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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의 멸종을 이야기로 만드는 과학과 허구의 힘

내 삶을 차리는 독서의 시작

by 안영회 습작

<44kg을 넘기면 대형 포유류로 분류합니다>에 이어서 <찬란한 멸종>의 <거의 모든 것을 파괴한 불덩어리>를 읽고 밑줄 친 부분을 바탕으로 제 생각을 정리한 글입니다.


화석만으로 공룡의 암수를 구분할 수 없지만

스탠은 티라노사우루스의 이름입니다.

12미터짜리 '스탠'은 골격의 85퍼센트가 남아서 실제 우리의 무게와 움직임, 치악력에 대한 다양한 실험을 인간들이 할 수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발견된 화석의 이름이라고 해야 할까요?

어떻게 같은 티라노사우루스인데 누구는 육중하고 누구는 날씬하냐고? 이걸 보고 어떤 고생물학자는 육중한 것은 암컷, 날씬한 것은 수컷이라고 주장했다. 알을 낳으려면 골반 사이의 공간이 넓어야 한다는 거다. 그런데 말이다. 우리 티라노사우루스는 덩치에 비해 알이 매우 작다. 굳이 알 때문에 골반을 키울 필요는 없다. 나도 스탠과 수 중 누가 수컷이고 누가 암컷인지 모른다.

화석을 보고 암수 구분은 할 수 없다는 것이죠. 골반 크기 이야기를 듣는데 <월말김어준>에서 박문호 박사님 강의 때 들었던 내용이 떠오릅니다. 알을 낳는 파충류와 달리 뱃속에서 아이를 키워야 하는 포유류의 갈비뼈에 변화가 필요했다는 것이죠. 기억이 분명하지 않아 퍼플렉시티에 질문했습니다.

파충류는 주로 난생으로, 난황을 영양원으로 하는 태아가 알 안에서 성장하며 갈비뼈가 몸의 앞부분부터 뒤쪽까지 등 전체를 덮는 경향이 있습니다. 반면 포유류는 태반을 통해 태아에게 직접 영양을 공급하고 자궁 내에서 발달하여, 갈비뼈가 주로 흉부(가슴) 부분에 집중되어 호흡과 장기 보호 기능에 최적화되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큰 티라노 화석의 이름: Scotty

다음 문장을 읽을 때는 '그렇군' 하고 속말을 하게 됩니다.

인간들의 책에 보면 키, 몸무게, 무게가 하나로 나오는데 그럴 리는 없지 않은가?

간접 경험으로 현상을 배울 때는 <아이디어 불패의 법칙>에서 지적한 '생각랜드'에 빠질 우려가 있습니다. 그래서, 비판적 읽기를 강조하는 사람들이 있고, 묻고 따지는 능력이 필요함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현재까지 발견된 티라노사우루스 중에 가장 큰 개체는 1991년 발견된 '스코티'다. 몸길이가 13미터, 체중은 10.4톤이나 나갔다.

퍼플렉시티의 검색 능력과 위키피디아 페이지를 통해 얻은 스코티Scotty의 이미지입니다. 이미지에서 나이를 보면서 '치아로 측정했겠군' 짐작을 합니다. <9배의 에너지를 쓰는 뇌, 그리고 달려야 사는 사피엔스>를 쓸 때 치아 혹은 이빨이 생체시계로 쓰인다는 사실을 배웠기 때문이죠.


시속 30킬로미터로 경보를 했던 티라노사우르스

비슷하게 다음 내용을 읽을 때는 <산업혁명의 최대 수혜자는 고양이인가?>에서 배운 '긴 꼬리가 방향키'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 자연스럽게 떠오릅니다.

머리를 낮추고 꼬리를 들어 온몸이 거의 수평에 가까운 자세를 취한다. 우리가 남긴 발자국 화석을 잘 보시라. 꼬리가 끌린 흔적이 나오지 않는다. 우리는 커다란 머리와 육중한 몸을 굵은 다리로 버티고 꼬리를 뒤로 쭉 뺀 자세로 중심을 잡는다.

달리기의 정의를 새롭게 알게 되는 흥미로운 내용입니다.

물론 우리는 달리기는 못한다. 달린다는 것은 동시에 두 발이 공중에 떠 있는 순간이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느리지도 않다. 빨리 걷기 때문이다. 우리는 시속 30킬로미터로 걷는다. 그 정도면 느린 거라고? 아니다. 우리는 손흥민 선수만큼 빨리 걷는다.

그렇다면, 티라노사우르스는 경보를 한 것인가 싶어서 퍼플렉시티에 물었습니다.

