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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벨트 밖으로 나아가는 모험심은 어디서 나오는가?

내 삶을 차리는 독서의 시작

by 안영회 습작

<좋은 결정을 위해서는 육감이 필요하다>에 이어서 <무의식은 어떻게 나를 설계하는가>의 4장 '우리에게 가능한 생각들'에서 밑줄 친 내용을 토대로 쓰는 글입니다.


움벨트: 얇은 조각 위의 삶

소제목은 이 책을 소개한 <월말김어준> 박문호 박사님 강의에서 들은 매력적인 개념인 '움벨트'를 지칭하는 듯합니다. 퍼플렉시티가 전한 움벨트 설명을 보면 '물리적 세계와 현상적 세계가 다르다'라는 박문호 박사님 설명이 바로 움벨트 개념을 지칭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1]

움벨트(Umwelt)란 각 생명체가 자신의 감각과 인지 능력에 따라 주관적으로 경험하고 해석하는 세계를 의미하는 개념입니다. 객관적인 현실(벨트)이 아니라, 개별 유기체가 지각하는 환경과 그 환경에 대한 고유한 의미 체계를 가리키며, 독일 생리학자 야콥 폰 윅스컬이 처음 제시했습니다.

저자는 움벨트 이해를 돕도록 전형적인 예를 듭니다.

가시광선을 생각해 보자. 우리 눈 뒤편에는 물체에 닿았다가 튕겨 나오는 전자기 복사를 포착하는 데 최적화된 특별한 수용기가 있다. 이 수용기들은 복사를 포착했을 때, 뇌에 연달아서 신호를 보내기 시작한다. 그러나 우리는 전자기 스펙트럼 전체를 인식하지 못하고, 일부만 인식할 뿐이다.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빛은 전체 스펙트럼에서 10조 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우리가 보지 못하는 부분이 우리를 통과해 흘러가더라도 우리는 전혀 인식하지 못한다.

가시광선의 예에서 나타나는 우리의 선택적 인식은 결국 진화의 산물이겠죠.

우리가 타고난 생물학적 여건이 우리 경험을 전적으로 제한한다.

또한, 저자는 움벨트를 '얇은 조각 위의 삶'으로 묘사하는데 퍼플렉시티가 추정한 해석은 이렇습니다.

움벨트란 놀라운 숙소이나 제한된 손님만 입장할 수 있는 세계로, 인간은 자신에게 제시된 한정된 조각 위의 삶만을 경험하며 그 바깥 무한을 상상조차 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얇은 조각’이라는 비유가 적합합니다.


움벨트와 우물 안 개구리 그리고 새롭게 꾀할 수 있는 힘

움벨트 개념은 반면교사의 구호처럼 제가 자주 인용하던 '우물 안 개구리'를 떠올리게 했습니다. 이는 연쇄적으로 '새롭게 꾀할 수 있는 힘'으로 이끌었습니다.

최봉영 선생님의 <나도 알 수 없는 내 마음>에서 인용한 글이었죠.

사람이 젊을 때는 새롭게 꾀할 수 있는 힘이 많아서 무엇이든 묻고 따져서 굳은 믿음으로 키워나가고자 한다. 그들은 아직도 모르는 것이 많기 때문에 새로운 지식이나 정보를 받아들여서 믿음을 새롭게 만들어가는 일에 매우 적극적이다. 그들은 밑바탕 마음에 튼튼하고 탄탄한 굳은 믿음을 심고자 한다. 그런데 사람은 나이가 들면 새롭게 꾀할 수 있는 힘이 줄어들면서 묻고 따져서 굳은 믿음을 키우는 일이 점점 어려워진다. 반면에 그들은 오랫동안 수많은 알음알이를 믿음으로 쌓아왔다. 이런 까닭으로 그들은 밑바탕 마음에 굳은 믿음을 심어주기 위해서 이제까지 갖고 있던 믿음을 더욱 굳세게 붙잡는 일에 매달리는 일이 많다. 이런 이들은 이미 갖고 있는 믿음과 결이 같은 것만 받아들이고, 결이 다른 것은 피하거나 물리치려고 한다.

다시 책으로 돌아가 봅니다.

유기체는 저마다 자신의 움벨트가 있다. 유기체는 아마 그것을 '저기 밖에 있는' 객관적인 현실 전체라고 생각할 것이다.


움벨트 밖으로 나아가는 모험심은 어디서 나오는가?

움벨트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서로 다른 태도는 흥미로운 생각을 이끕니다. 먼저 다음 문장을 볼까요?

우리가 감지하는 범위 너머에 더 많은 것이 있을 거라고 생각할 필요가 있는가?

