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아들과 함께 배우기
모처럼 아이들이 산책을 원해서 함께 했습니다. 큰 아이가 차로만 다니던 길을 걸어서 가고 싶다고, 그러면서 저에게 길을 안내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마침 이정표가 있어서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러고 나니 문득 지도가 떠올랐습니다. 아이가 기억하는 길과 걷는 경험을 지도 앱의 시각 자극과 연결시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은 탓인 듯합니다. 지도 앱을 켜고 목적지를 선택한 후에 도보로 가는 길을 고르고 아이들에게 보여 주었습니다.
큰 아이는 내비게이션 기능을 떠올리고 자신의 역할을 지키려고 했는지, 자신이 안내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습니다. 지도는 그저 우리가 어느 길로 가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한 보조 도구라고 아이를 안심시켰습니다. 한참을 걷는데 함께 따라가던 둘째가 힘들다고 칭얼거리기 시작했습니다. 큰 아이가 금방 도착한다고 말을 했는데, 그 효과를 높이기 위해 지도 앱을 켜고 멈춰 서서 함께 현재 위치를 확인했습니다.
꼭 지도 앱의 효과는 아니었겠지만, 둘째는 납득을 하며 목적지까지 성공적으로 완주를 했습니다.
두 번째 비슷한 이벤트는 가족 모두가 함께 산을 오르는 중에 겪었습니다. 아내가 둘째를 맡고, 제가 큰 아이와 함께 산을 올랐습니다. 등산로 중간중간 이정표가 있었고 잠시 멈추어서 우리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왔는지 헤아려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정표가 없는 지점에서 아이가 얼마나 남았는지 묻길래, 습관적으로 네비로 쓰는 앱을 열어 검색해 보았습니다. 서울에 있을 때는 자주 쓰다 보니 제주의 산에서는 정보가 없으리란 생각을 못했던 것이죠.
다음과 같은 화면을 처음 만났습니다. 저는 아이에게 지도가 나타나지 않는 이유를 짧게 언급하고, 중국에서 봤던 등산 전용앱을 떠올리며 산을 좋아하는 엄마는 갖고 있을지 모른다는 추정을 말했습니다.
아이는 이를 기억하고, 집에 도착한 후에 엄마는 등산 전용앱이 있냐고 물었습니다. 아이가 그 사이 '전용앱'이란 표현도 익혔고, 호기심도 유지한 채로 반나절 이상을 보냈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했습니다.
큰 애와 달리 둘째는 걷기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마침 짧은 거리를 둘이 걸어갈 일이 생겼습니다. 저는 아이를 설득할 때도 직장에서 협상할 때와 같이 상호이익의 원칙을 지켜 생각하고 말을 합니다. 그런데, 아이에게 마땅히 장점으로 제안할 말이 없습니다. 다행스러운 점은 능력 밖의 일을 맡을 때는 꾸준히 추구는 하되 약간의 여지를 두고 지켜보는 점을 배웠다는 사실입니다.
못마땅해하던 아이는 제 손을 잡고 몇 걸음 걷더니 커다란 쉐보레 간판을 보고 읽었습니다. 그리고, 차를 좋아해서 차에 탔을 때 쉴 새 없이 차종이나 브랜드를 말하는 형에게 배운 것인지, 저에게 자기는 쉐보레 차를 찾으면서 걸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걷기로 마음먹은 모양입니다. 다행스러운 일이면서 동시에 흥미로운 일입니다.
최초에 아이에게 가깝다고 설득할 때 보여준 지도 화면이 다시 과거의 경험을 소환한 모양입니다. 아이가 계속해서 어디까지 왔느냐 묻고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느냐 물으면서 지도앱을 켜도록 요청했습니다.
이번에도 '반복의 힘'을 느낍니다.
아내에게 꽈리를 배운 둘째가 그간 아빠의 검색 습관을 익혔습니다. 무언가를 따고 나서 이름을 모른다고 하자 핸드폰 열어서 해보라고 요청했습니다. 꽈리더군요. 그러더니 '김오름 선생님은 어디까지 갔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전에 가족 모두 산행을 할 때, 아내가 오름에 관련한 지식을 우리에게 설명해 줄 때 아이들이 재미있으라고 아내를 '김오름 선생님'이라고 불렀던 것을 기억하고 하는 말입니다. 다시 한번 반복은 힘이 세다는 박문호 박사님의 말이 떠올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