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아들과 함께 배우기
12월에 아이와 함께 하며 겪고 느끼고 배운 것을 모아 보았습니다.
둘째 아이와 밥을 먹는데 이렇게 물어봅니다.
아빠, 사람은 왜 꼬리가 없는데 꼬리뼈가 있어요?
머릿속에 여러 생각이 떠오르긴 하지만 차려지지 않을 때, 인공지능에 도움을 청합니다. 명저 <듀얼 브레인>을 읽고 쓴 <인공지능을 공동지능으로 길들이는 네 가지 원칙>에서 배우고 익혀 습관이 되었습니다.
대충 훑은 후에 마지막에 있는 '초2 수준으로 한 문단 정리'를 봅니다.
“옛날 우리 조상은 동물들처럼 진짜 꼬리가 있었는데, 두 발로 걷고 손을 잘 쓰게 되면서 긴 꼬리가 필요 없어져서 점점 사라졌어. 그래도 꼬리가 붙어 있던 자리의 뼈는 완전히 없어지지 않고 남아서, 지금 네 엉덩이 안쪽에서 근육들을 붙잡아 주고, 우리가 앉을 때 몸을 받쳐 주는 ‘꼬리뼈’가 된 거야.”
어떻게 하면 아이가 재미를 느끼면서 소화할 수 있게 할 수 있을까요? 일단, 시험 삼아 아이에게 읽어 주었습니다. 열심히 듣지만 특별한 반응은 없습니다.[1]
최봉영 선생님께서 <낱말의 뜻을 깊고 넓게 묻고 따지는 일의 소중함>을 알려주셨어도 실제로 습이 붙게 훈련하게 된 계기는 '한자어 낱말의 씨말'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은 후였습니다. 과거의 행동 양식을 버리려면 의지도 필요하지만, 바로 행동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무튼 그러기에 한자어 낱말은 좋은 출발점이었죠.
둘째 아들이 이제 막 영어 단어를 익히기 시작했다는 점도 작용했습니다. 아들이 오늘 무슨 요일이냐고 물을 때, 영어로도 알려주면서 소리 내어 이렇게 질문한 일이 있습니다.
그런데, 왜 Fiday 일까?
이후에 바로 제미나이에게 물었더니 이렇게 답합니다.
Frige's day: 로마인들이 이 날을 자신들의 사랑의 여신 이름을 따서 '비너스의 날(Dies Veneris)'이라 부른 것에 대응하여, 게르만족은 자신들의 여신인 '프리그(Frigg)'의 이름을 붙여 Frige-daeg라고 불렀고, 이것이 오늘날의 Friday가 되었습니다.
이 타이밍에 눈앞에 아내가 지나가자 구글링으로 이미지를 검색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두 아들의 호기심을 끌기 위해서 말이죠.
이미지를 보여주고 '엄마처럼 예쁘다'라고 말했더니, 큰 아들이 엄마가 비교할 수 없이 예쁘다고 너스레를 떱니다. 정작 둘째는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큰 아이는 아마 책에서 북유럽 신화를 본 모양입니다. 제가 '프리그가 오딘의 아네였네'라고 말하자, '아빠, 몰랐어요.'라고 말합니다.
이어서 검색 결과를 보고 이렇게 말했더니 큰 아들이 다가옵니다.
오딘의 아내면 토르의 엄마인가?
마블 시리즈를 많이 좋아하지 않지만, 토르 캐릭터를 매우 좋아했기에 관심이 갔습니다. 이후에 다시 퍼플렉시티로 검색했습니다.
마블 시리즈와 하면서 일부일처제로 사회가 바뀌고 여권이 신장되는 역사가 깔려 있음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마침 어제 아들과 나눈 대화에서 아이들의 할아버지(저희 아버지)는 아버지 얼굴을 본 적이 없다는 말을 했던 것이 떠올랐습니다. 이런 내용이 다뤄지면 원하는 주제의 교육이 되지 않거나 주제를 잡아도 아이들이 어렵게 생각하여 흥미를 잃을 수 있겠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오랜만에 책장을 새로 샀습니다. 그동안 책 정리할 때 구획 정의는 제 역할입니다. 첫 아이를 나을 즈음에 한쪽 벽면에 주로 제 책을 보관하는 책장이 있었는데, 아이가 태어나면서 자연스럽게 아이도 책장과 관계를 맺게 됩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기어 다니던 시절에 한쪽 벽에는 항상 책이 거대하게 쌓여 있었던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와 책장 사이의 관계도 변화가 있었는데, 가장 아래 칸은 이제 아이 몫이 된 것이죠. 그렇게 자연 발생적으로 변화를 커졌던 책장과 우리 가족 사이의 역사가 있습니다.
이번에는 혼자 정하지 않고, 두 아들의 의견을 듣고 행동을 관찰해 보았습니다. 둘째는 자기가 최근에 읽고 있는 책들이 한 곳에 모이는 것에만 관심을 두었습니다. 그걸 수용해 주고 나자, 실질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정하고 옮기는 일은 큰 아들이 맡아서 했습니다.
[1] 인공지능이 하나의 힌트를 더 남겼습니다.
옛날엔 꼬리가 있었을까?
꼬리뼈는 왜 남아 있을까?
왜 꼬리는 사라지고 꼬리뼈만 남았을까?
지금도 “꼬리”가 보일 때가 있을까?
퍼플렉시티가 제시한 내용을 네 가지 질문으로 사용하기로 합니다. 여기까지만 하고 다음으로 나아가고 싶은 욕망을 자제합니다. 더 나아가면 내가 투자한 시간과 노력이 발목을 잡아 '협상론적 세계관'을 잃어버릴 수 있으니까요.
[2] 마지막 단락 제목에 '진화'란 말을 넣고 싶어서 넣었는데, 너무 거창한 표현 아닌가 싶어서 사족을 붙입니다. 창발 효과를 강조하려고 선택한 것인데, 이해가 부족한 탓일 수도 있겠으나 그렇더라도 <무의식은 어떻게 나를 설계하는가>의 다음 글을 읽은 후에 '진화'를 쓰기로 결심합니다.
환원주의가 모든 것에 적용되지는 않는다. 뇌와 정신 사이의 관계는 확실히 환원주의로 설명할 수 없다. 창발emergence이라는 개념 때문이다. 대량의 부품들을 하나로 조립했을 때, 그 결과물이 부품들의 총합보다 더 뛰어날 수 있다는 개념이다. 비행기를 구성하는 금속덩어리들에는 '비행'이라는 속성이 없지만, 그들을 올바르게 조립하면 그 결과물이 공중으로 떠오른다. <중략> 창발이라는 개념 은 어느 부품에도 원래부터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속성이 생겨날 수 있다는 뜻이다.
(33회 이후 링크만 표시합니다.)
33. 가르치려 하기 전에 먼저 아들에게 관심을 보이기
34. 결과가 아닌 과정을 보게 하고 좋은 습관 들이기
36. 정조는 왜 조祖로 끝나고, 세종은 왜 종宗으로 끝나나?
37. 아이들 영화 덕분에 배우는 Boxing day의 맥락
40. 디지털 네이티브들의 소비 훈련
41. 연기(緣起)를 이야기로 만들기
44. 일상에서 자연스러운 배움을 아이들에게 흐르게 하기
45. 두 아들에게 눈에 보이게 하는 게시판 효과 활용하기
47. 108번이라는 횟수는 습習을 키우는 절대량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