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을 차리는 독서의 시작
<미토콘드리아가 진핵생물의 시대를 열다>에 이어서 <찬란한 멸종>의 <섹스의 시작을 아쉽니까?>를 읽고 밑줄 친 부분을 바탕으로 제 생각을 정리한 글입니다.
다음 글을 읽으면서 이분법이라는 말 때문에 잠시 다른 맥락으로 생각이 나아갑니다.
이분법은 비용이 들지 않는다. 누굴 애써 만날 필요가 없다. 잘 보이려고 애를 쓸 필요도 없고 선물을 주거나 그 짝을 놓고서 다른 개체와 목숨을 건 결투를 벌일 필요도 없다.
최근 <두 아들에게 눈에 보이게 하는 게시판 효과 활용하기>를 쓰며 밀당을 경험한 효과이기도 합니다. 아들과 관계를 고려하지 않고 나와 남으로 주체를 나눠 버리면 '애를 쓸 필요'가 사라집니다. 어쩌면 인간의 상하관계나 주종관계가 그런 형태의 관계 맺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시 책으로 돌아가 봅니다.
그냥 자기 혼자 복제하면 그만이다. 매우 경제적이고 안전한 번식법이다. 하지만 유성 생식은 비용이 많이 든다. 우선 두 개체가 만나야 했다. 이 넓은 세상에서 마주치기란 쉽지 않다. 마주쳤다고 해도 서로의 마음에 들기도 쉽지 않으며, 곁에는 경쟁자가 있기 마련이다.
청소년기에 의지와 무관하게 쉽게 불끈했던 경험들이 떠오릅니다. 당시는 몰랐지만, 책을 읽으며 곱씹어 보니 생명의 필요에 의해 벌어졌던 현상으로 떠올리게 됩니다.
인간 사회의 분업화가 떠오릅니다.
눈에 보이는 커다란 생명체가 아니라 단순한 다세포 생물도 마찬가지다. 나름대로 커다란 다세포 생물이 다니면서 짝을 만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전략을 세웠다. 전체 개체가 짝을 만나러 헤매기보다는 단세포로 된 대표선수를 보내어 이들이 짝짓기 할 기회를 주는 것이다.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바로 배우체다. 영화배우映畫俳優의 그 배우가 아니라 배우자配偶者[1]의 배우다. 쉽게 말하면 짝 세포다.
더불어 모듈화가 분업화와 동시에 조합을 통해 다양성과 유연성을 확보하는 비결이란 생각도 하게 됩니다. 앞서 소프트웨어 설계 맥락에서 살펴본 영향이 계속됩니다. 나아가 느슨한 결합(loosely-coupled)[2]이 제공하는 이점도 그것이라 생각이 듭니다. '각자의 정체성을 유지한 채로 합쳐져서 다양성을 만들 수 있는 구조화 방법'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정자와 난자도 느슨한 결합의 사례로 보이기도 합니다.
자연은 가장 효율적인 배우체를 만들어낸 생명을 선택했다. 그게 바로 정자와 난자다. <중략> 배우체 중 작아서 운동성은 있지만 영양분은 난자를 만나러 가는 데 필요한 만큼만 있는 것을 정자라고 한다. 반대로 덩치가 커서 운동성은 없지만 수정 후 개체로 성장할 만큼 충분한 영양분이 있는 것을 난자라고 한다.
또 앞서 인용했던 원자 모형이 떠오르며 정자는 전자 그리고 난자는 원자핵으로 대응되는 듯도 합니다.
유성생식은 비용이 많이 든다고 했다. 정자와 난자를 만드는 과정도 복잡하다. 자기 유전자를 반만 자손에게 넘겨주어야 하므로 감수분열이라고 하는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때 유전자들이 서로 꼬이는 등의 문제가 발생해 유전자가 뒤섞이면서 새로운 유전자 조합이 만들어진다. 개체군 안에서 유전적 다양성이 증가하는 것은 종의 존속에 매우 중요하다. 질병이나 환경 스트레스에 대한 회복력이 커지기 때문이다. 모든 개체가 유전적으로 똑같다면 단일 병원체나 환경 변화로 개체군이 전멸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다양한 자손이 있으면 이런 위험에서 비켜나는 개체가 있기 마련이다.
자연선택은 유전적 다양성 증가로 종의 존속에 유리한 방향으로 복잡한 구조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서 미토콘드리아가 만들어낸 변화를 섹스로 표현합니다.
유전적 변이가 반복되고 누적되면 어느 순간 같은 종이라고 부를 수 없을 정도의 변이가 커진다. 즉 조상들과는 다른 새로운 생명이 등장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진화라고 부른다. 즉 섹스를 통해 다양한 생명이 지구에 탄생할 단초가 마련된 것이다. 섹스가 없다면 진화도 없고 생명의 다양성도 없다. 이 모든 것이 바로 나, 미토콘드리아 덕분이다.
저자가 의도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영어 단어 Sex를 한국말로 그대로 발음하면 대개는 인간의 성행위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을 듯합니다. 그래서 퍼플레시티에 물으니 이렇게 답합니다.
