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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덤 비즈니스는 화장품뿐 아니라 바둑에서도 필요한가?

인공지능 길들이기

by 안영회 습작

<스포츠와 예술을 모두 콘텐츠로 담아 버린 웹 기술>에 이어 <먼저 온 미래>의 8장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을 읽고 쓰는 글입니다.


최소한의 탁월함, 최대한의 드라마

저자는 이어서 서사 이론을 연구하는 낸시 크레스가 말한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감정을 떠올립니다.

30대 후반의 휴대전화 외판원이 참가했다. 그 외판원은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보는 사람을 괴롭게 하는 괴짜 참가자로 보였다. 비만형 체구에 주눅 든 자세였으며, 눈빛은 불안해 보였고 치열도 고르지 않았다.

그 감정은 바로 '좌절감'이라고 합니다.

4분 10초에 이보다 더 드라마틱한 이야기를 담을 수 있을까? 핍박받는 주인공, 위대한 도전,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승리, 민중의 응원과 악당'들의 승복 그렇게 보면 싸구려 양복도, 고르지 않은 치열도 그 스토리에 꼭 필요한 요소다.

또한, 예술가의 서사는 그의 작품과 엄격하게 분리되지 않는 현상을 지적합니다.

사실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이 예술가의 서사와 그들의 작품을 엄격하게 분리하지는 않는다.

그런 점에서는 모차르트나 베토벤과 폴 포츠는 분명한 공통점이 있습니다.


팬덤 비즈니스는 화장품뿐 아니라 바둑에서도 필요한가?

아이돌과 우상을 병기한 내용이 새삼스럽습니다.

최근 20년간 우리는 인간이 다른 인간을 우상(idol)으로 섬기고, 그의 팬을 자처하는 명분에는 사실상 제한이 없음을 알게 됐다.

저자가 같은 뜻으로 묶은 두 단어는 전혀 다른 느낌을 주니까요. 우상 숭배는 십계명으로 금하고 있는 사항이지만, 전지구적으로 가장 핫한 케데헌에 나온 노래를 둘째 아들이 좋아해서 출력한 가사에 아이돌은 반복해서 등장합니다.

교회를 정치 비즈니스에 활용하는 미국과 한국의 현실을 보면, 우상이 비즈니스 모델이 된 것은 무리가 아닙니다.

팬덤 비즈니스를 강조하는 게 '인간의 바둑'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면, 앞으로 프로기사에게 필요한 덕목은 탁월함이 아니라 '스타성'이다. 많은 스포츠 스타가 탁월한 선수이며 그들의 스타성은 상당 부분 탁월함에서 오지만, 스타성이 탁월함과 반드시 일치하는 건 아니다. 스타성은 때로 엉뚱한 곳에서 온다.


바둑이 스포츠가 되듯, 드라마가 된 프로 스포츠

그렇군요. 콘텐츠로 접전을 벌이는 스포츠라면 영화나 드라마 같은 장르처럼 평가받을 듯합니다.

《뉴욕타임스》는 "파리 올림픽에서 가장 쿨한 선수"라고, CNN은 "믿기지 않을 만큼 멋지다"라고 했고, 《가디언》은 영화 《존 윅》, 《터미테이터》를 언급했다. 올림픽이 끝난 뒤 김예지 선수는 각종 TV 프로그램에 출연했고, 여러 패션 잡지의 모델이 됐고, 킬러 역으로 영화에도 나왔다. 그런데 김예지 선수가 은메달을 따면서 세계적인 스타가 된 여자 10미터 공기권총 종목에서 금메달은 누가 땄는지 아는 사람? 한국인 대부분이 김예지 선수에게 열광하느라 금메달리스트도 한국인이라는 사실은 아예 모르는 것 같았다.

파리 올림픽에 대한 기억은 거의 없어서 구글링을 해 보았습니다.

바둑에서는 이미 디지털 강국인 중국의 커제가 이세돌과는 다른 행보를 보였다고 합니다.

"바둑 공부를 줄이고 방송에 출연하고, SNS 활동으로 인플루언서가 되고, 식당도 열어요. 기존 사고방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죠. 저는 이 친구가 시대를 앞서간다고 생각해요. 커제가 신호탄을 올린 거예요."


요즘엔 별 걸 다 해야 돼요

이렇게 적응한 바둑 기사들은 '별 걸 다 해야 된다'라고 말한다고 합니다.

‘요즘엔 별 걸 다 해야 돼요' 하는 푸념 아래에는 그보다 훨씬 더 근본적인 불안이 깔려 있다. 나도, 편집자도, 마케터도, 서점 관계자도 그렇다. 우리가 점점 책이 아닌 다른 무언가를 팔고 있는 것 같다는 존재론적 위기감.

