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따풀 2024: 함께 말 차리기
지난 글에 이어 <한국인에게 나는 누구인가> 책의 '08. 보다' 내용을 묻고 따지고 풀어봅니다.
작년에 <사람이 눈으로 무엇을 보는 것>을 쓰며 익숙해졌어도 다시 살펴보니 또다시 신기하게 느껴지는 포기말[1]입니다.
한국인은 사람이 혀로써 사물과 만나는 것을 '보다'라고 말할 뿐만 아니라 귀, 코, 눈, 손, 항문, 성기 따위로써 다른 사물과 만나는 것도 모두 '보다'라고 말한다.
예외적인 상황을 통해 특징을 포착하는 예시가 이어집니다.
한국인은 사람이 항문으로 똥을 누는 것을 대변을 '보다'라고 말하고, 음경이나 음부로 오줌을 누는 것을 소변을 '보다'라고 말한다.
다음 다발말[2]을 볼 때는 나도 모르게 '맛보다'가 떠오릅니다.
한국인이 몸과 마음으로 어떤 것을 보는 것은 어떤 것을 경험하는 것을 말한다. 경험이란 어떤 일의 과정과 결과에 따르는 맛을 느끼고 아는 것을 말한다.
'맛보기'를 키워드로 구글링 해 보면, 혀로 맛보는 것뿐만 아니라 눈으로 보는 맛보기 사례가 많음을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런 현상은 다른 감각 기관을 통한 느낌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듣는다'는 사람이 소리를 듣는 동작을 말하는 반면에 소리를 '들어보다'는 사람이 소리를 듣는 동작의 과정과 결과에 따르는 맛을 느끼고 아는 것까지 아울러서 말하고 있다.
감각 기관에서 생각으로 연결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니 '녀김'의 과정임을 알게 되고, 어제 페북에서 읽은 김양욱 님의 글이 떠오릅니다.
무엇을 보아 늧을 느껴 앛으로 여겨 알게 된다. 느닷 이라는 말이다.
'느닷'을 가만히 보면 늧에서 앛을 찾아서 내가 알고 있는 무언가와 연결하는 일이 '보다'라는 말이란 생각이 들게 됩니다.
앞서도 '맛보다'로 자연스럽게 떠올린 한국말 경험과 그대로 이어지는 포기말입니다.
한국인이 몸과 마음으로 어떤 것을 경험하는 것은 혀로써 어떤 것의 맛을 보는 것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런데 왜 그럴까요?
태어나자마자 어머니의 젖을 맛있게 빨아먹음으로써 살아가는 데 필요한 힘을 낼 수 있다.
태어난 초기부터 생명의 젖줄을 통해 가치 판단하는 통로가 혀가 되었겠네요. 굉장히 설득력 있는 설명입니다. 헤아리다가 '혀로 알다'에 준하는 말이라고 쉽게 여겨지는 다발말입니다.
한국인은 혀로써 어떤 것의 맛을 가르고 가리는 것을 '헤아리다'라고 말한다. '헤아리다'는 혀와 알다에 바탕을 둔 낱말로서 사람이 혀로써 이러한 맛과 저러한 맛을 알아서 가르고 기르는 것을 말한다. 이는 한국인이 어떤 것을 느끼고 아는 바탕을 보는 것에다 두고 있음을 말한다.
반면에 사전의 풀이는 역시 빈곤합니다.
「3」 【-ㄴ지를】 짐작하여 가늠하거나 미루어 생각하다.
결국 잊혀 가는 '헤아리다'에 얽힌 사정을 오직 이 책에서 보고 있다고 헤아릴 수 있습니다. 그중에 '혀다'는 대표적인 사어(死語)라고 하겠습니다.
한국인은 '입맛이 당긴다', '구미가 당긴다', '입맛이 끌린다'고 말할 때, 당기고 끌리는 것을 옛날에는 '혀다'라고 말하였다. <중략> '혀다'는 사람이 어떤 것을 끌거나 당기는, 곧 혀는 일이 혀에서 비롯함을 말하고 있다. 한국인은 혀를 빌려서 사람이 어떤 것을 끌거나 어떤 것에 끌리는 것을 풀어내고 있다.
다음 포기말은 '헤아리다'에 대한 사전의 대표 풀이에 대한 배경 설명으로 볼 수 있는 내용입니다.
한국인이 '숫자를 세다', '생각을 헤아리다'라고 말할 때, 세거나 헤아리는 것을 옛날에는 '혀다'혀이다'혜다'헤다'라고 말하였다.
다음 포기말은 '혀다'에 대해 결론을 지어주는 듯하네요.
'혀다'는 사람이 어떤 것을 세거나 생각하거나 헤아리는 일이 혀에서 비롯함을 말하고 있다.
'혀다'를 다루고 다음 말을 보니 비로소 앞서 '맛 보다'라고 마음속에서 나도 모르게 나온 속말의 기원을 알 수 있습니다.
한국인은 사람이 하는 모든 것을 보는 것으로 표현한다.
다음 포기말을 읽을 때도 비슷하게 머릿속에서 '앞으로 지켜보겠어'라고 속말을 하며 예시를 떠올립니다.
한국인이 어떤 것을 보는 일은 맛을 알아가는 과정으로써 일어난다.
보는 일은 결국 맛을 알아가는 과정이란 생각이 듭니다.
맛은 입자가 어떤 것을 만나본 것의 알맹이이다.
이런! 알아본 것을 낱으로 표현하면 '앛'일까요?
이제 맛과 만나다가 만나는 지점입니다.
한국말에서 '만나다'와 '맛나다'는 뿌리를 같이한다고 볼 수 있다. <중략> 이때 '만나다'는 이것과 저것이 마주하여 나는 과정이나 상태를 가리키고 있다. 다음으로 '맛나다'는 이것과 저것이 마주하여 난 것의 결과로써 맛이 생겨나는 것을 말한다.
굉장히 흥미로운 설명입니다. '맛'과 '만나다'가 음운적 동일성을 기준으로 의미를 확장했다는 점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결과입니다. 그런데 인용문은 더 나아가 '쪽인 나'로 바라보면 '變-달라짐, 易-바뀌어짐, 化-되어짐'라는 유기체의 작용이 보입니다.
다만, 뚜렷한 생각이 차려지지 않아서 손때를 묻혀 가며 차려 봅니다.
만남에 대한 내용이 조금 더 남았는데 이는 다음 글에서 풀어 봅니다.
[1] <한국말 말차림법>에서 제안한 문장에 대한 토박이 말입니다. 왜 포기말인지는 <언어에 대한 일반이론>에서 일부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2] <한국말 말차림법>에서 제안한 구절에 대한 토박이 말입니다. 왜 다발말인지는 <언어에 대한 일반이론>에서 일부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64회 이후 링크만 표시합니다.)
66. 한국말 살다, 살음, 살기, 삶, -살이와 살리다
70. 햇살처럼 펼쳐 나가는 사는 '맛' 그리고 새로운 독서법
72. 느낌에서 비롯하여 무엇을 어떤 것으로 풀어 알아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