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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토콘드리아가 진핵생물의 시대를 열다

내 삶을 차리는 독서의 시작

by 안영회 습작

<자연선택이 알려준 반복과 마주하기의 힘>에 이어서 <찬란한 멸종>의 <섹스의 시작을 아쉽니까?>를 읽고 밑줄 친 부분을 바탕으로 제 생각을 정리한 글입니다.


LUCA 지구에 사는 모든 생물의 공통 조상

미토콘드리아가 들려주는 이야기의 시작은 LUCA 소개입니다.

약 38억 년 전 지구의 바다 어느 구석에서 루카LUCA가 등장했다. 왠지 〈스타워즈〉의 등장인물 같은 이 이름은 'Last Universal Common Ancestor, 즉 '지구에 사는 모든 생물의 공통 조상'을 말한다. 이후 루카로부터 두 가지 생물 역이 등장한다. 세균역과 고세균역이 바로 그것. 갑자기 '역'이 등장해서 당황했을지도 모르겠다. 별것 아니다. 카를 폰 린네의 분류법 '종-속-과-목-강-문-계' 앞에 가장 큰 영역이 하나 더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종-속과-목-강-문-계-역'이다.

LUCA로 위키피디아를 찾아보니 사람 이름과 성으로 널리 쓰이고 있었습니다.

한편, 성경에 등장하는 이름과 비슷해서 퍼플렉시티에 물어보니 근거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Luca라는 이름은 성경과 관련이 깊습니다. Luca는 성경에서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쓴 인물인 '루카(Luke)'의 이탈리아어 및 일부 유럽 언어 변형입니다. 루카는 신약성경에 나오는 의사이자 바울의 제자로, 개신교에서는 '누가', 천주교에서는 '루카'로 불립니다. 또한, 루카는 라틴어 'Lucas'에서 유래하며 '빛을 가져오는 자' 혹은 '빛나는 자'라는 뜻을 가집니다. 루카는 예수님의 제자는 아니었지만, 바울을 끝까지 따랐고 복음서를 기록한 인물입니다.


LUCA에서 퍼져 나가는 세 가지 域domain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성경의 태초와 달리 과학의 태초는 세 가지의 생명나무로 번성했습니다.

또한, 책 내용으로 돌아가 보면 생물학 분류의 계 앞에 존재하는 역(域) 영어로 domain이 LUCA에서 나온 것이라고 합니다.


세균과 고세균을 넘어선 생명체의 등장

<월말김어준> 박문호 박사님에게 들었지만 개념이 잡혀 있지 않던 이름들이 등장합니다.

원핵생물이란 세포 설계도에 해당하는 DNA를 보관하는 핵막이 없고, 미토콘드리아 같은 다양한 세포 소기관이 없는 생물을 말한다. 원핵생물밖에 없던 시절 대부분의 세균은 혐기성 세균이었다.
혐기성이란 '공기를 혐오하는 성질'이라는 뜻이다. 여기서 공기는 산소를 뜻한다. 즉 혐기성 세균은 산소를 사용하지 못하므로 발효를 통해 에너지를 얻는데, 발효는 산소호흡보다 에너지 효율이 매우 낮다. 나는 원래 호기성 세균이었다. 호기성이란 '공기, 즉 산소를 좋아하는 성질'이라는 뜻이다. 호기성 세균은 산소호흡을 하기 때문에 높은 효율로 에너지를 생산한다. 발효가 2개의 생활에너지 ATP를 생산할 때 산소호흡은 32개의 생활에너지를 생산한다.


생물의 5계kingdom 분류와 핵막의 존재

혐기성 세균과 호기성 세균의 공생에서 미토콘드리아가 탄생합니다.

호기성 세균 역시 생존을 위한 여러 작용은 혐기성 세균에게 떠맡긴 채 자신은 에너지 생산에만 집중하면 되니 이득이었다. 혐기성 세균과 호기성 세균의 공생이 시작된 것이다. 호기성 세균은 혐기성 세균에 들어가면서 미토콘드리아로 이름을 바꿨다.

우연하게 웹 검색을 하다가 생물학의 계(界)는 System이 아닌 Kingdom이란 사실을 알았습니다. 뒤이어 로버트 휘태커(Robert Whittaker)의 생물의 5계 분류가 교과서의 바탕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앞서도 혐기와 호기의 결합인 혼종 특성이 소개되었습니다.

공생체는 전혀 새로운 생물이 되었다. 즉 진핵생물이 탄생한 것이다. 세균의 공생 증거는 현대까지 그대로 남아 있다. 핵막 안에 있는 핵 DNA와 미토콘드리아 안의 DNA는 전혀 다르며, 모계를 통해서만 유전된다.

원핵(原核) 세포는 뚜렷한 핵(核)이나 염색체를 가지고 있지 않은 세포인 반면, 이와 구분되는 진핵세포 이름엔 '참 진(眞)'자가 있습니다.

원핵세포는 하나의 주머니로 구성된 세포다. DNA도 세포질 안에 떠돌아다닌다. 세포질 안에서 모든 일이 다 일어난다. 핵막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원핵세포라고 한다. 이에 반해 진핵세포는 이름이 말해주듯이 진짜 핵이 있다. 유전자가 주머니 안에 따로 보관되어 있는 것이다. 그 주머니를 핵막이라고 한다. 핵막이 있으면 진핵세포다.

핵막이 있어야 진정한 핵이라는 것이죠.


미토콘드리아로 인해 구축된 모듈성 생물 구조

계속 읽다 보니 맥락을 조금 벗어난 생각을 하게 됩니다.

