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을 차리는 독서의 시작
앞선 세 편의 글을 쓰면서 잊혔던 기억을 떠올리며 <테니스 이너 게임>을 일상에 활용할 준비를 한 듯합니다.
일상은 단편이 아니라 선물처럼 주어지는 시간의 연속이다
자신감의 진짜 근간 그리고 지나친 노력 없이 이기는 비결
더불어 새롭게 시도하는 '함수의 치역처럼'이란 시도를 <테니스 이너 게임> 1장을 대상으로 투영해 봅니다.
마침 마지막 쪽에 목표로 삼으면 좋을 포기말[1]이 등장합니다.
이러한 상태에 도달하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 바로 이너 게임Inner Game의 목표이다.
상태란 말은 그간 저의 일상에서 다양한 형태로 마음 안에 있었음을 깨닫습니다. 크게 두 가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제가 자주 인용하는 두 그림을 결합해서 표현할 수 있을 듯합니다. <뇌과학으로 배우는 대화라는 작용>에서 성공적으로 기능하는 대화를 위해서는 상대방의 상태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무의식을 포함하는 것이라 말로 드러난 내용만으로 파악이 어렵습니다. 물론, 이너 게임은 자신과의 문제지만, 무의식을 다루는 상태란 요인이 중요하다는 점은 일치합니다. 두 번째는 상태도를 그리는 일이 저에게 꽤 강력한 도구였다는 사실입니다.
일상에 적용하려면 단순히 지식만을 볼 수 없고, 바로 그 상태를 살펴야 한다는 점을 어부지리로 배웁니다.
다시 책으로 돌아가 봅니다. 이러한 상태는 최고의 기량을 발휘하는 상태입니다. 그리고 그런 상태를 설명하는 또 다른 포기말은 다소 의외의 표현을 보여줍니다.
'무의식적'으로 치는 선수의 마음은 고도로 집중하고 있는 정적 상태이다.
정적 상태라니?! 지난 글에 쓴 바 있는 리프팅 할 때, 발의 특정 부위[2]에 공이 딱 올라갔을 때 느낌이 떠오릅니다. 마치 내가 집중하는 곳에만 온신경을 집중해서 다른 것은 느끼지 못하는 것과 같은 상태가 아닐까 추측할 수 있습니다. 또한, '무의식적'이란 상태는 '마음을 비우고'에 해당한다는 점을 드러내는 포기말이 있습니다.
의식적으로 '마음을 비우고' 치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 어떻게 '의식적으로' 의식하지 않으려 할 수 있는가?
모순적인 듯한 포기말은 시골 농부 님의 글에서 본 듯한 느낌을 줍니다. 나중에 찾아봐야겠습니다.
경험으로 쉽게 공감하지만, 눈에 띄는 단어들을 포함하는 포기말을 곱씹어 보게 됩니다.
'환상적인 샷'은 본인이 이를 의식하기 시작하고,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순간 더 이상 나오지 않게 된다. 통제하려고 하면 잃어버리는 것이다.
바라고 있지만 통제하지 않아야 얻을 수 있는 결과. 자신의 몸이니까 마땅히 통제하려고 들 수 있지만, 그렇게 되면 결과를 얻지 못합니다. 경험적으로 알지만, 글로 보니 묘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야신의 글을 읽으면서 그가 강조한 것이 '의식'이었는데, 의식하면 최고의 상태에 도달할 수 없다고 하니 야신의 책을 잘못 읽었나 확인하고 싶어 집니다. 그래서 찾아보니 이런 다발말[3]을 만납니다.
100개든 1000개든 아무렇지 않게 평고를 쳐주고 배팅 연습을 해준다. 선수들이 좋아지는 게 느껴지면 그저 이 순간이 좋다. <중략> 힘이 든다거나 나이를 먹어서 이제는 못 하겠다는 의식은 전혀 없다. 사실 그런 의식이 끼어들기 시작하는 순간 몸이 늙는다. 아까까지는 잘 되던 것이,
의식에 의심이 끼어들면 안 된다는 뜻도 있었군요. 야신은 분명 <인간에겐 한계가 없다는 걸 모르고 산다>고 쓰셨으니까요.
한편, '환상적인 샷'이 '누구에게'인지 그 잣대를 물어야 할 듯합니다. 그러면 줏대와 잣대 문제까지 생각할 수 있게 됩니다. 다만, 여기서 그걸 묻고 따지지는 않겠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환상적인 샷'을 평가하는 사람들의 말이 '마음을 비웠네요.'와 같은 식이란 점입니다.
이런 말들을 공통점은 정신의 일부분이 활발하게 작동하고 있지 않다는 의미이다.
