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따풀 2024: 함께 말 차리기
지난 글에 이어 계속해서 <한국인에게 나는 누구인가>를 묻고 따지고 풀어봅니다.
다음 다발말[1] 은 깊은 사유를 요구하는 듯합니다.
오늘날 한국인은 나에 대해서 수많은 말을 하지만, 정작 내가 누구인지 말하려면 매우 어렵다. 나에 대한 생각을 뒤로 밀어둔 채, 마냥 바쁘게 정신없이 살아가기 때문이다.
많은 경우 나를 추동하는 힘이 '임자(자아)'가 아니라 관성, 돈, 불안 따위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밀려듭니다. 습관적으로 쓴 '사유'에 대해서도 <낱말의 뜻을 깊고 넓게 묻고 따지는 일의 소중함>을 실천하기 위해 사전을 찾습니다. 생각 사(思)와 생각할 유(惟)가 합쳐진 말입니다.
「1」 대상을 두루 생각하는 일.
철학 정의에서는 '두루'를 다음과 같이 풀고 있습니다.
「2」 『철학』 개념, 구성, 판단, 추리 따위를 행하는 인간의 이성 작용. ≒사고.
사고와 유사한 말이라서 '생각할 유' 한자 뜻도 찾아보았습니다.
몇 년 간 묻따풀 하면서 분명하게 깨달은 현실입니다.
학자들에게 한국말은 그냥 일상적으로 쓰는 말에 지나지 않는다.
사실 프로그래밍 분야에서도 당장 활용할 수 있는 실용 기법을 넘어서서 이론적인 내용으로 들어가면 한국말로 된 내용은 지극히 드문 현실입니다. 중국의 영향을 받았던 조선 시대 이전은 차치하더라도 지금은 서구화의 영양 하에서 학문도 이뤄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나타나는 현상에 대한 아쉬움을 담은 포기말[2]입니다.
한국인은 나를 나답게 만들어 가는 바탕인 삶의 차림판이 어떻게 엮여 있는지 잘 알지 못한다.
이에 대한 변화를 불러일으키기 위해 저자인 최봉영 선생님이 노력하고 계시고, 그 결과물 중에 하나가 최근에 나온 책 <한국사람에게 ○○은 무엇인가>란 생각을 합니다.
한편, 3년 전에 이 포기말을 읽을 때는 눈에 들어오지 않던 매듭말[3] '삶의 차림판'이 눈에 띕니다. 최봉영 선생님이 전하려는 내용은 한국말에 고스란히 담긴 한국인들의 집단 지성이 아닌가 싶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에 더하여 <관성적 일상에서 나와 차리는 일상으로 바꾸기>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그러려면 일상을 무시하던 태도를 버리고 선물처럼 다루는 새로운 습관을 길러야 합니다. 여기에 더하여 허구와 허상으로 가득 찬 생각에서 벗어나 조심하는 습관 역시 길러야 합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책 속의 말들을 곱씹어 보겠습니다. 최봉영 선생님 주장처럼 학자들에게 한국말은 학문의 범주에서 제외되었다고 가정합니다. 그러면 민족의 오랜 일상 속에 있던 지혜가 한국말 자체에 있고, 이를 캐내는 일이 가능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치 바로 위의 빙산 그림에서 사람이라는 글자 대신에 한국 사람들로, 행동을 한국말로 바꿔보면 이 생각을 표현하는 그림으로 바꿔볼 수 있습니다.
한국말이라는 빙산의 일각으로 드러나는 수많은 사람들의 일상의 지혜 말이죠.
[1] <한국말 말차림법>에서 제안한 구절에 대한 토박이 말입니다. 왜 다발말인지는 <언어에 대한 일반이론>에서 일부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2] <한국말 말차림법>에서 제안한 문장에 대한 토박이 말입니다. 왜 포기말인지는 <언어에 대한 일반이론>에서 일부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3] <한국말 말차림법>에서 제안한 어구에 대한 토박이 말입니다. 왜 매듭말인지는 <언어에 대한 일반이론>에서 일부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41회 이후 링크만 표시합니다.)
43. 지각(느낌 알음)과 생각(녀김 알음)으로 알아보기
45. 보는 것과 아는 것의 상호작용 그리고 알음것과 알음알이
46. 되다: 무엇이 어떤 것이 되어서 온전히 끝맺음에 이름
48. 한국말에서 무엇이 어떤 것으로 되는 일의 세 갈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