠. 그들 역시 그런 면에서 어떤 프레임 안에서 보호를 받고 있는 거예요. 새장에 갇힌 새와 같은 신세죠. 대다수의 작가들이 그래요. 그들은 시스템 안에서 길러지고 있는 거예요. 그들에게는 그 어떠한 독특함도 개성도 없어요. 그들의 글은 그저 죽어 있어요. 그렇지 않더라도 죽게 될 거예요. 대체 그들과 대중들의 차이가 뭐예요? 내가 왜 죽어 있는 글을 읽어야 하죠?” 제니퍼 리가 흥분하며 말했다.


나는 제니퍼 리의 논리를 이해할 수 없었다. 고전이라 불리는 대다수의 작품들은 그들이 죽었기 때문에 고전이 된 것이다. 이것은 변할 수 없는 사실이다. 작가는 죽어서 자신의 작품을 남길 확률에 기대는 것이다. 운이 좋아서 그것이 후대에 명성을 쌓아가며 고전 취급을 받는 것이다. 그들은 죽어서라도 무덤 속에서 조명을 받을 확률이 있다. 그렇다면 나와 같은 일반적인 부류는 어떻게 되는가. 나도 죽는다면 그들처럼 조명을 받을 수 있을까. 나와 같은 무명의 이름 없는 들풀 같은 글이? 어떤 이유 때문에, 누구의 도움으로 그런 가치를 받게 된단 말인가. 그런 면에서 고전을 남긴 작가들은 무덤 속에서도 흐뭇하게 웃을 것이다. 나와 그들이 다른 것은 죽어서도 웃을 수 있느냐다. 물론 나는 웃을 수 없을 것이다. 절대로.


“아무튼 저런 자료들 따위에는 나는 관심이 하나도 없어요. 인기도, SNS 영향도, 내가 방송에서 몇 회 노출됐는지, 내 영화나 드라마가 몇 편 재방송됐으며, 대중이 몇 시간을 소비했는지, 어떤 유튜버가 나란 인간을 조명했는지, 사람들이 커뮤니티에서 나에 대해 얼마나 왈가왈부했는지, 그런 대중적인 인지도, 동향들에 대해선 전혀 관심이 없어요. 나란 인간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대중의 눈치를 본 적이 한 번도 없었거든요. 나는 그저 내 재미와 나 스스로에 대한 호감도로 살아왔을 뿐, 저는 무대에서 제가 아닌 다른 인간의 역을 맡아 그것에 충실했을 뿐이에요. 나중에 내 연기에 대해, 내 작품성에 대해, 내 출연료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다고요. 그러니 그따위 정보들을 개량하거나 분석한 자료들은 필요 없어요. 그저 분량으로서 봉투의 두께로서 짐작하면 그만이에요. 내 이야기가 꾸준하게 회자되고 있구나. 대중들이 뭔가 실컷 나를 샌드백 삼아 두드려 패고 있구나,라고 짐작하면 그만이에요. 그러니 그 쓰레기들은 당장 갈아버리라고요”


나는 일어나 내가 쓴 소설을 제외한 나머지 그러니까 제니퍼 리에 관한 분석 보고서를 분쇄기에 갈아버렸다. 몇 십 페이지의 서류 뭉치들이 순간 조각조각으로 나눠지곤 이내 사라져나갔다. 종이에서 또 하나의 종이로 그것들의 성질은 변화되지 않았지만, 그것으로부터 파생된 새로운 속성은 완전히 제거되고 있었다. 모든 것이 분쇄되어 쓰레기로 변하자 제니퍼 리는 나에게 한 가지를 다시 요청했다.



  - 다음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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