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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영회 습작 May 28. 2024

한국인은 상황을 즐길 때 '살맛 난다'라고 말한다

묻따풀 2024: 함께 말 차리기

지난 글에 이어  <한국인에게 나는 누구인가> 책의 '08. 보다' 내용을 묻고 따지고 풀어봅니다. 지난 시간에 애써 그린 그림을 먼저 불러온 후에 계속합니다.


맛남이 만남을 따라 일어나는 놀라운 현상

만남과 맛을 연결하는 매력적인 다발말[1]입니다.

만나는 일이 일어나게 되면, 맛난 일이 따라서 일어나게 된다. 만남과 맛남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이것이나 저것이 그렇게 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불러온 그림을 써먹어 봅니다. 만남이 맛을 낳습니다. 그 순간의 일을 칭하는 말이 맛남이네요. 와~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만남과 맛남의 쌍이라니!

시장할 때 음식을 마주하면 군침[2]이 도는 일과 그대로 이어집니다.


두 번째 포기말[3]은 대번에 이해가 되지 않는데, 다음 포기말이 이해를 돕습니다.

이런 까닭에 사람은 길을 가다가 바위를 만날 수 있지만, 바위는 다가오는 사람을 만날 수 없다.

마주할 수 있어야 볼 수 있고, 적어도 맛을 느낄 수 있는 지각이 있는 임자라는 주체가 한쪽에는 있어야 맛남도 있겠죠.


흥을 느끼는 재미에 포함되어 있는 맛()

다음 포기말은 어찌나 매력적인지 저에게 퀴즈를 푸는 자세로 돌변시켰습니다.

한국인은 만남의 과정이나 결과에서 생겨나는 맛에 이끌려서 어떤 것을 보거나 보지 않으려고 한다.

저는 바로 흥미가 어떤 한자로 되어 있는지 찾아보았습니다. 빙고! 興(일어날 흥)과 (맛 미)를 씨말로 합니다. '흥을 느끼는 재미.'라고 하지만 알맹이를 포함하는 씨말에는 분명 味(맛)을 담고 있습니다. 한자 풀이를 보면 그 의미가 더욱 분명해지는 듯합니다.

흥미의 풀이에 나온 '재미'는 어떨까요? 사전을 찾아보니 한자어로 된 말이 아닙니다. 어원은 '滋味'라고 표기되어 있습니다. 한자 사전을 찾아보니 잘 쓰지 않는 말이지만, (맛 미)자를 포함하고 있고 다음 풀이를 지닙니다.

자양분(滋養分)이 많고 좋은 맛. 또는 그러한 음식(飮食).


한국인은 상황을 즐길 때 '살맛 난다'고 말한다

흥미와 재미의 낱말을 따져 보지 않았다면 과하다고 여길 수 있는 포기말입니다.

한국인이 살아가는 것은 오로지 맛을 보는 것에 달려 있다.

그리고 금세 머릿속에서 '살맛 난다'라는 매듭말[4]을 떠올릴 수 있고, 구글링을 해 보면 수많은 결과 페이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살맛 난다'의 영어 표현을 묻는 게시판을 보다가 한국인은 상황을 즐길 때 '살맛 난다'고 말한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심지어는 살맛이 사전에도 낱말로 등록되어 있네요.

세상을 살아가는 재미나 의욕.


<마주해야 보인다, 본 것에 마음이 가면 녀긴다>에서 따졌던 것을 떠올리는 포기말입니다.

한국인이 '나는 산을 본다'라고 말할 때, 보는 것은 나라는 임자가 산이라는 대상을 보는 것을 말한다.

또 다른 '본다'에 대한 설명입니다.

사람들이 욕심에서 비롯하는 어떤 일을 말할 때에는 '나는 ~을(를) 본다'라는 방식으로 말하고자 한다.

'보다'에 대한 풀이를 보면 '~을 보다' 형태로 쓰는 것만 해도 풀이가 26개 갈래입니다.


다시 책으로 돌아가 봅니다.

'나에게 산이 보인다'는 산이라는 대상이 나에게 더욱 뚜렷이 드러나고 있음을 말한다.

<마주해야 보인다, 본 것에 마음이 가면 녀긴다>에서 손때를 묻힌 그림을 인용합니다.


'본다'와 '보인다'의 미묘한 차이를 그간 인지하지 못하고 써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임자가 대상을 보고자 하는 뜻보다는 대상이 임자에게 드러나서 보게 되는 뜻이 더욱 강하다. 이런 까닭에 사람은 욕심에서 비롯하지 않은 어떤 일을 말할 때는 '나는 ~(이)가 보인다'라는 방식으로 말하고자 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같은 현상도 서로 다른 일로 인식할 수 있으니 차리기>를 쓴 덕분에 그때 인용한 그림마저 저를 돕습니다. 좌측의 여성은 벌을 보면 '살맛'이 날 가능성이 높으니 벌을 의식적으로 보려고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반면에 우측의 남성은 벌을 두려워하는 지라 벌이 '보이면' 피하기 바쁠 것이라고 책에서 방금 배운 내용을 풀어볼 수 있습니다.


주석

[1] <한국말 말차림법>에서 제안한 구절에 대한 토박이 말입니다. 왜 다발말인지는 <언어에 대한 일반이론>에서 일부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2] 습관적으로 다룬 군침에 대해서도 사전을 찾아봅니다.

공연히 입안에 도는 침. ≒단침, 헛침.

그런데 왜 '군'침일까요? 최봉영 선생님께 한번 여쭤 보아야겠습니다.

[3] <한국말 말차림법>에서 제안한 문장에 대한 토박이 말입니다. 왜 포기말인지는 <언어에 대한 일반이론>에서 일부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4] <한국말 말차림법>에서 제안한 어구에 대한 토박이 말입니다. 왜 매듭말인지는 <언어에 대한 일반이론>에서 일부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지난 묻따풀 2024: 함께 말 차리기 연재

(64회 이후 링크만 표시합니다.)

64. 한국인과는 다른 영국인과 중국인의 우리

65. 누리에 때와 틈과 함께 나는 낱낱의 존재

66. 한국말 살다, 살음, 살기, 삶, -살이와 살리다

67. 사람도 해를 닮아 살을 뻗어나가는 것이 삶이다

68. 마음에서 낼 수 있는 힘을 바탕으로 한 살이

69. 욕심과 다스림: 추진력인 욕심을 바로 알기

70. 햇살처럼 펼쳐 나가는 사는 '맛' 그리고 새로운 독서법

71. 욕심이라는 원동력 그리고 마음을 갈고닦는 일

72. 느낌에서 비롯하여 무엇을 어떤 것으로 풀어 알아봄

73. 느낌을 만든 알음이 엮이면서 맥락을 형성하여 앎이 된다

74. 우리는 숨을 쉬는 유기체이고, 동시에 욕망하는 인간이다

75. 마주해서 보면 느끼게 되고, 이를 헤아리면 맛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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