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을 차리는 독서의 시작
<트럼프 2.0은 미국판 문화 대혁명인가?>에 이어서 <이병한의 아메리카 탐문>의 머리말과 프롤로그를 읽고 밑줄 친 내용을 토대로 쓰는 글입니다.
'포스트-트루스와 정치적 변화'는 밑줄 친 내용을 제시했더니 퍼플렉시티(이하 '퍼플')가 붙여준 소제목입니다.
사실이 아니더라도 다수가 믿으면 '대안적인 진실'이 된다. 포스트-트루스(Post-Truth), 디지털 시대의 신민주주의다. 구독과 좋아요, 조회수와 리트윗이 관건이다. 응당 정치 또한 달라져야만 한다. 모름지기 정치인이라면 팩트와 페이크 너머 판타지를 제공해야 한다.[1]
저자가 지칭하는 현상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으나 '포스트-트루스'라는 표현에 대해서는 퍼플에게 물어서 배경을 확인합니다.
포스트-트루스(Post-Truth)는 객관적 사실보다 개인의 감정이나 신념이 여론 형성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현상을 뜻합니다. 이 용어는 1992년 미국 희곡작가 스티브 테쉬흐가 이란-콘트라 사건과 걸프전 관련 에세이에서 처음 사용했으며, 이후 2016년 미국 대선과 영국의 브렉시트 국민투표를 계기로 널리 알려졌고, 같은 해 옥스퍼드 사전에서 올해의 단어로 선정되었습니다.
트럼프뿐 아니라 일론 머스크도 기성 언론과 꽤 대립해 온 모습을 보면 포스트-트루스의 배경이 짐작이 되기도 합니다.
태동 배경으로는 기존 공공기관과 미디어에 대한 불신, 냉전 종식 후 정치적 양극화와 포퓰리즘 확대, 인터넷과 소셜미디어 발전에 따른 정보 과잉과 왜곡된 정보 유통 환경이 지적됩니다. 이에 따라 사실보다는 감정과 신념에 기반한 정치·사회 문화가 강화되는 시대상을 반영한 개념입니다.
부족한 정보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1기와 2기는 분명 달랐습니다.
인민만이 아니었다. 지식인도 거들었다. 인민들이 계급전쟁을 수행한다면, 민중의 전위인 지식인들은 문화전쟁에 앞장섰다. 개인주의와 자유주의, 다문화주의와 PC(정치적 올바름) 주의를 집중적으로 타격했다.
저자의 글을 보니 2기에서 일론 머스크로 대변되는 빅테크의 리더들과 함께 등장했던 장면들이 떠올랐습니다. 저자의 논리로는 트럼프 진영에 합류한 지식인들이 세 가지 명확한 비전을 제공한 듯합니다.
리버럴 미디어들이 반지성주의나 포퓰리즘으로 트럼프를 난타하던 무렵니다. <중략> 아무말 대잔치, 중구난방 갈피를 잡기 어려운 트럼프의 비전을 세 가지로 간명하게 요약해 주었다. 국경을 강화한다. 자국의 산업을 산업을 보호한다. 외교도 미국이 우선이다. 자유주의 패권국가 노릇을 하느라 골병이 들어가는 이 나라를 되살려 위대한 미국을 재건하자는 것이다. 즉 트럼피즘의 핵심은 '세계 시민의 자유'가 아니라 '미국 인민의 안전'이다.
어떤 면에서는 내란과 사법 개혁을 두고 여전히 첨예한 갈등이 있는 대한민국에서 중도 실용 노선을 표방한 이재명 대통령의 행보와 맥락이 닿는 부분도 있는 듯합니다.
다만, 미국은 관성적으로 진행되어 온 국제적 엘리트가 구축한 기반이 한계에 봉착한 듯 보인다는 점에서 우리와 큰 차이가 있습니다.
민주당이 주도하는 '정체성 정치'가 공동체를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 탈냉전으로 이념적 대결이 사라진 공간에 좌파들은 진보적 라이프 스타일을 소개했다. 환경보호, 젠더 감수성, 인종 간 평등, LGBTQ(성 소수자)의 권리 등에 대한 의식이 높아졌다. 동성혼과 성전환 권리와 이민자 권리 등 마이너리티의 위세가 드세졌다. DEI(다양성, 형평성, 포용성) 정책으로 종교와 문화에서 관용도가 올라가면서 자유와 인권의 폭이 크게 신장되었다. 이러한 진보적 가치관의 대약진에 고령층, 특히 이제까지 문화적 다수파로서 특권을 향유하던 신앙심 두터운 백인들은 커다란 위협을 느꼈다. 전통적 가치관을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못하다'라고 부정당한 것이다.
