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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영회 습작 Apr 15. 2024

'되다'와 삼국시대의 풍류(風流)를 알게 하는 실마리

묻따풀 2024: 함께 말 차리기

지난 글에 이어서 계속 최봉영 선생님의《한국말에서 ‘되다’와 '되는 것'》을 묻고 따지고 풀어 봅니다. 17번 다발말 이후에는 '2. 풍류(風流)와 되는 것'이 이어집니다. 


모든 것을 만나서 그것이 그것답게 되도록 하는 것

그런데 그 내용이 굉장히 뜻밖의 연결을 다룹니다.

01.
한국말에서 ‘되다’는 삼국시대에 볼 수 있는 풍류(風流)가 무엇을 뜻하는지 풀어낼 수 있는 중요한 실마리가 된다. 

교과서에서 배운 이름 최치원이 등장합니다.

최치원은 난랑비(鸞郞碑) 서문(序文)에서 “국유현묘지도(國有玄妙之道), 왈(曰) 풍류(風流), 설교지원(設敎之源) 상비선사(詳備仙史), 실내(實乃) 포함삼교(包含三敎), 접화군생(接化群生), ~ : 우리 나라에 유현(幽玄)하고 오묘(奧妙)한 도(道)가 있는데, 그것을 풍류라고 일컫는다.

여러 가지 생각을 폭발하게 하는 포기말입니다.

풍류에서 가르침을 펼치는 바탕과 까닭은 선(仙)의 자취를 기록한 역사(歷史)에 잘 갖추어져 있고, 그것 속에는 유교와 도교와 불교의 가르침이 모두 담겨 있는데, 그것은 나타나 있는 모든 것을 만나서 그것이 그것답게 되도록 하는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도사나 신선 같은 이해하기 어렵지만 우리 민족의 문화속에서 오랫동안 존재했던 이미지도 떠오르고요. '도가도비상도'의 바로 그 도(道) 역시 떠오릅니다. 그중에서도 마지막 매듭말에 이들 모두가 함축되어 있다는 생각이 드니 놀랍습니다.

나타나 있는 모든 것을 만나서 그것이 그것답게 되도록 하는 것이다.


멋집니다.


한국사람에게 사람이란?

더불어 작년에 풀었던 <한국사람에게 사람이란?> 내용도 떠오릅니다.

한국말에서 사람은 ‘살다’, ‘살리다(살+리+다)’에 바탕을 두고 있는 말이다. 사람은 온갖 것이 가진 살리는 힘을 살려서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임자를 말한다. <중략> 사람이 온갖 것이 가진 살리는 힘을 살려서 살아가는 것은 말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살려서 사는 방식의 원형이 풍류일까요? 현대적인 국어사전 풀이도 보겠습니다. 바람 풍(風)과 흐를 류(流)가 합쳐진 낱말의 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멋스럽고 풍치가 있는 일. 또는 그렇게 노는 일. ≒화조풍월.

중국에서 건너온 유학이나 근대 이후 서구화의 영향으로 삼국시대의 풍류는 제도권 밖으로 밀려난 것일까요?


다시 선생님의 글로 돌아가 봅니다.

여기서 핵심은 가르침의 이름인  '풍류(風流)'와 그것의 내용인 '접화군생(接化群生)'이라고 말할 수 있다. 

풍류의 내용은 접화군생(接化群生)이군요.

이때 풍류는 모든 것이 이쪽과 저쪽으로 함께 어울려서 끊임없이 어떤 것으로 되어가는 바람의 흐름을 가리키는 말이고, 접화군생은 풍류를 일삼는 이들이 목숨을 가진 온갖 것을 만나면 그것이 그것답게 달라지게 되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지난 글에서 풀이는 생략했던 접화(接化)가 등장합니다. 다시 볼까요?[2]

接化는 한국말에서 ‘接化하다’로 쓰이는 것으로서 만나는 것을 뜻하는 接과 되는 것을 뜻하는 化로 이루어져 있다. ‘接化하다’는 무엇이 누구를 만남으로써 어떤 것으로 달라지게 되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만남에 따른 양자의 변화군요. 다시 선생님의 원래 글로 돌아갑니다.

