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일상을 차릴 알고리듬
지난 시간에 이어 이번에는 알고리듬의 원천이 된 제 머릿속 차림의 기원을 돌아봅니다.
기억하는 내용을 브런치 글 기록으로 고증[1]해 보았습니다. 놀랍게도 브런치 글 쓰기 초기부터 <한국인에게 나는 누구인가>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2021년 4월 14일에 쓴 글에 책 제목이 등장합니다.
#최봉영 선생님의 <한국인에게 나는 누구인가>를 읽는데 바탕이 같다 <중략> 임자라는 말을 듣는데, 일면 딴 세상에 온 듯도 하고, 두뇌가 아니라 온몸으로 익히는 듯한 체험을 하고 나서
그 후 열 달 정도가 지나고 <차려서 사는 임자의 사는 얘기>를 쓸 때만 하더라도 아직은 느낌으로만 '임자'를 알 뿐, 누군가에게 자신 있게 설명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 후에 일 년 하고도 9개월이 흐른 어느 날 길을 걷다가 '갑자기' 말로 설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직후 저녁 식사를 함께 했던 분들에게 그 설명을 했고, 당시 함께 밥을 먹었던 분들 중에 3명과는 요즘 <한국말 말차림법 묻따풀>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입말로 설명한 후에 쓴 글이 <줏대와 잣대에 대해 새롭게 생각해 보기>입니다.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박문호 박사님 강의를 즐기기 시작한 시점도 비슷하다는 사실입니다. 그 글에서 인용한 책 제목을 빌어서 지금까지 쓴 글말 다발을 '임자가 되기 위한 축적의 시간'을 회상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기록에는 없는 기억은 최봉영 선생님과 통화를 한 순간이었습니다. 그리 길지 않은 통화였는데, 한국말에서 '차리다'의 쓰임새에 대한 처음 들어보는 설명을 해 주셨습니다. 정신을 차리다에서 살림을 차리고, 회사를 차리는 데까지 쓰인다는 설명을 듣는 순간은 놀라움 자체였습니다.
3년이라는 시간은 저에게 놀라운 말을 삶으로 가져와서 활용할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흔적을 찾으면서 확인한 바로는 두 번째로 잡은 선생님의 책 <본과 보기 문화이론>부터 작심하고 읽었던 듯합니다. 첫 책은 그저 신기한 마음으로 읽었고, 내용을 이해하기에는 무리였습니다. 두 번째 책을 읽고 남긴 <묻따풀을 생활의 일부로 배양하기>를 보니 단순한 독서를 넘어서 묻따풀 실천을 각오한 듯합니다. 지금 하는 일의 출발이 저 즈음인가 봅니다.
한편, 당시의 글을 다시 보니 눈에 들어오는 내용이 있습니다. 며칠 전에도 만난 지인이 올린 '논문 느낌'이라는 댓글입니다.
'논문'이라는 말은 얼마 전에 박구용 교수님 팟빵[2]에서 들었던 '철학'과 느낌이 상통합니다.
말 자체가 결국 지식의 축적을 위한 도구라고 보았더니 이번에는 일요일에 본 박구용 교수님의 철학 관련 영상 내용이 떠오릅니다. 철학은 무언가 내용을 배우기보다는 인식을 다루는 일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현대인들이 철학을 기피하는 이유가 일상을 벗어난 사유로 행동하기 위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기준을 다시 묻는 것이라고 합니다. 묻따풀과 일맥상통하고, 일부 지인들이 저를 '지나치게 철학적'이라고 평한 이유를 납득하게 하는 설명이었습니다.
당시 박구용 교수님 말씀을 들을 때 이렇게 속말을 했습니다.
아, 일상에서 한발 떨어져서 기준을 묻는다면, 다름 아닌 묻따풀이 아닌가?
그리고, 그러한 행동 양식을 지속하면 축적이 일어납니다. 앞서 인용한 책 제목이 우연이 아니죠. 그리고, 그런 방식으로 지식을 기록하는 대표적인 방법이 논문입니다. :)
다만, 학계에 속해서 직업으로 하지 않고, 그저 일상에서 현재를 중심으로 조금씩 삶을 변화시키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앞서 본 글 제목 <묻따풀을 생활의 일부로 배양하기>에 이미 그 의지가 드러나 있습니다. 다만 묻따풀 행위만으로 배울 수 없었고, 다른 두 분의 거인 정혜신, 박문호 박사님을 통해서 추가한 지식과 태도가 결합했습니다.
매듭말[3]로 표현하면 '상대를 헤아리는 대화 기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 <낱말의 뜻을 깊고 넓게 묻고 따지는 일의 소중함>을 실천하기 위해 고증(考證)을 뜻을 찾아봅니다.
예전에 있던 사물들의 시대, 가치, 내용 따위를 옛 문헌이나 물건에 기초하여 증거를 세워 이론적으로 밝힘.
상고할 고(考)와 증거 증(證)을 씨말로 하여 만들어진 말입니다.
[2] <말은 느낌을 저장하여 지식을 축적하게 한다> 중간에 인용한 내용을 첨부합니다.
[3] <한국말 말차림법>에서 제안한 어구에 대한 토박이 말입니다. 왜 매듭말인지는 <언어에 대한 일반이론>에서 일부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