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일상을 차릴 알고리듬
2022년 만난 영상으로 알게 된 김기석 목사님이 목회를 그만두며 쓰신 책이라는 소개에 <고백의 언어들>을 읽었습니다.
인상적인 내용이 꽤 있었지만 무엇보다 가장 강력하게 다가온 내용은 다음 구절입니다.
「시경』에 나오는 시 전체를 꿰뚫는 핵심을 공자는 "사무사"思無邪로 간추리고 있습니다. '삿된 마음을 품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사람들이 시를 암송하거나 노래를 부르는 것은 우리 마음의 병을 치유하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사는 동안 우리 마음에는 때가 묻고, 그래서 불투명해지거나 더러워집니다. 자기중심성이 더욱 강화되는 것을 가리켜 기독교는 죄라 합니다. 이때 불순해진 우리 마음을 닦아 맑고 투명하게 만들어서 본래의 청정함을 되찾게 하는 것이 시의 본령입니다.
思無邪란 말은 첨 보네요. 하지만 직관적으로 짐작 가능한 말입니다. 더불어 '사악해지지 말자'는 구글의 옛 모토를 떠올리게 합니다. 인터넷상의 모든 정보를 다루던 구글의 초기 모토였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느껴져 어쩐지 의미심장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제가 이 글을 인용하며 글을 쓰기로 마음먹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내용은 후반부 문장들입니다.
세상에서 사는 동안 우리 마음에는 때가 묻고, 그래서 불투명해지거나 더러워집니다. 자기중심성이 더욱 강화되는 것을 가리켜 기독교는 죄라 합니다. 이때 불순해진 우리 마음을 닦아 맑고 투명하게 만들어서 본래의 청정함을 되찾게 하는 것이 시의 본령입니다.
어릴 적에 (개신교) 교회에 다니긴 했지만 교인은 아니었습니다.[1] 그러던 차에 개인적으로 계기가 있어 북경 동교민항에서 세례를 받고 천주교 신자가 되는 과정을 밟았습니다. 세례를 받기 전에 찰고라고 불리는 신부님과 면담이 있는데, 그때 들은 말씀과 거의 그대로 일치했습니다. 당시 신부님은 세례를 받고 일요일에 성당에서 전례를 바치는 이유와 기도하는 행위 모두에 대해 납득할 수 있는 설명을 해 주셨는데, '불순해진 우리 마음을 닦아 맑고 투명하게 만들어서 본래의 청정함을 되찾게 하는 것'에 준하는 내용이었습니다.
한편, 저자인 김기석 목사님은 시경을 인용하며 시의 본령에 대한 글을 쓴 이유는 신앙생활의 본령을 설명하는 과정입니다.
신앙의 바탕에는 자기중심성 극복이 있습니다. 다시 책에서 밑줄 친 내용을 보겠습니다.
몸을 가진 인간은 누구 할 것 없이 자기중심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자연 인간의 모습입니다. 자기를 부인한다는 말은 자기를 세상의 중심으로 보는 근본적 태도를 포기하는 것과 관련됩니다. 자기를 부인하라고 해서 자기를 비하하거나 말살하라는 말은 아닙니다. 철학자 레비나스에게 자기 부인이 무엇인지 묻는다면 아마도 타자의 고통에 책임을 지는 것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김기석 목사님 책에서 다소 적대적 뉘앙스로 대하는 리처드 도킨스를 저는 다윈의 전도사쯤으로 생각합니다. 과학적 상식을 전파했다는 점에서는 교인들이 말하는 선지자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팩트풀니스>를 만난 즈음부터 과학을 통해 직면하는 삶을 태도를 키우고 있는 터라 저에게 도킨스는 부정적 인물이 되긴 어렵습니다.[2] 김기석 목사님이 성경을 수단으로 신앙 생활을 하신다면, 저는 신앙 생활인지는 몰라도 스스로를 닦는 수단으로 과학을 활용하고 있습니다.
그런 제 입장에서 위 텍스트를 볼 때 든 생각은 95%에 해당하는 비율을 무의식의 통제를 받는 생명체로써 인간이 마치 중력과 같은 힘을 극복하고 思無邪하는 일은 종교를 떠나 거의 모든 인류의 지향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쩌면 그게 도덕(道德)의 다른 이름일 수도 있습니다.
무의식을 알수록 우리는 특별한 행동 변화를 훈련하지 않으면 동물로 태어난 이유로 다양한 사회적 갈등을 격하게 겪을 수밖에 없음이 분명해집니다. 이를 위해 발전한 지혜 중에서 가장 보편적인 것이 신앙[3]이라고 할 수 있을 듯합니다.
그런 생각으로 <고백의 언어들>에서 '신앙생활의 본령'을 제목으로 하는 구절을 읽었더니 집중하게 됩니다. 거기서 처음으로 밑줄 친 문장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닦을 수 없음을 잘 압니다.
두 가지로 방식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제 말로 대응시키는 일입니다. 저는 평소 <저는 의지를 믿지 않습니다>라고 말하고 다닙니다. 그리고 동시에 저는 겸손은 좌절 후에 마주하는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 흔적이 여기 있는데, 뜻밖에 성경을 언급했네요.[4]
제가 아는 겸손은 성경에 나온 그것인데...
