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일상을 차릴 알고리듬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을 만나 허우적대고 있을 때>에 이어 수전 데이비드가 쓴 <감정이라는 무기> 중에서 '생각하지 말라면 더 생각할 수밖에 없다'를 소제목으로 하는 구절에서 밑줄 친 내용을 토대로 생각을 차리는 글입니다.
반가운 마음마저 드는 포기말[1]들입니다.
감정들을 병에 집어넣는 것의 문제는 골치 아프고 불편한 감정들을 무시한다고 해서 그 감정들을 유발하는 문제가 해결되는 게 결코 아니라는 점이다. 뿌리가 깊은 그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로 남는다.
여러 가지 생각들이 넘쳐흐릅니다. 하나씩 풀어내어 보겠습니다. 가장 먼저 <당신이 옳다>의 교훈들이 다시 해석되는 느낌을 받아 반갑습니다. 그중 즉각적으로 발사하는 '충조평판'을 멈추는 일이 가장 또렷합니다. 그래야만 마주한 상대를 생각 속에 존재하는 일반화된 부류로 취급하는 사고를 멈추고 '그 한 사람'으로 대할 수 있습니다.
정혜신 선생님은 이를 존재 자체에 집중하는 일이라고 설명합니다.
존재 자체에 집중하고 주목하면 벽을 더듬던 손이 문을 만난다. 존재 자체가 속마음으로 들어가는 문이다. 존재에 주목하고 집중할 때 문이 반응한다. <중략> 문이 존재자체라면 문고리는 존재의 '감정이나 느낌'이다. <중략> 존재의 감정이나 느낌에 정확하게 눈을 포개고 공감할 때 사람의 속마음은 결정적으로 열린다. 공감은 그 문고리를 돌리는 힘이다.
그리고 다시 찾아가서 읽은 포기말들을 볼 때, 최근에 쓴 글에 들어 있던 빙산(iceberg) 비유가 떠오릅니다.
문고리를 쥐어야 문을 열 수 있고, 문을 열어야 속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당신이 옳다>는 주로 마주하는 대상을 두는 상황에 대해 쓰고 있습니다.
하지만, 방향을 나에게 돌리면 그대로 <감정이라는 무기>와 연결할 수 있습니다. 아래 그림에서 빵 자리에 속마음을 둘 수만 있다면 우리는 그 양상을 보고 까닭과 흐름을 헤아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난 글에서 인용한 대로 대부분은 자기의 부정적인 감정들을 피하거나 감출 수 있다고 믿습니다.
불행하게도, 무언가를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 자체가 놀랍도록 엄청나게 많은 양의 정신적인 에너지를 잡아먹는다. 연구 결과를 보면 생각들이나 감정들을 최소화하려고 하거나 무시하려고 하는 시도는 오히려 그것들을 증폭시키는 데 기여할 뿐이다.
적어도 저는 이 글을 쓰는 순간 분명하게 알았습니다. 부정적 감정을 피하는 대신에 이를 마주하고 직시(直視)해야 내 고통의 원인을 보게 된다는 사실을 말이죠.
문구로 써 놓고 보니 당연한 말인데, 분명히 오랫동안 행하지 못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기 때문에 이 책 그리고 <당신이 옳다> 같은 복음서(?)가 존재하는 것이겠죠.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숨기는 일을 책에서 병입(甁入)[2]이라고 표현합니다.
병입은 우리에게 통제력을 부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우리가 통제력을 가지지 못하게 만든다. 명령을 내리는 것은 우리가 아니라 감정들이다.
병입은 착각을 하게 만들죠. 저자는 그 착각의 본질을 꿰뚫어 보고 명쾌하게 설명합니다. 드러나지 않게 병 안에 가둔 줄 알았는데, 실은 (아마도) 무의식을 통해서 우리를 지배하게 된다는 것이죠.
다음 포기말들을 사례를 바로 떠올릴 수 있는 경험과 그대로 연결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억눌린 감정들은 필연적으로 전혀 의도하지 않은 방식으로 표면화된다. 심리학에서는 이것을 '감정 누출emotonal leakage'이라고 부른다
최근 아내의 말에서 감정 누출이 있었고, 제가 <당신이 옳다>를 두 번째 읽게 된 계기도 폭발하는 감정 누출에 대처하기 위한 방법을 찾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평소에 병입 한 감정이 압력을 견디지 못해 새어 나온다는 이치를 알게 되는 데에는 몇 년의 시간과 추적이 더 필요했네요.
