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을 차리는 독서의 시작
페벗 님 소개글로 인해 구매했는지 기억은 정확하지 않지만, 요즘 푹 빠져서 읽는 책이 있습니다. 바로 <감정의 발견>인데요. 그중에서 나를 그대로 사로잡아 당장 실천해야겠다고 느끼는 순간이 있어서 기록으로 남깁니다.
언급한 다발말[1]은 바로 다음 내용입니다.
이때 제일 먼저 드는 충동은 한시라도 빨리 질서를 회복해 평온한 일상을 이어 가고 싶다는 것이다. 바로 이 순간이 감정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순간이다. 이 부분에서 잘못하기 쉬운데, 문제가 일어난 원인보다 행동에 집중해 버리는 것이다. 병이 아닌 증상을 치료하는 꼴이다. 그런 판단 아래 고를 수 있는 최선의 선택지는 행동을 교정하는 것이다. 그것도 강제로 이로써 감정을 일으킨 근본적인 원인과는 멀어지고 만다.
'문제의 근원이 사람의 욕망'이란 관점에서 보면, 이는 그저 아이들이 싸우기 직전까지의 내 상태를 복원하고 싶은 욕망일 수도 있습니다. 마침 어머니와 있었던 어떤 사건으로 인해 우리는 내 기억과 생각 속에 갇혀 사는구나 느꼈던 일이 있었는데요.[2] 그런 마음으로 풀어 보면 다음 포기말로 나타낼 수 있습니다.
나는 너희들 둘의 현재 감정 상태는 관심이 없어.
내 앞에서 잘못된 행동을 보이지 말고,
내가 평온한 기분을 유지할 수 있게 해 줘.
물론, 노골적으로 두 아들에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나도 모르는 밑바탕 마음 혹은 무의식을 드러내기 위해 강조한 것이라 다소 과장이 있을 수 있습니다.
아무튼 저는 인용한 내용을 볼 때 강렬한 자극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자극은 비슷한 상황을 매개로 과거에 <육아란 무엇인가?>란 글을 낳게 했던 사건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다행스럽게 아이를 낳고 한동안 내가 아이를 대할 때, 아내가 나를 자꾸 제지했다. 제지 당할 때는 불편한 마음이 있었지만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내면에 질문을 해보면 여지없이 '아무런 기준도 없이 그냥' 그렇게 한 것이었다.
적어도 큰 아이가 네 살 혹은 그 이상이 된 이후에야 아내의 제지를 계기로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나도 모르게 해 온 행동의 원인을 말이죠.
반갑게도(?) <감정의 발견> 책에도 똑같은 문제를 지적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부모님도 더 잘해 보고 싶어 했다. 그저 방법을 몰랐을 뿐이다. 아마 부모님은 자신들이 경험한 방식으로 나를 대했을 것이다. 고 통은 미화할 수 없다. 스스로 인정하지 않았던, 어쩌면 감당하지 못했던 불행한 어린 시절의 감정은 다음 세대로 이어진다.
아무튼 이 글을 시작으로 <감정의 발견>에서 제시한 표현을 따르면, '감정 과학자'가 되기로 합니다. 이 글은 그러니까 독후감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선언서입니다. 초보 '감정 과학자' 선언.
[1] <한국말 말차림법>에서 제안한 구절에 대한 토박이 말입니다. 왜 다발말인지는 <언어에 대한 일반이론>에서 일부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2] 지극히 개인적인 사건이라 자세히 공개할 수는 없지만 <나도 알 수 없는 내 마음: 밑바탕 마음에 대해서>에 그 사건의 보편적인 의미와 관련한 내용이 있습니다.
(26회 이후 링크만 표시합니다.)
27. 지금 이 순간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아차리게 하는 힘
29. 문제의 궁극적 근원은 대부분 어떤 사람의 욕망이다
32. 필요로 하는 것을 갖기 전에는 뭐가 필요한지 모른다
33. 내가 정말로 해결안을 원하는지 보지 못하고 하는 일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