탈냉전기에 다문화주의는 경제적 세계화를 지탱하는 주류 세력이 문화적 기반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저자의 직접 경험을 보면, 오바마 집권기에 그 시효가 다 된 듯한 모습입니다.
내가 캘리포니아에서 살던 2011년부터 2013년을 거치며 미국은 참으로 변화하기 힘든 나라임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2011년 그 유명한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 운동이 일어난다. 나도 동참했다. LA 시내의 뱅크오브아메리카를 점령했을 때의 쾌감이 지금껏 생생하다. 하지만 마치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처럼,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체인지'를 이야기하던 오바마 시절이었음에도 그러했다.
촛불집회나 응원봉 시위와 비교해 보면 훨씬 더 견고한 기득권이라고 봐야 할까요? 아무튼 여론이 반영된 것이라고 추정한다면 미국의 다수는 현재 정치권을 신뢰할 수는 없었던 듯합니다.
오바마가 역설했던 만인들의 "약속의 땅"에 트럼프는 우리가 남이가, "America First"로 맞불을 놓은 것이다. 이질적인 것의 융합이 아니라, 분질적인 것의 수호를 앞세웠다. 어디까지나 미국의 근간은 백인이며, 미국의 근본은 기독교다.
하지만, 반대 견해도 만만치 않습니다.
트럼프를 누르고 백악관에 입성한 바이든이 'America is Back'을 강조하며 안도했던 것이고, 4년 후 해리스를 이긴 트럼프가 재차 'America is Back'을 내세우며 응전했던 것이다. 무엇이 진짜 미국인가? 양 진영이 말하는 미국이 이토록 멀어진 적은 없었다.
그리하여 내전에 준하는 갈등이 표면화되고 있습니다.
전심전력으로 피아(彼我)를 식별하고, 적군과 아군이, 선과 악이 다투는 영혼을 둘러싼 투쟁이 된 것이다.
이 글을 쓰는 시점에 미국에서는 700만 명에 달하는 시민이 "No Kings"라는 이름으로 트럼프에 저항하는 시위를 하고 있습니다.[2]
책을 펼치고 가장 놀라운 내용은 아마 이 부분 같습니다.
미국도 비자유주의 국가(Illiberal Democracy)의 일원이 된 것이다. 실은 그것이 이미 21세기의 대세, 메가트렌드였다. 시발은 러시아다. 1999년 12월 31일 대통령이 된 40대 정치인 푸틴은 21세기 사반세기의 표상이 되었다. 동방정교회에 기초한 강대한 러시아의 재건을 표방하며 신유라시아주의를 국시로 삼았다. 후발은 터키였다. 에르도안은 2003년부터 총리와 대통령을 번갈아 20년 넘게 지배하며 신오스만주의를 국정지침으로 삼았다.
그만큼 제가 세계정세와 담을 쌓고 살아왔던 것이죠. 도리어 중국에 살았던 경험 때문에 정치와 정치체제에 관심을 갖게 된 점이 그마다 이 책을 손에 들 수 있는 배경지식으로 작동하는 듯합니다.
그다음이 중국이다. 2012년 시진핑의 등장으로 공산당 국가는 공자당 국가로 변모해 갔다. 일대일로를 통해 새로운 천하질서를 주조하고 중화문명의 위대한 부흥을 내세우며 장기 집권의 초석을 다진 것이다.
기독교 복음주의자들이 트럼프의 지지기반이란 것은 유튜브를 보고 대강을 눈치채고 있었는데, 대중의 믿음과 달리 정치적으로 트럼프는 자신과 친한 푸틴의 뒤를 이어가는 계승자라 보는 편이 정확할 듯합니다.
트럼프가 역설하는 MAGA 복음의 3대 강령을 러시아어로 번역하면 몸시도 흥미롭다. 반자유주의에 입각해 도덕적 보수와 주권주의를 내세우는 푸틴의 이데올로기와 거의 일치하기 때문이다.
저자의 프레이밍은 마음에 쏙 듭니다.