저자가 쓴 감정 누출 사례도 보겠습니다.
예를 들어서 형이 동생에게 화가 났다고 치자. 이때 형은 이 감정을 억누르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추수감사절 저녁에 유쾌하게 와인을 한잔 마신 형의 입에서 갑자기 동생을 나무라는 가시 돋친 말이 불쑥 튀어나온다. 예상치 못한 일에 오랜만에 온 가족이 한자리에 모인 추수감사절의 분위기가 싸늘하게 식어버린다.
13개월 차 감정 과학자로서 실용적 쓸모를 발견합니다. 이제 주변에서 누군가 '가시 돋친 말'을 발사하면 싸늘하게 식어버린 분위기를 추스리기 위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날이 오기를 기대합니다.
아, 그건... '감정 누출'이라고 하는데, 말이죠.
그건... 우리가 언젠가 감정을 병에 넣어 둔 탓이에요.
처음 읽지만 아주 익숙한 내용입니다.
병입을 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 '긍정적으로 생각해라, 앞만 보고 나아가라' 그리고 일을 계속 진행시켜라'라고 말한다. 그렇게 하면 원하지 않는 감정들이 모두 사라지고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실제로 그 감정들은 멀리 사라져 버린 것이 아니라 땅속으로 숨어들었을 뿐이다. 그리고 이 감정들은 언제든 튀어나올 준비를 하고 있다.
그리고, 병입 한 감정이 '잠복한 적군'으로 돌변한다는 비유를 하며 스스로 딱 드러 맞는다고 생각합니다. :)
한편, 연구자들이나 알 법한 병입에 대한 놀라운 사실도 있습니다.
한 연구에서 연구자들은 어떤 사람이 병입을 시도할 때 이 사람 주변에 있는 다른 사람들의 혈압이 상승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1] <한국말 말차림법>에서 제안한 문장에 대한 토박이 말입니다. 왜 포기말인지는 <언어에 대한 일반이론>에서 일부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2] 여기서 잠깐 책 내용에서 벗어나 <낱말의 뜻을 깊고 넓게 묻고 따지는 일의 소중함>을 실천합니다. 甁入은 네이버 한자 사전에 없는 것으로 보아 흔히 쓰이는 단어는 아닌 듯합니다. 지식 백과로 이동했더니 와인백과에 등장하는 말이군요.
떼려야 뗄 수 없는 와인의 동반자, 유리병을 빼고는 와인에 대해 이야기할 수 없다. 숙성이 끝나면, 기술을 요하는 조심스러운 작업인 와인의 병입이 이루어진다. 와인은 병에 담겨, 양조장 혹은 중개상의 저장소를 떠나 소비자를 만나러 간다.
[네이버 지식백과] 병입 (그랑 라루스 와인백과, 윤화영, 김문영)
씨말 한자 그대로 풀면 병에 넣는다는 말입니다. 영어로 Bottling인데, 크롬 번역하면 병입이 되네요.
2. 감정의 민첩성은 의미 있는 삶을 위한 훌륭한 친구이다
4. 감정의 민첩성을 얻기 위해 감정에서 한 걸음 비켜나기
5. 감정의 민첩성을 얻어 자기 목적에 맞는 길을 걸어가기
8. 각자가 만드는 현상적 세계와 두 개의 생각 시스템
10. 아차, 바로 이런 상태가 감정의 덫에 걸려든 상태지
13. 부정적인 감정들도 나의 힘이다
14.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을 만나 허우적대고 있을 때
(31회 이후 링크만 표시합니다.)
32. 호기심의 가치 그리고 꿈을 일상으로 만들기 위한 조정
33. 지금 이 순간의 편안함에 낚이지 말고 의미를 따지자
35. 8개월 차 감정 과학자 입문기
37. 복잡계를 위한 벡터 변화 이론
43. 이제, 인공지능도 성찰을 하는데, 하물며 사람이라면?
44. 점수(漸修)를 통해 지혜롭게 행복 비용을 지불하자
45. 오만 가지 생각에 휩싸인 자기 대화가 자신을 망친다
49. 부정적인 감정들도 나의 힘이다
50.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을 만나 허우적대고 있을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