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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영회 습작 May 13. 2024

한국말 살다, 살음, 살기, 삶, -살이와 살리다

묻따풀 2024: 함께 말 차리기

이번에는  <한국인에게 나는 누구인가> 책의 '05. 나와 나다' 내용에 대한 묻따풀은 잠시 보류하고, 지난 시간에 언급했던 최봉영 선생님의 페이스북 글 ⟪‘살다’와 ‘살리다’와 ‘사람’과 ‘살’⟫을 먼저 다뤄 봅니다.


한국말 살다, 살리다, 사람과 살의 어원

<한국사람에게 사람이란?>을 쓴 덕분에 살리다와 사람의 연관성은 익숙하지만, '살'도 바탕이 같다는 생각을 해 보지 못했습니다.

한국말에서 ‘살다’와 ‘살리다’와 ‘사람’과 ‘살’은 바탕을 같이 하는 말이다. ‘살다’라는 말에서 ‘살리다’라는 말이 생겨나고, ‘살리다’라는 말에서 ‘사람’이라는 말이 생겨난 것을 알 수 있다. 이를 바탕으로 사람들은 ‘살음’, ‘살기’, ‘살이’, ‘살림’, ‘살림살이’와 같은 말을 쓰게 되었다.

사전에서 살의 뜻을 살펴보면 이건 아니겠지 싶은 풀이가 먼저 등장합니다.

「1」 사람이나 동물의 뼈를 싸서 몸을 이루는 부드러운 부분.

다시 최봉영 선생님의 다발말[1]을 보겠습니다.

그리고 ‘살다’와 ‘살리다’라는 말을 뒷받침하는 기틀로서 ‘살’이라는 말이 자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때 ‘살’은 ‘햇살’, ‘빛살’, ‘물살’, ‘화살’에서 볼 수 있는 ‘살’로서 어떤 것이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살다’와 ‘살리다’는 무엇에서 ‘살’이 뻗어나가는 일을 바탕으로 무엇이 어떤 것으로 살아가는 일을 뜻한다.

앞서 살펴본 사전에서 다른 단어로 구분된 '살'의 뜻 중에서 위의 용례에 해당하는 풀이를 찾을 수 있습니다.

「5」 ((일부 명사 뒤에 붙어)) 해, 볕, 불 또는 흐르는 물 따위의 내비치는 기운.

'살'이 뻗어나가는 일과 어떤 것으로 살아가는 일을 대응시키는 문장(포기말)을 보면 지난 시간에 살펴본 포기말[2]들을 떠오르게 합니다.

존재가 불, 열, 싹, 내, 맛, 멋, 말 따위로 드러나는 것은 생명의 드러남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 한국말에서 사람은 ‘살다’, ‘살리다(살+리+다)’에 바탕을 두고 있는 말이다. 사람은 온갖 것이 가진 살리는 힘을 살려서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임자를 말한다.

더불어 日(날 일)자 풀이에서 눈에 띈 빛이 '살'로 번져 나가는 양상도 떠오릅니다.


두 가지 갈래의 살다와 세 가지 갈래의 겿씨말

다시 최봉영 선생님 글을 봅니다.

1. ‘살다’
한국말에서 ‘살다’는 두 가지 것을 풀어내는 말이다. 하나는 목숨을 가진 무엇이 살아가는 것을 풀어내는 말이고, 다른 하나는 불이나 불씨가 살아 있는 것을 풀어내는 말이다.
가. 살다: 목숨을 가진 무엇이 살아가는 일을 말함.
나. 불이 살다: 불이 사르는 일을 바탕으로 살아 있는 것을 말함.

이어서 최봉영 선생님은 살다의 쓰임에 대한 갈래를 셋으로 나눠서 설명합니다. 이때 말의 구실 역할을 하는 '겿씨말'이 마치 전자가 원자의 성격을 바꾸듯이 씨말의 의미와 조합을 변주해 나갑니다.

예를 볼까요?


첫 번째는 겿씨말 '에'가 살다와 함께 쓰이는 경우에 대한 설명입니다.

㉠ -에 살다 : 목숨을 가진 무엇이 누리(:누르고 눌리는 일이 일어나는 곳=空間/space)에 자리한 어떤 곳에서 살아가는 일을 말함.
# <그는> <부산에> <산다/살았다/살 것이다>.
# <그는> <남한에> <산다/살았다/살 것이다>.

두 번째는 겿씨말 '를'이 살다와 함께 쓰이는 경우에 대한 설명입니다.

㉡ -를 살다 : 목숨을 가진 무엇이 뉘(:누르고 눌리는 일이 일어나는 곳에서 끊임없이 누는 일이 일어나는 때=時間/time)에서 어떤 때를 살아가는 일을 말함. 한국사람은 목숨을 가진 무엇이 어떤 곳에 자리해서 어떤 때를 살아가는 것을 ‘누리다’라고 말함.
# <그는> <예순 해를> <살았다>. : 그는 예순 해를 누리는 삶을 살았다.
# <그것은> <닷새를> <살았다>. : 그것은 닷새를 누리는 삶을 살았다.

둘을 보면 다시 한번 시공간을 살아가는 삶의 원형을 생각하게 됩니다.


마지막인 세 번째는 겿씨말 '게'가 살다와 함께 쓰이는 경우에 대한 설명입니다.

㉢ -게 살다 : 목숨을 가진 무엇이 어떤 곳에서 어떤 때를 누리며 어떻게 살아가는 것을 말함.
# 그는 <즐겁게/어렵게/힘들게/-> <산다/살았다/살 것이다>.
# 그는 <행복하게/불행하게/풍족하게/가난하게/-> <산다/살았다/살 것이다.>  

겿씨말 '게'를 사용하여 포기말로 나아가면 '꼴됨'을 푸는 구실로 의미가 더해집니다.


