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어째서였을까? 불가사의한 일이었다. 어떻게 인간이 한 번도 깨지 않고 내리 3일을 잘 수 있는 걸까? 게다가 아무것도 먹지 않고 심지어는 물 한 방울 없이 마치 겨울잠을 자는 곰처럼 3일을 버틸 수 있는 걸까. 물론 이론적으로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잠자는 숲 속의 공주는 몇십 년을 물도 없이 깊은 수면에 빠지지 않았는가. 나라고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혹시 도착했을지도 모를 메시지를 확인하려고 침대 옆에 엎어져 있던 스마트폰을 본능적으로 들췄다. 역시 예상대로 전원이 나간 상태였다. 내 신체 전원도 스마트폰 전원도 모두 뭔가를 상실한 모양이었다. 그렇다고 딱히 채울 생각이 드는 것도 아니었다. 어차피 귀찮은 인간들이 보낸 다양하게 생겨먹은 귀찮은 메시지가 대부분일 테니. 확인해도, 그렇지 않아도 달라질 일은 없을 테고, 어차피 이미 세상은 망한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그럼에도 습관적으로 노트북 전원을 올렸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그러니까 내가 세상에서 잠시 지워져도 문제없이 잘 돌아가고 있는지 확인해 볼 요량이었다. 깨톡을 켜자, 무수히 많은 빨간 숫자들이 일제히 경고장을 날리고 있었다. 그 목록들에게 시선을 대충 흘려보내기만 하고 내부를 살펴보지는 않았다. 읽지 않아도 대충 내용은 감지되기 때문에.
깨톡을 확인하고 지메일에 접속해서 몇 가지 중요하지도 않은 메일을 확인하곤, 커피 머신에 캡슐을 하나 끼워두곤 창가 앞에 서서 눅눅하게 젖어버린 공원 입구를 감상했다. 출근시간인데, 거리는 지나치게 한산했다. 거기에는 개미 새끼뿐만 아니라 고양이 한 마리조차 지나다니지 않았다. 마치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을 잠시 옆으로 치워놓은 것 같았다.
책상 앞에 앉아 커피잔을 들었다. 마치 건배라도 하듯 보이지 않는 대상을 향해 커피잔을 추켜들었다. 하지만 그곳에서는 아무런 냄새도 반응도 없었다. 그저 꺼끌꺼끌한 그러니까 모래를 혀에 잔뜩 머금은 기분만 들었을 뿐, 사실상 감각이 전무한 상태였다.
강차장에게 전화가 온 것은 막 목구멍에서 위장으로 커피 액체가 스며들기 시작한 직후였다. 강차장은 크게 한숨을 쉬곤 회사의 소식을 알렸다. 내가 무려 3일씩이나 출근하지 않았지만, 예상외로 회사는 평온했으며 아무도 나를 찾지 않았다는 이야기, 그 누구도 내가 부재하다는 사실을 느끼지 못할 만큼, 회사도 어쩌면 나도 모두 무탈했다는 소식이었다.
회사는 신규 제안 건 때문에 TFT를 지원하느라 주요 인력들이 다수 그쪽으로 빠져있고 나머지 인력도 새로 출시하는 제품의 버그를 제거하느라 정신을 못 차릴 지경이었다고 했다. 나의 무단결근은 누군가에 의해 단순하게 병가로 처리됐고 이틀은 유급으로 하루는 무급으로 처리됐다는 말을 전했다. 강차장은 건조하게 결정된 사실만 통보하고 전화를 끊었다. 전화는 용무만 전달하면 된다. 용무가 아닌 사적인 대화는 그럴만한 이야기를 나눌 만큼의 사이에서만 허락된다. 나와 강차장은 서로의 안부를 물을 만큼의 사이는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식어버린 커피를 마저 마시고 침대를 정리한 다음, 샤워를 했다. 그리고 챙겨야 할 물품들을 가방에 천천히 욱여놓고 회사로 향했다. 퇴사하든지 하던 일을 쥐도 새도 모르게 다시 시작하든지, 어쨌든 회사에는 가야 했으므로…
내가 다시 회사로 돌아가서 아무렇지 않게 업무에 복귀하기는 그리 힘들지 않았다. 아무도 나의 존재에 대해 신경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회사는 일하는 사람들이 드나드는 곳이다. 어느 날 새로운 사람에게 새로운 일자리가 제공되지만, 갑자기 자취를 감춰도 좀처럼 여백이 쉽게 드러나지 않는 공간이 회사가 아닌가.