이분법의 가치를 꺼내어 설명하는 저자의 집필 기획 과정을 읽게 되는 듯합니다. 이는 최근 번역한 <Tidy First?>에도 비슷하게 저자가 창작한 이분법이 등장하는 탓입니다.
묘한 기분도 듭니다. 정신의 일부분이 활발하게 작동하지 않게 하는 것이 이상적인 상태로 가는 길이라니요. 하지만, 책의 다른 부분을 읽으면 다시 수긍이 갑니다.
한 가지 질문이 여전히 입안을 맴돌았다. 노력하는 것이 왜 문제가 되는 것일까? 지나치게 노력한다는 건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
그리고 이 다발말 바로 앞부분에 저자가 책을 쓰게 된 동기가 되었을 법한 그의 표현을 빌면 '훌륭한 테니스 코치와 학생이라면 누구나 알아야 할 사실'의 예시를 볼 수 있습니다.
이미지가 말보다 낫고
장황한 설명보다는 보여주는 것이 바람직하며
너무 많은 것을 주문하는 것은 차라리 안 하는 것만 못하고
노력이 오히려 독이 되는 경우도 있다
'너무 많은 것을 주문하는 것은~' 부분을 읽을 때는 달수네 영상에서 전 국가대표 선수 박주호가 등장해서 투헬 감독에 대해 인터뷰했던 내용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책의 앞부분에는 저자가 '전형적인 테니스 레슨'에서 이를 깨닫게 했던 과정이 묘사됩니다. 밑줄 친 부분을 함께 인용합니다.
나도 초보 코치 시절에는 과도하게 주문을 하곤 했다. <중략> 조언을 줄이면서 관찰을 좀 더 치중하려고 해 보았다. <중략> 수강생들도 인지조차 하지 못했던 부분들이 저절로 교정되는 게 아닌가? <중략> 의도해서 좋아진 게 아니었기에 내가 한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없었다. 더 충격적이었던 점은, 말로 지시하는 경우 원하는 방향으로 고쳐질 가능성이 오히려 줄어들기도 한다는 사실이었다. <중략> 코치의 지시를 듣는 순간부터 스윙이 종결되는 순간까지 그녀의 머릿속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중략> 그녀의 머릿속에는 생각이 너무 많았다! <중략> 테니스를 가르칠 때 말을 많이 하지 않으리라. <중략> 그의 머릿속이 혼란스럽지 않게 하면서 결과에 차이가 생기는지 확인하려는 것이다. <중략> "맨 먼저 발부터 움직이시더군요." 폴이 말했다. 나는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은 채 나의 포핸드와 가능한 한 비슷하게 따라 해 보라고 했다. <중략> 단 한 가지만 빼고. 그의 말이 문제였다. <중략> 이 부분을 지적하자 폴이 말했다. "아, 깜빡했네요!" <중략> 폴이 의식적으로 기억하려고 했던 한 가지만 잊어버렸다. 한 마디의 지시 사항도 없었지만, 그 외 모든 동작은 온몸으로 흡수하고 그대로 재현해 낸 것이다!
위 다발말에 밑줄을 치며 함께 메모한 단어들이 있습니다. '거울', '커피 푸어링' 따위가 그것입니다.
한편, 밑줄 친 내용을 옮기면 다시 제 손으로 써 보니 '아하'하는 순간이 생겼습니다. 도저히 흉내 낼 수 없을 것 같았던 기술을 배운 것이 있는데, 어깨너머로 배운 것이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를 배경으로 최근에 쓴 <종심타격(縱深打擊)을 작게 잘라서 응용하기>입니다.
반가운 마음에 다시 읽어보니 이번에 눈에 띈 구절은 '실체화 기술을 책 속에 담긴 작은 지식에 투영하기'입니다. 그리고 살짝 놀랍니다. 서두에 썼던 '함수의 치역처럼'은 그 역방향이란 생각이 든 탓입니다. 이 글은 책 속에 담긴 지식을 꺼내 일상에서 Realization(실체화)하려는 글이니까요.
[1] 왜 포기말인지는 <언어에 대한 일반이론>에서 일부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2] 그 부위를 뭐라고 부르나 찾다가 링크를 하나 얻었습니다. 제가 아들에게 잘못 가르쳐줬다는 사실도 더불어 알게 되면서, 다음번에는 정확한 정보로 아이와 시간을 보낼 아이디어가 생겼습니다.
[3] 왜 다발말인지는 <언어에 대한 일반이론>에서 일부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5. 일상은 단편이 아니라 선물처럼 주어지는 시간의 연속이다
6. 자신감의 진짜 근간 그리고 지나친 노력 없이 이기는 비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