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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트웨어의 꿈은 인공적인 자연 상태가 되는 것이다

내 삶을 차리는 독서의 시작

by 안영회 습작

<미국의 작동 방식을 팔란티어 소프트웨어가 대체한다>에 이어서 <이병한의 아메리카 탐문>을 읽고 밑줄 친 내용을 토대로 쓰는 글입니다. 이 글은 저자가 '넥스트 네이처 네트워크'라고 이름 붙인 알렉스 카프 이야기의 후반부 중에서 개인적으로 활용 가치가 높다고 여긴 지식을 다루겠습니다.


빅데이터의 축적이야말로 일반의지 구현의 초석이 된다

다음에 밑줄 친 내용들에는 제가 남은 직업 인생에서 비전으로 삼아야 할 내용들이 보이는 듯합니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했다. <중략> 하지만 정보의 바다에 남겨진 한 길 사람 속은 속속들이 파악할 수 있다. 그 사람의 데이터가 대량으로 집적되면 본인조차 결코 의식한 적이 없는 경향이나 패턴이 추출되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는 나보다 실제 나를 더 근접할 확률이 99%다.

어어지는 내용은 정치를 넘어서도 '일반의지 구현'을 어떻게 응용할 수 있는지 알려주는 듯합니다.

빅데이터의 축적이야말로 일반의지 구현의 초석이 된다. 미래의 거버넌스 정보환경에 새겨진 행위와 욕망의 집적, 사람들의 집합적 무의식=일반의지에 충실하게 재설계되어야 한다.

게다가 저자에 따르면 이런 흐름은 주류가 될 것이라고 합니다.

앞으로 20년, 이 디지털-데이터크라시가 리버럴-데모크라시를 급속도로 대체해갈 것이다. 중국이 하면 꼬아 보지만 이제는 미국도 할 것인바, 일파만파 도미노처럼 확산해갈 것이다. 빅데이터와 AI에 양자컴퓨터까지 장착하면 일기 예보하듯이 미래를 예보하는 거버넌스가 일상이 되어갈 것이다.


소프트웨어의 꿈은 인공적인 자연 상태가 되는 것

키야~ 놀라운 집약입니다.

산업문명에서는 프로덕트(Product)가 중요했다. 디지털 문명에서는 프로세스(Process)가 관건이다. 결과보다 과정이 소중하다. 아니, 결과라는 것이 없어진다. 디지털 기술의 가장 큰 특징은 모든 것이 늘 무언가로 되어가는 과정으로 만드는 데 있다. 즉 사물에도 진화를 도입하는 것이다. 생물의 질서를 사물에도 확장하여 만물을 활물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고로 완성형은 아무것도 없다. 모든 것이 생성형이 된다.

디지털 기술은 '사물에도 진화를 도입한 것'이라는 해석은 너무나도 멋집니다. 그리고, 어쩌면 생성형 AI의 등장은 자연스러운 흐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감탄의 연속입니다.

테슬라의 최대 발명품 또한 전기차나 옵티머스가 아니다. 그 산물보다 중요한 것이 메가팩토리라고 하는 프로세스의 창출이다. 사람의 개입을 최소화한 인공적인 자연 상태를 만들어낸 것이다.

'인공적인 자연 상태'라니, 처음 들은 말이지만 어쩌면 개발자로서 소프트웨어의 꿈이 그것이어야 할 것 같습니다. 저자는 사물 인터넷을 넘어선 활물 인터넷을 말하는데...

미래의 하우스는 모든 사물에 지능까지 주입할 것이므로 활물들의 융합체, 디지털-유기체가 되는 것이다.

'디지털-유기체'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만물이 천물이 되는 빅데이터 문명의 존재론

거대한 그림인지 거대한 해석인지 모르지만 아무튼 감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팔란티어가 자랑하는 최고의 서비스 이름도 '온톨로지'(ONTOLOGY, 존재론)다. 만물이 천물(天物)이 되는 빅데이터 문명의 존재론을 새롭게 다시 쓰고 있는 것이다.

99년에 보았던 (아마도) OnStar 영상에서 소개한 Ubiquitous Computing 영상이 준 자극이 떠오릅니다.

공기의 흐름처럼, 혈액의 운동처럼, 만물의 빅데이터가 인연과 인과에 따른 연기의 법칙에 따라 대순환 하게 된다. 그래서 대양과 대기가 만나 생성되는 구름처럼 테크놀로지의 생태계에도 클라우드(CLOUD)가 중요해진 것이다.

저자는 새로운 문명의 도래를 예고합니다.

농업문명과 산업문명에서 인간이 해왔던 모든 일은 로봇이 대신해줄 것이다. 그들이 우리보다 훨씬 더 잘 해낼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일은 인간의 일자리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로봇을 위한 일거리를 계속 만들어내는 것이다. 산업문명이 초래한 환경파괴를 복구하는 것도, 지구의 대안을 화성에서 개척하는 것도 AI 로봇에게 맡길 일이다. 기계를 상대로 경주하면 사람은 진다. 그래서 게임의 룰을 바꾸어야 한다. 기계와 함께하는 경주로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것이다. 로봇은 우리가 할 수 없었던 일도 해낼 것이다.

