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인공지능에 대한 풀이가 강력한 신화의 힘을 깨닫게 하다

인공지능 길들이기

by 안영회 습작

<인공지능은 언어로 만든 추상적 구조물을 변하게 하는가?>에 이어 <먼저 온 미래>의 6장 <불변의 법칙과 변질되는 개념들>을 읽고 쓰는 글입니다.


예술에서 스포츠로 향하는 바둑의 전환

좋은 바둑과 이기는 바둑의 대비는 직관적입니다.

좋은 바둑과 이기는 바둑은 다르다고 말하는 프로기사들에게는 큰 약점이 있다. 좋은 바둑이 뭔지 구체적으로 대답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항상 막연하게, 경험에 기대어 설명할 수밖에 없다.

바둑은 모르지만, 이른바 '축덕질' 경험 때문에 축구계에서 유명했던 '안티풋볼' 논란이 떠올랐습니다. 팬들이 좋아하는 화려한 축구가 아니라 역습만 노리는 수비적인 축구로 승부에만 집착하는 경우, 축구가 아니라는 말로 비난하는 것이죠.

인공지능이라는 변수를 제외하면 바둑계의 변화에 대한 설명은 축구계에서 늘 있던 논란과 닮아 있습니다.

'좋은 바둑과 이기는 바둑은 다르다'라는 생각은 '바둑은 단순히 승부를 겨루는 게임이 아니라 일종의 예술'이라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중략> 2000년대 이후 세계대회에서 일본 기사들이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한 것은 '예술성'에 지나치게 집착한 일본 바둑계의 분위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저자는 유창혁 9단의 단언을 전하며 바둑을 예술로 보는 시각의 한계를 지적합니다.

"지금까지 많은 프로기사와 승부를 해봤지만 불리함을 감수하더라도 어떤 형태를 추구하겠다는 분은 본 적이 없습니다."

다음 글을 보면 확실히 바둑은 예술보다 스포츠에 가깝다는 주장에 동의하게 됩니다.

우리는 인간 예술가와 완전히 무관한 풍경을 보면서도 '예술이내'라고 말하며 감탄한다. 하지만 그 풍경 자체를 예술작품이라고 진지하게 여기면 곤란하다.


인공지능은 인류의 신화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

하지만, 현실의 프로기사들은 바둑에서 예술을 찾고, 소설가들에게도 비슷한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전업 소설가 중에서 문학이 예술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을 나는 단 한 명도 본 적이 없다. 다들 문학이 뭔지, 예술이 뭔지 제대로 설명하지도 못하면서 문학은 예술이라고 묻게 믿는다. 간혹 자기가 쓴 글은 예술이 아니며 오락거리라거나 돈벌이라고 말하는 작가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문학 전체가 그렇다고 말하는 작가는 없다.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대상을 함께 믿는다는 점 때문인지 오래전에 읽은 <사피엔스>를 복습하게 합니다.

<사피엔스>에서 저자 유발 하라리는 신화들 덕분에 사피엔스가 세상을 지배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 언어의 진정한 특이성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는 능력에 있다. <중략> 허구를 말할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사피엔스가 사용하는 언어의 가장 독특한 측면이다. <중략> 허구 덕분에 우리는 단순한 상상을 넘어서 집단적으로 상상할 수 있게 되었다. <중략> 그런 신화들 덕분에 사피엔스는 많은 숫자가 모여 유연하게 협력하는 유례없는 능력을 가질 수 있었다.

하라리의 생각을 받아들이면 '바둑이 예술이다'라는 믿음이나 '소설이 예술이다'라고 믿는 일은 프로기사나 소설가들의 신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인공지능은 저에게 더 와닿는 다른 신화들를 만들어 낼까요? 저는 아마 그럴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인공지능이 바꿀 문학과 예술의 본질

저자도 비슷한 결론으로 향해 갑니다.

인공지능은 소설, 적어도 소설 집필 행위의 예술성을 잠재적으로 위협한다. 많은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명작을 인공지능이 써내면 인간 소설가들은 타격을 입는다. 그런 사건이 벌어지면 인간 소설가들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수많은 질문을 마주해야 할 것이다.

그 질문은 바로 '알고리듬으로 쓴 소설도 예술인가?' 같은 것입니다. 그리고, 저자는 이하진 4단의 말을 통해 이미 드러난 바둑의 변화를 전합니다.

예전에는 답이 없는 걸 연구하는 느낌이었는데 이제는 답이 나온 걸 누가 더 잘하느냐로 바뀌었기 때문인 거 같아요.

각자의 답은 개념화된 언어보다는 선택과 행동으로 먼저 내려지는 듯합니다.

인간 예술가들이 원하건 원치 않건 예술 창작 AI는 개발된다. 인공지능이 인간 소설가의 작품을 모방할 때, 그리고 문학 AI의 작품을 어떤 식으로든 평가할 때 문학이라는 장르 자체가 점수화한다. 숫자가 되고 나면 순위가 갈리며 경쟁이 벌어진다.

저자는 인공지능 이전의 신화를 믿고 저항할 수 있는 힘의 한계도 명확하게 제시합니다.

인간 시인과 소설가는 그 숫자와 그렇게 숫자를 매기는 방식 자체를 말도 안 된다며 비웃고 외면할 수 있다. 문학 AI의 실력이 형편없는 동안에는. 2016년 이전 바둑계가 그랬던 것처럼.