진핵생물은 원핵생물 시절에는 꿈도 꾸지 못한 일들을 하게 되었다. 우선 나, 바로 미토콘드리아 덕분에 생활에너지를 더 많이 생산했다. 에너지가 풍부해지자 진핵세포는 더 복잡한 구조를 지원하고 더 까다로운 생물학적 과정을 수행했다. 영양소 흡수와 노폐물 제거가 효율적으로 이루어졌다. 그 중심에 바로 내가 있다. 만약 내가 없었다면 특수한 세포 소기관은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을 것이다.

소프트웨어 설계에 응용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듈을 정의할 때 반드시 그 핵이 있어야 한다고 일종의 법(法)을 정해서 캡슐화하는 것이죠. OOP의 객체는 모듈의 기준으로 쓰기에는 적절치 않습니다. 결국 구조적으로는 핵을 무엇으로 할 것이냐가 이런 응용의 실효를 결정할 듯합니다.

미토콘드리아가 진핵생물의 시대를 열다

다시 책으로 돌아오면 미토콘드리아가 과거 호기성 세포로서 에너지를 공급하는 엔진 역할을 한다고 가정하겠습니다. 그렇게 보면 해당 에너지를 특정 기능에 맞춰 소비하도록 나누는 것도 모듈성이자 모듈화와 닮아 있습니다.


앞서 생명나무에서 살펴본 분화입니다.

모든 생물의 공통 조상인 루카에서 세균과 고세균이 나왔고, 각자 다른 길을 가던 세균과 고세균이 함께하면서 페카FECA가 등장했다. 'First Eukaryotic Common Ancestor, 즉 '최초의 진핵생물의 공통 조상'이다. 드디어 루카에게서 3개의 역, 즉 세균역, 고세균역, 진핵생물역이 모두 생겼다. 이때가 대략 20억 년 전이다.

다시 한번 위키피디아 Eukaryogenesis(진핵생물) 페이지에서 직관적인 그림과 함께 미토콘드리아의 존재를 확인합니다.

다시 책으로 돌아가면 미토콘드리아가 생물에게 미친 진짜 영향력을 설명하는 내용이 이어집니다.

내가 에너지를 풍부하게 생산하자 진핵생물은 아예 세포 수를 늘려 나갔다. 세포 소기관의 전문화에 만족하지 않고 세포의 전문화에 나선 것이다. 단세포 생명의 시대에서 다세포 생명의 시대가 열렸다. 이때가 대략 15억 년 전이다.

저자에 따르면 진핵생물이 5억 년이라는 긴 시간에 걸쳐 진화를 거듭하여 주류가 된 것입니다.

세포 수가 점점 늘어나자 전문성 있는 세포들의 체계가 고도화되었다. 같은 역할을 하는 세포가 모여 조직이 되고, 조직이 모여 기관이 되었다.

세포, 조직, 기관으로 이어지는 체계를 보다가 퍼플렉시티에게 표로 정리해 달라 요청했습니다.

내용이 길어져서 이후는 다음 글에서 다루겠습니다.


<찬란한 멸종>을 읽고 쓰는 독후감

1. 인류의 멸종은 예정되어 있다

2. 자기 중심성에서 벗어난 사고를 돕는 과학의 쓸모

3. 운명, 연기(緣起), 확률 분포 그리고 테라포밍

4. 원대한 포부를 가진 사람들과 역사적인 연금술

5. 북극의 빙산이 녹아 섬이 잠긴다는 거짓말

6. 지구 온난화는 막을 수 없다?

7. 지구는 지금까지 다섯 번의 대멸종을 겪었다

8. 구석기에서 신석기로: 농경 사회의 시작

9. 9배의 에너지를 쓰는 뇌, 그리고 달려야 사는 사피엔스

10. 산업혁명의 최대 수혜자는 고양이인가?

11. 사라진 매머드는 장미목 코끼리과의 동물

12. 공룡의 멸종을 이야기로 만드는 과학과 허구의 힘

13. 공룡의 진화가 알려주는 진화와 변화라는 자연의 진리

14. 화산으로 멸종한 동물들과 석탄과 함께 꺼낸 이산화탄소

15. 네 번의 대멸종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동물, 상어

16. 다섯 번의 대멸종과 상어가 지나 온 대멸종의 역사

17. 자연선택이 알려준 반복과 마주하기의 힘


지난 내 삶을 차리는 독서의 시작 연재

(157회 이후 링크만 표시합니다.)

157. 지구 온난화는 막을 수 없다?

158. 지구는 지금까지 다섯 번의 대멸종을 겪었다

159. 구석기에서 신석기로: 농경 사회의 시작

160. 눈이 아니라 뇌(머리)로 보는 것이라 해야 할까?

161. 뇌는 두개골 안에서 절대적인 어둠 속에 갇혀 있다

162. 9배의 에너지를 쓰는 뇌, 그리고 달려야 사는 사피엔스

163. 산업혁명의 최대 수혜자는 고양이인가?

164. 사라진 매머드는 장미목 코끼리과의 동물

165. 공룡의 멸종을 이야기로 만드는 과학과 허구의 힘

166. 공룡의 진화가 알려주는 진화와 변화라는 자연의 진리

167. 뇌는 자신의 실수에 주의를 기울이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168. 화산으로 멸종한 동물들과 석탄과 함께 꺼낸 이산화탄소

169. 의식적으로 다루지 못하는 다양한 형태의 암묵 기억

170. 네 번의 대멸종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동물, 상어

171. 다섯 번의 대멸종과 상어가 지나 온 대멸종의 역사

172. 자연선택이 알려준 반복과 마주하기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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