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따풀 2024: 함께 말 차리기
지난 글에 이어서 계속 최봉영 선생님의《한국말에서 ‘되다’와 '되는 것'》을 묻고 따지고 풀어 봅니다.
이번에도 포기말[1] 단위로 보겠습니다.
13.
한국사람은 누리에 널려 있는 모든 것이 쪽과 쪽으로 함께 해서 어떤 것으로 되어가는 것으로 보기 때문에 ‘나’라는 것도 저마다 하나의 쪽으로서 다른 것과 함께 하는 어떤 것으로 여긴다.
최봉영 선생님은 이를 '함께성'이라고 말한 일이 있는데, 다음 포기말을 보니 '우리'라는 굉장히 독특한 한국말의 특성에 그런 인식이 잘 담겨 있는 듯합니다.
사람들은 나의 쪽과 남의 쪽이 함께 어울려서 하나의 ‘우리’를 만든다고 보아서 내가 낳은 아들을 ‘우리 아들’, 내가 다니는 학교를 ‘우리 학교’, 내가 사는 나라를 ‘우리나라’, 내가 사는 세상을 ‘우리 세상’으로 말한다.
함께성을 대표하는 가장 묘한 말로 '우리 와이프'를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우와... 놀라운 표현입니다.
나는 하나의 쪽으로서 ‘우리’를 터전으로 살고 죽는 일을 한다.
다소 뜬금없지만 아래 포기말을 읽을 때는 영화 장면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14.
한국사람은 ‘나’라는 것을 하나의 쪽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내가 나를 지키고 이루는 것은 나의 쪽을 지키고 이루는 일과 같다.
건달로 살아본 경험이 없음에도 그 장면에서 감동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인간 본연의 공감대가 있는 탓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듭니다.
다음 문장을 볼 때는 전혀 다른 느낌을 줍니다.
이런 까닭으로 사람들은 나의 쪽이 남에게 팔려서 사라지게 되는 것을 무엇보다 싫어한다.
변절을 하거나 기회주의자가 되어서라도 지키려는 또 다른 의미의 '쪽'이 느껴집니다.
사람들은 내가 허물어지거나 망가지는 것을 ‘쪽 팔린다’라고 말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리고 다시 영화 대사를 떠오르게 하는 포기말을 만납니다.
어떤 이들은 ‘쪽 팔리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한다.
쪽은 존대가 분이었군요.
그리고 사람들은 제가 가진 저의 쪽을 잘 지키고 이루었을 때, 그를 높여서 ‘이분, 저분, 그분’으로 부른다.
<낱말의 뜻을 깊고 넓게 묻고 따지는 일의 소중함> 실천을 위해 두 낱말의 뜻을 찾아봅니다. 먼저 쪽의 풀이를 보면 쪼개질 물건의 한 부분으로 정의합니다.
쪼개진 물건의 한 부분.
거기서 단위로 확장한 흔적이 있습니다.
쪼개진 물건의 부분을 세는 단위.
그 게 면을 세는 단위로 쓰이고 있고요.
「1」 책이나 장부 따위의 한 면. ≒페이지.
다시 보니 편에 준하는 말로 의존 명사로 구분한 풀이가 최봉영 선생님이 언급한 '쪽인 나'의 의미와 더 가까운 느낌입니다.
「2」 서로 갈라지거나 맞서는 것 하나를 가리키는 말. ≒편.
토박이 말 분의 풀이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사람을 높여서 이르는 말.
다시 포기말을 보겠습니다.
이분, 저분, 그분에서 분은 사람들이 저마다 갖고 있는 쪽을 뜻하는 말이다.
흔하게 써 오던 '되다'라는 말에 담긴 의미를 인수분해 하듯이 설명하는 포기말입니다.
15.
한국말에서 ‘무엇이 어떤 것으로 되는 것’은 무엇이 어떻게 달라지는 과정과 무엇이 어떻게 달라진 결과로 무엇이 어떤 것으로 바뀌는 것을 함께 아우르는 말이다.
<한국말 포기말의 5가지 바탕 얼개>를 쓸 때 '이됨'과 '됨이'의 관계가 묘하다 느꼈던 순간이 떠오릅니다.
이런 까닭으로 무엇이 어떤 것으로 되는 것과 무엇이 어떻게 달라지는 것과 무엇이 어떤 것으로 바뀌는 것은 뜻이 서로 맞닿아 이어져 있다.
변화(變化)라는 익숙한 낱말과 연결하니까 편안한 느낌이 듭니다.
