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을 차리는 독서의 시작
<킹메이커 피터 틸과 파운더스 펀드의 동지들>에 이어서 <이병한의 아메리카 탐문>을 읽고 밑줄 친 내용을 토대로 쓰는 글입니다.
저자가 피터 틸Peter Thiel을 다룬 내용이 두 부분을 나뉘는데, 그중에서 후반부를 다룹니다.
그들이 작성한 가장 중요한 문서가 150인 명단이다. 자고로 인사가 만사다. 트럼프 1기 행정부의 주요 요직에 배치할 점령군을 추천한 것이다. 국가의 내부로 침투하여 행정국가를 붕괴시키는 특수임무를 수행할 특공대였다. 가령 틸이 FDA(식품의약국)에 추천한 사람은 발라지 스리니바산이었다. 스탠퍼드 대학에서 컴퓨터과학을 전공한 당시 36세의 암호화폐 기업가였다. 여전히 종이 문서로 운영되는 낡은 미국을 떠나서 0과 1로 작동되는 디지털 신생국가를 만들자고 떠들고 다니는 친구였다. 그의 시각에서 FDA는 존재할 필요가 없는 조직이었다.
제가 <제로 투 원>을 읽을 때는 피터 틸의 생각과 미국 정부가 상관관계가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그만큼 제 상식으로는 행정과 스타트업 경영은 거리가 멀었습니다. 그랬던 이유로 <제로 투 원>을 다시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편, 트럼프 1기를 피터 틸 입장에서 실패로 볼 수밖에 없는 근거가 제시됩니다.
150명 가운데 트럼프 정부에 합류한 인사는 10명 남짓에 그쳤다.
그리고 우리나라 극우 정치세력에게 논리를 제공한 사건이 등장합니다.
이번에는 특히나 우편 투표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았고, 기어이 부정선거론의 도화선이 되었다. STOP THE STEAL, 도둑질을 멈춰라! 트럼프의 패배를 인정하지 못하는 극렬 지지자들이 국회의사당에까지 난입하는 그 사달이 난 것이다.
그리고 이번 트럼프 당선에서 틸의 동료들이 나선 일이 배경을 이해하게 됩니다.
킹을 바꾸지는 않기로 했다. 트럼프의 패배로 트럼피즘은 더더욱 들불처럼 번져나가 미국을 집어삼킬 것이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이제 공화국의 대통령이 아니라 제국의 제왕, 총통이 되어갈 것이다.
피터 틸에 대한 인간적인 호감은 없었지만
공화당은 죽었고, 공화국도 죽어가고 있었다. 불타는 로마처럼 워싱턴이 불타오르고 있었다. 천성적으로 신중한 틸은 낙담하거나 분노하는 사람이 아니다.
처음으로 신중한 태도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내용입니다. 하지만, 저자에 따르면 피터 틸은 천성적으로 그렇다고 합니다. 저는 천성적으로는 다혈질이니 배우는 것이 쉽지는 않아 보입니다.
앞선 팔란티어 이야기가 배경 지식이 되어 다음 문장은 익숙한 내용처럼 여겨졌습니다.
머스크와 카프가 당선인에게 직접 어필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한 것이다. 특히 상대적으로 무명이었던 카프는 이 회동을 십분 활용했다. 트럼프가 주장하는 위대한 미국의 재건에 팔란티어의 소프트웨어가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를 발표했다. 불법 이민자의 추적과 추방에도, 강력한 안보태세 확립과 국방력 강화에도 팔란티어의 프로그래밍이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음을 피력했다.
그리고, 다음 이야기는 꽤나 요긴했습니다.
트럼프 1기 4년이 점점 더 혼돈으로 빠져드는 와중에도 테슬라와 팔란티어의 주가는 계속 우상향 하고 있었다. 이들 기업에 투자한 파운더스 펀드 또한 돈을 긁어모았다. 틸이 파운더스 펀드를 설립한 이래 가장 수익률이 좋았던 4년이 바로 그 시기였다. 주요 국가기관들과 본격적으로 합작하기 시작한 스페이스X와 팔란티어는 바이든 정권 4년을 거치면서도 성장을 멈추지 않았다. 틸이 딥스테이트 내부 깊숙하게 장착시킨 프로그램들이 자율적으로 자연스럽게 가동되고 있던 것이다. 올드 아메리카의 세금이 줄줄줄 파운더스 펀드로 흘러들어 뉴-아메리카를 재건할 든든한 군자금이 되어주었다.
저에게는 로보택시를 위한 포석인가 보다 싶었던 일론 머스크의 행동의 바탕을 개괄적으로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이죠. 게다가 밴스까지 피터 틸의 사람이었다니!
