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게 즉각 개입하는 대신 관찰하면 보이는 것들

두 아들과 함께 배우기

by 안영회 습작

아이가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을 할 때 제지하거나 즉각 제 의견을 말하는 대신에 가만히 관찰하면 아이에대해서나 혹은 나의 고정관념에 대해 알 수 있는 기회(?)가 열렸습니다. 그 깨달음을 기록으로 남기는 글입니다.


판단하지 않고 옆에서 관찰하면 배울 수 있는 것들

두 장면을 일단 사진으로 담았는데요. 먼저 첫 번째 사진을 두고 제가 붙인 이름은 '판단하지 않고 수용하거나 포용하기'입니다. 제가 사진 찍을 당시 마음 자세로 이름을 지은 것이죠. 어쩐 일로 아이가 대학교 이름과 로고로 만들어진 스티커를 가지고 왔습니다. 방학식과 동시에 6학년 졸업식이었는데, 아마도 학교 앞에서 학원 영업을 하는 어른들이 저학년인 우리 아이에게도 나누어준 모양입니다. 다양한 대학교의 로고를 스티커로 제작하여 노트와 함께 묶은 일종의 브로셔라 할 수 있습니다. 거기서 상업적 의도를 보고 전단지라고 생각해서 쓰레기통에 넣으려고 했지만, 아이는 전혀 다르게 보았습니다. 아이에게는 그저 로고가 있는 스티커일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제 충동을 거두고 가만히 지켜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아이가 빈 종이에 스티커를 붙이고 로고와 대학 이름을 넣은 표를 만들었습니다. 요즘 학교에서 자료 읽기에 대해 배운 탓인지 아니면 '게시판 효과'를 노려 둘째가 좋아하는 축구 선수들의 누적 골 수를 보여주는 표를 아이 식탁 밑에 둔 것이 영향을 끼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건강한 씨앗을 뿌리고 마음의 밭을 키우자

아무튼 아이는 자기 나름으로 외부에서 준 재료를 토대로 자신의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해석을 하고 나니 충동을 멈추고 마음에 여지(餘地)[1]를 만들었을 때, 발언하는 대신 차분하게 관찰해서 얻은 경험의 소산이란 점이 분명해집니다. 그 이후에 이를 해석하여 이 글을 쓰게 된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무척 어려워하는 경청(傾聽)[2] 성과로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경청'을 떠올리니 보름 전에 썼던 <말하기는 씨 뿌리기이고 경청은 결과를 거두는 일이다>가 떠올라 다시 펼쳤습니다. 지금의 제 성찰 내용에 연결시킬 수 있는 그림이 있었습니다.

마음의 밭을 키우려면 먼저 씨를 심을 마음의 여지부터 만들어야 합니다. 그 방법은 한자 씨말이 알려주기도 합니다. 먼저 마음과 귀를 기울이는() 행위입니다.


자기 중심성을 극복해야 얻을 수 있는 타자를 위한 여백

여기에 도달하니 마침 어제 읽었던 <고백의 언어들>의 한 구절이 떠오릅니다.

"입을 열어 한마디 말도 할 수 없었다"라고 하는 것은 깊은 공감 능력을 보여줍니다. 그의 불행을 해석하려는 무모한 시도도 하지 않았습니다. 생각이 없던 것은 아니었겠지만 그들은 침묵을 택했습니다.

성경의 욥기 인용입니다. 극한의 고통을 겪는 친구를 향한 최고의 우정을 묘사한 내용입니다. <당신이 옳다>를 성경처럼 곁에 두며 배운 '충조평판'의 중독에서 벗어나는 것이죠.

그러고 나서 마음의 여백을 만들면 공감할 수 있는 바탕이 만들어집니다. 앞서 사용했던 '여지' 대신에 '여백餘白'[3]이라는 단어를 택한 이유 역시 어제 읽었던 <고백의 언어들>의 한 구절 때문입니다.

자기가 세상의 중심이 되지 않으면 못 견디는 마음이 곧 죄라는 것입니다. 타자를 위한 여백은 없습니다.