그리고 한국사람은 이런 것을 바탕으로 한자 낱말인 ‘化’와 ‘變’과 ‘易’을 새겨서, 무엇이 어떤 것으로 되는 것을 ‘化’로 풀었고, 무엇이 어떻게 달라지는 것을 ‘變’으로 풀었고, 무엇이 어떤 것으로 바뀌는 것을 ‘易’으로 풀었다.
아침 기도 삼아서 보고 듣고 외웠던 영화 대사 속 중용 문장이 떠오릅니다. 그 장면을 반복해서 보면서 變과 化를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기 때문이죠.
그런데, 무엇이 어떤 것으로 바뀌는 것을 ‘易’라는 사실을 이번에 처음 알게 됩니다. 한자 사전 풀이를 보니 이라는 음만 기억한 易자가 '바꿀 역'으로도 쓰이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공교롭게 <일상은 단편이 아니라 선물처럼 주어지는 시간의 연속이다>을 쓰며 일상의 역동성을 풀이한 것이 도움을 줍니다.
16.
한국말에서 되는 것을 뜻하는 ‘化’와 달라지는 것을 뜻하는 `變‘과 바뀌는 것을 뜻하는 ’易‘은 사물이 생겨나고 흩어지고 사라지는 것을 담아내는 일에서 매우 중요한 낱말이다.
각자의 상황과 환경과 개성에 따라 내용은 달라지겠지만, 표현 형식으로는 化, 變과 易의 조합은 마치 하나의 사이클 혹은 패턴을 제공하는 듯합니다.
한편, 다음 포기말은 우주를 하나의 현상으로 설명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누리에 널려 있는 모든 사물은 ’化-되는 것‘이라는 바탕 위에서 끊임없이 ’變-달라지는 것‘과 ’易-바뀌는 것‘으로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17번 다발말 중에서 이런 느낌을 요약해 주는 포기말이 있습니다.
한국사람은 '變-달라짐', '易-바뀌어짐', '化-되어짐'을 바탕으로 變易, 變化, 敎化, 接化, 體化, 深化와 같은 개념을 끌어다가 온갖 것에서 볼 수 있는 온갖 일을 갖가지로 풀어낸다.
17번 다발말을 모두 인용하지 않고, 變化, 體化, 深化만 살펴봅니다.
變化는 한국말에서 ‘變化하다’, '變化되다'로 쓰이는 것으로서 달라지는 것을 뜻하는 變과 되는 것을 뜻하는 化로 이루어져 있다. ‘變化하다’는 무엇이 다른 것과 함께 함으로써 어떤 것으로 달라지는 것을 뜻하는 말이고, '變化되다'는 무엇이 다른 것과 함께 함으로써 어떤 것으로 달라지게 되는 것을 뜻한다. 사람들은 ‘變化하다’나 '變化되다'를 줄여서 ‘變하다’라고 쓰는 일이 많다.
<역린> 대사로 나온 '변하면 생육된다'는 말 때문에 '변화하다'라는 말을 바뀐 후에 바뀐 상태로 따로 또 같이 존재하는 유기체적인 관계 혹은 '쪽인 나' 바탕으로 인식할 수 있습니다.
다음은 체화입니다.
體化는 한국말에서 ‘體化하다’로 쓰이는 것으로서 몸을 뜻하는 體와 되는 것을 뜻하는 化로 이루어져 있다. ‘體化하다’는 무엇이 몸에 배어서 몸과 하나가 되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배움의 순간: 공부란 무엇인가?>를 쓸 때 공부와 체화(體化)를 연결했던 기억이 납니다. 사전 풀이를 한번 찾아봅니다.
「2」 생각, 사상, 이론 따위가 몸에 배어서 자기 것이 됨.
마지막으로 심화(深化)입니다.
深化는 한국말에서 ‘深化하다’로 쓰이는 것으로서 깊은 것을 뜻하는 深과 되는 것을 뜻하는 化로 이루어져 있다. ‘深化하다’는 무엇에 빠져드는 일이 깊이 쌓이게 되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1] <한국말 말차림법>에서 제안한 문장에 대한 토박이 말입니다. 왜 포기말인지는 <언어에 대한 일반이론>에서 일부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2] <한국말 말차림법>에서 제안한 단락에 대한 토박이 말입니다. 왜 다발말인지는 <언어에 대한 일반이론>에서 일부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41회 이후 링크만 표시합니다.)
43. 지각(느낌 알음)과 생각(녀김 알음)으로 알아보기
45. 보는 것과 아는 것의 상호작용 그리고 알음것과 알음알이
46. 되다: 무엇이 어떤 것이 되어서 온전히 끝맺음에 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