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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작동 방식을 팔란티어 소프트웨어가 대체한다

내 삶을 차리는 독서의 시작

by 안영회 습작

<데이터의 폭발적인 성장이 지구의 진로에 영향을 끼친다>에 이어서 <이병한의 아메리카 탐문>을 읽고 밑줄 친 내용을 토대로 쓰는 글입니다. 이 글은 저자가 '넥스트 네이처 네트워크'라고 이름 붙인 알렉스 카프 이야기의 후반부를 다룹니다.


쓰고 보니 글이 길어져서 여기서는 새로운 미국을 다루는 책의 맥락에 관련한 내용입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활용 가치가 더 높다고 여긴 지식은 다음 글에서 다루겠습니다.


기술로 테러를 막으려는 억만장자의 사명

충격적인 사건이었지만, 솔직히 저에게는 까마득하게 오래전 일어난 남의 나라 이야기였습니다.

9.11 테러는 21세기 미국이 직면한 도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정보의 실패였다. 전 세계에 그토록 많은 미군을 주둔시키고 있는 압도적인 군사력에도 불구하고, 데이터의 바다에서 실패함으로써 국가의 심장인 워싱턴과 뉴욕이 공격당한 것이다. 조짐이 없던 것도 아니었다. CIA, FBI, NSA(미국국가안보국) 등 세계 최강의 정보기관들은 본토 테러에 대한 징후를 일정하게 포착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산발적인 정보들을 일관된 시스템으로 수집하여 판단을 내리고 결정을 취할 수 있는 종합적인 프로그램이 없었다.

그 사건을 꺼내어 새로운 미국을 꿈꾸는 이들이 감지한 문제를 해설해 주는 통찰과 필력이 놀랍습니다. 그리고, 저자를 다시 이를 응축凝縮하여 제시합니다.

무력이 아니라 지력이 부족했던 것이다. 무기가 아니라 총기(聰記)가, 하드웨어가 아니라 소프트웨어가 필요했다.

제가 <왜 소프트웨어가 유통업을 먹어치우고 있는가?>를 쓰며 전하려고 했던 변화를 더욱 거대한 담론으로 펼친 글이라 느껴졌습니다.


연이어 밑줄 친 내용에는 알렉스 카프가 아니라 피터 틸이 등장합니다.

페이팔의 금융사기 방지 알고리즘이 국가의 정보기관에도 활용될 수 있지 않을까? 테러를 예방하는 데 유용하게 응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만든 기업이 팔란티어다. 9.11 이후 10년 만에 성과를 거둔다. 파키스탄의 오지에 숨어 지내던 오사마 빈 라덴의 암살에 성공한 것이다.


스탠퍼드 로스쿨 룸메이트로 엮인 피터 틸과 알렉스 카프

금시초문今時初聞이었기에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테러의 수괴, 반란의 우두머리를 기어코 찾아내어 사살하는 데 활용되었던 프로그램이 바로 팔란티어의 방산용 서비스 고담(GOTHAM)이었다. 전기 소비량과 쓰레기 처리량 등을 실시간으로 분석하여 평소와 다른 조짐을 감지하고, 빈 라덴 일당이 잠입해 있는 집을 정확하게 알아챈 것이다. 과연 아는 것이 힘이다. 보는 것이 믿는 것이다. 빅데이터를 통해 세계를 파악하는 방법론을 갈고닦는 수련과 도야[1] 끝에 딥아이즈(Deep Eyes), 심안(心眼)을 획득한 것이다.

퍼플렉시티에 근거를 물었더니 내놓은 유튜브 영상을 찾았습니다. 영상을 모두 보는 대신에 AI 오디오 오버뷰를 택했습니다. 스탠퍼드 로스쿨 시절 알렉스 카프의 룸메이트가 피터 틸이었다고 합니다. 피터 틸의 등장이 베일을 벗네요. 페이팔 매각으로 억만장자가 된 피터 틸이 기술로 테러를 막으려고 노력하는 가운데 탄생한 기업이 팔란티어입니다.

피상적인 단신만으로 접했던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팔란티어의 개입이 있었군요!

무력으로는 러시아를 이겨낼 재간이 없었지만, 지력이 보태어짐으로써 버텨낼 수 있었다. 지상군의 전력 격차를 가상군과 천상군의 역량으로 만회한 것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디지털 시대의 첫 번째 AI 전쟁이라고 평가하는 까닭이다. 데이터가 미사일을 이기는 미래의 전쟁을 보여준 것이다.


