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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영회 습작 Apr 17. 2024

바람, 덕분 그리고 되는 일의 바탕

묻따풀 2024: 함께 말 차리기

지난 글에 이어서 계속 최봉영 선생님의《한국말에서 ‘되다’와 '되는 것'》을 묻고 따지고 풀어 봅니다.


~는 바람에, 힘을 미치는 쪽과 힘을 입는 쪽

이어지는 설명 역시 심오한 느낌을 주는 포기말[1]입니다.

04.
한국사람은 앞서 일어난 일과 뒤에 일어난 일이 ‘~는 바람에’로 이어지는 것은 힘의 흐름을 좇아서 이루어지는 것으로 보았다. 앞서 일어난 일은 힘을 미치는 쪽으로서, 그리고 뒤에 일어난 일은 힘을 입는 쪽으로서, 서로 힘을 주고받으면서 이쪽에서 저쪽으로 끊임없이 힘의 흐름이 이어져가게 된다.

체화(?)를 돕기 위해 제가 좋아하는 UML 클래스도 형태로 손때를 묻혀 봅니다.

왜 바람()인가 하는 의문을 풀어주는 포기말입니다.

05.
한국사람이 ‘~는 바람에’라고 말하는 ‘바람’은 비어 있는 곳을 채우고 있는 ‘바람(風)’에 바탕을 두고 있다.

비어 있는 곳으로 힘을 미치는 수단이 바람이군요.

바람은 ‘바르는 것’으로서 무엇이든 만나는 것마다 덮어서 바르는 일과 벗겨서 바르는 일을 함께 하면서 끝없이 흘러간다.


'바람'에 기대어서 갖가지로 일들이 일어나고 벌어진다

덮어서 바르다와 벗겨서 바르다는 설명에 대해 따져 봤습니다. '바르다'의 사전 풀이 중에서 가장 익숙하게 느껴지는 풀이는 '덮어서 바르다'에 가깝습니다.

물이나 풀, 약, 화장품 따위를 물체의 표면에 문질러 묻히다.

바람이 무언가 날리는 일을 '벗겨서 바르다'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이런 생각을 하면서 사전을 더 보는데, 벗겨내는 바르다의 동사가 따로 있었네요.

「1」 껍질을 벗기어 속에 들어 있는 알맹이를 집어내다.
「2」 뼈다귀에 붙은 살을 걷거나 가시 따위를 추려 내다.

우와~ '바람'에 기대어서 온갖 것에서 갖가지로 일들이 일어나고 벌어진다는 말은 감탄을 자아냈습니다.

바람은 이르지 않는 곳이 없지만 어디에도 머물러 있지 않는다. 이러한 ‘바람’에 기대어서 온갖 것에서 갖가지로 일들이 일어나고 벌어진다.  

과학적인 동시에 시적인 느낌을 주는 묘한 표현입니다.


흥미로운 설명이 이어집니다.

첫째로, 한국사람은 종이나 나무와 같은 것이 불에 타는 것을 ‘바람의 힘’에 실려서 일어나는 것으로 보았다. 사람들은 종이나 나무와 같은 것을 불에 태울 때, 바람이 잘 들도록 만든다.

아내가 불멍 할 때, '바람의 힘'을 잘 이용할 줄 모르는 제 행동을 지적했던 일이 생각납니다. 아내의 논리를 따라 생각해 보면 어릴 적에 불장난에 별로 가담을 하지 않아서 바람의 길에 대한 이해가 부족합니다.

둘째로, 한국사람은 북이나 피리와 같은 것이 울리는 것이 ‘바람의 힘’에 실려서 일어나는 것으로 보았다. 사람들은 북이나 피리가 소리가 나도록 만들 때, 바람에 잘 울리도록 만든다.

두 번째는 상대적으로 낯선 내용입니다. 반면 세 번째는 익숙한 설명입니다.

셋째로, 한국사람은 눈이나 비가 오는 것이 ‘바람의 힘’에 실려서 일어나는 것으로 보았다. 사람들은 바람이 움직이는 모양을 보고서 눈이나 비가 오는 것을 짐작하게 된다.

창밖을 보며 눈비를 판단할 때 저는 실제로 저렇게 합니다.


넷째는 다시 한번 놀라운 설명입니다.

넷째로, 한국사람은 목숨을 가진 모든 것이 살아가는 일이 ‘바람의 힘’에 실려서 일어나는 것으로 보았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은 “바람의 힘”에 실려서 저마다 끊임없이 몫의 숨을 쉰다. 어떤 것이 ‘바람의 힘’에 실려서 몫의 숨을 쉴 수 있으면 살아 있는 것이 되고, 몫의 숨을 쉴 수 없으면 죽은 것이 된다.  

목숨이 '몫의 숨'의 준말이라니! 그렇네요. 지구에 존재하는 공기를 공유하는 자기 몫의 숨을 쉴 뿐이니까요.


가장 놀라운 내용입니다.

다섯째로, 한국사람은 앞서는 일과 뒤따르는 일이 ‘~는 바람에’를 좇아서 뜻대로 이루어지기 바라는 것을 ‘바라다’라고 말한다. 어떤 것이 뜻대로 이루어지기 바라는 것은 앞의 일과 뒤의 일이 ‘~는 바람에’로 잘 이어지게 기대하는 것이다.

