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을 차리는 독서의 시작
<어떻게 감정의 덫에 걸리게 되는 걸까>에 이어서 수전 데이비드가 쓴 <감정이라는 무기> 2장에서 밑줄 친 내용을 토대로 생각을 담습니다.
‘맞아, 맞아’ 하면서 공감하며 읽게 되는 문장입니다.
게다가 쉼 없이 이이지는 이 목소리는 문학 전공 교수들이 말하는 이른바 '믿을 수 없는 화자unreliable narrator'이다.
더불어 지난 글에서도 인용했던 페벗 님의 글과 완전히 부합하는 듯합니다.
우리의 뇌는 정보가 입력되면 바로 예측, 즉 생각이 일어난다. 그러나 일어나는 생각의 대부분은 오류가 많다. 특히 부정적인 생각은 대부분 오류이다.
한편, 연초에 썼던 글인 <속말하지 않고 드러내, 기록하고 다듬는 일의 힘>도 떠오릅니다. 당시와는 조금 다른 맥락이지만 속말을 꺼내어 써 보고 다른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과정이 마치 '햇볕에 소독을 하는 과정'에 비유할 수 있을 듯하다는 생각도 흘러나옵니다.
앞선 '소독' 비유를 들면서 예측 기계로 작동하는 뇌의 즉각적 반응은 생물로서의 반응이지 사회적인 고려가 반영된 것은 아니란 점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 마음속 화자는 편견에 사로잡혀 있거나 혼란스러운 상태 아니면 사악한 자기 합리화나 속임수를 쓰고 있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한층 더 고약한 점은 그 화자가 입을 가만히 다물고 있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제가 즉흥적으로 소독에 비유했는데, 이는 뇌의 출력 결과를 사회적으로 바꾸는 일이네요. 옛날로 하면 예禮를 차리는 일이겠군요. 도리일 수도 있고요. 도리란 말을 꺼냈더니 작년에 묻따풀한 <한국사람에게 사람됨이란 무엇인가?>를 찾게 되었습니다. 연쇄적으로 관계가 인간 정신 작용의 핵심이라는 박문호 박사님의 말씀도 다시 읽게 됩니다.
다음 내용을 읽으면서 '수다의 강'에 빠져들지 않으려면 감정에서 한 걸음 비켜나기가 필요함을 다시 확인하게 됩니다.
우리는 흔히 내면에서 쉼 없이 흐르는 이 수다의 강에서 비롯되는 이야기들을 진실이라고 받아들이지만, 사실 대부분은 감정 때문에 한껏 격렬해진 평가나 판단의 복잡한 혼합물일 뿐이다. 이런 생각들 가운데 일부는 긍정적이고 유익하지만 그 외의 것들은 부정적이고 우리 삶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너무나도 익숙한 소모적인 생각들의 사례를 만납니다.
'나는 원고를 쓰는 속도가 너무 느리다'는 자기비판적인 평가인데, 이런 평가는 '내가 원고를 쓰는 속도는 다소 느린 편이다'에서 너무도 쉽게 따라붙을 수 있다. 또 '나는 다른 저자들에 비해서 원고를 쓰는 속도가 느리다'는 사실에 바탕을 둔 생각을 하나의 비교로 전환시킨다. '그래서 나는 뒤처진다는 불안 요소를 가미한다. 그러면 이 모든 것들은 부정적인 판단으로 정리된다.
충동적으로 발언하면 소모적인 생각에 그치지 않고 사회적이지 않은 말이 튀어나올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유형이 바로 '충조평판'이겠죠.
몸을 타고났으니 생각으로 어쩌지 못하는 일들을 겪어야 합니다.
감정의 낚임을 거의 피할 수 없는 것은 우리가 하는 반응들 가운데 너무도 많은 것들이 그저 반사적인 반응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저자는 자신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방식으로 외부의 자극에 자동적으로 반응하는 바로 그 순간 우리가 감정의 덫에 걸린다고 말합니다.
우리의 자동적인 반응autopilot response이 작동하게 된다. 이때 우리는 빈정거리는 말을 하거나 입을 다물고 감정을 아예 드러내지 않거나 적절한 행동을 미루거나 새가 알을 품듯이 그 감정을 마음에 곰곰이 품거나 혹은 날카로운 어떤 감정을 내뱉는다.
여기서 우린 작명의 신인 마이크로 소프트 사에게 배울 수 있습니다. autopilot 대신에 copilot 하는 것입니다. 테슬라 FSD가 운전을 차에게 혹은 인공지능에게 맡기더라도 전방 주시의 의무를 지닌 운전자가 반드시 탑승해야 하는 상황처럼 말이죠.
이어서 저자는 자동반응하는 수다쟁이는 직관적인 생각을 진실이라고 믿는 비과학적 태도에서 비롯된다고 합니다.
