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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행동의 엔진 역할인 본능을 우리는 볼 수 없다

내 삶을 차리는 독서의 시작

by 안영회 습작

<움벨트 밖으로 나아가는 모험심은 어디서 나오는가?>에 이어서 <무의식은 어떻게 나를 설계하는가>의 4장 '우리에게 가능한 생각들'에서 밑줄 친 내용을 토대로 쓰는 글입니다.


진짜 좋은 프로그램을 DNA 깊숙이 각인시켜라

앞선 글과 달리 인간의 시각이 아니라 DNA의 시각으로 현상을 보면 전혀 다른 해석이 가능합니다.

본능은 복잡하고 선천적인 행동이며, 우리가 굳이 학습할 필요가 없다. 본능은 대체로 경험과 상관없이 작동한다. 말의 출산을 생각해 보자. 어미의 자궁에서 밖으로 떨어진 망아지는 앙상하고 불안한 다리로 서서 잠시 휘청휘청 돌아다니다가 몇 분 또는 몇 시간 만에 무리를 따라 걷고 뛰기 시작한다. 인간 아기처럼 몇 년에 걸친 시행착오를 통해 다리를 사용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아니다. 본능적으로 그 복잡한 행동을 해낸다.

한때 너무나 자주 인용하고 강조했던 '아기 발걸음' 메타포가 떠오릅니다. 서툴거나 두려운 일을 익히는 방법을 말하는 XP가 전하는 지혜입니다. 그런데, 말과 비교하니 우리 DNA에는 걷는 법이 프로그램되어 있지 않은 탓이라 생기는 현상으로, 전혀 다른 해석을 내릴 수 있습니다.

나아가 저자는 본능이 인지력을 조종한다고 말하기까지 합니다.

진화의 압력으로 형성된 본능 프로그램은 행동이 매끄럽게 이루어지게 하고, 단단한 손으로 인지력을 조종한다.


우리 행동의 엔진 역할을 하는 본능을 우리는 볼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본능의 존재조차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우리가 이런 본능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은 순전히 본능의 기능이 워낙 뛰어나기 때문이다. 본능은 힘들이지 않고 자동적으로 정보를 처리한다. 병아리 감별사나 비행기 식별가나 테니스 선수의 무의식적인 소프트웨어처럼, 본능이라는 프로그램도 신경회로 속에 아주 깊숙이 각인되어 있어서 우리는 접근할 수 없다. 하지만 이런 본능이 모여서 인간의 본성을 형성한다.

저자에 따르면 우리의 본성은 우리가 접근할 수 없는 곳에 프로그램된 본능의 집합입니다. 문화나 철학적 해석이 아니라 생물학적 해석이라고 봐야겠죠?

몹시 유용한 선척적인 행동이 DNA의 작은 암호로 만들어졌다. 오랜 세월에 걸친 자연선택의 결과다.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본능을 지닌 개체는 번성하는 경향이 있었다.

저자는 핵심 메시지를 다시 추립니다.

핵심은 전문화되고 최적화된 본능 회로가 속도와 에너지 효율이라는 혜택을 주지만, 그 대가로 의식의 접근 범위에서는 더욱더 멀어진다는 점이다. 따라서 우리는 테니스 경기에서 서브를 넣을 때처럼, 회로에 각인된 본능 프로그램에 거의 접근할 수 없다. <중략> 우리 행동의 엔진 역할을 하는 본능을 우리는 볼 수 없다는 뜻이다.


아름다움: 영원히 사랑받아야 할 생생한 존재

저자는 아름다움을 해석할 수 있는 완전히 새로운 방법을 알려줍니다. 적어도 저에게는 말이죠.

벌거벗은 개구리를 봐도 우리의 욕망 회로가 작동하지 않는 것은 우리가 개구리와 짝짓기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개구리는 우리 유전자의 미래와 별로 상관이 없다. 반면 1장에서 보았듯이, 우리는 여성의 동공 확장에 상당히 관심이 많다. 성적인 관심과 관련해서 중요한 정보를 알려주기 때문이다.

오래전에 읽은 <이기적인 유전자> 덕분에 거부감 없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사실입니다.

