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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영회 습작 Apr 12. 2024

생각 과잉 상태와 생각 걷어차기

내 일상을 차릴 알고리듬

지난 글에 이어 페벗 김영식 님이 쓰신 <조심하게 되는 것>이라는 글을 바탕으로 묻고 따지고 풀어봅니다.


주의를 기울이지 않던 일과 주의를 기울여 온 과정의 반추

다음 포기말[1]을 보면 중국에 있을 때 도올선생의 유튜브를 듣던 때가 떠오릅니다.

자기 몸의 상태에 대해서, 자기 몸을 쓰는 일에 대해서, 환경과 관계의 변화에 대해서 주의를 기울이고 기다리며 서두르지 않게 되는 것이 조심하는 것입니다.

도올선생은 자신의 몸 상태를 구석구석 분명하게 알 수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신기하기만 할 뿐 짐작조차 하기 어려웠습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건강을 챙길 나이가 되었으니 몸과 친해지려고 했으나 어떻게 해야 하는지 여전히 잘 모릅니다.[2]


'자기 몸을 쓰는 일' 역시 둔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지식 노동에 오래 종사한 탓인지 '지식 덕후' 활동 이외에는 쉽게 약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환경과 관계의 변화'에 대해서는 그나마 조금 나은 편인 듯합니다. 나라는 현상(?)이 관계와 함께 움직인다는 사실을 중국에 가던 2016년부터 본격적으로 깨닫기 시작했으니까요. 이에 대해서는 처음 4년은 직관과 느낌으로 익힌 것 같고, 최근 4년은 생각으로 묻고 따지기 시작한 것이라고 짐작합니다. 애초에 계획한 것이 아니라 어쩌다 보니 그리한 것이라 '짐작'이란 표현을 씁니다.


인공물에 갇혀서 이미 자연을 보기 힘든 삶의 환경

요즘처럼 과학을 공부하고 있지 않았다면 이 말의 등장 자체가 엉뚱하다 여겼을 듯합니다.

야생의 동물들은 초식과 육식을 구분하지 않고 모두 대단히 조심스럽습니다.

쭉 서울에서 자랐던 저에게 동물의 세계는 TV에서 보거나 동물원에서 접하는 아주 좁은 세계였습니다. 다행히 2019년부터 익숙해진 과학은 최봉영 선생님이 그린 그림의 가장 바깥 영역에 우리도 속해 있음을 깨닫게 합니다.

인간이기 이전에 동물이기도 한 인간의 두뇌는 생각이 만들어낸 인간 현상을 수용하기 위해 진화를 해 왔습니다. 마침 그에 대한 전문가들의 이해를 담은 <제정신이라는 착각>을 읽고 있습니다. 묘한 인연으로 오늘 책을 읽다가 메모한 그림이 인용한 포기말과 연관이 있다고 느껴져 옮겨 봅니다.


부작용에 따라 진화한 인지 시스템

아래 그림을 간단히 설명하면 우리의 인식은 기본적으로 세 개의 층의 결합으로 설명하려던 그림입니다.

최하위층에서는 감각 기관이 전달하는 정보에 반응하는 지각 활동이 있지만, 그 위에 생각이 지배하는 인식의 층이 있죠. 인식의 층 기저에는 다른 사람의 말과 행동을 인지하는 기초적인 영역이 존재할 듯합니다. 하지만, 각자의 환경이나 성격 혹은 자아(임자)에 따라 아주 다른 행동 양식을 자아내는 인지 방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걸 또 둘로 나누면 하나는 돈이 지배하는 문화 양상이고, 다른 하나는 주관을 기초로 하여 군집을 만든 의미의 세상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느닷없이 <제정신이라는 착각> 독서 과정에서 그린 그림이 연상되는 이유는 바로 '생각의 부작용'이라는 지적 때문입니다. 그리고, '생각의 부작용'이란 표현과 무관하게 책을 읽던 순간에 그림을 그리게 했던 구절도 찾아서 인용해 봅니다. 거기에도 아마 '생각의 부작용'에 대한 단서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죠.

비정상적 현저성을 경험하고, 그로 인한 스트레스를 겪어 주의력과 집중력이 떨어지면 제 할 일을 하면서 일상을 살아내기 어렵다. <중략> 경험하는 사건에 다시금 의미를 부여할 수 있고, 혼란 속에서 질서가 생기며, 통제감이 생겨난다. <중략> 혼란스럽고 통제할 수 없게 다가오는 현실 세계보다 통제감을 가지고 '돌아버린' 세상에 사는 것이 더 나은지도 모른다.


자연에 사는 한 동물의 특성도 고려하라

여기까지 살펴보고 다시 포기말을 읽습니다.

야생의 동물들은 초식과 육식을 구분하지 않고 모두 대단히 조심스럽습니다.

이번에는 메시지가 달리 보입니다.

자연에 사는 한 동물의 특성에 기반을 두고 생각도 하라


지각과 생각에 단절이 있으니 분명했던 느낌과 달리 명쾌하게 설명하기는 또 어렵습니다. 다시 다음 포기말로 나아가 볼까요?

사냥을 당하지 않기 위하여 조심스럽고 사냥하려고 조심스럽습니다.

관계의 양방향을 다루는 글을 보니 자연스럽게 <관계의 방향성과 생각이라는 혁신적인 도구>를 쓰며 다뤘던 '쪽인 나' 사고가 찾아옵니다. 물론, 비슷한 시기에 글을 쓴 제 몸과 마음 안에서 자연스럽다는 의미입니다. 독자들께는 혼란을 야기할 수 있는 문구네요. :)

인간과 확연히 구분되는 동물의 행동 예시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들은 휴식을 하면서도 깨어 있습니다.


생각 과잉 상태와 생각 걷어차기

다음 포기말을 읽으니 비로소 '생각 걷어차기'란 표현이 떠오릅니다.

인간도 생각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그렇게 당연히 조심스럽게 살 것입니다.

2022년에 김영식 님의 책을 읽으면서 '생각 걷어차기'에 대해 쓴 글이 세 개나 있었습니다.

깨달음이 찾아올 때까지 생각 걷어차기

불필요한 생각 걷어차는 정성을 반복하자

생각 걷어차기와 과학적 태도


김영식 님께서 생각 걷어차기를 설파한 이유는 다음 포기말에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생각 과잉의 상태에  빠져버렸습니다.

우리가 우주(자연)의 일부에 속해서 살고 있다는 사실은 피부에 와닿지 않을 정도니까요.

현대 인간의 사회생활은 그 자체가 생각 과잉입니다.

과잉이라는 생각을 잊을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ㅠㅠ


주석

[1] <한국말 말차림법>에서 제안한 문장에 대한 토박이 말입니다. 왜 포기말인지는 <언어에 대한 일반이론>에서 일부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2] 진전이 전혀 없던 것은 아니고 호흡에 대해서는 이론과 함께 병원을 다니면서 다소 개선된 측면이 있습니다.


지난 내 일상을 차릴 알고리듬 연재

1. 내 일상을 차릴 알고리듬을 상상하다

2. 점으로도 또 선으로도 대할 수 있는 일상

3. 차리다에서 알고리듬으로 나아간 나의 기록

4. 감정과 행동 사이에는 경계가 필요하다

5. 일상에 마주하는 감정과 문제를 비슷하게 인식하는 법

6. 불안이 알려준 비움과 채움의 경계

7. 일상을 차리기 위해서는 우선 조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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