이것을 좀 더 촘촘하게 풀어보면 다음과 같다. 


와우... 공교롭게도 <제정신이라는 착각>을 읽으며 배운 인지 과학 내용가 맞물리는 지식이 등장합니다.

02.
최치원이 말하는 ‘풍류’는 ‘바람 풍(風)’과 ‘흐를 류(流)’가 어우러진 낱말로서, ‘바람의 흐름’을 한자로 옮겨 놓은 것이다. ‘풍류’는 어떤 일이 비롯하는 까닭과 어떤 일이 흘러가는 흐름을 밝혀서, 사람들이 누리에서 일어나는 온갖 일과 온갖 것을 바르게 느끼고, 알고, 바라고, 이루도록 하는 가르침을 말한다.  

진화과정에서 뇌는 자연의 변화에 대한 거대한 데이터베이스를 우리의 유전자 속에 남겼습니다. 그래서 개체와 종족 보존을 위해서 행동에 앞서 예측을 하도록 진화했습니다. 그리고 그 에측은 자연 현상이 그러하듯 인과관계 형태를 띕니다. 문화와 같은 인간 현상은 인과관계가 아닌 데에도 우리는 인과관계로 이해하려는 뇌를 갖고 있기 때문에 줄거리가 있는 이야기가 중요한 이유도 뇌와 그 인지 방식에 있습니다. 


한편, 까닭과 흐름은 <사람이 눈으로 무엇을 보는 것>을 쓸 때 손때[3]를 묻힌 그름을 소환합니다.



다음 다발말을 볼 때는 전혀 다른 말로 알고 있던 '바람()'과 '바라다'가 같은 뿌리는 지닌 말인지 궁금해집니다.

03.
‘풍류’는 이 일과 저 일을 하나의 흐름으로 엮어주고 묶어주는 ‘~는 바람에’에 바탕을 두고 있다. 예컨대 “비가 많이 오는 바람에 강물이 크게 불어났다”와 같은 말에서 볼 수 있는 ‘~는 바람에’이다. ‘~는 바람에’는 앞서 일어난 일과 뒤에 일어난 일을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서, 낱낱의 일을 넘어서 있는 더 큰 일을 알아보도록 만든다. 사람들은 ‘~바람에’를 바탕으로 삼아서, 갖가지 일에서 볼 수 있는 ‘~는 바람에’를 묻고, 따지고, 푸는 일을 함으로써 누리에서 펼쳐지는 모든 일을 하나의 큰 흐름으로 이어서 알아보는 일을 할 수 있다



주석

[1] <한국말 말차림법>에서 제안한 단락에 대한 토박이 말입니다. 왜 다발말인지는 <언어에 대한 일반이론>에서 일부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2] 접화의 경우 표준국어대사전이나 네이버 한자사전에도 풀이가 없습니다.

[3] <학습법과 창의성 모두 기억이 핵심이다>에서 인용한 박문호 박사님의 말, '내 감정의 손때를 묻히라는 겁니다'에서 유래합니다.


지난 묻따풀 2024: 함께 말 차리기 연재

(41회 이후 링크만 표시합니다.)

41. 고양이와 사람이 무엇을 알아보는 단계 비교

42. 시공간과 순간 그리고 임자와 일됨이라는 인식

43. 지각(느낌 알음)과 생각(녀김 알음)으로 알아보기

44. 말은 느낌을 저장하여 지식을 축적하게 한다

45. 보는 것과 아는 것의 상호작용 그리고 알음것과 알음알이

46. 되다: 무엇이 어떤 것이 되어서 온전히 끝맺음에 이름

47. 생태계적 사고를 깨닫게 하는 '되다'란 표현

48. 한국말에서 무엇이 어떤 것으로 되는 일의 세 갈래

49. 관계의 방향성과 생각이라는 혁신적인 도구

50. 우리의 터전인 '쪽인 나' 그리고 變-易-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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