공룡의 운동 형태에 관한 현대 연구에 따르면, 대표적인 육식공룡인 티라노사우루스는 빠른 달리기보다는 느리고 효율적인 걸음, 즉 경보와 비슷한 운동 형태를 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연구에서는 티라노사우루스의 보행 속도가 시속 약 4.6km 정도로 조깅이나 빠른 걷기 정도에 해당하며, 달리기 속도는 매우 제한적일 것으로 추정합니다. 이는 공룡 몸의 무게와 꼬리의 역할 때문에 빠른 달리기가 어렵고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느린 걸음에 가까웠기 때문입니다.

어린이 보호 구역에서 운전할 때 속도는 너무나 느리게 느껴지지만, 아래 사진에 보듯이 가장 빠른 인간들의 전력 질주 속도가 공룡이 걷는 속도보다 조금 빠른 수준이란 점을 알 수 있습니다.


폭군 도마뱀의 왕이라고 이름 붙인 화석에서 나온 허구

영리한 추정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최초 시도가 그랬고, 나중에는 그 방식 자체를 따라 배웠겠죠.

뇌가 든 공간은 뼈로 되어 있으니까 화석으로 남을 수 있다. 그 공간을 '뇌합'이라고 한다. 만약 외계인이 인간의 장갑을 보면 손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뇌함을 보면 뇌의 모양과 크기를 알 수 있다. 인간들은 뇌함을 CT 촬영한 후 3D 프린팅으로 복원해 연구했다.

티라노사우루스의 시력이 놀랍습니다.

뇌에는 뇌신경이 연결되어 있다. 이 가운데 시신경은 눈알로 연결된다. 우리 티라노사우루스의 눈은 테니스공 크기다. 크다. 크면 그만큼 빛을 많이 받아들이고 잘 볼 수 있다. 인간은 기껏해야 1킬로미터 밖까지 볼 수 있지만 우리는 6킬로미터 밖의 사물도 구분할 수 있다.

6배의 거리를 더 볼 수 있다니. 앞선 달리기와 걷기 속도까지 고려하면 공룡과 함께 살았다면 앞도적인 기동력 차이로 우리는 살아남기 어려웠을 것 같습니다. 아래 문장을 읽을 때 어린 아들 육아 과정에서 공룡과 친근해졌음을 깨닫게 됩니다.

'티란tyran'은 폭군이란 뜻이고 '사우루스saurus'는 '도마뱀'이라는 뜻이다. <중략> 종명 '렉스rex'는 라틴어로 '왕'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다음 문장을 읽을 때는 얼마 전에 있던 아들과의 대화가 떠올랐습니다.

우리의 나날은 사냥, 이동, 짝짓기 등 생명의 리듬으로 가득 차 있다.


허구의 힘과 끊임없이 이어지는 사피엔스의 이야기

큰 아들이 말은 계속 먹기만 하고 다른 일은 하지 않는다고 말했던 일이죠. 최근 여러 차례 이 대화를 반추하며 인간이 가진 '허구의 힘'을 다시 떠올리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다른 동물들과 달리 사피엔스는 끊임없이 이야기를 전하고 소비합니다.

다시 책으로 돌아가 지나간 과거를 측정해 내는 방법은 놀랍기까지 합니다.

당시 화산 활동은 쌍각류 조개껍데기 화석에 반영되어 있다. 탄산염 동위원소 구성을 분석하면 당시 해양 온도를 측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껍데기 화석에 축적된 수은 농도를 측정하면 화산의 규모를 알 수 있다. 화산은 유독성 금속인 수은이 자연에 유입되는 가장 거대한 통로다.

그 과정에서도 또 이야기의 힘을 깨닫습니다. 전공으로 방법을 배웠다면 놀라지 않았을 테니까요.


공룡의 멸종과 진화한 공룡의 후예

드디어 공룡의 멸종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지름 10킬로미터짜리 거대한 운석이 시속 7만 킬로미터 속도로 멕시코 유카탄반도에 충돌하자 육상에서 고양이보다 커다란 동물들은 모두 사라졌다. 해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거대한 해양 파충류와 암모나이트가 깨끗이 사라졌다. 단 한 방이었다. 공룡 세계의 위대한 지배자 티라노사우루스 티란도 사라졌다. 자신이 어떻게 사라지는 지도 몰랐을 것이다. 열 폭풍, 쓰나미, 지진, 화산 폭발이 이어졌다.

그러나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남은 공룡들이 있었습니다.

