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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영회 습작 Apr 12. 2024

문제에 대한 공감대, 문제의 역동성과 본질

내 삶을 차리는 독서의 시작

지난 글에 이어 2장을 다루며 스스로에게 또 세 가지 중요하게 느낀 점을 물었습니다. 그 답에 대한 풀이를 글로 씁니다.

    공감의 필요성 with <당신이 옳다>  

    문제의 역동성  

    당신 문제의 본질essence  


<당신이 옳다>에서 배운 공감의 필요성

<당신이 옳다>는 6년 가까운 시간에 걸쳐 세 번이나 읽었습니다. 기독교인들이 성경을 다루는 입장과 제가 그 책을 대한 입장이 비슷하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암튼 그렇게 했더니 <대체 뭐가 문제야> 내용에서도 공감의 필요성이 느껴집니다. 예를 들면 이런 포기말[1]에서죠.

건물주의 이런 해결 방식은 입주자들을 더욱 화나게 만들 뿐이었다.

물론, <당신이 옳다>에서 공감은 우리 삶의 필수적인 자양분으로서 공감을 말합니다. 그렇지만, 일을 할 때나 갈등을 마주하는 일도 인간관계 위에서 벌어지기 때문에 공감을 익히면 충분히 응용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령, 이웃한 다른 이들의 문제를 마주하기 싫다고 방치하면 나에게는 문제가 아닌 듯이 느껴집니다. 당장은 그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문제가 일상의 어려움으로 반복되면 인간은 창의성을 발휘합니다. 요리조리 궁리하면서 나의 문제를 다른 사람의 문제로 만드는 방법을 찾아냅니다.

건물주가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게 하기 위해서 입주사 중 하나인 까다로워 금융회사의 우편물 담당자, 정리함 씨는 탄원을 준비한다.

그 방법이 아직 무시할 수준이면 '허상'이라 취급할 수 있지만, 어느 날 실상으로 드러날 수도 있습니다.

탄원인 단체는 마침내 잘나가 마을에 사는 왕공룡 씨를 방문하기로 결정한다. 자신들의 메시지를 잘 전달하기 위해 피켓 4개, 악취탄 3개를 준비하고 이민 노동자 2명을 동반한다. 왕공룡 씨 부인이 왕공룡 씨에게 날카롭게 소리친다. 이제 문제는 더 이상 허상이 아니다.
출처: 구글 이미지 검색(대파 드레스)


느낌의 세계와 공감의 시작

마침 선거 기간이라 정치적 성향은 논리가 아니라 느낌이나 이미지에 의해 결정한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2] 다음 포기말은 이를 바로 연상시킵니다.

노조에 관한 소문은 일단 퍼져 나가자, 마치 척추를 따라 흐르는 근육의 경련처럼 빠르게 번져 나갔다.

탄원인들은 그들의 문제에 관심이 없던 경영자들을 개입시키면서 발생한 일들이죠.

우리는 한쪽이 다른 쪽과 동일하게 아픔을 느끼기 시작하면, 결국 문제의 해결안을 찾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사회적 문제는 공감이 문제의 시작이란 점을 알 수 있습니다. 느낌의 세계에서 덩어리로 존재하던 가치 판단을 공감의 토대가 될 수 있는 공통분모로 만드는 시작이 공감이라고 하겠습니다. 공통분모를 만들기 전에는 전혀 다른 문제의 공존일 뿐입니다.

왕공룡 씨의 문제: 직원들이 만성적인 불평분자들이라는 확증 편향

경영자들의 문제: 정말로 혐오하는 노동 단체 문제에 비하면 심각하게 고민할 가치가 없다.

직원들의 문제: (처음과 달리) XX 같은 건물주를 엿 먹이려는 욕구로 변질


문제의 역동성

두 번째로 다음 포기말을 읽을 때 '문제의 역동성'이란 말이 떠올랐습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전의 문제들이 오래 지속되지는 않으리라는 것이다.

경험에서 우러난 것이고, 최근에 <일상은 단편이 아니라 선물처럼 주어지는 시간의 연속이다>를 쓰면서도 다뤘던 경험 그리고 느낌과 긴밀한 관련이 있습니다. 앞서 열거한 직원들의 문제에도 문제의 역동성이 보이네요. 책의 3장에도 문제의 역동성을 언급한 사례가 있습니다.

어느 경우이건 처음에 '집이 너무 춥다.'로 규정한 문제는 이제 '나는 왜 집이 너무 춥다고 느끼는가?' 혹은 '내 몸에 무슨 이상이 있는가?'와 같은 또 다른 형태로 변환된다.

<인간사회 문제는 욕망을 빼고 정의할 수 없다>에서 언급한 대로 일상의 복잡한 변화, 그러니까 날씨, 냄새,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의 말, 소음, 머릿속 생각 따위로 인해 시시각각 바뀌는 인간의 욕구와 욕망으로 인해 문제는 역동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당신 문제의 본질essence

이제 세 번째입니다. 1장 마지막에 이런 포기말이 있습니다. 누구의 문제인가? 그다음에 해야 할 질문이죠.

당신 문제의 본질essence은 무엇인가?


그걸 어떻게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있을까 싶지만, 2장 마지막 쪽에서 눈에 띄는 내용이 있습니다.

"무엇이 잘못인가?"를 어떻게 결정할 것인가?


이 책이 제 인생책이 되게 했던 경험 그러니까 문제 정의 없이 무작정 성급하게 해결하려 들던 때로 돌아가면 프로젝트에 대해 각각의 사람들의 욕망을 들어보고 이를 풀어본 일이 없습니다. 다시 말해 문제라고 합의한 어떤 말에 대해 서로가 어떻게 느끼는지는 규명하지 않고 묻어둔 채, 해결책이 나왔을 때 마음에 드냐고 물어온 격이란 생각이 듭니다. 새로 바뀐 상황을 고려하면 애초에 규명하지도 않았기에 각자 다른 기억과 새로운 현실에 따라 문제는 무조건 훨씬 복잡한 덩어리를 다루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무엇이 잘못인가?'를 누가, 어떻게 결정할 것인가는 너무나도 소중한 질문입니다.


주석

[1] <한국말 말차림법>에서 제안한 문장에 대한 토박이 말입니다. 왜 포기말인지는 <언어에 대한 일반이론>에서 일부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2] 출처: 박구용 교수님의 유튜브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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