그리고 다음 문장을 만나면 한동안 '가치'에 대해 깊게 고민했던 순간들이 떠오릅니다.

숫자가 중요한 평가 기준이 되면, 인간 시인과 소설가가 자신의 점수를 높이기 위해 경쟁하게 되면, 문학은 스포츠에 가까워진다.


사진기의 등장으로 맞이했던 변화와 인공지능의 역할

저자의 말마따나 문학과 바둑이 다르긴 합니다.

물론 문학은 승부가 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바둑과 다르긴 하다.

하지만, 기술에 따른 예술의 변화라는 주제로 보면 사진 기술의 등장에서 배울 수 있는 역사가 있습니다.

사진 기술이 발달하자 미술가들은 '미술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답해야 할 처지가 됐다. 사물이나 풍경을 종이에 똑같이 재현하는 게 미술의 목적이라면, 사진기 시대에 인간 미술가가 존재해야 할 필요가 없다는 뜻인가?

재작년에 <기술 복제 시대의 예술 작품>을 쓰며 익혔던 주제죠.

인상주의 화가들은 '사람의 눈으로 본다는 주관적 감각'을 답으로 제출했다. 그들은 사진의 영향을 받는 동시에 당시 사진기가 잘 포착하지 못했던 색채와 움직임을 강조하는 데 힘을 쏟았다.

이미 '일관성 기술' 같은 것들을 보면 저자가 말한 변화가 활발하게 진행 중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인간 예술가의 지위를 넘보는 문학 AI, 음악 AI, 미술 AI가 등장했는데도 문학과 음악, 미술의 개념이 지금 이대로 남으리라는 상상이 더 비현실적인 것 아닐까?


불변의 법칙과 인센티브가 문화에 미치는 영향

다음 구절을 읽을 때는 '인센티브'에 대한 더 깊은 통찰을 위해 소개한 책을 사기로 합니다.

가장 중요한 통찰은 이것일 듯하다. '인간이 인센티브에 반응한다.' 모건 하우절이 <불변의 법칙>에서 썼듯이 인센티브는 "자신이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보고 싶은 것만 보려는 욕구를 만들어 낸다." <중략> 하우절은 같은 책에서 "많은 이들이 경제적 인센티브는 뿌리칠 수 있지만 문화적, 집단적 인센티브는 더 뿌리치기 힘들다"라고도 적었다.

저자가 안용한 문구들은 저의 내면과 아내를 관찰하면서 이미 느꼈던 내용이라 쉽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이어서 저자는 변치 않는 욕망의 방향을 설명합니다.

절대다수의 사람은 돈을 잃기보다는 벌기를 바라며, 불안해지기보다 안전해지기를 원하고, 미움받기보다 사랑받기를, 무시받기보다 인정받기를 소망한다.

그리고, 다음 구절을 보면서 다시 한번 <사피엔스>가 일러준 '신화의 힘'을 떠올립니다.

자기 자신을 포함해 누군가의 미의식을 조정하는 것 따위는 그에 비하면 훨씬 수월하다. 명품 브랜드들과 패션 디자이너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그 작업을 하고 있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많은 사람을 자극하는 인센티브는 수익성 강화다. 인공지능은 수익성 강화의 도구로 널리 보급될 것이다. 많은 경우 이것은 대중성 강화를 의미한다.

2019년 <사피엔스>를 읽을 때는 '신화의 힘'을 내 일상의 삶에 대입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강력하게 작동하는 '신화의 힘'이 주변을 둘러싸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먼저 온 미래>를 읽고 쓴 글

1. 2016년 이세돌과 알파고 대국은 먼저 온 미래였다

2. 인공지능과 공존을 강요당할 창작의 미래

3. 프로 기사의 긍지와 자신감 상실 그리고 AI 동반자화

4. 제비와 비둘기의 비유: 피할 수 없는 AI-환경

5. 인공지능은 언어로 만든 추상적 구조물을 변하게 하는가?


지난 인공지능 길들이기 연재

(23회 이후 링크만 표시합니다.)

23. 포토샵 대신 나노바나나로 갈아타는 첫 발을 떼다

24. 페르소나를 이용해 다른 사람의 재주를 모방하기

25. 다음에 나오는 단어를 예측하는 일이 이렇게 중요한가?

26. 인공지능이 반드시 가야 할 길이 있을까?

27. 인공지능은 새로운 표현 방식과 언어를 제공한다

28. 다양한 수준에서 AI에 따른 직업의 변화를 면밀히 보자

29. 인공지능의 들쭉날쭉함을 포용하기

30. 인공지능과 공존을 강요 당할 창작의 미래

31. 인공지능은 허구적 믿음을 이식받은 놀라운 기계

32. 프로 기사의 긍지와 자신감 상실 그리고 AI 동반자화

33. 제비와 비둘기의 비유: 피할 수 없는 AI-환경

34. 인력을 유지하면서 AI를 이용해 생산량을 늘리자

35. 인공지능은 사회 시스템을 바꿀 것이다

36. 인공지능 시대의 교육은 어때야 하는가?

37. 인공지능은 언어로 만든 추상적 구조물을 변하게 하는가?

38. AI가 위협하는 정규 교육 후에 진행되는 견습 시스템

keyword
작가의 이전글LLM의 Stateless 구현과 AI제품의 싱글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