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을 차리는 독서의 시작
지난 글에 이어 틱낫한의 <고요히 앉아 있을 수만 있다면>의 2장 <고통을 알아차리고 안아 주기>를 읽고 제 삶을 위해 쓰는 글입니다. '고통을 감싸 안기'라는 소제목의 글들을 읽는데 놀라운 우연으로 마침 같은 날 읽은 다른 책 내용과 기능적인 면에서 같이 다룰 수 있는 글이 있어서 함께 버무려 씁니다.
마음챙김을 전혀 모를 때, 우리는 어떻게 행동할까요?
고통이 떠오를 때 단순히 그것이 마음을 차지하도록 내버려 둘 뿐이라면, 순식간에 그냥 압도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와 동시에 또 다른 에너지를 불러내야 하지요. 바로 마음챙김의 에너지입니다.
분명하게 떠오르지 않습니다. 어떤 경우는 그저 외면하고 다른 일을 하려고 하고, 어떤 경우는 마음을 바로잡고 오늘 해야 할 일을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글을 쓰고 보니 둘 다 외면(外面)을 전제로 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어쩌면 저는 외면이 깊은 습으로 작용하고 있는 줄도 모르고 살고 있는 듯합니다.
다시 책의 문장을 인용합니다. 대번에 <당신이 옳다>의 뉘앙스가 느껴지는 다발말[1]입니다.
고통을 알아차리고 껴안아 주지만 거기에는 어떤 비판도 없습니다. 이렇듯 수행이란 감정과 싸우거나 억압하기보다는, 그것을 충분히 부드럽게 달래 주는 것입니다.
'달래 주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증이 생기지만, <당신이 옳다>에서 배운 대로 <사람의 감정은 항상 옳다>를 응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내 감정 자체를 긍정하는 일을 해야 할 듯합니다. 하지만, 그런 경험이 기억으로 떠오르지는 않습니다.
책에서 '부드럽게 달래 주는 것'에 대한 설명에 해당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스스로 살펴 돌보도록 허용하면, 그것은 자연스럽게 좀 덜 완고해지고 좀 더 다룰 만해집니다. 그럼 이제 그것을 부드럽지만 깊이 들여다볼 기회를 잡는 것이지요(이때 지지를 위해 마음챙김의 호흡은 시종일관 견고히 유지되어야 합니다.). 그러고는 어째서 그것이 당신 앞에 나타났는지가 드디어 밝혀지는 겁니다.
마지막 포기말을 읽는데 인내와 마음챙김의 호흡이 감정에게 '물어보는 행위'가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난번에 쓴 글 제목이 <매혹적인 오락거리라는 난적 상대하기>가 아니었다면 서로 다른 책에 나오는 글귀를 보다가 둘을 연결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는 생각보다 감정에 더 많이 휘둘린다'라는 구절을 보는데 머릿속에서 속말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렇지. 그런 이유로 매혹적인 오락거리를 찾아 기웃거리니까.
그렇습니다. 외면이 필요할 때 가장 먼저 저를 기다리는 대상은 오락거리입니다. SNS, 유튜브 영상, 프로야구나 축구 하이라이트 따위들이죠.
<고통을 알아차리고 안아 주기>를 읽고 푸는 과정에서 인용하지 않을 수 없는 내용은 바로 <감정의 발견>에 있는 다발말입니다.
의사 결정을 할 때는 두 종류의 감정이 작용한다. '본질적'(integral) 감정과 '부수적'(incidental) 감정이다. 본질적 감정은 행동에 의해 직접 유발된다. 가파른 산길을 오를 때 느끼는 두려움이나 사랑에 빠질 때의 기쁨이 그 예이다. 부수적 감정은 현재 상황과는 무관하다. 앞서 설명했듯, 아침에 아이들과 말다툼을 하면서 느낀 좌절과 분노는 출근할 때 차를 모는 방식이나 동료들과 나누는 대화에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감정들이 무의식 중에 스며드는 것이다.
반복해서 읽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제가 요즘 꽤 오래 겪고 있는 불안이라는 기분을 일부나마 설명하는 듯도 했습니다. 두 달 전에 썼던 <일상에 마주하는 감정과 문제를 비슷하게 인식하는 법>도 발견합니다. 어쩌면 <내 일상을 차릴 알고리듬>이라는 세 달 전에 상상했던 필요성 그 자체가 여기(?)로 저를 끌고 온 듯도 합니다.
다음 다발말을 읽을 때, 분명 '굳이 과학자씩이나 되어야 할까?' 하는 반감이 있었습니다.
감정을 현명하게 이용하는 방법을 배우려면 감정 과학자가 되는 수밖에 없다. 감정을 억누르거나 무시해서는 안 된다. 정확히 그 반대로 해야 한다.
하지만, 거의 동시에 그렇게 하기로 마음먹은 이유는 바로 '마음챙김'이 주는 모호함 때문입니다. 둘을 함께 하면 보완장치가 될 것이란 기대죠.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한 첫 단계는 감정이 무엇을 말하는지 파악하는 것으로, 가장 기본적인 부분이다. 예를 들어 불안은 중요한 뭔가가 우리 통제를 벗어났다는 신호이다.
이미 <나를 점검할 수 있는 신호, 감정>을 쓴 일이 있지만, 그 지식을 일상에 활용하고 있지는 못합니다. 다시 글을 돌아보다가 보물 같은 대화를 발견합니다.
감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인내가 필요합니다.
감정을 이해하고 감정이 행동에 미치는 영향을 인지하여 제어 전략을 세워야 하는 이유이다.
몸과 감정의 관계는 차치하고서라도 일단, 감정에 대해서 게으르게 살던 삶을 멈추고 다르게 사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에 대한 정교한 묘사를 보며 분명 마음챙김을 실천하기 위해서라도 저에게는 감정 과학자가 될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아무리 엉성하고 서툴더라도 말이죠.
감정 과학자는 스트레스가 엄청난 상황에서도 잠시 멈춰 자신이 무엇에 반응하고 있는지 스스로 물을 수 있는 사람이다. 본질적 감정이든 부수적 감정이든 자신의 모든 감정을 규명하고 이해하는 법을 배우면 적절하고 유용한 방식으로 대응할 수 있다.
[1] <한국말 말차림법>에서 제안한 구절에 대한 토박이 말입니다. 왜 다발말인지는 <언어에 대한 일반이론>에서 일부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26회 이후 링크만 표시합니다.)
27. 지금 이 순간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아차리게 하는 힘
29. 문제의 궁극적 근원은 대부분 어떤 사람의 욕망이다
32. 필요로 하는 것을 갖기 전에는 뭐가 필요한지 모른다
33. 내가 정말로 해결안을 원하는지 보지 못하고 하는 일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