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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차별적인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이 공존하는 뇌

내 삶을 차리는 독서의 시작

by 안영회 습작

<우리 행동의 엔진 역할인 본능을 우리는 볼 수 없다>에 이어서 <무의식은 어떻게 나를 설계하는가>의 5장 '뇌는 라이벌로 이루어진 팀'에서 밑줄 친 내용을 토대로 쓰는 글입니다.


인종차별적인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이 함께 존재한다

사람의 본성에 진실한 면과 거짓된 면이 있다는 견해를 선호하는 사람이 많다. 원래 사람의 진정한 목표는 하나뿐이고, 나머지는 모두 장식이나 회피나 은폐라는 것이다. 직관적인 생각이지만 불완전하다.

저자에 따르면 실제는 전혀 다르다고 합니다.

우리는 많은 신경 소집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휘트먼의 말처럼 "여럿이 품고" 있는 셈이다.

막연하지만 기존 인문학이 기반으로 두고 있던 사상과는 전혀 거리가 멀고, 오히려 신경망에 기반한 인공지능의 작동 방식과 인간의 뇌가 더 유사한 듯합니다. 아무튼 그러한 사실에 입각해서 저자는 문제의식을 질문의 형태로 던집니다.

뇌에 인종차별적인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이 동시에 존재할 가능성이 없다고 믿어야 할 이유가 있는가?

그러다가 개인 취향을 건드리며 갑자기 무의식이나 뇌과학 맥락을 벗어나게 하는 글을 만납니다.

수 십 년 전 이렇게 어려운 로봇공학 문제와 씨름하던 컴퓨터공학자 마빈 민스키와 동료 학자들은 발전적인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전문화된 하위 에이전트, 즉 문제의 작은 부분을 하나씩 맡아서 처리하는 작은 컴퓨터 프로그램들에 작업을 분산시켜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아이디어였다.

아니, 이건 최근 군비 전쟁에 육박하는 기술 투자와 발전의 이름으로 쓰이는 Agentic AI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궁금증을 바로 퍼플[1]에 물었습니다.

마빈 민스키(Marvin Minsky)가 ‘에이전트(agent)’ 개념에 대한 이론적 사고를 구체적으로 제시한 것은 1970년대 초반부터 1986년까지이다. 그는 1970년대 초에 MIT 동료 시모어 페이퍼트(Seymour Papert)와 함께 ‘마음의 사회(Society of Mind)’ 이론을 발전시키기 시작했으며, 이 이론을 집대성한 저서 『The Society of Mind』를 1986년에 출간하면서 인간의 지능이 수많은 단순한 정신적 구성요소인 ‘에이전트’(agents)들의 상호작용으로 이루어진다고 설명하였다.

묘하게 생각이 흘러갑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했는데, 인간 행동을 지배하는 우리 신경 시스템의 CEO인 의식도 그 구성에 있어서는 사회적이라니!


작고 전문화된 다수의 일꾼이 일종의 사회를 만든다

퍼플이 찾아준 <The Society of Mind>에 나오는 내용이 책에도 인용되었습니다.

이 아이디어가 문제를 완전히 해결해주지는 못했으나, 상당히 도움이 되기는 했다. 그러나 더 중요한 점은 뇌의 작용에 대한 새로운 아이디어에 사람들이 초점을 맞추게 되었다는 것이다. 민스키는 기계와 비슷한 하위 에이전트들이 엄청나게 많이 모인 집합체가 인간의 정신인지 모른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Marvin Minsky's "Society of the Mind" and a multi-agent system (created by copilot)[2]

다음은 민스키의 책 내용의 인용입니다.

각각의 정신 에이전트는 정신이나 생각이 전혀 필요하지 않은 간단한 작업을 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 에이전트들을 모아 (아주 특별한 방식으로) 사회를 구성하면 지능이 생겨난다.

역시나 또 제 직업적 배경에 따른 관심사로 인해 진화(AI는 발전) 순서는 다르지만 뇌의 진화를 인공지능도 따라가고 있는 듯합니다. 다시 책으로 갑니다.

민스키가 저서 <마음의 사회>에서 말한 것처럼, 인간의 뇌가 할 일도 어쩌면 그것뿐인지도 모른다. 그의 말은 윌리엄 제임스가 말한 본능의 개념을 연상시킨다. 만약 뇌가 정말로 이런 방식으로(하위 에이전트 집단으로) 작동한다면, 우리가 전문화된 과정들을 굳이 의식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키야~ 속말로 유레카를 외칩니다. 제가 소프트웨어 설계를 처음 익힐 때 사랑에 빠졌던 '객체 지향 개념'이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세포와 기관과 체계로 이어지는 계층적 요소들의 유기적인 조합이 복잡한 일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캡슐화(Encapsulation)가 기초적으로 작동해야 합니다.


다시 소프트웨어 공학에서 벗어나서 뇌과학의 관점으로 돌아갑니다.

'마음의 사회'라는 틀은 중요한 일보 전진이었다.

다만, 과학의 책무인 실험으로 충분히 증명되지 않았을 뿐이었습니다.



정신의 민주주의에서 펼쳐지는 드라마와 같은 갈등

다음 구절 앞에 쓰인 소제목은 '정신의 민주주의'입니다. 멋진 이름입니다.

민스키의 이론에서 빠진 요소는 자기가 문제를 해결하는 올바른 방법을 안다고 믿는 전문가들 사이의 경쟁이다. 좋은 드라마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뇌도 갈등으로 움직인다.