가장 먼저 '신대륙 탐험'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뒤이어 <오리진>을 읽을 때 미지의 세상으로 향하는 모험가들의 마음에 대해 생각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모험가와 거리가 먼 기질을 가졌지만, 어떤 이유인지 <트루먼 쇼>의 PD 발언에는 반감이 생깁니다.

프로듀서의 대답은 이렇다. "우리는 자신에게 제시된 세상을 그냥 받아들입니다." 정곡을 찌른 발언이다. 우리는 움벨트를 받아들인 뒤 더 이상 나아가지 않는다.

하지만, 모두가 그렇다고 동의할 수는 없습니다. 각자의 욕망이 다르니까요.

우리는 자신에게 제시된 현실을 그냥 받아들인다. 블러드하운드처럼 뛰어난 후각이 없기 때문에, 우리는 세상이 다른 모습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아예 하지 못한다. <중략> 날 때부터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그들에게는 결핍된 것이 전혀 없다. 시야가 있어야 할 곳에 암흑이 보이는 것이 아니다. 시각은 애당초 그들의 현실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으므로 전혀 아쉽지 않다.

그렇다면, 애당초 경험한 바 없는 것을 향해 나아가는 모험심은 어디에서 기인한 걸까? 다음 문장을 보면 우리의 과학 기술은 우리의 인지가 움벨트 속에 갇혀 있음을 알려 주기도 하지만, 움벨트의 한계를 벗어나게 한다는 사실도 알려 줍니다.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기계들 덕분에 과학이 전진하고 있는 만큼...


내용이 길어져 진화생물학적 관점의 뇌에 대한 이야기에서 벗어난 문화적인 이야기 즉, 움벨트에도 불구하고 인식의 저편을 향해 가는 듯한 인간 행동에 대한 궁금증을 담는 내용까지만 여기에 담습니다. 나머지 밑줄 친 내용에 대한 생각은 다음 글에서 다루기로 합니다.


주석

[1] 책의 112쪽을 보면 움벨트에 대한 설명이 자세히 나오는데, 어제 아내가 사마귀에 기생하는 연가시를 얘기하는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둘째 아들이 이를 두고 연가시가 뇌를 갖고 있냐고 물었는데, 그런 현상이 움벨트를 설명하기 좋은 전형적인 예시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참고로, 움벨트의 반대 개념은 움게붕입니다.


<무의식은 어떻게 나를 설계하는가>를 읽고 쓰는 독후감

1. 우리는 이 행성에서 가장 분주하고 밝게 빛나는 존재다

2. 자동으로 움직이는 뇌에서 선택의 주체는 누구인가?

3. 관념계 여행과 무의식에 밀항하는 자아

4. 정신세계의 일들은 대부분 의식적인 통제를 받지 않는다

5. 생각대로 되지 않아도 생명현상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

6. 경험의 해체와 인간 관찰력의 한심함에 대하여

7. 시각이 세상을 충실하게 표현한다는 널리 퍼진 착각

8. 우리는 실제 세상이 아니라 뇌가 보여주는 것을 인식한다

9. 뇌가 추측을 최대한 동원해서 정보를 더 크게 키운다

10. 눈이 아니라 뇌(머리)로 보는 것이라 해야 할까?

11. 뇌는 두개골 안에서 절대적인 어둠 속에 갇혀 있다

12. 뇌는 자신의 실수에 주의를 기울이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13. 의식적으로 다루지 못하는 다양한 형태의 암묵 기억

14. 좋은 결정을 위해서는 육감이 필요하다


지난 내 삶을 차리는 독서의 시작 연재

(160회 이후 링크만 표시합니다.)

160. 눈이 아니라 뇌(머리)로 보는 것이라 해야 할까?

161. 뇌는 두개골 안에서 절대적인 어둠 속에 갇혀 있다

162. 9배의 에너지를 쓰는 뇌, 그리고 달려야 사는 사피엔스

163. 산업혁명의 최대 수혜자는 고양이인가?

164. 사라진 매머드는 장미목 코끼리과의 동물

165. 공룡의 멸종을 이야기로 만드는 과학과 허구의 힘

166. 공룡의 진화가 알려주는 진화와 변화라는 자연의 진리

167. 뇌는 자신의 실수에 주의를 기울이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168. 화산으로 멸종한 동물들과 석탄과 함께 꺼낸 이산화탄소

169. 의식적으로 다루지 못하는 다양한 형태의 암묵 기억

170. 네 번의 대멸종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동물, 상어

171. 다섯 번의 대멸종과 상어가 지나 온 대멸종의 역사

172. 자연선택이 알려준 반복과 마주하기의 힘

173. 미토콘드리아가 진핵생물의 시대를 열다

174. 개체의 죽음으로 개체군의 건강을 지키는 미토콘드리아

175. 좋은 결정을 위해서는 육감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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