트럼프 2.0은 미국판 문화 대혁명인가?

다음 내용을 읽을 때는 먼저 본 이병한 작가님 영상이 배경지식으로 작동합니다.

산업문명의 리듬에서는 4~5년 단위의 중간 평가가 그럴듯하게 작동했다. 농업문명에서도 왕의 수명에 따라 사회의 변화가 있었던 것도 나름대로의 합리성이 작용했다. 그러나 디지털 문명의 초가속적 변화를 이제는 일반 여론이 제대로 따라가지 못한다.

바로 그 영상이 책을 구입하게 된 동기였는데, <트럼프 2.0은 미국판 문화 대혁명인가?>에 관련 내용이 일부 있습니다. 아무튼 영상을 본 탓인지 4~5년 단위의 중간 평가를 읽을 때, 시진핑 장기 집권에 대해 서구가 '독재'라고 폄하하지만 어쩐지 피터 틸이나 알렉스 카프의 생각은 다를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트럼프가 법적으로 불가능한 재집권을 이야기하는 배경도 이와 관련이 있을 법합니다.


계속해서 책으로 돌아갑니다.

여론을 숙론으로 대체한다고 해서 해결될 성질도 아니다. 사태의 본질은 생물학적 두뇌의 판단 능력이 기술의 인공적인 진화 속도에 적응하지 못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갸우뚱했던 내용입니다. 정치 문제와 인공지능의 우위가 무슨 관련이 있나 싶어서였죠. 하지만, 고도로 복잡해지고 초연결이라 부를 정도로 밀접해진 사건들의 연관관계 속에서 탁월한 리더의 판단에 다수의 운명을 맡기는 일은 이미 낡은 생각일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나라를 지키려면 총검술이 아니라 게임을 잘해야 한다

알파고를 만든 하사비스가 노벨화학상을 받는 세상입니다.

40억 년 생명의 신비를 AI는 불과 4년 만에 풀어낸 것이다. 아이큐 140이 넘는 사람들 4000명이 모여서 40년 동안 연구를 해도 될까 말까 한 일들을 척척 해치우고 있는 것이다. 이제 신약 개발 또한 AI가 개개인에 최적화된 맞춤형으로 해줄 것이다.

구글이 하사비스를 영입하면서 신약 개발을 완전히 다른 이유로 바꾼 일은 제가 알파벳 주식을 보유하게 했습니다.[2]


저자는 국방 분야에 드러난 역설적인 현실을 날카롭게 조명합니다.

게임이나 하고 앉아서 나라를 지키는 것이 말이 되는 시대가 불과 10년도 못 되어서 현실이 된 것이다. 러-우 전쟁이 보여주었듯, 드론 군단 등의 무인 기술이 이미 전장에 도래했다. <중략> 나라를 지키고자 한다면 총검술을 익힐 게 아니라 게임을 잘해야 한다.

하지만, 관성은 당위 못지않게 힘이 셉니다.

미국은 그들이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도구보다 기능이 훨씬 떨어지는 군사 장비를 사용한다.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대부분의 미국인은 매일매일 기계 학습의 혜택을 누린다. 유튜브에서 들을 노래를 고르고, 내비게이션으로 목적지까지 가장 빠른 길을 선택하고, 온라인에서 상품을 구매하는 등 정보를 큐레이션 하는 데 AI를 사용한다. 그런데 정작 사활을 다투는 미국의 업무에는 적용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여전히 소프트웨어가 세상을 집어삼키고 있다

저자는 소프트웨어가 유통업을 먹어치웠듯 국방도 집어삼킬 것이라고 예고합니다.

결국 무형의 팔란티어 소프트웨어가 둔중한 펜타곤의 관료체제를 집어삼킬 것이다.

'예측 기계'로 작동하는 뇌에 대해 익숙한 덕분에 저자의 다음 말들을 쉽게 받아들입니다.

역설적으로 가상에서 이겨버리면 실상에서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게 된다. 질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인류의 역사에서 전쟁이 그치지 않았던 가장 큰 이유는 승리를 자신하며 오판했기 때문이다. DNA의 속성상 죽을 것이 뻔한 게임에서 이판사판 덤비지는 않는다.