MAGA 2.0, 미국의 디지털 유신체제는 아시아-태평양과 맞닿은 캘리포니아에서 발기한다. 그 디지털 영주들이 산업문명의 정점인 미국을 디지털 문명의 첨단국가로 진화시키려고 한다. 그렇다면 이 사태는 단순히 정권 교체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메이지 유신에 못지않은 레짐 체인지요, 신해혁명에 버금가는 패러다임 시프트다. 즉 트럼프 2.0은 트럼프 2기가 아니다. 아메리카 2.0, 뉴-아메리카의 태동이다.
미국과 소련의 이념 대결이 아닌 새로운 이분법은 짜릿하기까지 합니다.
구체제의 보루 워싱턴과 뉴욕은 대서양에 면한다. 자중지란에 침몰하고 있는 늙은 유럽을 마주하고 있다. 반면 실리콘밸리는 태평양을 접한다. 태평양을 반으로 접으면 샌프란시스코와 포개지는 도시가 바로 베이징이다. 전속력으로 테크노-차이나를 완성해가고 있는 중국과 부상하고 있는 젊은 아시아를 지켜보고 있다.
연이어 빅테크의 영업 행위를 두고 '봉건적' 독점체제라고 꼬집은 부분은 정말로 날카롭습니다.
미국 빅테크의 봉건적 독점체제를 붕괴시키는 오픈소스 AI의 민주화 혁명이 중국의 기술 생태계를 통해 구현되는 것이다. 특이점을 향한 AGI(일반인공지능) 경쟁에서도 중국의 하방 전략이 미국의 스타게이트 프로젝트를 추월하는, 아편전쟁 이후 세계사의 가장 중차대한 분수령이 될 수 있다. 정녕 '딥시크 모멘트', 언더독의 역대급 업셋이 미국 또한 비상계엄을 선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전공 분야의 일을 두고도 미국을 두고 감히 '봉건적'이라고 볼 수 있는 힘은 없었던 듯합니다. '딥시크 모멘트'에 대해서는 나름 알고 있기는 했지만, 제가 보지 못했던 부분을 채워 주는 혜안이 고맙게 느껴졌습니다.
다음 문장들을 보면 DOGE가 이해가 됩니다.
반세기 전 중국이 미국을 모방하여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만들었다면, 이제는 미국이 중국을 모델로 삼아 '자본주의 계획경제'를 실험하려고 한다. 즉 테크노-유신은 미국판 흑묘백묘론, 뉴-아메리카의 개혁개방이라고 할 만하다.
그리고 다음 구절이 바로 제가 영상을 보며 바로 책을 구매하게 되었던 이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
누가 이 새 판을 짠 것인가? 트럼프는 아니다. 부동산 사업으로 부를 일구고 미디어에 노출되어 유명세를 얻은 그는 대중을 만족시키는 퍼포먼스 실력은 있지만, 미국을 개조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코딩할 역량은 없다. 그저 무대 위의 광대, 플레이어일 뿐이다. 얼굴마담이고 간판이다. <중략> 4년 후에 물러날 트럼프가 아니라 이 4인방을 주목해야 한다. 그들이야말로 미국의 다음 40~50년, 2076년의 건국 300주년을 디자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1] 다음 인용문은 책의 맥락을 벗어나 모든 리더에게도 적용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름지기 정치인이라면 팩트와 페이크 너머 판타지를 제공해야 한다
그래서 제 입장에서 짧게 반성하고 각오하는 찰나를 제공했습니다.
[2] 이미지는 매불쇼 영상과 https://www.nokings.org/ 영상입니다.
(166회 이후 링크만 표시합니다.)
166. 공룡의 진화가 알려주는 진화와 변화라는 자연의 진리
167. 뇌는 자신의 실수에 주의를 기울이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168. 화산으로 멸종한 동물들과 석탄과 함께 꺼낸 이산화탄소
169. 의식적으로 다루지 못하는 다양한 형태의 암묵 기억
170. 네 번의 대멸종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동물, 상어
171. 다섯 번의 대멸종과 상어가 지나 온 대멸종의 역사
173. 미토콘드리아가 진핵생물의 시대를 열다
174. 개체의 죽음으로 개체군의 건강을 지키는 미토콘드리아
175. 좋은 결정을 위해서는 육감이 필요하다
176. 지구 생명 탄생에서 달, 바다, 시아노박테리아의 역할
177. 움벨트 밖으로 나아가는 모험심은 어디서 나오는가?
179. 우리 행동의 엔진 역할인 본능을 우리는 볼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