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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선택이 알려준 반복과 마주하기의 힘

내 삶을 차리는 독서의 시작

by 안영회 습작

<다섯 번의 대멸종과 상어가 지나 온 대멸종의 역사>에 이어서 <찬란한 멸종>의 <마침내 눈이 생기다>를 읽고 밑줄 친 부분을 바탕으로 제 생각을 정리한 글입니다.


삼엽충Trilobite과 유기물有機物Organic matter

이번 장의 주인공은 삼엽충입니다.

우리 삼엽충은 지구에 가장 먼저 등장한 절지동물 가운데 하나다. 몸의 형태는 화석으로 잘 남아 있다. 우리 몸은 현대 게처럼 단단하고 석회화된 외골격으로 보호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 외골격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우리를 삼엽충=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가로로 '머리-몸통-꼬리'로 나뉘기 때문이 아니다. 우리 몸은 세로로도 나뉜다. 우리 몸에는 길이를 따라 세 개의 엽이 달려 있다. 양 쪽에 왼쪽 가슴엽과 오른쪽 가슴엽이 있고 한가운데에는 중심축엽이 있다. 여기서 삼엽충이라는 말이 나왔다.

한자어로는 '나무 엽()'자가 쓰인 것인데, 영어로는 lobe가 이를 대신합니다. 뇌과학에서 자주 등장하는 전두엽의 영어 표현인 'Frontal lobe'에 등장하는 말입니다. 삼엽충의 영어 이름 'Trilobites' 속에도 등장하네요.

삼엽충은 지구상에 존재한 모든 절지동물 가운데 가장 성공적으로 널리 퍼진 생명체다. 우리는 해저에서 찾을 수 있는 모든 유기물을 먹고사는 청소부이자 때로는 포식자다.
유기물이란 무엇인가? 유기물이란 생명에서 기인한 모든 물질을 말한다.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 비타민, 핵산 같은 것에서 온 것들이다. 모든 유기물은 공통점이 있다. 바로 탄소가 들어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생명의 모든 분자는 탄소로 된 뼈대를 기반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우리가 영양소라고 하는 것 중 물을 제외하면 모두 유기물이다.


중생대는 공룡이 지배적인 시대

퍼플렉시티가 찾아준 기사에서는 삼엽충을 고생대 화석의 대표라 칭합니다. 고생대와 중생대 구분에도 호기심이 생겨 퍼플렉시티에게 물었습니다. 기사의 그림과 달리 중생대의 대표적 생물은 공룡이군요.

고생대는 약 5억 4천만 년 전부터 약 2억 5천만 년 전까지로, 이때는 주로 무척추동물, 삼엽충, 완족류, 초기 어류와 양서류 등이 번성하였습니다. 중생대는 약 2억 5천만 년 전부터 약 6천6백만 년 전까지이며, 공룡이 지배적인 시대이고 익룡, 포유류, 꽃 피는 식물이 등장한 시기입니다.
두 시대의 경계는 페름기 말에 발생한 대멸종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대멸종(페름기-트라이아스기 대멸종)은 지구상의 생물 종의 약 90% 이상이 멸종하며 생물군의 대대적인 변화가 일어난 사건입니다. 이 대멸종이 고생대와 중생대를 구분하는 가장 중요한 지질학적이며 생물학적 경계입니다.


눈目이 있어야 목표(目標)와 목적(目的)이 생긴다

저자는 삼엽충을 눈이 진화한 최초의 동물 중 하나란 점을 조명합니다.

삼엽충이 고생대 바다에서 성공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세상을 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눈을 개발했다.

눈이 생물과 그 삶에 가져오는 변화 때문인 듯합니다.

눈이 생기기 전 고생대 동물의 삶은 매우 힘들었다. 동물들은 오로지 촉각과 화학적 신호에 의존해 먹이를 찾고 위험 요소를 피했다. 솔직히 말하면 찾고 피하는 게 아니라 거의 우연에 의존해야 했다.

그리고, 목표(目標)에 '눈 목(目)'자가 있었다는 사실을 그간 인식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우리 삶에는 목표라는 게 없었다. 그런데 자연사에 새로운 장이 시작되었다. 생명에게 눈이 열리자 각자의 삶에 목표가 생기기 시작했다. 우리는 누구로부터 도망가고 누구를 쫓아가야 하는지 한눈에 깨달았다. 눈이 새로운 우주를 우리에게 선사했다. 모든 것이 바뀌었다.