저자가 자유롭게 역사와 현실과 영화를 넘나들면 쓰는 글을 읽다 보면

가상이 실상에 앞서는 시뮬레이션 전쟁, 매트릭스가 현실이 된 것이다. 일찍이 <손자병법>이 알려주던바,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최상의 전략이다.

마치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를 처음 접했을 때의 감각이 연상됩니다. 다시 책으로 돌아가 봅니다.

무기마다 센서가 부착되어 감지 기능을 부여하고, 에지(Edge) 컴퓨팅을 통하여 판단 기능을 부가한다. 군사용 사물인터넷을 작동시킴으로써 무기 하나하나가 이해하고 결정하고 행동할 수 있는 활물(活物)로 진화하는 것이다. 즉 군사력의 관건은 화력의 총합에 있는 것이 아니라, 활물의 총화에 따른 집합지성에 달려 있게 된다.

활물의 총화나 집합지성과 같은 저자에게서 처음 들어본 새로운 개념들이 지적 자극을 만들어냅니다.


미군의 작동 방식을 팔란티어 소프트웨어가 대체한다

군이 기술 보급에 앞장을 섰던 역사를 보면 자연스러운 유추입니다.

미군의 작동 방식을 팔란티어 소프트웨어가 대체한다는 말은 행정과 기업의 운영 또한 팔란티어가 대신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리고, <빠르게 훑어보고 골자만 추려 쓴 팔란티어 데이터 솔루션>을 쓸 때 봤던 영상에서 유추해 보면 이미 미국을 넘어서 한국 기업에 까지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점이 분명해 보입니다. 다만, 거시적 안목 없이 무작정 도입하면 득 보다 실이 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젤렌스키 대통령을 직접 만나 무상으로 전략 소프트웨어를 제공할 것을 약속했던 알렉스 카프는 그 대가로 우크라이나의 모든 데이터를 손에 쥐었다.

더불어 다음 내용을 보면서 이재명 정부가 소버린 AI를 추진하는 일이 천만다행이라고 여기게 됩니다.

AI 후발국들은 그 팔란티어의 프로그램을 사다가 써야 할지 모른다. 종속국들의 데이터가 팔란티어의 디지털 저장고에 차곡차곡 쌓여갈 것이다. 뉴-아메리카는 이 빅데이터의 빅브라더, 절대반지의 절대군주이자 절대국가가 되려는 것이다. 그 새로운 천년의 대계를 알렉스 카프가 준비해 온 것이다.

그리고, 그의 뒤에는 피터 틸이 있습니다.

일론 머스크의 모든 기업이 디지털 문명의 뼈대를 다시 세우는 작업을 하고 있다면, 알렉스 카프의 팔란티어는 그 신문명의 신경망이 되어가고 있다. 그래서 마치 인체의 원리 같은, 생태계의 법칙과도 같은 자율적인 의사결정 체제를 삽입하고 있는 것이다. 머스크는 슈퍼오르가니즘, 초유기체를 제조해가고 있고, 카프는 슈퍼인텔리전스, 초지성을 주조해가고 있다. 양자를 백업하고 있는 피터 틸은 후기 미국, 뉴-아메리카의 환골탈태에 흐뭇하고 뿌듯할 것이다.


미중 패권 전쟁을 읽는 새로운 시각

이하 밑줄 친 내용들은 크게 보면 미중 패권 전쟁을 보는 (미디어의 전통적인 해석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시각을 전합니다.

입법을 통한 정책(Policy)이 입력을 통한 프로그램(Program)으로 대체된다면 관료체제는 어떻게 변화해 갈까?

와우.. 흥미로운 질문입니다.

전쟁을 문명화한 것이 정치이고 외교다.


그렇군요! 저의 인문학적 무지를 깨닫는 순간인가요? 정치와 외교가 전쟁의 문명화 결과물이군요.

장차 전쟁도 AI가 수행할 것인바, 정치라고 사람에게만 맡겨둘 턱이 없다. 불가피한 미래, 필연이다.

당장 감은 오지 않지만, 저자를 믿게 되었습니다.

농업문명사 2천 년은 문/무(文武)의 갈등이었다. 무사를 문인으로 길들이는 과정이 바로 문명화였다. 창과 칼을 든 전사 워리어(Warrior)를, 말과 글로 다스리는 로이어(Lawyer)로 바꾸어 내는 OS를 가장 먼저 만들어낸 나라가 중국이었다.

