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옳다>를 읽고 배운 내용 실천하기 8
이 글은 지난 글에 이어 <당신이 옳다>의 3장. 공감 중에서 '마음은 언제나 옳다'와 '감정이 옳다고 행동까지 옳은 것은 아니다'를 읽으며 감명을 받은 부분을 인용하고 생각을 덧붙입니다.
목표를 분명히 하라.
내 공감을 포갤 곳은 그의 생각과 행동이 아니라 그의 마음, 즉 감정이다. 존재의 느낌이나 감정이 공감 과녁의 마지막 중심점이다.
실천을 하려고 해도 자꾸만 충조평판의 관성을 이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겨냥할 곳을 생각, 행동, 마음을 뭉뚱그리는 일이 실천을 더욱 어렵게 했다는 생각이 든다. 일단, 생각이나 행동에 대해 먼저 관심을 두기 이전에 그의 감정(저자는 마음과 감정을 동의어로 쓴다.)을 받아들이는 훈련을 해야 할 듯하다.
그렇구나. 한 때, 밈처럼 쓰였던 말인 '삐뚤어질 테다'라는 표현이 떠오른다.
자기 마음이 공감을 받으면 아이는 자기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 누가 말하지 않아도 빠르게 인정한다.
마음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 벌어지는 마음 상태를 보여주는 말이었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닫다니.
그와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그의 마음을 부정할 이유는 없다.
누군가의 행동과 생각이 그의 마음과는 별개라는 사실만 알아도 마음껏 공감할 수 있다.
내가 경청이 못하는 이유도 조급해서, 마음을 받아들이는 행위를 건너뛰어서 발생한 듯하다.
아이의 마음을 알기 전 까지는 그 상황의 전모를 파악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엄마는 미처 몰랐다.
아이와 있었던 일은 아니지만 낮에 대화에서 상대의 대화를 듣다가 말고, 마음을 받아들이기 전에 의견을 내놓았던 순간을 반성해야 했다.
아래 문장을 읽으니 낮의 일의 반성과 동시에 공교롭게 어제저녁 사람들에게 빙산의 일각 비유했던 사건이 떠올랐다.
그 순간 엄마에게 나(엄마)는 있지만 너(아들)는 없었다. 대화란 나도 있고 너도 있다는 전제에서 시작되는 것인데 그랬으니 엄마와 아들 사이에 정상적인 대화가 될 리 없다.
대화란 거대한 기저부를 갖는 빙산의 일각이 만나서 메시지를 교환하는 일이라 근본적으로 잘 안 된다고 말해놓고서 실행은 관성이 갇혀서 한 꼴이 되었다. 연습이 더 필요하다. 기술도 익힐 필요가 있고.
그래도 낮에 감정을 판단하지 않은 점을 잘했다고 스스로를 칭찬하고 싶다.
분노를 말할 수 있으면 분노로 폭발하지 않는다. 분노에 매몰된 그녀가 순간적으로 그 감정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분노가 전적으로 이해받고 수용됐다는 느낌 때문이다. 그녀 자신의 감정이 판단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감정은 판단 대상이 아니다.
사람의 감정은 항상 옳다. 사람을 죽이거나 부수고 싶어도 그 마음은 옳다. 그 마음이 옳다는 것을 누군가 알아주기만 하면 부술 마음도, 죽이고 싶은 마음도 없어진다. 비로소 분노의 지옥에서 빠져나온다.
이제 분명히 알겠다. (프로그래머의 말 습관으로 Immutable이 튀어나온다.) 감정은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다. 수정 불가능한 것이다.
공감 없이 하는 설득과 계몽하는 일에 대한 비유다.
힘만 들지 온 강의 얼음을 다 깰 수는 없다. 봄이 오면 강물은 저절로 풀린다. 공감은 봄을 불러오는 일이다.
3. 존재 증명을 위해 몸부림치는 그의 고통에 공감하기
7. 감정에 집중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