<낱말의 뜻을 깊고 넓게 묻고 따지는 일의 소중함>을 실천했더니 문화의 누적 탓에 무시했던 고대의 뜻에 무지했음을 깨닫습니다. 과거는 목표가 사냥 대상을 지칭할 가능성이 높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생명의 색깔과 모양이 다양해졌다. 그리고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눈이 등장하자 생명의 다양성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생명의 빅뱅이 일어났다.


눈의 진화와 목적 없는 진화를 따르는 자연선택

화자인 삼엽충은 이제 자신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진화에 대한 상반된 시각으로 안내합니다.

한 세대당 0.005퍼센트의 변이만 있으면 빛을 구분하는 눈이 물고기의 눈이 될 때까지 40만 세대면 충분하다. 각 세대가 1년이라고 해도 40만 년이면 효율적인 상을 맺는 눈이 생길 수 있다. 그런데 100만 년이나 걸렸다. 아마 누군가가 생명에게 눈을 부여하고 싶었다면 이렇게 오래 걸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진화에는 목적이 없다 보니 이렇게 오래 걸렸다.

'목적 없는 진화purposeless evolution' 혹은 진화의 맹목적성은 다윈의 자연선택(Natural selection) 이론과 일맥상통하는 개념이라고 합니다.

'목적이 없는 진화'라는 말을 들으면 흥분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창조과학자들이다. 그들은 생각한다. 눈은 수정체, 망막, 홍채 같은 구성 요소가 함께 작용하면서 시력을 만들어내는 복잡한 구조다. 눈처럼 완벽하고 기능적인 기관이 어떻게 일련의 작고 점진적인 변화를 통해 진화할 수 있었을까?

창조과학자들은 결국 과학을 신앙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사람이라고 보게 하는 글귀입니다.

화려한 수사로 포장했지만 그들의 주장은 결국 "눈은 너무 복잡하다. 진화해서 생길 수 있는 게 아니다"라는 것이다.

맥락은 다르지만 제가 좋아하는 '점진주의'라는 표현이 반갑습니다.

다윈의 자연선택 이론은 작고 유익한 변화가 오랜 기간 쌓여서 복잡한 형태로 진화한다는 점진주의에 기초하고 있다.


자연선택이 알려준 반복과 마주하기의 힘

운 좋게 <반복 경험이 알람이 되어 다시 시작한 중국어 공부>를 쓴 덕분에 '꾸역꾸역'이나 '아기 발걸음' 그리고 '반복'이라는 개념을 통해 제 경험 속에서도 자연의 '점진주의'가 작동함을 분명하게 반복적으로 배웠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다윈은 현생 생물의 눈의 복잡성 수준이 다양하다는 점에 주목했다. 요즘도 단순한 빛에 민감한 세포부터 척추동물의 복잡한 카메라 같은 눈까지 자연계에는 다양한 수준의 눈이 존재한다. 이러한 다양성은 서로 다른 수준의 시력을 제공하는 수많은 중간 형태가 존재할 수 있는 진화 경로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니 다윈이 깨달은 이치는 사람에게도 또 문화 혹은 사람의 삶의 문제에도 그대로 적용된다는 믿음이 생깁니다.

다윈은 오랜 기간에 걸쳐 누적된 변화의 힘을 강조했다. 작은 점진적 개선이 쌓여서 매우 복잡한 구조를 만들어낼 수 있다.

더불어 간과했던 '마주하기'의 힘도 깨닫습니다.

눈이 생기고 나자 가장 큰 선택압력으로 작용했다. 생존을 위한 먹이 동물의 첫 번째 법칙은 잡아먹히지 않는 것이다. 먹이는 대개 눈이 양쪽에 있다. 선명한 상을 형성하지는 못해도 넓은 시야를 확보할 수 있다. 반대로 포식자의 첫 번째 생존 원칙은 먹는 것을 최우선으로 두는 것이다. 포식자나 경쟁자에 대한 걱정은 그다음이다. 사냥을 위해서는 정확한 거리 측정이 필요하다. 이들은 한 쌍의 눈을 앞쪽에 배치했다.


제대로 보려면 대상을 분명하게 마주해야 한다

눈은 개체에게뿐 아니라 종에게도 교훈을 주었습니다.

눈이 모든 것을 바꾸었다. 모든 동물은 빛에 적응해야 했다. 벌레 같았던 동물들은 갑옷을 두르고, 경고색을 과시하고, 위장 형태와 위장 색을 띠거나, 추적하는 적을 따돌릴 수영 실력을 갖춰야 했다.