그랬군요.[3]

디지털 혁명 30년, 목하 전 세계는 산업문명의 정치-행정 시스템이 붕괴하고 있다. 곳곳에서 탄핵이 연달아 빗발치고, 처처에서 계엄이 잇따라 발동된다. 입법부와 행정부는 물론이요, 사법부도 기능부전이다. 기각되어야 할 것은 산업국가의 운영 시스템 그 자체다. 전 인류가 디지털 문명으로 이행하는 진통과 산통을 혹독하게 겪어내고 있는 것이다.

위에 인용한 글을 읽을 때는 제가 빈번하게 '프로세스를 위한 프레임워크'나 운영체제를 연상했던 '디지털 전환기'라는 시대상을 확인하게 됩니다. 그리고 바로 그 전환기에는 과거 서구의 일반적인 시각이 작동하지 않는 듯합니다.

역설적인 것은 일당독재라고 손가락질했던 중국이 테크노-차이나로의 업데이트를 가장 수월하게 이끌고 있다는 점이다. <중략> 세 번째 천년에도 왕정국가는 여럿이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는 디지털 전환에서 모범을 보이고 있다. <중략> 중동의 디지털-왕국들이 서구의 민주공화정을 능가하지 못하리라는 법도 없는 것이다. 농업문명 2천 년 동안에도 황이 민심=천심을 반영하지 못하면 탄핵은 수시로 일어났던 바다. 제왕이든 대통령이든 인민주권을 구현하지 않는 리더라면 시대를 불문하고 파면되어야 마땅한 처사다.

뒤이어 저자가 생각하는 정치체제의 이상향으로 느껴지는 글이 눈에 띕니다.

오늘날 스테이트 크래프트의 진정한 문제는 정부의 형태를 막론하고 일반의지를 거의 구현하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중략> 일반의지는 선거나 정당, 국회나 시민의회 같은 것이 없어도 자연히 존재하는 것이다. 그래서 법률적인 언어보다는 수학적인 물질에 더 가깝다. 인간의 질서가 아니라 사물의 질서에 속한다. <중략> 빈사지경의 민주주의를 구제해 내기 위해서는 일반의지를 수학적인 존재로 재규정하고, 이를 기술적으로 가시화하는 테크놀로지가 필수적이다.


주석

[1] 낯선 단어라 사전을 찾았습니다.

[2] 현재까지 잠재 수익률은 67.8%입니다.

[3] 제가 아는 범위에서는 일본의 메이지 유신 이후가 가장 먼저 떠올랐습니다. 이 역시 인문학적 배경 지식의 한계가 드러난 것이죠.


<이병한의 아메리카 탐문>를 읽고 쓴 글

1. 트럼프 2.0은 미국판 문화 대혁명인가?

2. 새로운 미국을 이해하기 위한 필독서가 나타났다

3. 데이터의 폭발적인 성장이 지구의 진로에 영향을 끼친다


지난 내 삶을 차리는 독서의 시작 연재

(170회 이후 링크만 표시합니다.)

170. 네 번의 대멸종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동물, 상어

171. 다섯 번의 대멸종과 상어가 지나 온 대멸종의 역사

172. 자연선택이 알려준 반복과 마주하기의 힘

173. 미토콘드리아가 진핵생물의 시대를 열다

174. 개체의 죽음으로 개체군의 건강을 지키는 미토콘드리아

175. 좋은 결정을 위해서는 육감이 필요하다

176. 지구 생명 탄생에서 달, 바다, 시아노박테리아의 역할

177. 움벨트 밖으로 나아가는 모험심은 어디서 나오는가?

178. 트럼프 2.0은 미국판 문화 대혁명인가?

179. 우리 행동의 엔진 역할인 본능을 우리는 볼 수 없다

180. 1962년이나 2025년이나 가장 많이 팔리는 초코바는

181. 인종차별적인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이 공존하는 뇌

182. 새로운 미국을 이해하기 위한 필독서가 나타났다

183. 기대치 관리는 시기심과 고통을 다루는 일이기도 하다

184. 우리 뇌에 프로그래밍된 정신의 양당제 민주주의

185. 데이터의 폭발적인 성장이 지구의 진로에 영향을 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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