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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의 폭발적인 성장이 지구의 진로에 영향을 끼친다

내 삶을 차리는 독서의 시작

by 안영회 습작

<새로운 미국을 이해하기 위한 필독서가 나타났다>에 이어서 <이병한의 아메리카 탐문>을 읽고 밑줄 친 내용을 토대로 쓰는 글입니다. 프롤로그 이후는 네 명의 인물로 책이 나뉘어 있습니다. <빠르게 훑어보고 골자만 추려 쓴 팔란티어 데이터 솔루션>을 쓴 탓인지 팔란티어의 수장 알렉스 카프를 먼저 읽기로 했습니다. 저자는 알렉스 카프 이야기를 둘로 나누었는데, 첫 번째 글은 전반부를 다룹니다.


확실히 철학적 사유는 내 취향이군

저자는 초장初場에 이렇게 그를 극찬합니다.[1]

2010년대가 스티브 잡스, 2020년대가 일론 머스크라면, 2030년대는 알렉스 카프의 시대로 기록될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다음 다발말[2]을 읽을 때면 따라 해 보고 싶어 집니다.

수영에 몰두하는 직접성으로 현존을 획득하는 것이다. 현재에 머문다. 현재에 존재하는 마음에 이른다. 무아지경은 마음에서 시간을 변형하여 지금 여기에 집중하는 상태다.

마치 10대 시절 영화에서 멋진 장면을 본 후에 충동적으로 이를 따라 했던 때와 의식 상태가 비슷하게 느껴집니다. 또한, 현존現存이라는 말을 처음 배웠던 때가 떠오릅니다.

또한, '홀로세'라는 표현이 반갑습니다.

홀로세 1만 년, 기후는 다시 격변하고 있다. 지상의 물은 바짝바짝 마르고, 해수면은 점차 차오르며 해안선의 풍경을 바꾸어놓고 있다. 그러나 지상과 해상의 경계가 변화무쌍한 것 또한 늘 있어왔던 일이다.

<월말김어준>으로 알게 된 박문호 박사님 덕분이죠. 빅히스토리 이야기를 반복해서 들으며 교양 수준에서나마 조금씩 과학 지식이 쌓인 것입니다. 특히나 '홀로세'는 <지구는 지금까지 다섯 번의 대멸종을 겪었다>에 등장하는 내용이고, 저자가 설명 없이 사용한 '인류세'에 대해서 글을 쓰며 살핀 적이 있어 반가웠던 듯합니다.


데이터의 폭발적인 성장이 지구의 진로에 영향을 끼친다

다만, 해수면이 오르는 일에 대해 인류의 멸종을 알리는 신호로 보는 이정모 작가님과는 저자의 관심사는 많이 다릅니다.

21세기 이 행성에서 가장 빨리 증가하고 있는 것은 인구도 아니요 ... 이산화탄소도 아니다. 단연코 데이터다. 데이터의 폭발적인 성장이 지구의 진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리고, 그간 파편적으로 알아 왔던 데이터를 둘러싼 현상들이나 지식들이 뭉쳐져 비로소 하나의 의미가 된 듯한 강렬한 느낌을 선사합니다.

거대한 인공 파도의 맨 꼭대기에서, 불가사의한 미래의 한복판에서, 고요하게 참선에 들어가 있는 장본인이 바로 알렉스 카프다.
순서대로 퍼플렉시티, 카나나, gpt-image-1에 위 다발말을 주고 생성한 그림


철학은 관념이 어떻게 현실을 만드는가에 대한 이해다

저자는 군계일학의 아웃사이더로 그를 묘사하는데, 그 출발은 진지한 철학도라는 그의 배경에 있습니다.

샌프란시스코를 등지고 프랑크푸르트로 떠난다. 1990년대, 때가 공교로웠다. 탈냉전 초기, 독일의 통일과 유럽의 통합을 현장에서 관찰할 수 있었다. 괴테 대학에서 유럽의 인문학을 도야하며 정통 코스의 정수를 음미한 것이다. 대가 위르겐 하버마스와 치열하게 토론하는 모습이 알렉스 카프의 젊은 날의 초상이었다. 프랑크푸르트는 비판이론과 철학의 도시로 명성이 자자하다. 그래서 프랑크푸르트학파라는 말도 만들어졌다.

'프랑크푸르트학파'도 반복해서 <월말김어준>을 들으며 귀동냥으로 익숙해져 있었습니다.