2022년 봄, 마라라고에서 틸은 젊은 정치인 한 명을 트럼프에게 소개했다. 틸의 충직한 직원 출신인 J.D. 밴스였다.
이어서 저자는 2025년 피터 틸의 정체성을 이렇게 명료하게 정의합니다.
실리콘밸리의 마스터가 이제는 뉴-아메리카의 마에스트로가 된 것이다. 본디 나를 따르라, 돌격대형 리더가 아니었다. 작전을 짜고 작곡을 하고 연주를 한다. 백악관과 워싱턴 곳곳에 포진시킨 자신의 분신들을 악기 삼아 위대한 교향곡을 총지휘하기 시작한다.
이어서 저자는 그러한 정체성에 걸맞은 이력을 풀어 나갑니다.
미국 전역에 TV로 생중계되었던 그 장면은 틸의 일생을 좌우하는 원체험이 되었다. 소년은 자신의 체스 세트에 '타고난 승리자'(Born to Win)라는 좌우명을 스티커로 붙여둔다. 천성적으로 차분한 그 소년이 유일하게 울분을 참지 못하고 화를 내는 순간도 체스에서 질 때였다. 전술•전략만큼은 지고는 못 살았다. 실제로 승승장구 13세 이하 체스 대회에서 틸은 미국 전체 1등을 쟁취한다. <중략> 꼴통 이대남들의 사상을 갈무리한 책이 바로 《다양성의 신화〉(The Diversity Myth)다. 1995년에 출간된 피터 틸의 첫 번째 저작이다. 이 책을 공저한 데이비드 삭스는 1998년 틸과 함께 페이팔을 창립했고, 30년이 지난 2025년 현재는 트럼프 2기 정부에서 인공지능과 암호화폐 정책을 총괄하는 '차르'가 되었다.
하지만, 다음 내용을 만날 때는 중립적이던 제 입장이 바뀝니다.
고등교육은 이미 심각한 버블이다. 중세의 교회처럼 곧 사라질 거품이다. <중략> 시대착오적인 대학이 청춘을 아프게 만든다. <중략> 즐겁고 신나고 건강해지려면 자기다운 일을 해야 한다. <중략> 모든 위대한 창업자는 저절로 자기주도 학습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면 공부도 정말로 신나고 재미가 있다. 일이 곧 공부요 놀이가 되는 것이다.
교육 체계에 대한 인식은 저와 같은 진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털은 하버드 대학을 중퇴한 저커버그에게 거금을 투자하여 페이스북을 세계 최고의 SNS 기업으로 만들어냈다. 저커버그는 틸이 빚어낸 첫 번째 완성품이었다. 헤어스타일마저 로마의 황제 카이사르를 흉내 냈다.
그러면서 다음 내용을 볼 때면 또다시 <제로 투 원>을 다시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애당초 미국은 창업가들이 세운 나라다. 제로에서 원으로, 무에서 유로, 그렇게 스타트업으로 세운 나라가 바로 미국이다. 건국의 아버지들, 알렉산더 해밀턴도 토머스 제퍼슨도 모두 18세기의 혈기 왕성한 창업가들, 파운더였다.
68혁명이라는 말은 <월말김어준>의 박구용 교수님 강의 덕분에 익숙합니다.
"Stay Hungy, Stay Foolish." 늘 갈망하라, 우직하게 나아가라! 잡스는 연설에서 68세대를 상징하는 잡지 〈홀 어스 카탈로그>(Whole Earth Catalog)의 이 슬로건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언급했다. 21세기 초반의 실리콘밸리가 68의 자장 아래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장면이다. 1960년대의 반문화(Counter-Culture)가 1990년대의 디지털 문화(Cyber-Culture)로 전이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딱히 더 알고 싶지는 않습니다.
틸은 그렇게 훈수를 두는 투자 문화가 진정한 창조와 혁신을 저해한다고 여겼다. 창업자에게는 창조주와 같은 자유와 권한을 보장해주어야 한다. 누구도 간섭하지 않는 절대권력의 행사를 보호해주어야 한다. 즉 CEO 한 명 한 명을 절대군주로 키우고자 한 것이다. 절대적 권한이 있어야만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
군주적 리더십 또한 깊이 공감이 되지는 않습니다.
의사결정에 탁월한 군주적 리더십만이 유일무이한 하나에 도달할 수 있다. <중략> 그저 돌연변이 같은 거친 원석을 찾는 것이지, 보석을 다듬고 닦으며 시간을 죽치는 것이 아니었다.
