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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의 디지털 전환 10년 경험을 꺼내다

묻고 따져서 개념을 만들고 실행하는 디지털 전환

by 안영회 습작

지난 글에 이어 이번에는 <팔란티어 시대가 온다>에서 밑줄 친 내용을 토대로 디지털 전환에 대한 글을 쓰고자 합니다.


변화 관리의 다른 말은 정치적 수완 이용하기

다음 문장을 읽을 때는 몰입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전면 교체'에만 집중한 나머지 실제 비즈니스에서 가장 시급히 해결되어야 할 공백과 비효율을 선별해 점진적으로 개선하는 전략적 접근을 간과한 것이 아니었을까.

너무나도 비슷한 경험을 한 탓이죠. 여러분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면 저처럼 이를 대응시킬 수 있도록 열쇄가 되는 개념을 소개합니다. 바로 '전면 교체'인데요. 만일 디지털 전환의 관건이 기술 도입으로 보는 입장에서 출발한다면, A랑 B 중에 하나를 고르고 다른 것은 과거와 같다고 착각하는 것이죠.


제 마지막 실패 상황, 다시 말해서 제가 참여하고 컨설팅했지만 기업이 실패의 길로 갔던 최근 상황에 대입해 보겠습니다. 당시 이 일을 승인했던 프로젝트 스폰서는 진행 2년 차에 접어들었을 때, 우리는 '디지털 전환을 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습니다. 그건 무슨 뜻이었을까요? 그와 충분한 대화를 하지 못한 상황이 안타까웠습니다.[1]


책에 나오는 다음 내용도 저의 과거 경험을 떠올리기 충분한 상징적인 장면입니다.

지금도 기억에 생생한 장면이 있다. 출근 이틀째 되던 날, 첫 임원회의 자리에서 70세가 넘은 고침 임원이 건설업에서 무슨 데이터를 얘기하느냐고 큰 소리를 내서 회의 분위기를 일순간에 얼어붙게 했다.

더불어 책에는 정서적 충돌이라는 난제의 해법에 대한 힌트도 제시합니다.

치맥 앞에서 풀리지 않는 문제는 없었다.


성장과 발전은 언제나 그것을 막는 힘과 싸워야 한다

대부분의 경우 혁신을 반대하는 진영이 절대다수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다면 매우 정치적으로 혹은 정무적으로 혹은 '변화 관리'에 심혈을 기울여서 진행해야 합니다.

대부분의 건설사 현장에서는 업무의 증빙과 기록을 종이 문서 기반으로 처리하는 아날로그 방식이 여전히 주류를 이루며, 이는 디지털 전환을 추진하는 데 가장 현실적인 장애 요소로 꼽힌다.

최근에 <성장과 발전은 그것을 막는 힘과 싸워야 한다, 언제나>를 쓴 덕분에 <Same as Ever>의 저자가 알려준 교훈도 같은 패턴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좋은 일은 작고 점진적인 변화가 쌓여 일어나므로 시간이 걸리지만, 나쁜 일은 갑작스러운 신뢰 상실이나 눈 깜짝할 새에 발생한 치명적 실수 탓에 일어난다.

저자는 당시 건설업에서 혁신을 막는 장애물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건설업은 현장 중심의 개방형 작업 환경이라는 특수성을 지닌다. 착공 초기 단계의 거친 지반 환경부터 건물 및 조경이 마무리되는 준공 시점까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작업 조건과 환경이 지속적으로 변화한다.

이를 돌파할 때 모바일 혁명의 산물을 활용하는 창의력을 발휘했습니다.

카카오 비즈니스톡을 '오픈 API' 기반으로 팔란티어 온톨로지와 연계함으로써 실시간 쌍방향 소통이 가능한 인터페이스 체계를 성공적으로 구축했다.

저는 2016년부터 4년 정도 중국에 살면서 먼저 만났던 모바일 혁명의 UX를 활용한 것이죠.


기업의 E2E 운영을 가능하게 하는 소프트웨어 기술

E2E를 중요성을 포착한 점에서 저자의 직업적 전문성이 엿보입니다.

밸류체인상 엔드투엔드로 연결되지 않는 비어 있는 프로세스를 우선적으로 식별하고 여기에 집중해야 한다

E2E는 전혀 다른 맥락으로도 매우 중요한데. 최근 페벗 님이 올리신 글에서 테슬라 FSD의 경쟁력을 말할 때도 E2E가 등장합니다.


이렇게 E2E를 기업 운영에 적용하려면 IT 역량이 필요합니다.

