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길들이기
<세상이 바뀌면 내가 쓰던 말도 바꿔야 할 필요가 있다>에 이어 <먼저 온 미래>의 8장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을 읽고 쓰는 글입니다.
다음 글을 읽다 보면 바둑이나 씨름이나 비슷한 면이 있구나 싶습니다.
'인간의 바둑'은 바둑을 두는 상대가 인간이라고 믿을 때 인간 기사가 느끼는 감정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말일 수도 있다. 인간에게는 우월 욕구가 있는데, 그 욕구는 대부분 같은 인간을 상대로만 발휘된다. 반려견보다 자신의 달리기가 느리다고 해서 화를 내는 견주는 없고, 개보다 빨리 달리는 걸 진지한 목표로 삼는 사람도 없다.
그 근거로 로봇이 아무리 발달해도 로봇 씨름을 볼 가능성이 없다는 사실을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굴욕감, 질투심, 승부욕 같은 감정은 대부분 다른 사람이 있어야 성립한다. <중략> 격렬한 감정은 2차적인 감정 반응도 이끌어 낸다. 타인의 격렬한 감정 앞에서 당사자가 아닌 사람도 흥분하게 된다. 그런 감정들이 어떤 게임이나 스포츠를 더 재미있게 한다. 어쩌면 예술도. 그러니 바둑도 소설도 인공지능은 일으킬 수 없는 그런 감정적 반응에 초점을 맞추는 게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 아닐까?
이어서 다음 다발말[1]을 읽으면 <제비와 비둘기의 비유: 피할 수 없는 AI-환경>에서 배운 이 책이 준 가장 소중한 깨달음이 있습니다.
인간 기사들의 노동 강도는 다른 인간 기사들과의 경쟁에 달려 있다. 바둑이 만드는 가치의 근원이 그 경쟁이라고 여긴다면, 어떤 신기술이 인간 기사들의 삶의 질을 근본적으로 낫게 만들 거라는 희망은 품지 말아야 한다. 어떤 일의 가치가 우월성을 놓고 겨루는 인간 사이의 경쟁에서 나온다면, 어떤 기술이 등장해도 경쟁의 강도를 근본적으로 바꾸지 못한다. 손에 든 무기가 돌도끼든 최신 저격소총이든 간에 상대와 내가 같은 무기를 들고 있다면, 이기기 위해선 자신을 극한의 스트레스 상태에 밀어 넣어야 한다.
'한 번 손에 쥔 스마트폰을 포기할 리 없는 인간의 욕망'을 인정한다면, '역량 증강 도구로서의 인공지능'을 발견한 인간과 그렇지 못한 인간의 갈등이 예정되어 있다는 것이죠.
이를 모르는 이들은 자기가 살던 맥락 안에서 미래를 예측하는 오류를 범합니다.
케인스는 1930년에 「우리 손자 손녀들이 누릴 경제적 가능성」 이라는 짧은 에세이를 썼다. 그 글에서 케인스는 "100년 후 선진국의 생활수준이 4배에서 8배는 더 높아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리고 "다들 어느 정도는 일을 해야 할 것”이라면서도 "일주일에 15시간만 일해도 아주 오랫동안 경제적 문제에서 해방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맹목적으로 부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앞으로도 많을 것”이지만 "나머지 사람들은 그런 이들을 칭송하고 독려할 의무를 더 이상 느끼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2030년까지는 아직 몇 년 남았지만, 우리는 케인스의 예상이 빗나갔음을 안다. 생활수준은 케인스가 예측한 것보다 훨씬 더 높아졌다.
지적 능력과는 무관하게 벌어지는 일이란 점을 저자는 케인스를 예로 들어 설명합니다.
그러나 노동시간은 케인스의 예측만큼 드라마틱하게 줄지는 않았다. 1930년보다 노동시간이 줄긴 줄었지만 주 15시간 근무는 여전히 꿈같은 소리로 들린다.
질적 변화를 이해하려면 다른 단어와 새로운 개념을 받아들여야 하는 일이란 생각을 바로 불과 얼마 전 <세상이 바뀌면 내가 쓰던 말도 바꿔야 할 필요가 있다>를 쓰면서 깨달았습니다. 그런 면에서 종신 교수직에 있는 분들은 동기가 약할 듯합니다. 저 역시 인공지능이 개발이라는 일을 위협하는 상황을 지켜본 후에야 꽤 긴 시간의 조사와 생각 끝에 저자의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제는 관점을 바꿔 책 내용을 볼 수 있습니다. 만일 바둑이 스포츠라면?