이런 상황은 머리에 떠오르는 생각을 객관적인 진실이라고 받아들이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감정 과학자'가 되어야 하는 이유를 복습하는 듯합니다. 그리고 상당한 배경 지식을 요하는 다발말[1]이 이어집니다.
특정한 형태와 특정한 소리를 연관 짓는 이런 연상이 이루어지는 이유 가운데 하나로, 이런 판단이 이루어지는 뇌 부위인 각회角回, angular gyrus가 사람의 촉각과 청각과 시각을 각각 담당하는 뇌 부위들이 교차하는 지점에 위치한다는 사실을 들 수 있다. 각회는 감각을 혼합하는 일을 맡아서 하는데 소리, 느낌, 이미지, 상징, 몸짓 등을 통합하며
반직관적인 동시에 이성적인 절차가 필요한 이유를 보여 주는 단적인 사례가 나옵니다.
법정에서 판사는 배심원들에게 피살자의 사체를 해부한 사진은 보여줘도 범죄 현장 사진은 잘 보여주지 않는 경향이 있다. 범죄 현장 사진은 대개 무질서하고 폭력적이고 피가 난무하는 까닭에, 논리적이고 중립적으로 판단해야 하는 배심원들이 공포에 압도되어 객관적인 판단을 하지 못할까 우려해서이다. 부검 사진은 강철판 위에 놓아둔 사체를 밝은 조명 아래에서 찍은 것이다. 그러니까 매우 객관적이다. 이에 비해서 범죄 현장 사진은 피해자의 인간적인 여러 조건이나 상황을 드러내는 아주 세부적인 사항들이 담겨 있을 수 있다.
이성의 관점에서 보면 하나의 결함과도 같은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생존을 위해서는 그러한 반응이 더 유리하다고 말하는 듯합니다.
감정과 한데 섞여 한층 더 강화된 생생하고도 선명해지는 우리 인간의 인지력이 가진 이 특성은 인류가 진화하는 과정에서는 유리하게 작용했다.
수렵 채집 시절에는 지금보다 훨씬 더 중요한 기능을 했다고도 합니다.
인류의 고대 조상은 살아남기 위해서 위험을 매우 격렬하게 느껴야만 했다. 내분비기관의 호르몬 분비에 따라서 예측 가능한 반응, 즉 꼼짝하지 않고 가만히 있거나freeze 싸우거나fight 혹은 도망치는fight 반응이 자동적으로 나타나도록 본능적인 위험을 느껴야 했던 것이다.
하지만, 안락한 문명과 문화 위에서 살 때는 그러한 반응이 도리어 가상 세계 그대로를 실제 세계로 오인하는 오류를 범하게 하는 듯합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 믿을 수 없는 혼합 능력 때문에 우리는 너무도 쉽게 감정의 덫에 걸리고 만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래서 인공 지능의 도움을 받아야 안전하게 뇌를 쓸 수 있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고맙게도 오늘날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문제의 대부분은 (심지어 우리가 위협으로 느끼는 것들 가운데 대부분도) 모호하고 장기적인 것이다. '으악! 뱀이다!'와 같은 구체적이고 단기적인 위협이 아니라, 내 일자리는 안전할까?' 은퇴할 무렵까지 노후자금을 충분히 모을 수 있을까?' 혹은 '내 딸이 남자친구에게 너무 빠져 있는데, 저러다가 학업 성적이 떨어지지는 않을까?'와 같은 위협이라는 말이다.
앞으로 공황이나 격노는 인공 지능 치료나 상담 기능으로 상당 부분 처리가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에게 다가오는 위협에 대한 자동적인 반응을 반사적으로 불러일으킬 수 있는 방아쇠가 된다.
현존을 위해 명상을 하는 대신에 인공 지능의 도움을 받을 날도 머지않은 듯합니다.
우리가 부딪치는 문제 중에서 어떤 부분은 정말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단지 우리 생각들이 진행되는 방식일 수도 있다.
[1] <한국말 말차림법>에서 제안한 단락에 대한 토박이 말입니다. 왜 다발말인지는 <언어에 대한 일반이론>에서 일부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100회 이후 링크만 표시합니다.)
100. 모멘텀을 통해 연결을 만들어 성장하라
101. 인생의 전환점을 만드는 감정 활용법
102. 감정의 민첩성은 의미 있는 삶을 위한 훌륭한 친구이다
103. 한 방향으로 만드는 새로운 세상: 동료, 발견, 세상
105. 인간 대 AI: 나는 누구인가?
106. 감정의 민첩성을 얻기 위해 감정에서 한 걸음 비켜나기
107. 생각이 살아서 여행을 멈추지 않도록 돕는 동반자다
108. 감정의 민첩성을 얻어 자기 목적에 맞는 길을 걸어가기
109. 사람보다 똑똑한 인공지능을 위한 기술
110. 인공지능이 불러올 피할 수 없는 질문
111. 어떻게 감정의 덫에 걸리게 되는 걸까
113. 무엇 때문에 소통하고, 일하고, 존재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