프랑크푸르트학파는 탁상공론하는 상아탑의 학자들이 아니었다. 철학은 추상적인 관념이 아니다. 철학은 관념이 어떻게 현실을 만드는가에 대한 이해다. 생각이 세상을 만든다. 사고가 세계를 이룬다. 20대 중후반, 알렉스 카프는 20세기의 가장 걸출한 사상의 계보에 젖줄을 대어 사유하는 방법을 배운 것이다. 그리고 그 철학을 현실 세계에 적용하여 새로운 세상을 제작하는 방식을 연마했다. 카프가 사사했던 하버마스는 학파의 2세대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사상가였다. 대표적인 담론이 의사소통 행위이론이다. 하버마스는 고립된 주체관에 기초한 근대적 의식철학을, 상호주관성에 기초한 의사소통 패러다임으로 전환하고자 했다.

또한, '철학은 추상적인 관념이 아니다'라는 문장을 읽을 때, 저도 모르게 '내 말이!'라고 속말을 했습니다. 이는 다시 한번 제 취향을 확인하게 해 줍니다. 그리고, 다음 문장은 거대한 발견처럼 받아들여집니다.

철학은 관념이 어떻게 현실을 만드는 가에 대한 이해다.
생각이 세상을 만든다. 사고가 세계를 이룬다.


작은 데이터 파편이 빅데이터로 집적되면 통찰을 만든다

더불어 그가 프랑크푸르트학파로만 머물지 않게 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카프가 각별한 지점은, 프랑크푸르트에서 비판이론을 섭렵하면서도 떠나온 실리콘밸리의 정보혁명도 지켜보고 있었다는 것이다. 텍스트에 함몰되지 않고, 테크놀로지도 관찰하고 있었다.

관념에 빠지기보다는 시대의 변화에 함께 호흡했다고 해야 할까요?

디지털 혁명의 명과 암도 조명해 볼 수가 있었다. 유럽에서 유학하는 정통 좌파 사회주의자로서, 실리콘밸리의 후기자본주의와 소비문화의 폭발도 비판적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빅데이터는 시장에서의 빅버블로 그칠 성질의 사태가 아니었다. 데이터를 통하여 어떻게 돈을 벌까가 아니라, 데이터가 추동하는 사회가 어떠한 문명으로 진화할 것인가를 사유했던 것이다.

더불어 빅데이터에 대한 저의 단견短見도 깨닫게 됩니다.

양적 변화는 질적 변화를 가져온다. 스몰데이터의 파편들이 빅데이터로 집적되면 정보는 통찰로 승화한다. 인포메이션에서 인사이트로 도약하는 것이다. 고로 데이터는 기술의 부산물이 아니라 의사결정의 기초가 될 수 있다. 인류는 장차 모든 곳과 모든 것에 데이터가 존재하는 세계에서 살게 될 것이다.

마지막 문장을 보면서 저자가 전반부 부제로 '마이너리티 리포트'라 이름 붙인 이유를 눈치챕니다. 모든 곳에 데이터가 흐르고, 모든 것에 데이터가 존재하는 세계!


데이터가 인간에 복무하는 윤리적인 디지털 문명 건설

어쩌면 알렉스 카프가 디지털 시대 새로운 철학자의 시조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게 만드는 문장입니다.

지식과 윤리와 현실과 본질 등 유럽에서 수세기 동안 진행되었던 철학적 논의가 마침내 디지털 시대의 개막과 함께 구체화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사색하였다.

알렉스 카프는 장샤오룽(张小龙)의 연설문을 읽었던 때 이후에 처음으로 접하는 IT 기술자로 분류하는 인물이 내놓는 철학적 사유가 아닌가 싶습니다. 한편, 이어서 만난 다발말은 명쾌한 정세 정리입니다.

구대륙은 디지털과 아득한 거리가 있었고, 신대륙은 철학적인 사유가 부족했다. 그저 '역사의 종언'을 즐기며 대박을 꿈꾸는 기업가와 투자자들이 거대한 거품을 일으키고 있었다. 프랑크푸르트는 뒤처졌고, 샌프란시스코는 공허했다. 카프는 최첨단 기술과 최선단 철학을 결합하여 윤리의 이노베이션을 일으키고 싶었다.

너무나 간명해서 청량한 느낌마저 납니다. 그리고, 알렉스 카프의 출사표가 등장합니다.

유럽을 떠나 미국으로 돌아온다. 철학 박사가 되어 테크기업의 수장이 되기로 한다. 기술철학자, 기술사상가가 된 것이다. 실사구시, 실학자가 된 것이다. 그래서 2003년에 탄생한 기업이 팔란티어 테크놀로지스다.