난 아무도 모르게 그룹웨어에 접속하고 마치 신중한 일이라도 하는 것 같은 자세로 사직서를 작성했다. 그리고 차분하게 대표이사에게 서류를 전송했다. 통상적으로 인수인계에 2 주일이 소요되지만, 나는 그 일을 온라인으로 하겠다고 필요하다면 줌으로 호출하라고 첨부 메시지를 작성해놓곤 필요한 짐을 챙겨 밖으로 나왔다. 바깥엔 어느새 봄기운이 한창이었다. 연인들은 팔짱을 끼고 가슴에 한 아름 벚꽃을 안은 채, 즐거운 담소라도 나누는 것 같았다. 내가 회사에 일방적인 퇴사 통보를 날린 것처럼 그들도 나에게 일방적인 행복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 어쨌든 길가에 뒹구는 흔한 행복만큼이나 나에겐 불행이 나뒹굴고 있다. 나는 그것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모른다.
집으로 돌아와 바로 가구의 위치를 전면적으로 바꿔보기로 했다. 가구라 봤자 가로 1,800짜리 큼지막한 책상 하나와 3 열짜리 책장이 전부이지만… 봄이 다가온다고 해서 뭔가 혁신적인 환경을 만들려는 조치 따위는 아니었다. 그저 지친 심경을 외면하는 방면으로 간접적으로나마 그것을 돌보려는 게 취지였다. 자꾸만 마음이 한쪽으로 기우는 듯한 인상을 보여서 뭔가 단순하며 힘쓰는 일에 집중함으로써 반대편에 놓인 불안함을 잠시나마 잠재우려는 의도였다고 해야 할까.
책장에서 책을 닥치는 대로 꺼내어 바닥에 규칙 없이 쌓아놓고 책상 서랍에 틀어박힌 온갖 문구용품 따위들을 모두 꺼냈다. 처음 들어보는 브랜드가 찍힌 일본 어느 브랜의 지우개, 라미 만년필, 더블에이 복사용지, 포스트잇, 샤프, 서일페에서 받은 노션 스티커, 등등 마치 당장 이사라도 하는 사람처럼 방 한가운데에 언제 생겼는지 알 수 없는 물건들이 탑을 형성했다. 언제 이런 잡동사니 같은 물건들이 숨어 있었는지, 저 작은 서랍과 책장 안에 저렇게 진귀한 물건들이 들어차 있었는지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저것들을 사들인 적도 선물을 받은 적도 없는데…
내어놓을수록 한쪽에선 공간이 사라지고 그 속엔 텅 빈 이물감만이 남는다. 그것은 나름의 숨을 짧은 간격으로 쉬고 있다. 내 몸속 어딘가에선, 말하자면 허파 한쪽에 구멍이라도 뚫린 것처럼 바람 빠지는 소리가 밀려들어왔으며, 책장에서도 서랍 속에서도 바람 빠지는 소리가 불규칙적으로 드나들었다.
정리를 하는 것은, 말하자면 환경을 바꿔보려고 기획한 일이었으나 일은 통 진도가 나지 않았다. 가구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옮기거나 혹은 각도를 바꿔보거나, 그렇지 않으면 책상을 반으로 가르고 싶었으나 그것은 모세의 기적에서나 가능한 일이었으니, 좁다란 방구석에서 내가 시도해 볼 만한 가능성은 몇 가지 없었다. 그 제한적인 것들이 나를 더 굼뜨게 하고 생각을 차단하고 자꾸만 막막한 도가니로 밀어 넣는 것이었다.
그러다, 나는 그냥 그대로 마치 폭탄 맞은 것 같은 환경 그대로 보전하기로 했다. 정리되지 못한 내 마음이나 지금의 내 방의 모습이 서로 썩 닮아있었기 때문에, 두 녀석은 그대로 서로를 관망하도록 어영부영 내버려 두는 게 차라리 나았다. 나는 누군가를 돌 볼 처지가 아니었다. 그 대상이 비록 나라 할지라도.
그러다 길박사에게 전화가 온 것은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려 하던 직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