섹스란 표현은 원초적 생물학에서도 주로 유성생식을 가리키며, 이는 유전적 다양성과 진화의 원동력으로서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따라서 섹스는 인간뿐 아니라 모든 유성생식 생명체의 생식 및 진화 과정에서 사용되는 포괄적인 개념입니다.
그리고 이는 위키피디아 Sex 페이지와도 일맥상통합니다.[3]
세균보다 작은 바이러스에는 생명의 개념이 없는 듯합니다.
세균이 동물의 몸에서 병을 일으키려면 동물 세포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러니 한참 작아야 한다. 대략 세균은 동물 세포의 100만 분의 1 정도 크기다. 그런데 세균은 바이러스에 감염된다. 바이러스는 세균보다도 한참 작다는 말이다.
저자는 미토콘드리아의 발명품 중에 하나로 세포의 죽음을 말하니까요.
오래되거나 손상되어 기능 장애가 있는 세포를 제거해 조직의 건강과 기능을 유지한다. 또 세포 수가 지나치게 늘어서 과도하게 성장하는 것을 막으며 잠재적인 암을 예방한다. 면역체계는 세포 자멸을 통해 감염되거나 비정상적인 세포를 파괴해 질병으로부터 생명체를 보호한다. 세포 자멸은 개체를 유지하는 결정적인 과정이다.
그렇다면, 노화도 개체 유지 방법일까요? 퍼플렉시티에 던져 보니 세포자멸은 영어로 Apoptosis는 노화와는 분명히 구분되며 일종의 programmed cell death라고 합니다. 노화와는 분명하게 구분이 되고, 노화 역시 세포 수준에서의 노화와 개체의 노화 그리고 생물학적 노화는 명백하게 구분해야 합니다.
생물학적 노화(aging) 전체로 보면, 생명체가 끝없이 건강을 유지하는 방법이라기보다는 발생·생존·번식에 유리한 기간을 확보한 뒤 점차 유지 비용을 줄이는 진화적 타협의 산물입니다.
원리적 관점에서 세포자멸(Apoptosis)과 유사한 효과를 내는 것은 생물학적 노화라 할 수 있습니다.
죽음이 삶의 필수적인 부분이 되면 자연선택은 개체군에 더 효과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자연선택이란 무엇인가? 유리한 형질이 있는 생명체는 생존과 번식에 유리해져 후대에 자신의 형질을 물려줄 가능성이 높아지고, 환경에 적합하지 않은 형질은 유전자 풀pool에서 제거되는 것이다. 죽음이라는 전제가 없으면 자연선택은 있을 수 없고, 진화도 불가능하다.
결과적으로 생물학적 노화와 죽음이 자연선택과 진화를 위한 중요한 과정이 되는 것이네요.
보다 넓은 개념의 죽음은 유전자 변이와 자연선택에 의한 생명의 영속과 생태계의 다양성을 보장한다. 따라서 죽음이라는 생명의 능력은 지구 생명체의 복잡성과 회복력의 원천이다.
미토콘드리아는 마치 생명의 원소가 되는 최소 모듈의 생과 사를 결정하는 임무를 띈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미토콘드리아는 스스로 자신이 늙었다는 것을 인식하며 세포의 자멸을 이끌고 개체의 노화를 유도한다. 나이가 들수록 미토콘드리아의 기능이 감소해 노화를 일으키는 것이다. <중략> 미토콘드리아는 개체의 죽음을 이끈다. 미토콘드리아는 세포의 사멸을 이끌어 개체의 건강을 유지하고, 개체의 죽음을 이끌어 개체군의 건강을 지키는 것이다. 내가 이 기능을 완성하는 데 거의 20억 년이나 걸렸다.
[1] <낱말의 뜻을 깊고 넓게 묻고 따지는 일의 소중함> 실천으로 한자 사전을 찾습니다.
[2] 비슷한 우리말로 '따로 또 같이'로 말할 수도 있습니다.
[3] 인간의 성행위는 별도 페이지로 존재합니다.
9. 9배의 에너지를 쓰는 뇌, 그리고 달려야 사는 사피엔스
12. 공룡의 멸종을 이야기로 만드는 과학과 허구의 힘
13. 공룡의 진화가 알려주는 진화와 변화라는 자연의 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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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다섯 번의 대멸종과 상어가 지나 온 대멸종의 역사
(158회 이후 링크만 표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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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 9배의 에너지를 쓰는 뇌, 그리고 달려야 사는 사피엔스
163. 산업혁명의 최대 수혜자는 고양이인가?
165. 공룡의 멸종을 이야기로 만드는 과학과 허구의 힘
166. 공룡의 진화가 알려주는 진화와 변화라는 자연의 진리
167. 뇌는 자신의 실수에 주의를 기울이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168. 화산으로 멸종한 동물들과 석탄과 함께 꺼낸 이산화탄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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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 네 번의 대멸종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동물, 상어
171. 다섯 번의 대멸종과 상어가 지나 온 대멸종의 역사
173. 미토콘드리아가 진핵생물의 시대를 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