'국방 기업', '끝내주는 AI 응용 회사', '온톨로지' 따위로 파편적 단어로 설명되던 팔란티어의 비전을 이제야 접합니다.[3]

데이터가 인간에 복무하는 윤리적인 디지털 문명을 건설하는 것이 팔란티어의 비전이 되었다.

더불어 또 제 취향을 느끼게 하는 팔란티어 성격 규정이 등장합니다.

팔란티어는 마스터와 도반(道伴)이 함께 모여 디지털 문명을 설계하고 창조하고 실행하는 신문명 기획사라고 할 수 있겠다.


고객 데이터로 무엇을 해야만 하는가를 토론하라

그리고, IT컨설팅 백그라운드 탓인지 감탄해 마지않는 글귀입니다. 스스로 경의를 표할 정도니까요.


고객의 데이터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해야만 하는 것인가를 토론한다.


뒤이어 왜 아메리카 2.0에 알렉스 카프가 등장하는지를 설명하는 문제 정의입니다.

음식 배달 앱은 그토록 정교하게 설계하면서도, 그 테크놀로지를 통하여 국방을 개혁하고 교육을 혁신하고 보건을 개선하고 행정을 변혁할 생각에는 이르지 못했던 것이다.

미중 무역 전쟁에 이어서 군비 경쟁처럼 이어지는 AI 기술 전쟁의 바탕을 설명합니다.

지난 세기 핵무기가 그 후 100년의 지정학 질서를 규정한 것처럼, 이번에는 AGI가 새로운 질서를 규율해갈 것이다.

여기에 임하는 알렉스 카프의 문제의식을 저자는 이렇게 규정합니다.

비상한 시국이다.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테크노-유신체제를 만들어야 한다. 더는 실리콘밸리의 테크놀로지와 워싱턴의 국가 사이에 벽을 세워서는 안 된다.

팔란티어 제품 라인 소개는 덤입니다.

고담(GOTHAM)과 파운드리(FOUNDRY)와 아폴로(APOLLO)와 온톨로지(ONTOLOGY)가 모두 그러한 소프트웨어다. 빅데이터로 드러나는 데이터 간의 의사소통과 상관관계를 시각화하여 최선의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기여하는 것이다.

미국 2.0의 선봉에 그가 있었군요.

미국 2.0, 뉴-아메리카의 진정한 대표선수는 카프였던 것이다. 그는 빅데이터와 거버넌스를 결합하여 빅 거번테크(Govern-Tech)를 완성해 내었다. 인쇄술 시대의 데모크라시(Democracy)에서 디지털 문명의 데이터크라시(Datacracy)로 이행할 수 있는 절대반지를 손에 쥐었다.

뚱딴지같지만 저도 대한민국을 위해 무언가 해야 할 것만 같습니다. ㅋㅋㅋ


주석

[1] 팔란티어 주식을 더 살 것 같다는 생각이 흐릅니다.

[2] <한국말 말차림법>에서 제안한 단락에 대한 토박이 말입니다. 왜 다발말인지는 <언어에 대한 일반이론>에서 일부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3] 솔직히 '팔란티어 주식을 사야 하는가?' 수준의 아주 피상적 관심만 있었기에 열심히 찾아본 일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이병한의 아메리카 탐문>를 읽고 쓴 글

1. 트럼프 2.0은 미국판 문화 대혁명인가?

2. 새로운 미국을 이해하기 위한 필독서가 나타났다


지난 내 삶을 차리는 독서의 시작 연재

(169회 이후 링크만 표시합니다.)

169. 의식적으로 다루지 못하는 다양한 형태의 암묵 기억

170. 네 번의 대멸종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동물, 상어

171. 다섯 번의 대멸종과 상어가 지나 온 대멸종의 역사

172. 자연선택이 알려준 반복과 마주하기의 힘

173. 미토콘드리아가 진핵생물의 시대를 열다

174. 개체의 죽음으로 개체군의 건강을 지키는 미토콘드리아

175. 좋은 결정을 위해서는 육감이 필요하다

176. 지구 생명 탄생에서 달, 바다, 시아노박테리아의 역할

177. 움벨트 밖으로 나아가는 모험심은 어디서 나오는가?

178. 트럼프 2.0은 미국판 문화 대혁명인가?

179. 우리 행동의 엔진 역할인 본능을 우리는 볼 수 없다

180. 1962년이나 2025년이나 가장 많이 팔리는 초코바는

181. 인종차별적인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이 공존하는 뇌

182. 새로운 미국을 이해하기 위한 필독서가 나타났다

183. 우리 뇌에 프로그래밍된 정신의 양당제 민주주의

184. 기대치 관리는 시기심과 고통을 다루는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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