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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을 주도하는 이들은 마치 신대륙 탐험가 같다

인공지능 길들이기

by 안영회 습작

<팬덤 비즈니스는 화장품뿐 아니라 바둑에서도 필요한가?>에 이어 <먼저 온 미래>의 9장 <가치가 이끄는 기술>을 읽고 쓰는 글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AI가 바둑계에 뭘 해준 거죠?

'바둑계에서는 이렇게 반응할 수 있구나'하고 비로소 상상할 수 있게 해 주는 르포입니다.

"상금 외에도 바둑 인프라나 바둑 보급을 위해 투자나 기부를 더 했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들은 자신들의 성과를 확인하고 싶었던 거지, 그로 인해 바둑계가 받을 충격 같은 건 안중에 없었어요. 너무 비판적인가요? 구글은 자신들이 이길 걸 알았고, 그게 바둑계에 큰 영향을 미칠 것도 알았어요." <중략> 구글 입장에서는 정말 가성비 높은 행사였죠. 알파고가 이세돌 9단과 대국을 치르는 동안 구글 주식도 엄청 올랐죠.

다시 한번 이 책의 제목 <먼저 온 미래>를 확인하기도 하고, 또 연대(連帶)라는 개념을 떠올리게 되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개인적 경험을 통해 '잃어야 알 수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아직 제 분야는 바둑계와는 거리가 좀 있어서 체감이 덜 하죠.

책에서 인용한 당시 기사를 보면, 구글은 셀 수 없는 수준의 홍보 효과를 누렸다고 합니다.

구글은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를 치르면서 호텔 임대료를 포함해 행사비로 20억 원가량을 쓴 것으로 알려졌다.


인공지능을 주도하는 이들은 마치 신대륙 탐험가 같다

하지만, 정서적으로는 저자가 대변하는 바둑계 인사들의 적대감에 전혀 몰입이 되지는 않습니다. 머리로는 이해할 수 있지만, 유효한 태도인가 싶은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이 장면에서 신대륙 정복 상황과 닮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홍보 효과는 1000억 원이 넘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구글의 모회사 알파벳의 시가총액은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 기간 58조 원이 증가했다.

인공지능을 연구하는 이들은 신대륙 발견에 비견할 경제적 이익을 노리고 있습니다. 바둑계의 입장이나 저자의 태도는 마치 정복자가 신대륙의 원주민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항의하는 듯한 모습을 연상시킵니다.

바둑계 종사자들은 구글이 알파고를 은퇴시키고 다음 과제로 단백질 구조 예측을 택한 이유를 단순하게 본다. 바둑은 돈이 안 되니까. 반면 인공지능으로 단백질 구조를 예측하면 신약 개발에 걸리는 시간과 비용을 극적으로 줄여 바둑대회 상금과는 비교도 안 되는 엄청난 이익을 거둘 수 있다.

그렇다고 제가 신대륙 탐험가의 편에 서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브런치를 쓰는 기간 동안 '지리와 역사에 의해' 신대륙을 찾아 무모한 도전을 했던 이들이 있었다는 점을 상기하는 것뿐입니다. 그리고, 미국은 그 도전의 상징 위에 구축된 나라이고, 인공지능을 주도하는 세력도 미국 중심의 자본 시스템입니다.


돈이 되는 분야는 인공지능이 뛰어들 것을

이쯤에서 작가와 작가가 대변하는 바둑계 인사들과 개발자로 살아온 제 입장이 아주 갈리게 됩니다. 저는 신대륙 발견이라는 모험을 나서는 부류는 아니지만, 자본과 모험가들이 세상을 그 방향으로 끌어가고 있는 것에 대해 반대하거나 저항할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무턱대고 지지하지는 않겠지만 커다란 조류를 맨몸으로 맡서거나 순진하게 윤리 타령을 할 생각은 없기 때문이죠.


제가 한 땀 한 땀 작품을 만들어 내는 역할을 해 본 일이 없어서 그럴 수도 있을 듯합니다. 개발자란 창작가이기도 하지만 예술 작품 같은 것을 만드는 사람은 아니니까요.


그래서, 다음 문장을 받아들이는 방식도 매우 다를 듯합니다. 바둑 기사들은 자조 섞인 혹은 불만에 가득찬 말일 수 있겠으나 저는 그저 객관적 사실로 받아들입니다. 도리어 윤석열이 대통령 당선 되었을 때 더욱 분노했고 좌절했죠.

돈이 되는 분야는 AI한테 무너진다는 이야기가, 이제 그렇게 틀린 말은 아니에요.


신대륙 발견하는 모험을 막을 수 있을까?

그래서 다음과 같은 지적은 제 관심사를 완전히 빗겨 나갑니다.

일론 머스크가 화성에 식민지를 건설하거나 화성을 테라포밍하면, 나머지 사람들은 그걸 그냥 보고만 있어야 하는 걸까? 화성은 먼저 간 사람이 마음대로 들쑤시고 산을 깎아내리고 저지대를 메워도 되는 곳일까?

신대륙이 그랬듯 우주에 가 본 적도 없는 국가나 사람들이 우주 문제에 대해서 의견을 내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지금은 국회의원이 된 황정아 박사님이 윤석열의 R&D 예산 삭감 때 달 탐사에 꼭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이유를 역설하던 영상이 있었습니다. 윤석열을 뽑거나 국힘을 정상적인 정당으로 보는 사람들이 일론 머스크 화성 탐사를 이야기하는 것은 코미디입니다. 그만큼 세상이 복잡해졌습니다. 관련이 없어 보이던 일들이 매우 밀접하게 영향을 주는 시대입니다.