아름다움을 느끼는 감각이 우리 뇌에 깊이 (그리고 접근할 수 없게) 각인되어 있다는 말이 놀랍게 들리지 않을 것이다. 모두 생물학적으로 유용한 일을 성취하기 위해서다. <중략> 우리가 느끼는 매력이 (오로지 시인의 펜만이 표현할 수 있는) 신묘한 것이 아니고, 자물쇠에 열쇠를 넣듯이 이 일을 전달하는 신경 소프트웨어에 잘 맞는 구체적인 신호의 산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더라도 이제는 놀랍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이 아름답다고 꼽는 요소는 무엇보다도 호르몬 변화로 나타난 번식능력을 알려주는 것들이다.

다음 문장을 사실을 포함하고 있지만 다수의 여성들의 혐오를 살 가능성이 있습니다.

여성의 도톰한 입술, 풍만한 엉덩이, 가느다란 허리가 전달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나는 에스트로겐으로 가득 차서 번식할 수 있어." <중략> 여성이 나이를 먹으면 신체가 이 비율과는 멀어지는 방향으로 변화한다. 허리가 두꺼워지고, 입술이 얇아지고, 젖가슴이 늘어지는 이 모든 변화는 그들이 최고의 가임기를 지났다는 신호다. 생물학 수업을 전혀 듣지 않은 십 대 소년조차 젊은 여성에 비해 나이 든 여성에게는 별로 매력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맛은 힌트일 뿐, 필요가 맛을 좌우한다

덜 불편한 이야기로 저자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 있는 내용도 있습니다.

우리가 사과, 달걀, 감자를 맛있다고 느끼는 것은 그들을 구성하는 분자의 형태가 선천적으로 훌륭해서가 다니라 그들이 당분과 단백질을 훌륭하게 품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저장해 둘 수 있는 에너지 꾸러미라는 뜻이다. 이런 음식이 유용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을 맛있다고 느끼게 설계되었다. 배설물에는 해로운 미생물이 들어 있기 때문에 배설물을 먹는 것에 대한 혐오감이 우리 회로에 단단히 각인되었다.

저자는 또 다음과 같이 간결하게 표현하기도 합니다.

필요가 맛을 좌우한다. 맛은 단순히 유용성을 알려주는 지표일 뿐이다.

그리고, 지난 글에 다룬 바로 그 움벨트에 의해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범위가 제한된다고 말합니다.

진화과정에서 달성해야 하는 목표가 우리 생각을 이끌고 구축한다. 이 점을 잠시 곱씹어보자. 이 말은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것과 생각할 수 없는 것이 따로 있다는 뜻이다.

<린 분석>에서 배운 로널드 럼즈펠드의 4분면이 떠오릅니다.


같은 믿음을 만드는 언어의 강력한 능력

다음 문장은 자주 인용하던 같은 대상에 대한 서로 다른 인식을 나타내는 그림을 떠오르게 합니다.

내가 경험하는 빨간색과 네가 경험하는 빨간색이 똑같은지 어떻게 알지? 좋은 질문이다.

같은 믿음을 만드는 언어의 강력한 능력에 대해 또다시 깨닫습니다.

우리가 바깥세상의 어떤 특징에 대해 '빨간색'이라는 이름표를 붙이기로 동의하기만 한다면 <중략> 내가 그것을 빨간색이라고 부르고 여러분도 빨간색이라고 부른다면, 우리는 아무 문제 없이 거래[1]를 할 수 있다. <중략> 우리가 물건들을 부르는 이름과 지칭하는 방법, 바깥세상에서 움직일 방향에 대해 서로 합의를 보기만 한다면.

여기서 함께 읽는 <먼저 온 미래>의 간섭(?)으로 책의 범위를 벗어나 <사피엔스>의 놀라운 글귀를 소환합니다.

우리 언어의 진정한 특이성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는 능력에 있다. <중략> 허구를 말할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사피엔스가 사용하는 언어의 가장 독특한 측면이다. <중략> 허구 덕분에 우리는 단순한 상상을 넘어서 집단적으로 상상할 수 있게 되었다. <중략> 그런 신화들 덕분에 사피엔스는 많은 숫자가 모여 유연하게 협력하는 유례없는 능력을 가질 수 있었다.


