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따풀 2024: 함께 말 차리기
지난 글에 이어서 계속 최봉영 선생님의《한국말에서 ‘되다’와 '되는 것'》을 묻고 따지고 풀어 봅니다.
네 번째 다발말[1]입니다.
04.
한국말에서 ‘되다’는 바탕을 이루는 무엇이 이미 전제되어 있는 상태에서 어떤 것이 그것과 같게 된 것을 일컫는 말이다. 이를테면 사람들은 고등학생이라는 것이 이미 전제되어 있는 상태에서 ‘나/너/그’가 고등학생과 같게 되면 “나도/너도/그도 고등학생이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러한 것은 사람이 ‘되=됫박’에 무엇을 담아서 몇 되인지 헤아리는 것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사람들은 ‘되’라는 것이 이미 전제되어 있는 상태에서 쌀과 같은 것을 그것에 담아서 한 되, 두 되, 세 되 따위를 헤아려서 “이것은 두 되이다”라고 말한다.
유치원 다닐 때까지 부모님이 쌀가게를 운영한 탓에 됫박을 본 일이 있는데, 요즘은 그걸 보지 못하니 젊은 세대에게 설명할 때는 어려움이 있겠다 싶습니다.
아무튼 됫박이 설정한 단위 혹은 규격화된 부피가 '바탕을 이루는 무엇이 이미 전제되어 있는 상태'라는 매듭말[2]에 해당한다 할 수 있습니다.
다음 매듭말인 '이미 전제되어 있는 상태에서 어떤 것이 그것과 같게 된 것'으로 이동하며 읽다 보면 '등식'이 떠오릅니다. '되다'는 한국말로 표현하는 일종의 등식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등식이라고 생각하고 다발말의 뒷부분을 읽으면 굉장히 그럴듯합니다.
<낱말의 뜻을 깊고 넓게 묻고 따지는 일의 소중함>을 실천하기 위해 사전에서 등식의 풀이를 찾습니다. 수학 개념 말고도 다른 풀이가 하나 더 있었습니다.
「2」 두 사실이 서로 다르지만 서로 긴밀히 관련되어 있거나 근본적인 뜻이나 중요함에서 서로 같음.
이쯤 되니 가설을 하나 세우게 됩니다.
그렇다면, 일됨이란 내가 인식한 내용을 말에 담은 상태에 도달했음을 뜻하는가?
다섯 번째 다발말을 읽어 보면 미묘한 겿씨말의 묘미를 느끼게 됩니다.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시간을 내어 따져 보기로 하겠습니다.
05.
한국말에서 ‘되다’는 무엇이 어떤 것으로 되어가는 과정과 결과를 아우르는 말이다. ‘되는 것’의 과정은 ‘그렇게 되어가는 일’이고, ‘되는 것’의 결과는 ‘그렇게 된 것’이다. 이를테면 얼음이 녹아서 물이 될 때, 얼음이 물로 되는 과정은 ‘물로 되어가는 일’이고, 얼음이 물로 되는 과정의 결과인 물은 ‘물로 된 것’이다. ‘물로 되어가는 일’을 빌어서 ‘물로 된 것’이 나타나게 된다.
다음 다발말은 첫 포기말부터 영감이 터져 나옵니다.
06.
무엇이 어떤 것으로 되어가는 과정은 언제나 무엇이 다른 것을 만나서 함께 이루어진다. 이를테면 얼음이 녹아서 물이 되는 것은 얼음이 그냥 녹아서 물이 되는 것이 아니라, 얼음이 열기를 만나서 녹는 일이 비롯함으로써 물이 나타나게 된다. 이런 까닭으로 무엇이 어떤 것으로 되어가는 과정은 언제나 무엇이 다른 것을 만나서 함께 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때 무엇과 다른 것은 이쪽의 무엇과 저쪽의 다른 것이 반드시 함께 하는 관계에 놓이게 된다.
'언제나 무엇이 다른 것을 만나서'라는 매듭말을 보자 앞서 언급했던 겿씨말이 앛씨말과 합쳐져서 씨말을 이루는 양상이 마치 원자의 구성과 비슷하다 느꼈던 순간이 떠오릅니다.
말만 그렇다면 놀라움이 덜할 텐데, <사람들이 배우고 쓰는 낱말의 유기체스러움>에서 쓴 것처럼 말이 도리어 우주의 만물과 비슷한 모습으로 만들어졌다고 느끼게 됩니다. 사람의 만남도 비슷한 현상으로 볼 수 있다는 점을 동시에 인식하면서 신묘하다는 느낌이 스쳐갑니다.[3]
이 부분을 곱씹어 보고 다시 인용한 다발말을 읽다 보니 '온인 나'와 '쪽인 나'라는 이분법에 대해 깨닫는 점이 있는 듯합니다. 10여 년 전에 프로젝트를 할 때, 성과와 기능 중심으로 사안을 바라보던 제 안목이 '온인 나'에 가까웠다면, 그 프로젝트가 가져올 변화가 참여자와 이해관계자의 삶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를 알고 사태를 보는 '생태계적 사고'가 '쪽인 나'에 가까울 듯합니다.
제가 생태계적 사고라고 명명한 구체적인 사례가 마치 다음 다발말인 듯이 느껴집니다.
07.
“얼음이 녹아서 물이 된다.”라는 말이 맞으려면, 얼음의 쪽과 열기의 쪽이 함께 해서 얼음이 녹는 일이 비롯해야 한다. 그런데 “얼음이 녹아서 물이 된다.”라는 말에는 얼음의 쪽을 녹게 만든 열기의 쪽이 빠져 있다. “얼음이 녹아서 물이 된다.”는 얼음이 그냥 녹아서 물이 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얼음과 열기가 이쪽과 저쪽으로서 함께 하고 있음을 놓치기 쉽다.
[1] <한국말 말차림법>에서 제안한 문단에 대한 토박이 말입니다. 왜 다발말인지는 <언어에 대한 일반이론>에서 일부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2] <한국말 말차림법>에서 제안한 어구에 대한 토박이 말입니다. 왜 매듭말인지는 <언어에 대한 일반이론>에서 일부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3] 박문호 박사님께 들은 '작용'에 대해서도 떠오르지만, 설명한 능력이 없어 아쉽네요.
(41회 이후 링크만 표시합니다.)
43. 지각(느낌 알음)과 생각(녀김 알음)으로 알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