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을 차리는 독서의 시작
이 글은 <이병한의 아메리카 탐문>의 머리말과 프롤로그를 읽고 밑줄 친 내용을 토대로 쓰는 글입니다.
우선 책을 알게 된 배경부터 추적해 보겠습니다. 지난 10월 12일 알고리듬 추천으로 이병한 작가님 영상을 20분 정도 보다가 바로 책을 주문하게 되었습니다. 영상을 보기 전까지 책의 존재는 물론 이병한 작가님에 대해서도 아는 것이 전혀 없었습니다. 의미적 연관성을 따져 보면 <먼저 온 미래>를 읽고 생겨난 궁금증에 따라 제가 인터넷에서 했던 어떤 행적이 남겨져 알고리듬에 단초를 제공한 것이 아닐까 근거 없이 추정해 봅니다.
어쨌거나 신기한 것은 <먼저 온 미래>는 분명 상당한 영감을 주었지만, 제 관심사와는 꽤 거리가 멀었습니다. 반면에 이 책이 다루는 주제는 영상을 보자마자 얼마 되지 않아 제 취향임을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만든 규칙(습관 문지기)을 깨고 바로 주문을 하여 보게 되었습니다.
구입 후에 머리말에서 다음 다발말[1]에 밑줄을 칠 때 이미 규칙을 깨고 책을 사길 잘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인류가 세 번째 물질개벽[2]을 통과하고 있다고 여긴다. 첫 번째 물질개벽은 철기혁명과 농업혁명이었다. 인류는 기독교와 불교와 유교 등 문사철(文史哲)로써 정신개벽을 이루었다. 두 번째 물질개벽은 전기혁명과 산업혁명이었다. 인간은 법학을 근간으로 정치학과 사회학 등 사회과학으로써 응전했다. 계몽주의와 세속주의,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로 또 다른 정신개벽을 이루었다. 세 번째 물질개벽은 총기(지능) 혁명과 디지털 혁명이다. 아직은 이에 부합하는 정신개벽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이후에 어떤 내용이 이어질지 몰라도 <사피엔스>의 유발 하라리를 연상시키는 화법 감상만으로도 짜릿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퍼플[3]에게 요구해 인용한 다발말을 구조화된 표로 바꿔 보았습니다.
이하는 프롤로그에서 밑줄 친 내용을 토대로 쓴 글입니다. 프롤로그는 세 개의 소제목으로 나뉘어 있는데, 셋 다 전쟁입니다.
정치전쟁: 문화 대혁명
문화전쟁: 위정척사
패권전쟁: 테크노-유신
다양한 이유로 밑줄 친 내용이 많고, 책의 내러티브를 그대로 따를 수도 없어서 우선 밑줄 친 내용을 모아서 퍼플에게 4개의 구절로 다시 묶어 달라고 했습니다. 그 결과에 바탕을 두고 책이 불러온 제 생각을 써 보겠습니다.
뇌가 시원해지는 느낌을 받는 프레임입니다.
세계를 종횡무진하는 글로벌 엘리트가 본토의 풀뿌리와 토박이들을 착취한다. 기업의 경영자들은 공장을 중국과 아시아로 이전해 천문학적인 이익을 거두었고, 국가의 경영자들은 이라크에서 아프가니스탄에서 끝없는 전쟁에 세금을 퍼부었다. 그 대가를 오롯이 내륙에 살고 있는 평범한 백인들이 감내해 왔던 것이다. 월스트리트의 경제 엘리트와 워싱턴의 정치 엘리트라면 지긋지긋 넌덜머리를 내었다. 어차피 파워 엘리트가 지배하는 빌어먹을 세상. 자신들의 목소리는 정치에 도통 반영되지 않았다.
제 주변에서는 페북에서 만나는 진헤원 검사님 글이 유일하게 親트럼프 관점이었습니다. 덕분에 글로벌 엘리트에 대한 다수의 미국 국민들의 불만이 표출되었다는 해석은 이미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다만, 시민이 아니라 인민의 승리라는 문장은 뜻밖의 표현이었습니다.
시민이 아니라 인민이 승리하였다.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라 인민민주주의가, 민중민주가, PD(프롤레타리아 데모크라시)가 불현듯 미국에서 구현된 것이다. 즉 트럼프가 개조한 공화당은 더 이상 과거의 엘리트 연합 시민정당이 아니다. 세계에서 가장 급진적으로 반세계화를 부르짖는 인민정당이다. 그 인민정당이 낡아빠진 기성 정당을 죄다 무찌르고, 늙어버린 레거시 미디어의 편파방송과 여론조작을 무릅쓰고 마침내 새로운 미국, 인민공화국을 이루어낸 것이다. 인민의,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t the People)! 이로써 미국은 더 이상 저 멀리 대서양 건너 서구형 시민민주국가가 아니다.
