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영회 습작 Mar 25. 2024

물, 물지, 물다 그리고 겿씨말 '~지'

한국말의 주기율표

지난 글 <쓸개와 쓰지: 말맛과 기억 그리고 유통>에 이어 <물과 물지> 쌍을 다룹니다.


물, 물지, 물다

먼저 책 <한국말 말차림법>에 나오는 포기말[1]을 인용합니다.

한국사람은 '물'에서 볼 수 있는 갖가지 일을 살펴보고서, '물'이 하는 일 가운데 으뜸인 것은 '물'에 들어가면 '물'이 언제나 늘 그것을 '무는 일'을 한다고 보았다. 그들은 사람이 물에 들어가면 물이 사람을 물어서 벗어나는 일을 힘들게 만들고, 배가 물에 들어가면 물이 배를 물어서 배가 넘어가지 않도록 잡아주는 일을 한다고 보았다.

요즘은 이런 용법으로 쓰이지 않아서 '물'이라는 글자 말고는 이를 드러내는 근거가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분석을 하려면 다소 상상력이 필요합니다.


우선 사전에서 물다 풀이는 다섯 갈래로 나타납니다.

「1」 윗니나 아랫니 또는 양 입술 사이에 끼운 상태로 떨어지거나 빠져나가지 않도록 다소 세게 누르다.

「2」 윗니와 아랫니 사이에 끼운 상태로 상처가 날 만큼 세게 누르다.

「3」 이, 빈대, 모기 따위의 벌레가 주둥이 끝으로 살을 찌르다.

「4」 (속되게) 이익이 되는 어떤 것이나 사람을 차지하다.

【…을 …에】입속에 넣어 두다.

이렇게 갈래를 친 결과만 놓고 보면 ' ~ 세게 누르다', '~ 살을 찌르다', '~ 차지하다', '~ 넣어 두다' 형태로 꼴이 달라지는 양상으로 펼쳐집니다. 말맛이 생겨서 널리 쓰이면 이렇게 다르게 쓰이는 일이 당연한 일이죠.


물다가 널리 쓰이게 되었다면?

이때 말맛으로 느끼는 내용이 무엇일까 생각해 봅니다. 손때[2]를 묻히고 자주 인용한 탓인지 '꼴, 까닭, 흐름'이 떠오릅니다.

그림에서 3요소를 뽑은 것이 어디서 기인한 것인가 다시 찾아봅니다. <사람이 눈으로 무엇을 보는 것>을 묻따풀할 때 인용한 최봉영 선생님의 다발말이었네요.

첫째로 사람이 눈이 잘 보이려면 눈을 좋게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눈을 좋게 만들어야 눈이 잘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눈을 좋게 만드는 것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사람이 무엇에서 벌어지는 일이나 꼴을 또렷이 볼 수 있도록 시력(視力)을 좋게 만드는 일이다. 사람은 시력을 잃으면 바로 눈앞에 있는 것조차 볼 수 없다. 다른 하나는 무엇에서 꼴이나 일이 비롯하는 까닭과 흐름을 꿰뚫어 볼 수 있도록 지력(智力)을 좋게 만드는 일이다. 사람은 이미 알고 있는 것이 있어야 무엇을 어떠한 것으로 알아볼 수 있다. 사람은 시력과 지력을 좋게 만들면 온갖 것이 잘 보이는 좋은 눈을 가질 수 있다.

이를 토대로 우리가 어떤 행위를 볼 때, 그 꼴과 관련한 흐름과 이들이 그런 꼴과 흐름을 가지는 까닭이 '물'과 관련이 있다면 '물지'에 담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추정해 볼 수 있습니다.


그리하면 이 사이에서 혹은 입술과 함께 무언가를 '세게 누르는 행위'를 물이 하는 행위로 표현할 수 있다고 보았을까요? 또, 모기가 주둥이 끝으로 살을 찌르는 행위도 그렇게 보았을까요?