타자를 위한 여백이 보여주는 안 보이던 장면들

<고백의 언어들>에서 한 구절 더 인용하겠습니다.

사유한다는 것은 자기와의 대화입니다. 대화가 단절될 때 발생하는 것이 클리셰liché입니다. 남이 한 말을 자기 말로 삼는다든지, 남이 심어 준 가치를 자기 신념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여백이 없습니다.

그렇게 여백을 만들었을 때 진정한 소통과 교류가 되는 것이라 할 수 있을까요? 그렇다고 가정하면 다시 <말하기는 씨 뿌리기이고 경청은 결과를 거두는 일이다>를 소환할 수 있습니다. 말하고 듣는 일을 이와 같이 충실히 한다면, 진정한 자기와의 대화가 일어난다 하겠습니다. 더불어 타자와의 공감을 통해 우리가 사는 세상에 대한 이해와 고려가 체화되고, 말과 생각과 행동이 조금 더 사실충실성에 입각해 인식하는 삶에 유리하다 하겠습니다.


결과적으로 그런 내적 작용에 의해 둘째 아들의 행동에 즉각 개입하지 않고 관찰해서 배운 것을 요약하면 아이가 자기 주도적으로 하는 일이 제 시야 바깥에 존재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자기주도 학습을 시키겠다는 욕심에 끌려 아이의 개성과 아이의 관심은 뒷전이 되는 우를 범하는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따져 보니 획순을 중시하는 개성을 독려하며 핸드폰에서 한자사전을 찾아 보여주는 일을 게을리했을 때 발견한 장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이가 제 핸드폰을 들고 획순 검색을 시도할 때 역시 개입을 참고 그대로 지켜보았습니다. 저와 다른 행동이 보였습니다. 처음에는 핸드폰 타이핑이 익숙하지 않아 손으로 한자를 써서 입력하더니 이내 더 나은 방법을 찾고 시도했습니다. 제가 출력한 한자 쓰기 종이에 보이는 음과 훈을 보고 앱에서 마이크 아이콘을 눌러 말로 검색하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디지털 네이티브 다운 자기 주도적 응용을 관찰한 것이죠. 이 장면에서 제가 개입했다면 아이의 개성을 무시하고 갈등을 일으키고 자기 방법만 옳다고 꼰대질을 할 가능성이 있었던 것이죠.


앞으로 얼마나 자주 재현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마음의 여백을 마련하는 것의 가치를 확실히 체험한 순간이었습니다.


주석

[1] <낱말의 뜻을 깊고 넓게 묻고 따지는 일의 소중함> 실천으로 한자 사전을 찾았습니다.

[2] <낱말의 뜻을 깊고 넓게 묻고 따지는 일의 소중함> 실천으로 한자 사전을 찾았습니다.

[3] <낱말의 뜻을 깊고 넓게 묻고 따지는 일의 소중함> 실천으로 한자 사전을 찾았습니다.


두 아들과 함께 배우기 연재

(34회 이후 링크만 표시합니다.)

34. 결과가 아닌 과정을 보게 하고 좋은 습관 들이기

36. 정조는 왜 조祖로 끝나고, 세종은 왜 종宗으로 끝나나?

37. 아이들 영화 덕분에 배우는 Boxing day의 맥락

38. 놀이에서 출발해서 배움으로 나아가기

39. 아빠랑 수학 공부하니까 재미있어요

40. 디지털 네이티브들의 소비 훈련

41. 연기(緣起)를 이야기로 만들기

42. 시행착오와 모방이 만드는 청출어람

43. 두 아들의 개성 차이에서 배우기

44. 일상에서 자연스러운 배움을 아이들에게 흐르게 하기

45. 두 아들에게 눈에 보이게 하는 게시판 효과 활용하기

46. 아이의 질문이 깨운 호기심을 동력으로 배우기

47. 108번이라는 횟수는 습習을 키우는 절대량인가?

48. 한자를 씨말로 어휘력을 늘리는 묻따풀 한자 144

49. 아이의 도전이 깨운 메타인지를 동력으로 배우기

50. 육아로 시작했지만 서로 영향을 주며 발전하는 가족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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