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을 차리는 독서의 시작
지난 글에 이어서 <대체 뭐가 문제야> 17장 '시험과 기타 퍼즐들'을 다루며 전과 같이 중요하게 느낀 점 세 가지를 묻고 따지는 글입니다.
'어디'라고 쓰고 '누구'라고 읽는다
맥락을 이해하기
시간 척도에 맞는 출제
저자는 앞서도 살펴본 포기말[1]을 다시 강조합니다.
문제는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저는 이 문장을 보면서 '어디'라고 쓰고 '누구'라고 읽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이유가 다음 다발말[2]에 담겨 있습니다.
박사 과정을 통과하기 위한 종합 능력 평가 시험을 치를 때 그것이 정말 '종합적'이라고 생각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매우 편협한 집단에 있는 소수의 사람들의 조그마한 머리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첫 단계는 그 과의 어떤 교수가 그 문제를 출제했고 채점하게 될 것인가를 유추해 내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학교에서 문제의 본질과 무관하게 행동하도록 훈련을 받은 듯합니다. 이를 단적으로 증명하는 듯한 포기말이 있습니다.
질문을 읽는 것은 다음과 같은 질문에 대한 답만 안다면 일종의 시간 낭비일 뿐이다.
누가 이 문제를 만들었는가? 그의 출제 의도는 무엇인가?
아직 부족하다면 다음 포기말이 이해를 도울 수 있습니다.
그들이 의지해야 할 단 하나의 단서, 즉 문제가 어디에서 온 것인가가 바람과 함께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매주 나오는 시험 문제를 놓치면 기말 시험의 단서를 잃게 된다는 설명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개발자라면 이를 레거시 코드에 적용해도 그대로 말이 됩니다. 조금 더 확대하면 <역사란,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이다>라는 명언에도 대응시킬 수 있습니다.
<역사란,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이다>라는 표현은 역사에서 맥락을 짚어내는 방법이라 할 수도 있습니다. 시대 상황에 따라, 주요 이해관계자에 따라 벌어진 현상을 해석해야 합니다. 아마도 그래야 불완전한 사실에 기초해서도 교훈을 얻을 수 있을 듯합니다.
다음 포기말을 읽을 때 머릿속에서 기계적으로 '5 whys'가 떠올랐습니다.
안타깝게도 '근원'은 문제 해결을 위한 핵심 요소들을 포함한다.
하지만, 체계적인 근본 원인 파악에 앞서 누군가의 욕망에 대해서도 떠올릴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주의해야 할 듯합니다.
더불어 앞서 '레거시 코드'를 맥락 이해가 어렵게 된 상황의 예로 떠올린 것을 다시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반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논문 쓰기가 떠올랐습니다. 새로운 것의 발견에 대해 쓰는 논문은 차곡차곡 레퍼런스를 쌓아서 엄밀함을 유지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음 다발말에서 주어진 시간의 규모에 따라 일은 전혀 다르게 해석된다는 점을 배웁니다.
명백한 것은 어떤 시험이든 주어진 시간 안에 문제를 풀 수 있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여러분이 선택한 방법이 제한된 시간을 훨씬 초과한다면, 그것이 아무리 좋은 방법이라도 던져 버리는 것이 현명하다.
앞으로 시험을 볼 일도 없고, 퍼즐에도 관심이 없기 때문에 내가 문제를 정의하는 상황에 대입해서 생각해 봅니다. 그랬더니 <동기부여를 일관성 있는 흐름으로 바꿀 수 있나?>에서 인용했던 그림이 생각납니다. 내가 하려던 일을 어느 정도의 시간을 두고 바라보느냐에 따라 그것은 그저 꿈일 수도 있고, 목적으로 다루거나 계획을 수립해야 할 수 있다는 교훈을 얻습니다.
[1] <한국말 말차림법>에서 제안한 문장에 대한 토박이 말입니다. 왜 포기말인지는 <언어에 대한 일반이론>에서 일부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2] <한국말 말차림법>에서 제안한 구절에 대한 토박이 말입니다. 왜 다발말인지는 <언어에 대한 일반이론>에서 일부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16회 이후 링크만 표시합니다.)
17. 변화 속에서 차원을 달리할 수 있게 해 주는 로드맵
20. 허상의 문제로 다루는 힘 그리고 유머라는 지능의 날개
21. 누구를 불편하게 할 것인가? 그것이 내 문제라면?
22. 가치를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23. 고통을 다루는 방법: 욕심과 고통과 임자를 연결시키기
25. 메타 인지, 본성의 무관심성 그리고 실천적으로 바라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