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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뇌에 프로그래밍된 정신의 양당제 민주주의

내 삶을 차리는 독서의 시작

by 안영회 습작

<인종차별적인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이 공존하는 뇌>에 이어서 <무의식은 어떻게 나를 설계하는가>의 5장 '뇌는 라이벌로 이루어진 팀'에서 밑줄 친 내용을 토대로 쓰는 글입니다.


뇌를 지배하는 양당 체제: 이성과 감정

나는 뇌를 라이벌들로 이루어진 한 팀으로 보아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링컨의 말을 빌어 뇌의 협력을 설명합니다.

링컨의 말처럼, 라이벌은 "공공선을 위해" 동맹으로 바뀌어야 한다. 신경 하위집단에게 공통의 이익은 유기체의 번성과 생존이다.

다음 다발말[1] 내용은 경험적으로도 이해가 되는 이분법입니다.

하나는 빠르고 자동적이며 의식의 표면 아래에서 움직이는 반면, 다른 하나는 느리고 인지적이고 의식이 있다. 첫 번째 시스템을 자동적, 암묵적, 체험적, 직관적, 전체론적, 반응적, 충동적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면, 두 번째 시스템은 인지적, 체계적, 외현적, 분석적, 규칙 기반, 성찰적이다. 이 두 과정은 항상 필사적인 싸움을 벌인다.

이에 대해서 저자는 조금 어색한 느낌이 드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신경해부학과 관련되지 않은 용어를 고르다 보니, 나는 모두에게 친숙한 두 단어, 즉 이성과 감정이라는 단어를 고르게 되었다. 정확히 규정되지 않은 불완전한 용어이지만, 그래도 뇌 안의 라이벌 관계와 관련해서 요점을 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생각에 대한 생각>을 훑어본 기억 때문인지 시스템 1과 시스템 2 이분법이 익숙했는데, 저자는 이에 대해 자기 의견을 피력했습니다.

일부 저자들은 이 시스템들을 건조하게 시스템 1, 시스템 2로 지칭했다. 이 책에서는 (혹시 불완전하더라도) 가장 직관적으로 받아들여질 것 같은 감정 시스템과 이성 시스템을 사용하겠다. 이 이름은 이 분야에서 흔히 사용된다.


트롤리 딜레마와 감정 네트워크의 활성화

이어서 저자는 자신의 이분법에 대해 이렇게 추가로 설명합니다.

감정이 없는 로봇이라면 주변의 물체를 분석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할지 결정할 때는 결론을 내지 못하고 얼어붙을 것이다. 행동의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것은 내면 상태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냉장고, 화장실, 침실 중 어디로 곧장 갈 것인지를 좌우하는 것은 집 안의 외부 자극이 아니라 몸 안의 내면 상태다.

그러면서, 이성적인 인지는 외부 사건에 관여하고, 감정은 내면 상태에 관여한다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둘 사이의 싸움을 잘 보여주는 사례로 철학자들이 트롤리 딜레마라고 하는 시나리오를 소개합니다.

전차(트롤리trolley) 한 대가 통제를 벗어나 선로를 마구 달려온다. 선로 저편에서는 기술자 다섯 명이 수리를 하고 있고, 구경꾼인 나는 그들이 전차에 치여 죽을 것임을 금방 알아차린다. 또한 내 손이 닿는 근처에 스위치가 있는 것도 보인다. 스위치를 조작하면 전체가 다른 선로로 옮겨갈 텐데, 그곳에서는 기술자 한 명만이 목숨을 잃을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시나리오를 조금 비틀어 누군가의 몸에 손을 대야 하는 경우와 스위치 조작으로 가능한 선택지를 내밀면 감정 네트워크를 활성화하여 추상적이고 비인간적인 수학 문제가 인간적이고 감정적인 결정으로 변한다고 설명합니다.


우리 뇌에 프로그래밍된 정신의 양당제 민주주의

환경 변화가 급격할 때 신체에 프로그래밍된 내용이 이를 따라가지 못해서 생기는 현상이란 생각을 만드는 다발말입니다.

과거 진화과정 중에 우리에게는 손, 발, 또는 막대기로 닿을 수 있는 거리보다 더 먼 곳의 사람들과 상호작용을 할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상호작용의 결과를 분명하게 볼 수 있는 이 거리가 지금도 감정적인 반응에 영향을 미친다. 현대에는 장군들은 물론 병사들도 자신이 죽이는 사람들과 한참 떨어져 있을 때가 많다.

진화의 속도는 개체의 생애 주기보다는 현격하게 길 테니까요. 하지만, 생애 주기 내에서 진화를 대체하는 '교육'도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란 생각이 듭니다. 비롯한 맥락이지만 다음 다발말을 읽다 보면 인공지능 학습에 '고통'이라는 개념이 도입된 일이 떠오릅니다.

가까운 거리감이 사라지면, 감정적인 영향도 사라진다. 이런 비인간적인 전쟁 방식은 그런 공격이 불편할 정도로 쉬워지는 데 기여한다. 1960년대에 한 정치 사상가는 핵무기 발사 버튼을 대통령과 가장 절친한 친구의 가슴에 이식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 대통령이 지구 반대편의 수많은 사람을 날려버릴 결정을 내리고 싶을 때 먼저 친구에게 물리적인 손상을 입혀야 한다. 친구의 가슴을 열어야 버튼에 손을 댈 수 있으니까.

앤트로픽이 공감을 학습시키기 위한 방법으로 '고통'을 활용한다는 기사를 본 기억이 있습니다.[2] 그러고 보니 우리 역시 공감을 통해서만 배울 수 있는 부분이 있다는 생각을 깨닫습니다.