빠른 내재화 기반의 개발 역량 확보

앞서 언급한 세 번의 디지털 전환 프로젝트 경험에서 두 번은 기존의 IT 조직이 있었지만 외주 개발에 의존하는 관성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다른 한 차례는 아예 IT 조직이 없어서 새로 팀을 꾸리는 바람에 절반의 성공을 할 수는 있었습니다. 하지만, 전체 조직의 비전과 해당 팀의 방향성을 맞추지 못해 성장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었습니다.


비용 부서로 인식되는 전산실 개념의 IT부서는 대개 디지털 전환에 도움이 되기보다는 심각한 방해가 됩니다. 시대적 전환을 인식하지 못해 비용 효율화라는 한가한 목표를 직업적 소명으로 받아들인 수장이 맡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도리어 IT부서는 전산실의 미래가 아니라 데이터를 다루는 새로운 유형의 직군이 되어야 합니다.

기획자, 현장 관리자, 마케터 등 모든 사용자가 자신의 업무에 필요한 AI 도구를 직접 만드는 '빌더'가 될 수 있다.


이미 1988년에 피터 드러커가 제시한 새로운 제조 방식

연쇄적인 품의로 판단 착오를 막는 장치는 과거에는 분명 도움이 되었을 것입니다.

데이터는 '스토리텔링 도구'로 소비되는 정적 자산이 되고, 이는 경영진에게 단편적 진실만으로 전달하는 보고 문화로 고착되기 쉽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의견의 편향으로 덧씌워진 보고서에서 사실과 데이터는 설 자리를 잃게 되는 경우도 비일비재합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10여 년 이상 업계에 회자되었던 Business Intelligence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현실에서는 그저 비싼 솔루션으로 전락해 버렸지만, 기업에서 BI가 회자되는 맥락은 이미 1988년 피터 드러커가 기고한 글[2]에 잘 나와 있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드러커가 말한 새로운 제조업 이론을 이해했다면 다음 내용을 하나의 예시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제조업은 '고정된 원가 + 변동 가능한 매출' 구조이며, BOM을 통한 사전 통제가 가능하다. 그에 비해 건설업은 '고정된 매출 + 변동 가능한 원가' 구조이므로, 원가 변동이 손익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핵심 변수다.

저는 <새로운 제조업 이론이 나를 이끌다>를 쓸 당시 드러커의 이론에 부합하는 두 가지 사례에 대한 흔적을 이미지로 남겼습니다. 그런데, 하나는 결과적으로 처참하게 실패한 사례이고, 두 번째는 대표적인 성공 사례입니다.

그만큼 E2E로 기업 운영체제를 바꾸는 일은 어렵다고 하겠습니다.


디지털 전환의 목표 설정이 중요하다

다만, 작은 성공 사례를 통해서 한 기업 안에서 가능성을 보여주는 일은 다릅니다.

현장홈은 건설 현장을 하나의 독립적인 회사로 보고 현장의 주요 문제와 현황을 꼬리에 꼬리를 물어가며 파악하고 해결하고 싶다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중략> '현장 하자가 발생한 그 자재는 어디서 왔지? 그 하자를 어느 협력사에서 시공했지? 그 시공 업체가 그 자재로 시공한 현장은 모두 몇 개지? 보수 비용은 총 얼마나 들어갔지? 이런 식으로 영역을 넘나들면서 모든 데이터를 확인하고 싶다.

시장을 만나 생존하는 일에 비한다면 상대적으로 쉬운 것은 분명하죠.


주석

[1] 어쩌면 그 힌트는 지난 글을 쓰며 끄집어낸 <혁신이 파괴적일 필요는 없다>라는 글에 힌트가 담겨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주제를 벗어날 듯하여 여기서 다루지 않습니다.

[2] 2023년 <새로운 제조업 이론이 나를 이끌다>를 쓰며 알게 되었습니다.


지난 묻고 따져서 개념을 만들고 실행하는 디지털 전환 연재

1. 뜻밖의 상황에 등장한 '제어 역전'이 주는 지적 자극

2. 대체 전략을 어디에 써먹고 어떻게 실천할까?

3. 욕망에 부합하는 가치와 재미를 전하는 생존 양식

4. 코드 범람의 시대, 데이터 희소의 시대에서 개인의 기회

5. UI 패턴에서 동선 설계로 그리고 메뉴와 내비게이션

6. 우리 업무 프로세스를 위한 프레임워크 정의

7. 빠르게 훑어보고 골자만 추려 쓴 팔란티어 데이터 솔루션

8. 감정을 돌보면 일이 잘 되고, 공감 없는 협업은 없다

9. OTA를 타고 형체도 없이 수입되는 FSD라는 상품

10. 전통 기업의 디지털 전환은 비파괴적 창조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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