그런 복잡함이 잘 보이지 않는 이유를 역설적으로 저자의 글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을 바꾸었고, 자동차 문명이라는 것을 만들었다. 우리는 거기에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우리가 살고 있는 문명이 자동차 문명이라는 사실조차 잊었다. 그래서 현재 자동차가 일으키는 폐해를 기껏해야 탄소배출 정도라고 파악한다. 부모와 자신이 낮 동안에 떨어져 지내는 것, 부모가 어떻게 일하는지 자식이 모르는 상황이 자동차 때문임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다음 비판도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애플 팬들은 최신 아이폰을 쓰면서 자신이 잡스와 가까워졌고 어느 정도 잡스와 닮게 됐다고 믿는다. <중략> 신이 아니라 신앙이 힘을 발휘한다. 이것은 옳은가?

대형 개신교가 정치에 참여하고 통일교, 신천지와 같은 종교들이 정치에 개입을 해도 일부 문제로 치부하는 상황에서 혁신을 만드는 브랜드에 매력을 느끼는 일을 비난하는 일은 지루한 의견일 뿐입니다. 물론, 사이비 종교에 비해 애플의 힘이 전 지구적이니 더 큰 문제긴 합니다. 하지만, 작다고 그 해롭지 않은 것은 아니죠.


외로움을 견디는 힘을 지닌 사람이 더 나은 삶을 산다

이하 내용은 전체적인 책의 주제에서 살짝 벗어난 듯하지만, 너무나 좋은 내용이라 밑줄을 쳤습니다.

어떤 고통은 삶에서 제거해야 하는 얼룩이 아니다. 그 고통은 삶의 일부이며, 우리 삶은 순백이 아니다.

개인적으로는 좌절을 겪어야 겸손해지고, 성장했다는 말을 종종 해 왔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힘이다. 외로움을 견디는 힘을 가진 사람은 외로움을 통해 성장하고 건강해진다. 외로움을 견디는 힘을 지닌 사람은 보다 좋은 삶을 살고 있고, 외로움을 견디는 힘을 모르는 사람은 좋은 삶을 살지 못한다. 사실 좋은 삶을 살려면 어느 정도의 외로움이 꼭 필요하다.

최근에도 사업적인 어려움으로 멘탈의 바닥을 확인한 후에 스스로 단단해졌다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는 외로움을 견디는 힘, 다른 사람과 건강하게 연결되는 법을 배우고 가르친 뒤에 앞서 말한 통신 기술의 이점을 누릴 수도 있었다. 그러나 현대인은 그러지 않았다.

그래서, 저자의 글에 깊이 공감하지만, 현대인만 그러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과거에도 다수는 그렇게 살았을 것입니다.


내용이 길어져서 후반부는 다음 글에서 이어 가겠습니다.


<먼저 온 미래>를 읽고 쓴 글

1. 2016년 이세돌과 알파고 대국은 먼저 온 미래였다

2. 인공지능과 공존을 강요당할 창작의 미래

3. 프로 기사의 긍지와 자신감 상실 그리고 AI 동반자화

4. 제비와 비둘기의 비유: 피할 수 없는 AI-환경

5. 인공지능은 언어로 만든 추상적 구조물을 변하게 하는가?

6. 인공지능에 대한 풀이가 강력한 신화의 힘을 깨닫게 하다

7. 사라져 버린 신화의 자리에 채워 넣을 무언가가 필요한가

8. 세상이 바뀌면 내가 쓰던 말도 바꿔야 할 필요가 있다

9. 스포츠와 예술을 모두 콘텐츠로 담아 버린 웹 기술

10. 팬덤 비즈니스는 화장품뿐 아니라 바둑에서도 필요한가?


지난 인공지능 길들이기 연재

(28회 이후 링크만 표시합니다.)

28. 다양한 수준에서 AI에 따른 직업의 변화를 면밀히 보자

29. 인공지능의 들쭉날쭉함을 포용하기

30. 인공지능과 공존을 강요 당할 창작의 미래

31. 인공지능은 허구적 믿음을 이식받은 놀라운 기계

32. 프로 기사의 긍지와 자신감 상실 그리고 AI 동반자화

33. 제비와 비둘기의 비유: 피할 수 없는 AI-환경

34. 인력을 유지하면서 AI를 이용해 생산량을 늘리자

35. 인공지능은 사회 시스템을 바꿀 것이다

36. 인공지능 시대의 교육은 어때야 하는가?

37. 인공지능은 언어로 만든 추상적 구조물을 변하게 하는가?

38. AI가 위협하는 정규 교육 후에 진행되는 견습 시스템

39. 인공지능에 대한 풀이가 강력한 신화의 힘을 깨닫게 하다

40. 사라져 버린 신화의 자리에 채워 넣을 무언가가 필요한가

41. 세상이 바뀌면 내가 쓰던 말도 바꿔야 할 필요가 있다

42. 스포츠와 예술을 모두 콘텐츠로 담아 버린 웹 기술

43. 팬덤 비즈니스는 화장품뿐 아니라 바둑에서도 필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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