인생의 전환점을 만드는 감정 활용법

마치 지난 글에서 배운 '정신의 민주주의', 그중에서도 양당제 구조의 민주주의가 연상됩니다.

두 시스템이 모두 행동이라는 단 하나의 출력 채널을 관장하려고 싸움을 벌이기 때문에, 감정이 의사결정의 균형추를 한쪽으로 기울일 수 있다. 오랜 옛날부터 이어져온 두 시스템의 싸움은 많은 사람의 삶에서 일종의 명령으로 변했다. '느낌이 안 좋은 걸 보니, 하면 안 될 것 같아.'

그리고, 대중적이 된 좌뇌와 우뇌 구조와도 일대일대응이 되는 듯합니다.

출처: https://blog.naver.com/jchanlee0225/221129351520

아래 다발말을 읽을 때 긴 시간 저에게 배경 지식이 되어 준 책들이 떠올랐습니다.

진화의 관점에서 감정 시스템은 오래전부터 존재했기 때문에 다른 생물들도 이 시스템을 많이 갖고 있다. 반면 이성 시스템은 비교적 최근에 발달했다. 그러나 앞에서 보았듯이, 이성 시스템이 최근의 것이라고 해서 반드시 우월하다고 볼 수는 없다.

그 책들을 위 단락에서 뭔가 느껴지지만 이해가 가지 않는 독자님들께 알려 드리고 싶네요. 마침 작년에 썼던 <인생의 전환점을 만드는 감정 활용법>에서 이들 책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옳다>를 읽지 않았더라면 지금처럼 깊이 동의하기는 어려웠을 것 같습니다.

이성적으로만 움직인다고 해서 사회가 지금보다 더 나아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보다는 내부의 라이벌들이 힘을 모아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뇌에 가장 좋다. <중략> 감정과 이성 사이에 약간의 균형이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그런데 인간의 뇌에서는 자연선택에 의해 이미 최적의 균형이 이루어진 것 같기도 하다. 달리 말하자면, 통로를 사이에 두고 양쪽으로 갈라진 민주주의가 딱 좋은 것 같다고 할 수 있다. 어느 쪽이든 한쪽이 전체를 지배해 버리면 덜 바람직한 결과가 나올 것이 거의 확실하다.

내용이 길어서 이후 내용은 다음 글에서 이어갑니다.


주석

[1] <한국말 말차림법>에서 제안한 단락에 대한 토박이 말입니다. 왜 다발말인지는 <언어에 대한 일반이론>에서 일부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2] 퍼플렉시티에 찾아 달라고 했더니, Suffering이 들어간 다음 문서를 알려 줍니다.

https://www.linkedin.com/pulse/your-ai-suffering-anthropics-bold-new-step-model-welfare-scheidel-2zxle/


<무의식은 어떻게 나를 설계하는가>를 읽고 쓰는 독후감

1. 우리는 이 행성에서 가장 분주하고 밝게 빛나는 존재다

2. 자동으로 움직이는 뇌에서 선택의 주체는 누구인가?

3. 관념계 여행과 무의식에 밀항하는 자아

4. 정신세계의 일들은 대부분 의식적인 통제를 받지 않는다

5. 생각대로 되지 않아도 생명현상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

6. 경험의 해체와 인간 관찰력의 한심함에 대하여

7. 시각이 세상을 충실하게 표현한다는 널리 퍼진 착각

8. 우리는 실제 세상이 아니라 뇌가 보여주는 것을 인식한다

9. 뇌가 추측을 최대한 동원해서 정보를 더 크게 키운다

10. 눈이 아니라 뇌(머리)로 보는 것이라 해야 할까?

11. 뇌는 두개골 안에서 절대적인 어둠 속에 갇혀 있다

12. 뇌는 자신의 실수에 주의를 기울이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13. 의식적으로 다루지 못하는 다양한 형태의 암묵 기억

14. 좋은 결정을 위해서는 육감이 필요하다

15. 움벨트 밖으로 나아가는 모험심은 어디서 나오는가?

16. 우리 행동의 엔진 역할인 본능을 우리는 볼 수 없다

17. 인종차별적인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이 공존하는 뇌


지난 내 삶을 차리는 독서의 시작 연재

(168회 이후 링크만 표시합니다.)

168. 화산으로 멸종한 동물들과 석탄과 함께 꺼낸 이산화탄소

169. 의식적으로 다루지 못하는 다양한 형태의 암묵 기억

170. 네 번의 대멸종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동물, 상어

171. 다섯 번의 대멸종과 상어가 지나 온 대멸종의 역사

172. 자연선택이 알려준 반복과 마주하기의 힘

173. 미토콘드리아가 진핵생물의 시대를 열다

174. 개체의 죽음으로 개체군의 건강을 지키는 미토콘드리아

175. 좋은 결정을 위해서는 육감이 필요하다

176. 지구 생명 탄생에서 달, 바다, 시아노박테리아의 역할

177. 움벨트 밖으로 나아가는 모험심은 어디서 나오는가?

178. 트럼프 2.0은 미국판 문화 대혁명인가?

179. 우리 행동의 엔진 역할인 본능을 우리는 볼 수 없다

180. 1962년이나 2025년이나 가장 많이 팔리는 초코바는

181. 인종차별적인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이 공존하는 뇌

182. 새로운 미국을 이해하기 위한 필독서가 나타났다

183. 우리 뇌에 프로그래밍된 정신의 양당제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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