본능을 벗어난 사실에 충실한 사고

오랫동안 인간은 본능과 이성을 반대 개념으로 대비시켰습니다.

전통적으로 본능은 추론과 학습의 반대개념으로 여겨진다.

다음 문장을 읽을 때 또다시 아내가 뇌도 없는 연가시가 어떻게 사마귀를 찾아 조종하는가 묻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윌리엄 제임스는 본능의 숨은 본질을 알아차리고, 간단한 정신적 연습으로 본능을 구슬려서 밝은 곳으로 이끌어낼 것을 제안했다. "인간의 모든 본능적인 행동의 이유"를 묻는 방법으로 "자연스러운 것이 이상해 보이게" 만들자는 것이었다.

윌리엄 제임스가 말한 연습은 바로 당연해 보이는 모든 것이 다른 생물의 눈으로 보면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입니다.

인간은 인간에게 끌리고, 개구리는 개구리에게 끌린다. 욕망보다 더 자연스러운 건 없는 듯 보이지만, 가장 먼저 주목해야 할 것은 우리가 순전히 자신의 종種에 적합한 욕망만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서 단순하지만 중요한 사실이 드러난다. 뇌의 회로는 우리 생존에 적합한 행동을 만들어내도록 설계되었다는 것.

자연선택이 결국 우리를 설계했다고 믿어야 물리적 세계를 비교적 사실에 가깝게 이해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주석

[1] 왜 '거래'라는 표현이 들어갔는지 퍼플렉시티에게 물었습니다.


<무의식은 어떻게 나를 설계하는가>를 읽고 쓰는 독후감

1. 우리는 이 행성에서 가장 분주하고 밝게 빛나는 존재다

2. 자동으로 움직이는 뇌에서 선택의 주체는 누구인가?

3. 관념계 여행과 무의식에 밀항하는 자아

4. 정신세계의 일들은 대부분 의식적인 통제를 받지 않는다

5. 생각대로 되지 않아도 생명현상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

6. 경험의 해체와 인간 관찰력의 한심함에 대하여

7. 시각이 세상을 충실하게 표현한다는 널리 퍼진 착각

8. 우리는 실제 세상이 아니라 뇌가 보여주는 것을 인식한다

9. 뇌가 추측을 최대한 동원해서 정보를 더 크게 키운다

10. 눈이 아니라 뇌(머리)로 보는 것이라 해야 할까?

11. 뇌는 두개골 안에서 절대적인 어둠 속에 갇혀 있다

12. 뇌는 자신의 실수에 주의를 기울이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13. 의식적으로 다루지 못하는 다양한 형태의 암묵 기억

14. 좋은 결정을 위해서는 육감이 필요하다

15. 움벨트 밖으로 나아가는 모험심은 어디서 나오는가?


지난 내 삶을 차리는 독서의 시작 연재

(163회 이후 링크만 표시합니다.)

163. 산업혁명의 최대 수혜자는 고양이인가?

164. 사라진 매머드는 장미목 코끼리과의 동물

165. 공룡의 멸종을 이야기로 만드는 과학과 허구의 힘

166. 공룡의 진화가 알려주는 진화와 변화라는 자연의 진리

167. 뇌는 자신의 실수에 주의를 기울이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168. 화산으로 멸종한 동물들과 석탄과 함께 꺼낸 이산화탄소

169. 의식적으로 다루지 못하는 다양한 형태의 암묵 기억

170. 네 번의 대멸종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동물, 상어

171. 다섯 번의 대멸종과 상어가 지나 온 대멸종의 역사

172. 자연선택이 알려준 반복과 마주하기의 힘

173. 미토콘드리아가 진핵생물의 시대를 열다

174. 개체의 죽음으로 개체군의 건강을 지키는 미토콘드리아

175. 좋은 결정을 위해서는 육감이 필요하다

176. 지구 생명 탄생에서 달, 바다, 시아노박테리아의 역할

177. 움벨트 밖으로 나아가는 모험심은 어디서 나오는가?

178. 트럼프 2.0은 미국판 문화 대혁명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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