한국사람은 '물'에서 볼 수 있는 갖가지 일을 살펴보고서, '물'이 하는 일 가운데 으뜸인 것은 '물'에 들어가면 '물'이 언제나 늘 그것을 '무는 일'을 한다고 보았다. 그들은 사람이 물에 들어가면 물이 사람을 물어서 벗어나는 일을 힘들게 만들고, 배가 물에 들어가면 물이 배를 물어서 배가 넘어가지 않도록 잡아주는 일을 한다고 보았다.

입 안에 무언가를 넣어 두는 일은 꽤나 잘 어울리는 듯합니다. 물은 무언가를 가두고 고이게 하니까요.


겿씨말 '~지' 바탕치 차리기

이번에는 <한국말 말차림법> 내용 중에 다소 생소한 겿씨말 '~지'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쓸개와 쓰지, 길과 길지에서도 마찬가지로 '~지' 형태를 기본 꼴처럼 썼지만, 아직 익숙하지 않습니다. 이에 대한 <한국말 말차림법> 설명을 보겠습니다.

한국사람은 '~지'를 가지고 1) 내가 어떤 일에 뜻을 두는 것, 2) 내가 어떤 일에 뜻을 두더라도 꾀하지 않는 것, 3) 내가 어떤 일에 뜻을 두더라도 꾀하지 못하는 것, 4) 내가 남에게 어떤 일에 뜻을 두고서 꾀하도록 이끄는 것, 5) 내가 남에게 어떤 일에 뜻을 두더라도 꾀하지 말도록 하는 것 따위를 담아낸다.

뜻을 두지만, 꾀할 것인지 아닌지 풀어내기 전 상태처럼 느껴집니다. 사전에서는 어미 '-지'로 풀었는데 세 갈래 풀이가 있습니다.

「1」 ((용언의 어간이나 어미 ‘-으시-’, ‘-었-’ 뒤에 붙어)) 그 움직임이나 상태를 부정하거나 금지하려 할 때 쓰이는 연결 어미. ‘않다’, ‘못하다’, ‘말다’ 따위가 뒤따른다.
「2」 ((‘이다’의 어간, 용언의 어간이나 어미 ‘-으시-’, ‘-었-’, ‘-겠-’ 뒤에 붙어)) 상반되는 사실을 서로 대조적으로 나타내는 연결 어미.

((‘이다’의 어간, 용언 어간이나 어미 ‘-으시-’, ‘-었-’, ‘-겠-’ 뒤에 붙어))
해할 자리에 쓰여, 어떤 사실을 긍정적으로 서술하거나 묻거나 명령하거나 제안하는 따위의 뜻을 나타내는 종결 어미. 서술, 의문, 명령, 제안 따위로 두루 쓰인다

풀이 내용만 보면 <한국말 말차림법> 설명과 대동소이하지만, 말차림법은 이를 ~지로 묶었다면 사전에서는 수많은 '지' 설명 중에 일부로 추가했습니다. 지식의 나열에 그치고 차리는 일에 대해서는 큰 가치를 부여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주석

[1] <한국말 말차림법>에서 제안한 문장에 대한 토박이 말입니다. 왜 포기말인지는 <언어에 대한 일반이론>에서 일부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2] <학습법과 창의성 모두 기억이 핵심이다>에서 인용한 박문호 박사님의 말, '내 감정의 손때를 묻히라는 겁니다'에서 유래합니다.

[3] <한국말 말차림법>에서 제안한 구절에 대한 토박이 말입니다. 왜 다발말인지는 <언어에 대한 일반이론>에서 일부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지난 한국말의 주기율표 연재

1. 한국말에서 ‘말’과 ‘말다’에 대한 묻따풀

2. 말은 말에다가 말아서 말해라

3. 파래는 파랗고, 풀은 푸르다

4. 쓸개와 쓰지: 말맛과 기억 그리고 유통

5. 길, 길이, 길지: 길과 인생길의 속성

작가의 이전글 길, 길이, 길지: 길과 인생길의 속성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