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영회 습작 Apr 17. 2024

문제의 본질, 허상의 문제 그리고 유머 감각

내 삶을 차리는 독서의 시작

지난 글에 이어 3장을 다루며 스스로에게 또 세 가지 중요하게 느낀 점을 물었습니다. 그 답에 대한 풀이를 글로 씁니다.

    문제란 바라는 것과 인식하는 것 간의 차이다  

    허상의 문제들이 진짜 문제다  

    유머 감각이 없는 사람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지 말라  


문제란 바라는 것과 인식하는 것 간의 차이다

다음 포기말[1]은 <대체 뭐가 문제야>의 상장적인 말 중에 하나입니다.

    문제란 바라는 것과 인식하는 것 간의 차이다  


국어사전 정의는 어떨까요?

「1」 해답을 요구하는 물음.

첫 번째 풀이는 주어진 문제를 뜻합니다. 저자는 서구 교육의 폐해로 주어진 문제를 다루는 일에 익숙한 사회를 전제로 글을 씁니다. 우리나라 공교육의 바탕 역시 서구 교육에서 비롯하기 때문에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반면에 앞선 정의와 비교적 유사한 풀이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3」 해결하기 어렵거나 난처한 대상. 또는 그런 일.

'어려움'을 느끼는 일은 바로 욕망의 다른 형태입니다. 그래서, 앞서 <인간사회 문제는 욕망을 빼고 정의할 수 없다>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문제를 삼을 것인가? 바라지 않을 것인가?

한편, 우리가 목적을 지니고 태어난 것은 아니란 점에 동의한다면, <일상은 단편이 아니라 선물처럼 주어지는 시간의 연속이다>라는 저의 주장에도 공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문제는 바랄 것인가 바라지 않을 것인가로 볼 수도 있습니다. 또한, 바라는 것이 없다면 구체적인 삶의 동력이 사라진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이는 문제를 다음과 같은 사전적 정의에서 벗어날 수 있는 관점입니다.

「4」 귀찮은 일이나 말썽.

문제가 나를 생산적이게 바꿔 줄 수도 있다고 믿습니다. 물론, 인식의 문제죠. 인식이란 말을 꺼내니 <같은 현상도 서로 다른 일로 인식할 수 있으니 차리기>를 쓰게 했던 강렬한 이미지가 떠오릅니다.


허상의 문제들이 진짜 문제다

인식이 주관적인 현상이란 점을 이해한다면 다음 포기말도 상당히 묘하게 들릴 것입니다.

허상의 문제들이 진짜 문제다


허상의 원어는 phantom인데, 박문호 박사님 표현에 따르면 물리적 세계가 아니라 우리 뇌에서 만들어지는 현상적 세계가 만드는 불편함을 말합니다. 한편, 최근 읽는 <제정신이라는 착각>을 기반으로 <우리는 세계를 만든다>에서 더 자세히 다루기도 했습니다. 실제 세상과 그대로 일치하지 않더라도 뇌에서 생성한 실체가 있는데, 허상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뭘까요? 다음 포기말에서 이유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런 관점으로 보면 바라는 대로 바꾸거나 인식을 바꿔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결국, 인식과 허상은 인간의 행동 양식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지난 글에서 다룬 문제의 역동성 역시 마찬가지죠.


허상이란 말을 들으니 자연스레 허구가 떠오릅니다. 2019년 <사피엔스>를 읽을 때 강력한 힘을 지닌 대상을 '허구'로 표현한 내용에 충격을 받은 일이 있습니다. 오랜만에 그 내용을 찾아보기로 합니다.

우리 언어의 진정한 특이성은 <중략>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는 능력에 있다. <중략> 인지 혁명 덕분에 호모 사피엔스는 이렇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사자는 우리 종족의 수호령이다." 허구를 말할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사피엔스가 사용하는 언어의 가장 독특한 측면이다. <중략> 원숭이를 설득하여 지금 우리에게 바나나 한 개를 준다면 죽은 뒤 원숭이 천국에서 무한히 많은 바나나를 받게 될 거라고 믿게끔 만드는 일은 불가능하다. <중략> 허구 덕분에 우리는 단순한 상상을 넘어서 집단적으로 상상할 수 있게 되었다.


유머 감각이 없는 사람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지 말라

마지막으로 꽤 오랫동안 저에게 미스터리로 남아 있던 포기말에 대해 풀어봅니다.

유머 감각이 없는 사람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지 말라


위 포기말은 꽤 오랫동안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마음에 남아 있어 주기적으로 이런 뜻인가 하고 물었던 흔적들이 남아 있습니다.

축덕질이 알려준 유머의 중요성

유머가 보게 해 준 에포케와 직면

성숙한 방어 기제와 그 순간에 집중하기

이번에 읽으면서도 두 가지 단서로 인해 새롭게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는 지난 글에서 언급한 '공감의 필요성'입니다. 두 번째는 <제정신이라는 착각>을 읽으며 배운 '확신은 언제나 가설에 불과하다'는 사실입니다.

핵심 명제는 바로 이것이다. 어떤 확신이 '정상적인' 것으로 혹은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해도, 그것은 언제나 가설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런 가설은 종종 우리에게 커다란 유익이 된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을 예견하게 해 주고, 그런 사건에 더 쉽게 대응하도록 해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설은 가설일 따름이다. 즉 아직 입증되지 않은 가정이므로, 언제든 잘못된 것으로 드러날 수 있다.

우리가 공감을 통해 공통분모를 찾았다면 합의가 필요합니다. 각자의 문제를 공동의 문제로 만드는 과정이라고 할 수도 있죠. 그런데, 확신에 빠져서 여지가 없는 사람과는 절충할 수가 없습니다. 그들은 공통분모를 인정하지 않아 그들과 함께 각자의 가치로 나누는 일이 불가능할 수 있습니다. 따져 보니 그런 사람들은 대체로 유머 감각이 없는 듯합니다.


주석

[1] <한국말 말차림법>에서 제안한 문장에 대한 토박이 말입니다. 왜 포기말인지는 <언어에 대한 일반이론>에서 일부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지난 내 삶을 차리는 독서의 시작 연재

1. 우연하게 찾아온 내 삶을 차리는 독서의 시작

2. 내년부터는 교과서 독서를 시작해 보자

3. 사랑의 구체적 실체는 제대로 된 피드백

4. 한계를 없애는 방법을 실천해 보자

5. 일상은 단편이 아니라 선물처럼 주어지는 시간의 연속이다

6. 자신감의 진짜 근간 그리고 지나친 노력 없이 이기는 비결

7. 최고의 기량 발휘를 방해하는 모든 정신적 습관 극복

8. 공감과 방향을 바꾸는 힘과 일상을 선물로 바꾸는 힘

9. 지나치게 노력한다는 건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

10. 인간사회 문제는 욕망을 빼고 정의할 수 없다

11. 문제에 대한 공감대, 문제의 역동성과 본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