인민이라는 말이 무척 생소한 저는 퍼플에 질문을 던져 보았습니다.
시민은 정치적 권리와 책임을 가진 주체로서, 사회에 참여하고 주권을 행사하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반면 인민은 국가나 사회를 구성하는 일반 대중을 뜻하며, 주로 피지배 계층이나 집합적 존재로서의 의미가 강합니다.
읽는 순간 계급적 지위 차이와 근대화 순서가 영향을 끼쳤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지만, 조금 더 근거에 입각하기 위해 퍼플에 질문을 던지고 구조화를 요청했습니다.
표의 내용에 바탕을 두고 저자의 글을 읽어 보면 나름대로 소화가 가능할 듯합니다.
미국판 문화 대혁명이 승리한 것이다. 농촌이 도시를 포위했다. 변방이 중앙을 장악했다. 내륙의 지방이 동해와 서해의 대도시를 이겼다. 대륙의 심장부가 해양의 껍데기를 몰아내었다. 기득권 사법 카르텔의 법치주의를 누르고, 보통사람들의 다수결 민주주의가 승리하였다.
트럼프 2.0을 문화 대혁명으로 비유한 것이 놀라웠는데, 직관적으로 공감은 되지만 배경 지식이 부족해서 퍼플에 물어보았습니다.
엘리트와 관료 체제에 대한 대대적 숙청.
지도자 개인에 대한 우상화와 충성 경쟁.
반대파와 언론에 대한 강경 대응.
체제와 질서의 급진적 재편.
이렇게 나열해 보니 느낌적 공감이 이성적으로 확인되는 듯합니다. 그렇지만 저자의 혜안이 느껴지는 것이 '변방이 중앙을 장악한 점' 같은 중요한 해석을 퍼플이 꼽지 못했습니다. 아마도 책 내용이 따끈따끈한 지식이고, 저자의 오리지널인 이유가 아닐까 추측해 봅니다.[4]
한편, 트럼프 지지자의 입장에서 쓴 '대륙의 심장부가 해양의 껍데기를 몰아내다'는 인상 깊은 표현을 명징하게 나타내기 위해 퍼플에게 비교표를 요구했습니다.
내용이 길어져 다음 글에서 이어 갑니다.
[1] <한국말 말차림법>에서 제안한 단락에 대한 토박이 말입니다. 왜 다발말인지는 <언어에 대한 일반이론>에서 일부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2] 개벽이란 표현은 어릴 때 접하고 자주 보지 못한 낱말이라 <낱말의 뜻을 깊고 넓게 묻고 따지는 일의 소중함>을 실천해 봅니다. 먼저 한자 사전을 찾습니다.
책에서 작가는 스스로를 개벽학자로 소개하고 있어 이에 대해서도 퍼플에 물으니 다음과 같이 요약합니다.
이병한 작가는 개벽학을 19세기말부터 이어진 동학 정신과 동서 문명 융합을 바탕으로 현대적으로 계승하는 학문으로 보고 있습니다. 개벽학 관련 활동은 개벽학당 등 연구 단체와 출판물을 통해 활발히 전개되고 있습니다.
[3] 퍼플렉시티의 줄임말입니다.
[4] 퍼플의 검색 결과를 보니 <트럼프發 ‘프로젝트 2025’는 마오쩌둥 ‘문화 대혁명’ 복제판인가>를 제목으로 하는 송승종 교수가 쓴 기사에서도 유사한 대비를 하는 글이 있었습니다.
(162회 이후 링크만 표시합니다.)
162. 9배의 에너지를 쓰는 뇌, 그리고 달려야 사는 사피엔스
163. 산업혁명의 최대 수혜자는 고양이인가?
165. 공룡의 멸종을 이야기로 만드는 과학과 허구의 힘
166. 공룡의 진화가 알려주는 진화와 변화라는 자연의 진리
167. 뇌는 자신의 실수에 주의를 기울이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168. 화산으로 멸종한 동물들과 석탄과 함께 꺼낸 이산화탄소
169. 의식적으로 다루지 못하는 다양한 형태의 암묵 기억
170. 네 번의 대멸종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동물, 상어
171. 다섯 번의 대멸종과 상어가 지나 온 대멸종의 역사
173. 미토콘드리아가 진핵생물의 시대를 열다
174. 개체의 죽음으로 개체군의 건강을 지키는 미토콘드리아
175. 좋은 결정을 위해서는 육감이 필요하다
176. 지구 생명 탄생에서 달, 바다, 시아노박테리아의 역할
177. 움벨트 밖으로 나아가는 모험심은 어디서 나오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