마치 메시의 드리블을 보는 듯합니다. 데이비드 이글먼은 이렇게 어렵고 진지한 주제를 놓고도 '드라마'에 비유하는 재주를 지녔습니다. 감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데이비드 이글먼에 대해서는 그의 책이 또 나오면 못 참고 살 것 같으니 돌아가신 민스키에 대한 경의를 표하기 위해 그의 사진을 걸어 봅니다.

두 가지 생각을 만들어내는 놀라운 다발말[3]입니다.

뇌는 서로 분야가 겹치는 여러 전문가로 구성되어 있으며, 전문가들은 다양한 선택지를 놓고 의견을 제시하며 경쟁한다. <중략> 뇌 안의 여러 파벌은 항상 대화를 주고받으며, 우리 행동이라는 단 하나의 출력 채널을 차지하려고 경쟁한다. 그 결과 우리는 자신과 언쟁하기, 자신을 욕하기, 자신을 구워삶기 같은 기묘한 재주를 부릴 수 있다. 현대 컴퓨터는 절대 부릴 수 없는 재주다.

하나는 어린 시절 양자 선택의 기로에서 '그래! 결심했어!'를 주문처럼 외치며 안방극장을 점령했던 한 TV 프로였습니다.

다른 한 가지 생각은 최근에 안드레이 카파시가 인터뷰에서 지적한 LLM의 한계를 떠올리게 했습니다.[4]

LLM은 인간의 수면과 유사한 '증류(distillation)' 단계가 없습니다. 이 증류 단계는 학습 과정에서 일어난 일을 분석하고, 합성 데이터를 생성하며, 이를 모델의 가중치에 통합하는 데 필요하지만, LLM은 컨텍스트 윈도우에 토큰이 없을 때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합니다. 또한, 인간은 해답을 찾은 후 자신이 잘했거나 못했던 부분을 복잡하게 검토하고 숙고하는 과정을 거칩니다. 현재 LLM에는 이러한 '반성(reflection)' 과정에 해당하는 것이 없습니다

내용이 길어서 다음 다발말을 인용한 후에 나머지 내용은 다음 글에서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쥐의 뇌도 인간의 뇌도 모두 서로 갈등하는 부분들로 이루어진 기관이다. 내적인 분업이 이루어지는 장치를 만드는 것이 이상하게 보인다면, 우리가 이미 이런 유형의 사회적 기관을 만들었음을 생각해 보라. 배심원제도가 바로 그것이다. 일면식도 없고 의견도 서로 다른 사람 열두 명이 합의에 도달해야 한다. 배심원들은 토론하고, 설득하고, 영향을 미치려 하고, 한발 물러선다. 그렇게 해서 결국 하나의 결론에 도달한다. 서로 의견이 다른 것은 배심원제도의 결점이 아니라 핵심적인 특징이다.


주석

[1] 퍼플렉시티의 줄임말

[2] 이미지 출처: https://www.mk.co.kr/en/it/11409900

[3] <한국말 말차림법>에서 제안한 단락에 대한 토박이 말입니다. 왜 다발말인지는 <언어에 대한 일반이론>에서 일부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4] 안드레이 카파시 인터뷰 영상에서 구글 노트북 LM을 이용해 추출한 다발말입니다.


<무의식은 어떻게 나를 설계하는가>를 읽고 쓰는 독후감

1. 우리는 이 행성에서 가장 분주하고 밝게 빛나는 존재다

2. 자동으로 움직이는 뇌에서 선택의 주체는 누구인가?

3. 관념계 여행과 무의식에 밀항하는 자아

4. 정신세계의 일들은 대부분 의식적인 통제를 받지 않는다

5. 생각대로 되지 않아도 생명현상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

6. 경험의 해체와 인간 관찰력의 한심함에 대하여

7. 시각이 세상을 충실하게 표현한다는 널리 퍼진 착각

8. 우리는 실제 세상이 아니라 뇌가 보여주는 것을 인식한다

9. 뇌가 추측을 최대한 동원해서 정보를 더 크게 키운다

10. 눈이 아니라 뇌(머리)로 보는 것이라 해야 할까?

11. 뇌는 두개골 안에서 절대적인 어둠 속에 갇혀 있다

12. 뇌는 자신의 실수에 주의를 기울이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13. 의식적으로 다루지 못하는 다양한 형태의 암묵 기억

14. 좋은 결정을 위해서는 육감이 필요하다

15. 움벨트 밖으로 나아가는 모험심은 어디서 나오는가?

16. 우리 행동의 엔진 역할인 본능을 우리는 볼 수 없다


지난 내 삶을 차리는 독서의 시작 연재

(165회 이후 링크만 표시합니다.)

165. 공룡의 멸종을 이야기로 만드는 과학과 허구의 힘

166. 공룡의 진화가 알려주는 진화와 변화라는 자연의 진리

167. 뇌는 자신의 실수에 주의를 기울이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168. 화산으로 멸종한 동물들과 석탄과 함께 꺼낸 이산화탄소

169. 의식적으로 다루지 못하는 다양한 형태의 암묵 기억

170. 네 번의 대멸종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동물, 상어

171. 다섯 번의 대멸종과 상어가 지나 온 대멸종의 역사

172. 자연선택이 알려준 반복과 마주하기의 힘

173. 미토콘드리아가 진핵생물의 시대를 열다

174. 개체의 죽음으로 개체군의 건강을 지키는 미토콘드리아

175. 좋은 결정을 위해서는 육감이 필요하다

176. 지구 생명 탄생에서 달, 바다, 시아노박테리아의 역할

177. 움벨트 밖으로 나아가는 모험심은 어디서 나오는가?

178. 트럼프 2.0은 미국판 문화 대혁명인가?

179. 우리 행동의 엔진 역할인 본능을 우리는 볼 수 없다

180. 1962년이나 2025년이나 가장 많이 팔리는 초코바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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