멸종에서 살아남은 상어를 보면 턱도 중요하지만, 그전에 눈이 있었네요.

입은 그다음이었다. 원시 삼엽충에게는 먹이를 잡을 튼튼한 다리도 물어뜯을 단단한 턱도 없었다. 원시 삼엽충은 자기 주변을 유유히 떠다니는 이웃들을 보면서 딱딱한 부분을 가져야 한다는 선택압력을 받았다.

저자는 삼엽충의 입을 빌려서 우리의 눈이 그대로 삼엽충에게서 이어받은 것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캄브리아기에 갑자기 나타나서 다윈을 곤혹스럽게 했던 화석생물들의 등장은 결국 눈의 탄생으로 촉발된 것이다. <중략> 삼엽충이나 갑오징어나 사람의 눈은 진화의 다른 시점에 각각 별개로 진화한 것이다. 현대 연구에 따르면 눈은 적어도 40회, 많으면 60회까지 동물계의 여러 부분에서 각각 독립적으로 진화했다. 우리 삼엽충의 눈과 그대 인간들의 눈은 기원이 다르다.

하지만, 제가 주목(注目)하게 되는 내용은 다음 문장들입니다.

눈의 발달은 단순히 주변 환경을 인식하는 능력의 향상 그 이상이었다. 그것은 새로운 차원의 존재로 가는 관문이었다. 눈을 통해 우리는 주변 환경을 더 꼼꼼하게 탐색하고, 먹이를 더 효율적으로 찾고, 포식자를 더 성공적으로 피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책에는 없지만 우리가 그 눈을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대상이 무엇이든 그것을 분명하게 마주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려 줍니다. 오랫동안 겪었던 경청의 어려움도 상대와 상대가 하는 말 하나하나를 분명하게 마주하지 않았던 데에 있었다는 사실도 깨닫습니다.


<찬란한 멸종>을 읽고 쓰는 독후감

1. 인류의 멸종은 예정되어 있다

2. 자기 중심성에서 벗어난 사고를 돕는 과학의 쓸모

3. 운명, 연기(緣起), 확률 분포 그리고 테라포밍

4. 원대한 포부를 가진 사람들과 역사적인 연금술

5. 북극의 빙산이 녹아 섬이 잠긴다는 거짓말

6. 지구 온난화는 막을 수 없다?

7. 지구는 지금까지 다섯 번의 대멸종을 겪었다

8. 구석기에서 신석기로: 농경 사회의 시작

9. 9배의 에너지를 쓰는 뇌, 그리고 달려야 사는 사피엔스

10. 산업혁명의 최대 수혜자는 고양이인가?

11. 사라진 매머드는 장미목 코끼리과의 동물

12. 공룡의 멸종을 이야기로 만드는 과학과 허구의 힘

13. 공룡의 진화가 알려주는 진화와 변화라는 자연의 진리

14. 화산으로 멸종한 동물들과 석탄과 함께 꺼낸 이산화탄소

15. 네 번의 대멸종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동물, 상어

16. 다섯 번의 대멸종과 상어가 지나 온 대멸종의 역사


지난 내 삶을 차리는 독서의 시작 연재

(156회 이후 링크만 표시합니다.)

156. 편견이라는 미세먼지 그리고 제정신이라는 착각

157. 지구 온난화는 막을 수 없다?

158. 지구는 지금까지 다섯 번의 대멸종을 겪었다

159. 구석기에서 신석기로: 농경 사회의 시작

160. 눈이 아니라 뇌(머리)로 보는 것이라 해야 할까?

161. 뇌는 두개골 안에서 절대적인 어둠 속에 갇혀 있다

162. 9배의 에너지를 쓰는 뇌, 그리고 달려야 사는 사피엔스

163. 산업혁명의 최대 수혜자는 고양이인가?

164. 사라진 매머드는 장미목 코끼리과의 동물

165. 공룡의 멸종을 이야기로 만드는 과학과 허구의 힘

166. 공룡의 진화가 알려주는 진화와 변화라는 자연의 진리

167. 뇌는 자신의 실수에 주의를 기울이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168. 화산으로 멸종한 동물들과 석탄과 함께 꺼낸 이산화탄소

169. 의식적으로 다루지 못하는 다양한 형태의 암묵 기억

170. 네 번의 대멸종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동물, 상어

171. 다섯 번의 대멸종과 상어가 지나 온 대멸종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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