다만, 그런 판단이 있었기에 최고의 실적을 낼 수 있었다는 말에는 쉽게 수긍(首肯)이 갑니다.[1]
그러했기 때문에 최고의 실적을 거둘 수 있었다. 페이스북, 유튜브, 스페이스X, 에어비앤비, 스포티파이, 이더리움, 딥마인드, 팔란티어 등등. 철저하게 불간섭주의에 입각한 역발상적인 투자 방식의 타당성을 입증한 것이다. 패러다임의 전환, 1955년생 잡스에서 1967년생 틸로 세대가 교체되고 마을의 권력이 넘어갔다. 틸을 페이팔 마피아의 대부이자 실리콘밸리의 수괴라고 부를 수 있는 까닭이다.
저자는 이어서 흔히 페이팔 마피아로 불리는 피터 틸 동지들의 특성을 설명합니다.
페이팔 초기 멤버 여섯 가운데 네 명이 미국 밖에서 태어났고, 세 명은 공산국가를 탈출해 미국에 왔다. 중국과 폴란드, 소련의 우크라이나 출신이었다. 그들 모두가 국가 없는 세상을 바랐다. 더 정확히는 국가의 권력이 최소화된 미래를 원했다.
비트코인까지?
돈이 정부와 종이에 묶여 있는 한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갈 수 없다. 페이퍼 거번먼트는 최소화하고, 디지털 거버넌스는 최대화해야 한다. 2008년 파국적인 세계 금융위기를 맞고 나서야 등장한 비트코인을 예지했던 것이다. 페이팔이야말로 가장 일찍이 달러를 대체하는 디지털 통화를 만들고 싶어 했다. 즉 페이팔을 이베이에 매각하고 손에 쥔 거금을 가지고 출범시킨 파운더스 펀드는 뼛속까지 정치적 프로젝트였다.
저자의 서술은 빠져드는 면이 있지만, 스케일이 커지자 자연스럽게 '정말인가?' 싶은 의구심도 듭니다.
선거에 연연하니 구조적으로 시야가 좁고 단기적인 사고에 매몰될 뿐이다. 몇십 년을 내다보는 장기적 계획을 도저히 세울 수가 없다. 4년이란 무언가를 이루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지만, 무언가를 망치기에는 한없이 충분한 시간이다. 그러니 그 4년이 모이고 또 모여 40년이 되자 세상은 더욱 나빠지고 만 것이다.
인용한 내용들을 보면 팔란티어가 국방 프로젝트에 가담한 이유도 납득이 됩니다.
틸은 야빈이 창업한 스타트업에도 투자하면서 신반동주의가 실리콘밸리를 넘어 미국의 정치계로도 확산하는 데 적극적으로 기여했다. 트럼프의 수석전략가 스티븐 배넌은 《암흑 계몽》의 애독자였으며, 부통령 밴스에게 야빈을 소개한 사람도 틸이다.
다소 비약으로 느껴지기도 하는 저자의 필체는 상상력을 끌어내는 데에는 굉장히 효과적입니다.
인간이 스스로 다스릴 수 있다는 낭만적 휴머니즘에서 벗어나서 탈정치화 프로그램을 장착하자는 것이다. 제발 너 자신을 알라, 인간을 만물의 영장에서 끌어내리고 이성의 왕좌에서 몰아내자는 것이다. 법의 정신, 법학을 대신하여 우주의 법칙, 수학을 불러내는 것이다.
[1] <낱말의 뜻을 깊고 넓게 묻고 따지는 일의 소중함> 실천으로 한자사전을 찾습니다.
3. 데이터의 폭발적인 성장이 지구의 진로에 영향을 끼친다
4. 미국의 작동 방식을 팔란티어 소프트웨어가 대체한다
5. 소프트웨어의 꿈은 인공적인 자연 상태가 되는 것이다
(182회 이후 링크만 표시합니다.)
182. 새로운 미국을 이해하기 위한 필독서가 나타났다
183. 기대치 관리는 시기심과 고통을 다루는 일이기도 하다
184. 우리 뇌에 프로그래밍된 정신의 양당제 민주주의
185. 데이터의 폭발적인 성장이 지구의 진로에 영향을 끼친다
186. 미국의 작동 방식을 팔란티어 소프트웨어가 대체한다
188. 스토리는 언제나 통계보다 힘이 세다
191. 율리시스의 계약이 알려주는 타인의 말에 경청할 이유
192. 소프트웨어의 꿈은 인공적인 자연 상태가 되는 것이다
193. 어디에나 통하는 건강한 성장의 비밀
196. 성장과 발전은 그것을 막는 힘과 싸워야 한다, 언제나
197. 해마가 만드는 기억과 아미그달라(편도체)가 만드는 기억
198. 전쟁과 진화의 힘에서 배울 수 있는 사람이라는 존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