스포츠는 아주 훌륭한 서사의 재료이며, 사실 이것이 오늘날 프로스포츠 산업의 핵심이다. 오늘날 많은 스포츠 팬은 그 스포츠 활동 자체를 직접 즐기는 사람이 아니라 프로선수들이 그 스포츠를 통해 만들어 내는 서사를 즐기는 사람이다.
저자는 새로운 스포츠의 양식을 보여줍니다.
2007년 폴 포츠는 하루아침에 스타가 된다. 그는 〈브리튼스 갓 탤런트〉에서 최종 우승했고, 예선 당시 모습을 담은 4분 10초짜리 영상은 유튜브에서 2025년 3월 현재 누적 조회수 1억 9700만 회를 넘겼다. 우승 한 달 만에 나온 앨범 《원 챈스》는 전 세계에서 500만 장이 넘게 팔렸고, 그의 인생 역정은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폴 포츠를 스타로 만든 건 노래 실력이 아니라 그의 스토리였습니다.
성악 전공자들은 포츠의 실력을 '아주 잘 부르는 아마추어' 정도로 평가한다. 만약 포츠가 〈브리튼스 갓 탤런트〉가 아니라 성악콩쿠르에 출전했다면 입상하지 못했을 거다. 그가 정규 성악 교육을 받은 적이 없음을 감안하면 이는 부당한 폄하가 아니다. 한 편으로는 성악콩쿠르에 입상한 정도로는 음반 500만 장을 팔거나 실화 기반 영화의 모델이 되지 못한다.
물론, 폴 포츠는 스포츠 스타는 아닙니다.
웹 기술이 등장하면서 모든 볼거리를 콘텐츠로 묶고 변화를 유발해 왔습니다. 얼마 전 학부 강의를 하면서 관광 콘텐츠라는 말이 명확하게 정의된 곳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나름의 조사를 한 후에 시간이 흘러 숙성된 제 생각 위에 당시 봤던 콜린스 사전의 정의 즉, everything that is inside a container가 다시 해석됩니다. 웹 기술 위에서는 모든 것이 콘텐츠가 될 수 있다고. 그리고, <코드 범람의 시대, 데이터 희소의 시대에서 개인의 기회>에서 인용한 다음 글귀를 읽던 때를 떠올리게 합니다.
대량지식의 상징은 구글 검색창이었지만, 진짜 제국을 건설한 건 데이터를 독점적으로 수집하고 정제해서 재판매하는 플랫폼들이었다. 구글, 메타, 아마존. 검색은 무료였지만, 검색 데이터는 금맥이었다.
그로 인해 다시 Web content를 찾아 콘텐츠의 인프라로 검색 엔진이 있는 도식을 발견하게 합니다.
내용이 길어져서 세 편으로 나눕니다.
[1] <한국말 말차림법>에서 제안한 단락에 대한 토박이 말입니다. 왜 다발말인지는 <언어에 대한 일반이론>에서 일부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1. 2016년 이세돌과 알파고 대국은 먼저 온 미래였다
3. 프로 기사의 긍지와 자신감 상실 그리고 AI 동반자화
5. 인공지능은 언어로 만든 추상적 구조물을 변하게 하는가?
6. 인공지능에 대한 풀이가 강력한 신화의 힘을 깨닫게 하다
7. 사라져 버린 신화의 자리에 채워 넣을 무언가가 필요한가
8. 세상이 바뀌면 내가 쓰던 말도 바꿔야 할 필요가 있다
(26회 이후 링크만 표시합니다.)
28. 다양한 수준에서 AI에 따른 직업의 변화를 면밀히 보자
32. 프로 기사의 긍지와 자신감 상실 그리고 AI 동반자화
33. 제비와 비둘기의 비유: 피할 수 없는 AI-환경
34. 인력을 유지하면서 AI를 이용해 생산량을 늘리자
37. 인공지능은 언어로 만든 추상적 구조물을 변하게 하는가?
38. AI가 위협하는 정규 교육 후에 진행되는 견습 시스템
39. 인공지능에 대한 풀이가 강력한 신화의 힘을 깨닫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