작은 공룡이라고 해서 모두 살 만한 것은 아니었다. 작더라도 턱과 이빨이 있는 공룡들은 먹을 게 없었다. 우리처럼 부리가 있는 공룡만 황폐한 땅에 박혀 있는 씨앗을 꺼내 먹을 수 있었다.

그리고, 공룡들의 입이 새의 부리처럼 바뀌게 된 환경 변화를 설명합니다.

씨앗은 충분했다. 우리가 충분히 먹고도 남을 만큼 많았다. 가장 먼저 싹이 튼 식물들은 토양을 안정시키고 다른 식물들이 자라는데 필요한 조건을 채워갔다. 화산재로 자욱했던 공기가 맑아지면서 햇빛이 들어오자 광합성이 다시 시작되었고 식물들은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황폐해진 땅을 되살리기 시작했다.

아이들과 함께 본 다큐멘터리 덕분에 알고 있던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나는 공룡이다. 우리가 대멸종 이후에야 새롭게 등장한 게 아니다. 나는 오랫동안 생존을 위해 진화했다. 그 덕분에 6600만 년 전 다섯 번째 대멸종 때 살아남을 수 있었다. 나는 부리와 비대칭형 깃털이 있는 작은 공룡이다. 덕분에 나는 날 수 있다.

다큐멘터리를 보지 않았다면 놀라워할 극적인 이야기죠.

나는 혁신의 결과다. 처음에는 체온을 조절하고 짝에게 과시하기 위해 쓰던 깃털로 하늘을 날 수 있게 진화했다. 양력과 기동성을 제공하는 양 날개를 갖추었다. 나는 몸을 가볍게 하는 데 성공했다. 뼛속을 비워 몸무게를 줄이고 비행 효율을 높였다. <중략> 의외로 결정적인 변화는 부리였다. 대재앙이 닥치자 부리는 매우 유용했다. 다양한 먹이원을 이용할 수 있었다.

마지막에 밑줄 친 문구는 다큐멘터리의 어조와 비슷한 느낌마저 줍니다.

지금부터 나는 '새'다. 새는 티라노사우루스 자리를 차지했다. 공룡의 이야기는 끝났지만 공룡의 유산은 하늘에 남아 생명의 위대한 여정을 지구에서 계속 이어나갈 것이다.


<찬란한 멸종>을 읽고 쓰는 독후감

1. 인류의 멸종은 예정되어 있다

2. 자기 중심성에서 벗어난 사고를 돕는 과학의 쓸모

3. 운명, 연기(緣起), 확률 분포 그리고 테라포밍

4. 원대한 포부를 가진 사람들과 역사적인 연금술

5. 북극의 빙산이 녹아 섬이 잠긴다는 거짓말

6. 지구 온난화는 막을 수 없다?

7. 지구는 지금까지 다섯 번의 대멸종을 겪었다

8. 구석기에서 신석기로: 농경 사회의 시작

9. 9배의 에너지를 쓰는 뇌, 그리고 달려야 사는 사피엔스

10. 산업혁명의 최대 수혜자는 고양이인가?

11. 44kg을 넘기면 대형 포유류로 분류합니다

12. 공룡의 멸종을 이야기로 만드는 과학과 허구의 힘


지난 내 삶을 차리는 독서의 시작 연재

(149회 이후 링크만 표시합니다.)

149. '왜'라는 질문 없이는 불가능한 지속 가능성

150. 준비가 아니라 나를 알고, 나를 믿고, 해 나가는 것

151. 뇌가 추측을 최대한 동원해서 정보를 더 크게 키운다

152. 확신이 없는 길을 가는 방법은 나 자신을 믿는 것

153. 생각을 하면 조직에서 살아남을 수 없는 구조

154. 북극의 빙산이 녹아 섬이 잠긴다는 거짓말

154. 군사정권의 유산과 강력한 검언유착을 이겨낸 K-민주주의

156. 편견이라는 미세먼지 그리고 제정신이라는 착각

157. 지구 온난화는 막을 수 없다?

158. 지구는 지금까지 다섯 번의 대멸종을 겪었다

159. 구석기에서 신석기로: 농경 사회의 시작

160. 눈이 아니라 뇌(머리)로 보는 것이라 해야 할까?

161. 뇌는 두개골 안에서 절대적인 어둠 속에 갇혀 있다

162. 9배의 에너지를 쓰는 뇌, 그리고 달려야 사는 사피엔스

163. 산업혁명의 최대 수혜자는 고양이인가?

164. 44kg을 넘기면 대형 포유류로 분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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