바람(風)이 흐름을 나타나니, 사건의 선후나 인과관계를 나타낼 때에도 빌려 쓸 수 있습니다. 그렇게 말을 뜻이 옮겨갔다니!


신바람: 바람이 난다

06.
한국사람은 어떤 것을 느끼거나 알거나 바라거나 이루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는 것을 “바람이 난다”라고 말한다. 사람은 바람이 나게 되면, 바람에 이끌려서 절로 어떤 것을 느끼거나, 알거나, 바라거나, 이루는 일을 하고자 한다. 사람들은 속에서 절로 힘이 솟구치는 바람을 ‘신바람’이라고 말한다.

놀랍게도 바람이 덕분으로도 이어지는군요.

07.
한국사람은 ‘바람의 힘’에 기대어서 일어나는 일 가운데서 살아가는 일에 도움을 주는 힘을 ‘~는 덕분에/으로’라고 말한다.

눈으로 쭉 읽는 대신에 <낱말의 뜻을 깊고 넓게 묻고 따지는 일의 소중함> 실천을 위해 사전을 찾아봅니다.

예컨대 “그가 돈을 빌려준 ‘덕분에/덕분으로’ 필요한 물건을 살 수 있었다.”라고 말할 때, ‘덕분(德分)’은 살아가는 일에 도움을 주는 바람의 힘을 말한다.


덕(德)을 나누는(分) 덕분(德分)에

덕분은 덕 덕(德)과 나눌 분(分)을 씨말로 하는 낱말입니다.

베풀어 준 은혜나 도움. ≒, 덕윤, 덕택.

덕분이라는 말이 덕(德)을 힘으로 나누어(分) 주었다는 표현이었군요. 다시 한번 <낱말의 뜻을 깊고 넓게 묻고 따지는 일의 소중함>을 깨닫습니다.


우리가 '쪽인 나'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덕분을 활용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누구든 덕담(德談)과 덕행(德行)으로 덕분을 쌓으면 어진 사람이 될 수 있다.

요즘은 잘 쓰지 않는 '어질다'도 뜻을 찾아봅니다.

마음이 너그럽고 착하며 슬기롭고 덕이 높다.

어질다는 덕()으로 평가하는군요. 이를 이해하면 다음 포기말 이해가 조금 수월해집니다.

이런 까닭으로 한국사람은 ‘德’을 ‘큰 德’으로, ‘仁’을 ‘클 仁’으로 새겨왔다.

'사람됨'에 대해 풀이했던 경험들을 떠올리게 하는 포기말입니다.

사람들은 ‘德’과 ‘仁’을 바탕으로 나의 밖에 있는 다른 것들과 어울려서 하나의 우리를 이루는 일로 나아간다.  


일어나지 않은 일조차 훤히 알아보는 힘

계속해서 다음 포기말을 봅니다.

08.
한국사람은 ‘~는 바람에’를 바탕으로 삼아서, 온갖 일을 깊고 넓게 묻고, 따지고, 풀어서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조차 훤히 알아보는 큰 사람이 되고자 했다.

고어인 '미르' 혹은 '미리'가 용()을 뜻하는데, 그게 용하다라는 말로 이어지는 것이군요.

이러한 사람이 바로 미리(:龍)처럼 모든 것을 미리 아는 용(龍)한 사람이고, 덕(德)과 인(仁)으로 더없이 널리 베푸는 큰 어른이다.

바탕을 따져 물어본 일이 없고, 암기했던 '홍인인간'이라는 말의 의미를 조금은 알 듯합니다.

이러니 한국사람은 나라를 세울 때에도 “크게 사람을 도우는 일(弘益人間)’을 보람으로 삼았다.


되는 일의 바탕

마지막으로 지난주에 최봉영 선생님께서 보내 주신 <한국말에서 무엇이 어떻게 되는 일>의 바탕을 풀이한 도표를 첨부합니다.


주석

[1] <한국말 말차림법>에서 제안한 문장에 대한 토박이 말입니다. 왜 포기말인지는 <언어에 대한 일반이론>에서 일부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지난 묻따풀 2024: 함께 말 차리기 연재

(41회 이후 링크만 표시합니다.)

41. 고양이와 사람이 무엇을 알아보는 단계 비교

42. 시공간과 순간 그리고 임자와 일됨이라는 인식

43. 지각(느낌 알음)과 생각(녀김 알음)으로 알아보기

44. 말은 느낌을 저장하여 지식을 축적하게 한다

45. 보는 것과 아는 것의 상호작용 그리고 알음것과 알음알이

46. 되다: 무엇이 어떤 것이 되어서 온전히 끝맺음에 이름

47. 생태계적 사고를 깨닫게 하는 '되다'란 표현

48. 한국말에서 무엇이 어떤 것으로 되는 일의 세 갈래

49. 관계의 방향성과 생각이라는 혁신적인 도구

50. 우리의 터전인 '쪽인 나' 그리고 變-易-化

51. '되다'와 삼국시대의 풍류(風流)를 알게 하는 실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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