‘살음’과 ‘살기’와 ‘삶’과 ‘-살이’

계속 선생님의 글을 봅니다.

사람들은 무엇이 ‘사는 일-살아오고 살아가는 일’을 바탕으로 ‘살음’, ‘살기’, ‘삶’, ‘-살이’를 말한다.  

사는 일을 뜻하는 마디말들입니다.

가. ‘살음’은 목숨을 가진 무엇이 살아가는 일의 흐름을 말함.
# <그는> <평생을> <즐겁게> <살음>.

흐름을 나타낸다? 삶도 비슷한 듯하다는 생각이 들어 먼저 봅니다.

다. ‘삶’은 목숨을 가진 무엇이 살아가는 일의 흐름과 보람을 싸잡아서 말함.
# <그는> <행복한> <삶을> <살았다>.

삶은 흐름과 보람을 싸잡아서 말할 때 쓴다고 합니다. 반면에 '살기'는 보람만을 말한다고 합니다.

나. ‘살기’는 목숨을 가진 무엇이 살아가는 일의 보람을 말함.
# <그는> <즐겁게> <살기를> <바랐다>.  

마지막으로 살이입니다.

라. ‘-살이’는 목숨을 가진 무엇이 살아가는 일의 모습을 말함.
# <그는> <한동안> <살림살이가> <고달팠다>.
# <그는> <한동안> <더부살이를> <해야 했다>.  

살이는 살아가는 모습이네요.


한국말에서 '살리다'

이번에는 '살리다'입니다.

한국말에서 <살리다>는 <살+리+다>로서 누가 어떤 것이 가진 살리는 힘을 살려서 무엇이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이를테면 염소 어미는 젖이 가진 살리는 힘을 살려서 염소 새끼가 젖을 먹고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한다.

그리고 살리는 일은 두 가지 갈래가 있다고 합니다.

누가 어떤 것으로써 무엇을 살리는 일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누가 어떤 것으로써 무엇을 살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누가 어떤 것이 가진 살리는 힘을 살려 쓰려고 어떤 것으로써 무엇을 짓거나 만드는 따위의 일을 하는 것이다.   

먼저 '누가 어떤 것으로써 무엇을 살리는 것'도 두 가지 있다고 합니다.

누가 어떤 것으로써 무엇을 살리는 것은 두 가지인데, 하나는 제가 저를 살리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제가 남을 살리는 것이다.

첫 번째 갈래에 대한 설명입니다.

㉠ 제가 어떤 것으로써 저를 살리는 일.
목숨을 가진 모든 것은 어떤 것으로써 제가 저를 살리는 일을 바탕으로 살아간다. 그런데 제가 저를 살리는 일은 너무나 마땅한 일이기 때문에 굳이 살리는 일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특별한 경우에는 제가 저를 살리는 일이라고 말한다.   
# <그는> <얼음구덩이에> <빠진> <저를> <온힘을> <다해서> <간신히> <살렸다>.

두 번째 갈래에 대한 설명입니다.

㉡ 제가 어떤 것으로써 남을 살리는 일.
목숨을 가진 것은 필요에 따라서 남을 살리는 일을 하고자 한다. 제가 남을 살리는 일은 제가 저를 넘어서 남에게 베푸는 일이기 때문에 두드러진 일이 될 수 있다. 사람들은 남을 살리는 일을 크게 여겨서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 <그는> <얼음구덩이에> <빠진> <친구를> <온힘을> <다해서> <간신히> <살렸다>.  

다음으로 '누가 어떤 것이 가진 살리는 힘을 살려 쓰려고 무엇을 짓거나 만드는 따위의 일을 벌이는 것'을 지칭하는 살리다의 뜻입니다.

누가 어떤 것이 가진 살리는 힘을 살려 쓰려고 어떤 것을 가지고 무엇을 짓거나 만드는 일을 벌이려면 어떤 것이 가진 살리는 힘, 어떤 것이 가진 살리는 힘을 살려 쓰는 방법, 어떤 것이 가진 살리는 힘을 살려 쓸 수 있도록 일을 벌이는 것 따위를 밝게 알고서 이룰 수 있어야 한다. 사람은 말로 생각을 펼쳐서 온갖 것을 깊고 넓게 알아볼 수 있는 까닭으로 이런 일을 크게 벌일 수 있다.  
# 사람은 콩이 가진 살리는 힘을 살려 쓰려고 콩을 쑤어서 두부를 만들었다.
# 사람은 쇠가 가진 살리는 힘을 살려 쓰려고 쇠로 김을 매는 호미를 만들었다.
# 사람은 인삼이 가진 살리는 힘을 살려 쓰려고 인삼으로 병을 고치는 약을 만들었다.
# 사람은 소리가 가진 살리는 힘을 살려 쓰려고 소리로 뜻을 주고받는 말을 만들었다.

내용이 길어져 다음 편까지 두 편으로 나눕니다.


주석

[1] <한국말 말차림법>에서 제안한 구절에 대한 토박이 말입니다. 왜 다발말인지는 <언어에 대한 일반이론>에서 일부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2]  <한국말 말차림법>에서 제안한 문장에 대한 토박이 말입니다. 왜 포기말인지는 <언어에 대한 일반이론>에서 일부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지난 묻따풀 2024: 함께 말 차리기 연재

(61회 이후 링크만 표시합니다.)

61. 온인 나로 또는 쪽인 나로 마주하기

62. 닫힌 우리에서 유기체들의 조직으로

63. 우리의 네 갈래 그리고 남을 님으로 높이는 일

64. 한국인과는 다른 영국인과 중국인의 우리

65. 누리에 때와 틈과 함께 나는 낱낱의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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