인용한 글에서 '그들'은 저자의 아들에서 비롯한 미래 세대를 말하는 듯합니다. 이어서 저자는 아들과 함께 한 시간 속에서 디지털 세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경험합니다.

그런데 웬걸, 디지털 세계는 리얼 월드보다 훨씬 더 크고 깊고 웅장하고 심오했다. 심지어 이 가상계는 무한한 신세계가 끝도 없이 펼쳐진다.


인공지능이 예고하는 변화에 대한 상반된 시각

다시 한번 저자의 웅장한 필체가 느껴집니다.

산업문명의 파수꾼인 아카데미의 지식인은 디지털 문명의 질주에 감시사회를 우려한다. 프라이버시가 중요하다는 자유주의적 신념을 발설한다. 그러나 그 또한 고작 200년짜리 관념일 뿐이다. 사생활 또한 근대의 기획물이다. 2만 년이 넘도록 인류는 모든 행동이 공개되고 눈에 띄며 아무런 비밀도 없는 씨족과 부족 생활을 영위했다. 인간의 마음은 끊임없는 공동 감시와 함께 진화해 온 것이다. 상호감시야말로 우리의 자연 상태다. 불과 100년 전만 해도 이웃집 숟가락 숫자까지 알고 지냈다.

고작 200년짜리 관념과 2만 년이 넘은 상호감시를 다루는 이야기에서 말이죠.

산업문명의 대안으로 농업문명에 '생태문명'이라는 억지를 씌우는 것이 아니라, 디지털 우주생명문명으로 성큼성큼 나아감으로써 테크노-에덴동산을 창조하는 것이다.

한편, 바둑이라는 소재 때문에 <먼저 온 미래> 저자와 대비되는 시각이 선명하게 느껴집니다.

마치 AI의 도입 이후의 바둑의 승률이 각 수마다 실시간으로 표시되는 것처럼, 매트릭스에서의 전쟁은 시작하자마자 아니, 시작도 하기 전에 승패가 결정 나는 것이다.

이 책의 시각에서 보면 <먼저 온 미래>의 저자는 과거에 대한 향수를 수호하려는 태도로 보이기까지 합니다. 그 정도로 두 저자의 시각은 극명이 대비됩니다. 이세돌의 쓸쓸한 퇴장에 대해서도 저자는 전혀 다른 해석을 합니다.

이세돌의 삶은 무한한 영감을 제공한다. 알파고에 패배한 이후로 바둑을 접었다. 그리고 지금은 보드게임을 만드는 일을 한다. 기왕의 게임에서는 AI를 이겨낼 수 없지만, 새로운 게임을 창조할 수는 있는 것이다. 그렇게 놀고먹는 것이다.

샘 올트만과 비슷한 인공지능이 펼치는 미래에 대해 굉장히 낙관적인 입장입니다. <먼저 온 미래>의 저자와는 정반대에 있는 것이죠. 흥미로운 현상입니다.


<이병한의 아메리카 탐문>를 읽고 쓴 글

1. 트럼프 2.0은 미국판 문화 대혁명인가?

2. 새로운 미국을 이해하기 위한 필독서가 나타났다

3. 데이터의 폭발적인 성장이 지구의 진로에 영향을 끼친다

4. 미국의 작동 방식을 팔란티어 소프트웨어가 대체한다


지난 내 삶을 차리는 독서의 시작 연재

(176회 이후 링크만 표시합니다.)

176. 지구 생명 탄생에서 달, 바다, 시아노박테리아의 역할

177. 움벨트 밖으로 나아가는 모험심은 어디서 나오는가?

178. 트럼프 2.0은 미국판 문화 대혁명인가?

179. 우리 행동의 엔진 역할인 본능을 우리는 볼 수 없다

180. 1962년이나 2025년이나 가장 많이 팔리는 초코바는

181. 인종차별적인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이 공존하는 뇌

182. 새로운 미국을 이해하기 위한 필독서가 나타났다

183. 기대치 관리는 시기심과 고통을 다루는 일이기도 하다

184. 우리 뇌에 프로그래밍된 정신의 양당제 민주주의

185. 데이터의 폭발적인 성장이 지구의 진로에 영향을 끼친다

186. 미국의 작동 방식을 팔란티어 소프트웨어가 대체한다

187. 평균적으로 한 달에 한 번 기적을 경험한다

188. 스토리는 언제나 통계보다 힘이 세다

189. 인간은 늘 감정과 비합리성에 지배당했다

190. 최고의 순간에 찾아오는 악마를 대비하라

191. 율리시스의 계약이 알려주는 타인의 말에 경청할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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