도태되지 않고 시장에 적응하려면 모든 분야가 마찬가지인 듯합니다.

돌이켜 보면 이때가 유튜브와 소셜미디어가 모든 소비재 산업의 마케팅을 집어삼키던 시절이었다. 그즈음 '인플루언서-작가' 들이 출판계의 기존 문법들을 무시하고 작은 출판사에서 낸 책들이 유튜브나 소셜미디어의 힘으로 베스트셀러가 됐다.

저 역시 업에 있어서는 같은 태도입니다. IT 분야에 종사하지만, 인공지능이 인류의 삶의 질을 높인다고 전혀 생각하지 않습니다.[1]

AI 기술이 미디어 기술과 확연히 다르게, 인류의 삶의 질을 높이는 방향으로 발전할 거라고 믿어야 할 이유는 없다. 미디어 기술을 현재의 방향으로 추동했던 힘이 Al 기술에도 똑같이 적용될 것이다.

다만, 다음 내용은 공감하기 힘듭니다.

오픈AI가 스튜디오 지브리에 작품 이용료를 제공한다 하더라도 나의 불쾌감은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오픈AI는 저작권 이상의 것을 망가뜨렸고, 망가진 그것은 작품 이용료로 회복되지 않는다. 프로기사들의 자부심과 마찬가지로, 아마도 앞으로 영영 복구할 수 없을 무언가다. <중략> 나는 여전히 스튜디오 지브리의 애니메이션들을 사랑하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들의 작품과 활동이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 이유를 말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내러티브를 만들어 내야 한다. 내러티브를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화풍은 주변적인 것으로 밀려난다. 인공지능이 쉽게 흉내 낼 수 있는 대상이 중요한 무언가가 될 수는 없으니까.

내 창작물에 대한 가치를 중시하는 창작자로 스스로 생각해 본 일이 없기 때문인 듯합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적대감은 공감이 되지 않습니다.

스튜디오 지브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스튜디오 지브리의 애니메이션들을 둘러싼 내러티브가 바뀌고 스튜디오 지브리의 본질과 정체성도 바뀐다. 나는 이것이 훼손이라고 생각한다.

나아가 다음 질문은 '옳고 그름'을 떠나 유용한 질문인지 의문이 듭니다.

문학작품을 읽고 쓰는 방식을 인공지능이 멋대로 바꿔도 되나?


주석

[1] 심지어 <대화를 하세요, 그게 관계예요>를 쓸 때, SNS를 거의 사회악으로 규정하는 영상을 보면서 생긴 이미지와 <초집중>을 읽으며 쌓인 배경 지식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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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온 미래>를 읽고 쓴 글

1. 2016년 이세돌과 알파고 대국은 먼저 온 미래였다

2. 인공지능과 공존을 강요당할 창작의 미래

3. 프로 기사의 긍지와 자신감 상실 그리고 AI 동반자화

4. 제비와 비둘기의 비유: 피할 수 없는 AI-환경

5. 인공지능은 언어로 만든 추상적 구조물을 변하게 하는가?

6. 인공지능에 대한 풀이가 강력한 신화의 힘을 깨닫게 하다

7. 사라져 버린 신화의 자리에 채워 넣을 무언가가 필요한가

8. 세상이 바뀌면 내가 쓰던 말도 바꿔야 할 필요가 있다

9. 스포츠와 예술을 모두 콘텐츠로 담아 버린 웹 기술


지난 인공지능 길들이기 연재

(27회 이후 링크만 표시합니다.)

27. 인공지능은 새로운 표현 방식과 언어를 제공한다

28. 다양한 수준에서 AI에 따른 직업의 변화를 면밀히 보자

29. 인공지능의 들쭉날쭉함을 포용하기

30. 인공지능과 공존을 강요 당할 창작의 미래

31. 인공지능은 허구적 믿음을 이식받은 놀라운 기계

32. 프로 기사의 긍지와 자신감 상실 그리고 AI 동반자화

33. 제비와 비둘기의 비유: 피할 수 없는 AI-환경

34. 인력을 유지하면서 AI를 이용해 생산량을 늘리자

35. 인공지능은 사회 시스템을 바꿀 것이다

36. 인공지능 시대의 교육은 어때야 하는가?

37. 인공지능은 언어로 만든 추상적 구조물을 변하게 하는가?

38. AI가 위협하는 정규 교육 후에 진행되는 견습 시스템

39. 인공지능에 대한 풀이가 강력한 신화의 힘을 깨닫게 하다

40. 사라져 버린 신화의 자리에 채워 넣을 무언가가 필요한가

41. 세상이 바뀌면 내가 쓰던 말도 바꿔야 할 필요가 있다

42. 스포츠와 예술을 모두 콘텐츠로 담아 버린 웹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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