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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영회 습작 Mar 25. 2024

길, 길이, 길지: 길과 인생길의 속성

한국말의 주기율표

지난 글 <쓸개와 쓰지: 말맛과 기억 그리고 유통>에 이어 <길과 길지> 쌍을 다룹니다.


길, 길이, 길지

먼저 책 <한국말 말차림법>에 나오는 포기말[1]을 인용합니다.

사람이 다니는 길은 길이가 길다는 것을 잘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길과 길지 쌍이 아니라 길, 길이, 길지 묶음으로 다뤄야 할 듯도 합니다. 뒤에 왜 '길지'가 대푯값으로 쓰이는지 따져 보기로 하고 먼저 이들 각각을 사전에서 찾아봅니다.


길은 풀이가 10개나 됩니다. 하나만 옮깁니다.

「1」 사람이나 동물 또는 자동차 따위가 지나갈 수 있게 땅 위에 낸 일정한 너비의 공간. ≒도도.

관용구도 11개, 속담도 12개나 있어 풍부하게 쓰이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또한, 다른 낱말로 분류된 '길'도 있는데 앞선 '길'의 은유로 보아도 좋다는 생각이 듭니다.

「2」 짐승 따위를 잘 가르쳐서 부리기 좋게 된 버릇.

예문을 볼까요?

길이 잘 든 말.


낱말 풀이에 '길-이'라고 표기되어 있습니다. 씨말 둘이 합쳐진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1」 한끝에서 다른 한끝까지의 거리. ≒.

친숙한 낱말인 길이도 네 갈래의 풀이가 있습니다.


길지와 길다

최봉영 선생님이 '길지'로 표기하는 내용은 사전에서 찾을 수 없습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동사와 형용사의 원형을 '~다' 형태로 규정하는 탓이죠. 그래서, 길다의 풀이를 봅니다. 흥미롭네요. 동사 하나와 형용사 하나가 있는데, 사전은 이들을 다른 것으로 본다는 흔적입니다.


여기서 제가 지난 글에 쓴 연재의 동기를 살펴볼까요?

말의 씨앗에 해당하는 씨말의 펼쳐짐에서 보이는 일종의 대칭에 대한 호기심이 저를 이끈 것인데요.

말의 뜻이 쉽게 전이되는 패턴이 자연스럽다고 믿습니다. 아직 이런 확신에 대한 근거가 부족해서, 여기서는 박문호 박사님의 '대칭화'를 강조한 사실만 인용하겠습니다. 두 개의 '길다'를 구분하면, 기억하기도 어렵고 기억량도 늘어나고 또 혼선이 옵니다. 소리는 같은데, 뜻은 다르니까요.

반대로 동사로 풀이한 '길다'와

머리카락, 수염 따위가 자라다.

형용사로 풀이한 '길다'가

「1」 잇닿아 있는 물체의 두 끝이 서로 멀다.

길이라는 씨말에서 왔다고 기억하면 쉽습니다. 교집합과 합집합이 등장하니까, 기억할 양은 줄고 교집합에 해당하는 부분은 인출단서로 쓰여서 둘을 엮어줍니다.

사람이 다니는 길은 길이가 길다는 것을 잘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길의 풀이에서 '사람' 대신에 머리카락이나 수염 따위를 넣고 '다'를 붙이면, '길다'가 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길이 만들어 내는 꼴을 '다'를 붙여 형용사로 만든다고 볼 수 있습니다.


유일한 인생길은 지나온 길뿐이다

이번에는 다른 사람(최봉영 선생님)의 주장을 한번 보고, 제가 이렇게 느끼는 이유를 써보겠습니다. 제가 그분의 부탁을 받거나 이해관계가 없는 이상은 평소 가지고 있었던 이해와 믿음과 부합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인상 깊게 봤던 오락 영화에서 기억에 새겨진 말이 있습니다.

유일한 인생길은 지나온 길뿐이다

길의 사전 풀이를 다시 보겠습니다.

「1」 사람이나 동물 또는 자동차 따위가 지나갈 수 있게 땅 위에 낸 일정한 너비의 공간. ≒도도.

그런데, '인생길'은 길을 씨말로 사용하여 발전한 낱말입니다.


인생-길(人生길)은 사전에 낱말로 등재되어 있습니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세상을 살아가는 길.

제가 영화에서 영감을 받은 부분은 '살아가는'의 보다 정확한 의미는 '지나온'으로 여기는 부분입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볼까요?


마음이 가는 것만 본다

마주한다고 모두 보일까요? 혹은 보려고 할까요?


제가 알기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꽤 오래 고민하던 문제에 대해서 작년에 <외면(外面)하기와 직면(直面)하기>라는 글로 풀어낸 일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자신의 일을 직면하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안타까움에서 비롯했지만, 이내 제 내면에서 어떤 일은 직면하고 어떤 일은 외면하는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더하여 최근 읽고 있는 <제정신이라는 착각>에서 말하는 우리 뇌에서 확신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배우면서 더욱 확신하게 됩니다. 바로 '마음이 가는' 부분만 보인다는 사실을 말이죠.


때로는 장애물이 단단한 길을 만드는 재료가 되곤 한다

마지막으로 길에 대해 최근에 받은 영감을 끝으로 글을 마치겠습니다. 우리는 살면서 많은 장애물을 만납니다.

인용한 그림은 페북 광고로 만났습니다. 조국혁신당 창당 과정을 사유하며 배운 일이 없었더라면 '마음이 가지 않았을' 그림입니다. 어머니와 '그대가 조국'을 볼 때만 해도 조국 前장관님은 지금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창당 선언 이후 조국 대표님의 발언 속에 드러나는 태도를 보면서 검찰의 폭압과 선을 넘는 무책임이 그를 정치인으로 바꾸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그래서 페북 추천으로 뜬 이미지에 마음이 갔습니다. 나머지 반은 이렇기 때문이죠.



주석

[1] <한국말 말차림법>에서 제안한 문장에 대한 토박이 말입니다. 왜 포기말인지는 <언어에 대한 일반이론>에서 일부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지난 한국말의 주기율표 연재

1. 한국말에서 ‘말’과 ‘말다’에 대한 묻따풀

2. 말은 말에다가 말아서 말해라

3. 파래는 파랗고, 풀은 푸르다

4. 쓸개와 쓰지: 말맛과 기억 그리고 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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