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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혁명의 최대 수혜자는 고양이인가?

내 삶을 차리는 독서의 시작

by 안영회 습작

<9배의 에너지를 쓰는 뇌, 그리고 달려야 사는 사피엔스>에 이어서 <찬란한 멸종>의 <배고파 사라진 거대 고양이>를 읽고 밑줄 친 부분을 바탕으로 제 생각을 정리한 글입니다.


고고학과 진화생물학에서 생계 시계로 쓰는 이빨

지난 글을 쓰면서 '치아가 생체 시계로 작동한다'는 점을 배웠습니다.[1]

이빨은 화석으로 잘 남는 데다가 동물의 중요한 특징이다 보니 그리스어로 이빨을 뜻하는 '오돈odon'이 들어간 동물 이름이 꽤 된다. 공룡 이구아노돈lguanodon과 트로오돈Troodon은 각각 '이구아나의 이빨'과 '상처 입은 이빨'이라는 뜻이다.

워낙 놀라워서 큰 아들에게 말해줬더니 아직 책에서 보지 못했는지 흥미롭게 들어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는데, 다음번에는 이구아노돈과 스밀로돈의 '오돈'으로 이야기를 할 수 있겠네요. :)

나도 이름에 이빨이 들어 있다. 스밀로돈smilodon, 멋진 이름 아닌가? '스밀레smilē'는 조각칼을 뜻하는 그리스어다. 그러니 내 이름은 '칼 같은 이빨'이라는 뜻이다.


배의 키 역할을 하는 동물들의 꼬리

꼬리가 배의 키 혹은 방향키(타)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는 흥미로운 장면입니다.

초원의 초식동물을 잡아먹기 위해서는 빠른 속도뿐만 아니라 방향 전환이 매우 중요하다. 사자는 먹이가 도망가는 방향 반대쪽으로 꼬리를 움직여서 몸의 방향을 쉽게 틀 수 있다.

찾아보니 키의 영어 단어는 Rudder였습니다.

이어지는 내용에서 평소 별 관심이 없었던 탄소 동위원소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합니다.

지구에 있는 탄소 가운데 98.9퍼센트는 C-12이고 나머지 1.1 퍼센트만 C-13이다. C-13은 얼마 안 된다. 그런데 C-13은 풀에 상대적으로 많고 나무에는 적다. 풀을 많이 먹는 동물과 나무를 많이 먹는 동물은 어떨까? 생각한 대로다. 풀을 많이 먹는 동물은 나무를 주로 먹는 동물보다 몸 안에 C-13이 상대적으로 더 많을 수밖에! 만약에 어떤 육식동물의 이빨을 분석했을 때 C-13이 상대적으로 많다면 초원에 사는 동물을 잡아먹었다는 뜻이고, 반대로 C-13이 상대적으로 적다면 숲에 사는 동물을 잡아먹었다는 뜻이다.

<월말김어준> 박문호 박사님 강의 중에 탄소 동위원소를 다룬 일이 있는데, 다시 들어봐야 할 듯합니다.

스밀로돈의 이빨에는 C-13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적다. 이것은 스밀로돈이 숲에 사는 초식동물을 주로 잡아먹었다는 사실을 말한다. 스밀로돈 역시 숲에 살았다는 뜻이다.


농업혁명의 최대 수혜자는 다름 아닌 쥐

<오리진>에 따르면 이를 농업혁명이라고 합니다.

인간이 똑똑해서 농사를 발명한 것은 아니고요. 지구에 처음으로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기후 환경이 만들어진 거죠.

그리고, <오리진>의 저자는 농업혁명의 다른 이름을 '돌아올 수 없는 다리'라고 썼습니다.

농사라는 게 참 놀라워요. 가뭄이나 홍수보다 더 무서운 게 바로 '잉여'입니다. 잉여는 인간 세계에 재산, 빈부 차이, 계급을 만들어 냈습니다.

하지만, <오리진>은 지리를 바탕으로 인류 문화를 해석한 책이라 쥐의 입장을 살피지는 않았습니다.

농사의 발명은 쥐의 입장에서는 신의 선물이었습니다. 먹을 게 쌓여 있거든요. 또 안전했습니다.


농업혁명 이후의 새로운 먹이사슬

새로운 먹이사실이 머릿속에 그려집니다.

생태계가 참 대단해요. 인간 서식지에 쥐가 들끓자 우리 펠리스카투스에게 인간 서식지가 매력적으로 보이는 거예요. 거기만 가면 사냥감이 널렸잖아요.

'집사'라는 표현이 책에 나오니 펠리스카투스(Felis catus)라는 처음 들은 말이 고양이 학명이라는 짐작할 수 있습니다.

집사도 이렇게 충실한 집사가 없어요. 우리는 일부러 거리를 두려고 하지만 우리에게 잘 보이려고 그렇게 노력을 한답니다. 예전에는 우리가 쥐라도 잡아줬지만 요즘은 그 짓도 안 하거든요. 그런데도 꼬박꼬박 물과 먹이를 챙겨주는 인간은 정말 귀여운 존재예요.
구글 이미지 검색 결과

이 책을 관통하는 주제가 바로 기후변화에 따른 <찬란한 멸종>이라는 점을 다시 확인시켜 주는 글로 이 장이 마무리가 됩니다,

분명한 것은 이 모든 아이러니가 우리가 그토록 두려워하는 기후변화의 결과라는 것이지요. 기후변화는 누군가에게는 위기이고 누군가에게는 기회입니다. 뭐, 현대인들이 그걸 아는지는 모르겠지만요.


주석

[1] 퍼플렉시티에 물어보니 고고학계뿐만 아니라 진화생물학, 분자생물학, 치의학 따위의 다양한 과학 분야에서 치아를 생체 시계로 쓰고 있었습니다.


지난 내 삶을 차리는 독서의 시작 연재

(147회 이후 링크만 표시합니다.)

147. 우리는 실제 세상이 아니라 뇌가 보여주는 것을 인식한다

148. 내가 가지고 다니는 것들이 곧 나를 이야기한다

149. '왜'라는 질문 없이는 불가능한 지속 가능성

150. 준비가 아니라 나를 알고, 나를 믿고, 해 나가는 것

151. 뇌가 추측을 최대한 동원해서 정보를 더 크게 키운다

152. 확신이 없는 길을 가는 방법은 나 자신을 믿는 것

153. 생각을 하면 조직에서 살아남을 수 없는 구조

154. 북극의 빙산이 녹아 섬이 잠긴다는 거짓말

154. 군사정권의 유산과 강력한 검언유착을 이겨낸 K-민주주의

156. 편견이라는 미세먼지 그리고 제정신이라는 착각

157. 지구 온난화는 막을 수 없다?

158. 지구는 지금까지 다섯 번의 대멸종을 겪었다

159. 구석기에서 신석기로: 농경 사회의 시작

160. 눈이 아니라 뇌(머리)로 보는 것이라 해야 할까?

161. 뇌는 두개골 안에서 절대적인 어둠 속에 갇혀 있다

162. 9배의 에너지를 쓰는 뇌, 그리고 달려야 사는 사피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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