하지만, <고백의 언어들>에 당시의 글보다 더 당시 저의 느낌을 잘 전하는 말이 있었습니다.
지평이 넓어질 때 사람은 비로소 겸손해집니다. 겸손이란 짐짓 다른 이들 앞에서 자기를 낮추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작음을 깨닫고 새로운 세계를 향해 자기를 개시하는 태도입니다.
글을 쓰며 다시 읽어 보니 지평[5]이 넣어진다는 말은 '스스로 모른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의 의미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권위주의적 가치관이 마음 편하다면 신앙이 잘 어울리지만
그에 비해 여호와 하나님은 백성에게 도덕적 삶을 요구하십니다.
현실을 직시하고, 사실충실성에 입각해서 살고자 하는 저에게는 신앙보다는 <시작의 기술>을 읽고 실천하는 일이 더 나은 방법입니다. 그렇다고, 자유의지를 믿으라는 것은 아닙니다. <시작의 기술> 역시 자유의지가 얼마나 허술한 믿음인지 말해 주니까요.
소모적인 갈등과 논쟁으로 번아웃을 맞이하고 나서
첫 번째 금지 명령은 선악과에 대한 것입니다.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만은 먹어서는 안 된다."
제 안에서 작동하는 '끊임없는 옳고 그름을 따지는 내면'이 저를 비생산적인 삶으로 이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러고 나서 2016년 제대로 성경을 만나고 느낀 점은 두 가지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성경이 매우 어려워서 선악이라는 이분법을 이용해서 교회 자체의 응집력을 키우는데 쓰이기는 하지만, 예수의 삶을 실천하는 측면에서는 절대다수에게 별다른 기여를 하지 못한다는 믿음입니다. 두 번째는 사무엘에서 다윗을 다룬 부분에서 '용기를 내어 자기 자신으로서 살아라'라는 메시지를 교훈으로 얻을 수 있었습니다.
성경에 대한 저의 박한 평가와 별개로 성당의 전례 활동과 교우들과 교류로 배운 것은 예수의 가르침은 결국 '이웃 사랑'이라는 점이었습니다.
도덕적 삶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여기서 도덕적 삶의 핵심으로 제시되는 것이 바로 '이웃 사랑'입니다. 자기 좋을 대로 사는 것이 자연 인간의 본성이지만, 하나님은 인간이 자유 의지에 따라 자기중심성을 극복하고 다른 이들을 깊이 심려하는 삶을 살기 원하십니다.
즉흥적으로 쓴 글이지만, 고미숙 선생님이 저에게 심어준 문화상대주의 씨앗의 발현을 확인합니다. 과학적 복음을 통해 익힌 사실충실성은 성경에 준하는 효과를 삶에 발휘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거꾸로 사실충실성에 입각한 삶에도 김기석 목사님과 같은 참 신앙인의 말씀은 많은 영감을 줍니다.
일부만 추려 인용한 글로도 굳이 죄인이라는 표현 대신에 동물로 태어난 우리가 사회를 꾸릴 때 지니는 한계를 극복해야 함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웃 사랑'이라고 3년의 전례 활동으로 익힌 말씀이 바로 그 열쇠란 점도 확인합니다.
[1] 천주교는 분명 다르지만 번듯한 건물을 소유한 대부분의 한국 개신교는 기독교와 반공주의의 혼종과 같은 형태입니다. 학창 시절 경험이 전부이긴 하지만, 모든 설교에서 항상 '이단'을 언급할 정도로 폐쇄성과 목사에 대한 권위주의가 지나쳐 위선적인 집단이라는 인상이 강합니다. 그렇게 부정적으로 형성된 교회에 대한 인식을 극복한 것은 연변에서 만난 선교사들과 천주교 경험이 절대적입니다. 그 후에도 박총 목사님이나 김기석 목사님 같은 분들을 글이나 영상으로 보는 과정이었습니다.
[2] 그럼에도 김기석 목사님이 그를 경계하는 이유는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3] <낱말의 뜻을 깊고 넓게 묻고 따지는 일의 소중함> 실천으로 한자사전을 찾습니다.
[4] 하지만, 세례를 받고 3년 간 전례 위원으로 활동한 이후 저에게 작동한 진정한 바이블은 (그 언제보다 많이 그리고 자주 읽었던 성경 책 자체가 아니라) <팩트풀니스>와 <당신이 옳다>였습니다. 그 이후 제가 인정하는 많은 복음서가 이어졌지만, 최근에 만난 한 권이 그 위에서 분명한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닦을 수 없다는 김기석 목사님의 글을 두고 <시작의 기술>의 실천방법이 신앙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5] <낱말의 뜻을 깊고 넓게 묻고 따지는 일의 소중함> 실천으로 한자사전을 찾습니다.
(39회 이후 링크만 표시합니다.)
43. 이제, 인공지능도 성찰을 하는데, 하물며 사람이라면?
44. 점수(漸修)를 통해 지혜롭게 행복 비용을 지불하자
45. 오만 가지 생각에 휩싸인 자기 대화가 자신을 망친다
49. 부정적인 감정들도 나의 힘이다
50.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을 만나 허우적대고 있을 때
51. 병입 한 감정은 예기치 못한 순간 감정 누출을 낳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