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영회 습작 Apr 18. 2024

내가 있기에 세상의 모든 것은 인식될 수 있다

묻따풀 2024: 함께 말 차리기

대략 3년 전부터 꾸준히 묻따풀을 해 왔습니다. 그래서 보이는 것이 달라진 듯하고, 이를 확인하기 위해 3년 전에 읽었던 <한국인에게 나는 누구인가>를 다시 읽기로 하겠습니다. 당시를 떠올리니 그때 독서는 생소한 내용을 글말을 따라가며 읽을 뿐, 책 내용을 묻따풀 하지 못하던 시기란 점을 깨닫습니다.


17개 장이 있는데, 그중 첫 번째 장의 제목은 <01. 왜 '나'를 말하는가>입니다. 당시는 주목하지 않았던 포기말[1]이 이번에는 눈에 띕니다. 이 글은 그저 이 하나의 포기말에 대해 묻고 따져 봅니다.

내가 없다면 세상의 모든 것은 그저 모든 것에 지나지 않는다.


마주해야 보인다, 본 것에 마음이 가면 녀긴다

'분별의 시작'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곧 <낱말의 뜻을 깊고 넓게 묻고 따지는 일의 소중함>을 실천하기 위해 사전에서 분별의 풀이를 찾습니다.

「1」 서로 다른 일이나 사물을 구별하여 가름.

나눌 분(分)과 다를 별(別)을 씨말로 하는 낱말입니다. <마주해야 보인다, 본 것에 마음이 가면 녀긴다>에서 손때[2]를 묻혔던 내용이 기억으로 떠오릅니다. 눈을 포함한 감각기관을 가지고 마주하기 때문에 분별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같은 장소에 있다고 모든 것을 분별할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도 지금 창밖을 보며 눈에 들어오는 것을 모두 분별할 수 없음은 금방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마 우리의 뇌는 거의 인식할 수 없는 수준으로 빠르게 분별하는 듯합니다.[3]


아무튼 그 내용을 개념으로 묶어 표현하면 마음이 가는 것들을 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임자(나)와 순간과 일됨이라는 인식의 3요소

인용한 포기말을 다시 봅니다.

내가 없다면 세상의 모든 것은 그저 모든 것에 지나지 않는다.

'모든 것'을 다시 보니 이번에는 <현실과 조화를 이루는 환상 그리고 일됨을 떠올리기>에서 다룬 '일됨'이라는 한국말 개념이 떠오릅니다. 최봉영 선생님께 '일됨' 개념을 배운 내용을 소화하는 과정에서 제가 그린 그림입니다. 인식의 주체인 '임자'가 있어야 하는데, '내가 없다면'이 임자가 요소로 필요하다는 사실을 지칭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모두 알다시피 우리는 시간 제약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 순간에 마주하는 장면에 대해 모든 것이 아닌 것으로 인식한다고 하면 이를 일됨이라고 부르겠습니다. 일됨은 Event 혹은 사건으로 불려도 무방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는 사실 제가 아직 '일됨'이라는 말의 깊은 뜻까지는 알지 못한다는 뜻이기도 하죠.


일됨을 문제로 볼 것이냐? 느끼고 말 것이냐?

일됨을 논하니 한 가지 생각이 또 찾아옵니다. <내가 풀려는 문제가 무엇인지 분명히 하자>에서 일부 풀어낸 생각인데, 제가 인생책으로 거론하는 <대체 뭐가 문제야>에서 기인한 생각입니다. 당시 인용한 글이 있습니다.

"Risk comes from not knowing what you're doing." -- Warren Buffett

워렌 버핏도 <대체 뭐가 문제야>의 저자 제럴드 와인버그와 생각이 비슷하네요. 다수의 사람들이 자신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충분히 헤아리지 않고 일에 뛰어든다고 합니다. <대체 뭐가 문제야>를 읽고 이해하기 전에 저는 문제라고 하면 부정적인 느낌이 드는 개념이었습니다. 그런데, 제랄드 와인버그의 메시지를 깨달은 후에는 문제는 사태를 두고 분석해서 이해할 대상이라고 여깁니다.


그런 터라 '일됨'을 떠올리면 '문제'로 삼을 것인지 아닌지 판단해야 한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낱말의 뜻을 깊고 넓게 묻고 따지는 일의 소중함>을 실천하기 위해 사전에서 분별의 풀이 찾습니다. 물을 문(問)과 제목 제(題)를 씨말로 하는 낱말입니다.


<대체 뭐가 문제야> 읽기 전에 문제를 이 풀이로만 보아온 듯합니다.

「3」 해결하기 어렵거나 난처한 대상. 또는 그런 일.

반면, <대체 뭐가 문제야>를 이해한 후에는 다음 뜻으로 주로 씁니다.

「1」 해답을 요구하는 물음.
「2」 논쟁, 논의, 연구 따위의 대상이 되는 것.


마지막으로 인용한 포기말은 또 <분별은 다각도의 분석으로 볼 수 없던 얽힘을 보는 일>에 쓴 생각들을 소환하기도 합니다.

내가 없다면 세상의 모든 것은 그저 모든 것에 지나지 않는다.


주석

[1] <한국말 말차림법>에서 제안한 문장에 대한 토박이 말입니다. 왜 포기말인지는 <언어에 대한 일반이론>에서 일부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2] <학습법과 창의성 모두 기억이 핵심이다>에서 박문호 박사님 발언을 이용한 것으로 감정의 손때를 묻혀야 기억이 만들어진다는 내용을 지칭합니다.

[3] <제정신이라는 착각>을 보면 그렇게 하는 뇌의 기전을 설명하고 있지만, 제가 그걸 글로 옮겨 설명할 정도로 이해하고 있지는 못합니다.


지난 묻따풀 2024: 함께 말 차리기 연재

(41회 이후 링크만 표시합니다.)

41. 고양이와 사람이 무엇을 알아보는 단계 비교

42. 시공간과 순간 그리고 임자와 일됨이라는 인식

43. 지각(느낌 알음)과 생각(녀김 알음)으로 알아보기

44. 말은 느낌을 저장하여 지식을 축적하게 한다

45. 보는 것과 아는 것의 상호작용 그리고 알음것과 알음알이

46. 되다: 무엇이 어떤 것이 되어서 온전히 끝맺음에 이름

47. 생태계적 사고를 깨닫게 하는 '되다'란 표현

48. 한국말에서 무엇이 어떤 것으로 되는 일의 세 갈래

49. 관계의 방향성과 생각이라는 혁신적인 도구

50. 우리의 터전인 '쪽인 나' 그리고 變-易-化

51. '되다'와 삼국시대의 풍류(風流)를 알게 하는 실마리

52. 바람, 덕분 그리고 되는 일의 바탕

작가의 이전글 바람, 덕분 그리고 되는 일의 바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