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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영회 습작 May 16. 2024

마음에서 낼 수 있는 힘을 바탕으로 한 살이

묻따풀 2024: 함께 말 차리기

다시 돌아가서 <누리에 때와 틈과 함께 나는 낱낱의 존재>에 이어  <한국인에게 나는 누구인가> 책의 '05. 나와 나다' 내용을 묻고 따지고 풀어봅니다.


해와 살과 나이

두 편의 글에 대한 기억을 잊고 책으로 맥락을 전환하려고 이전 기록을 더듬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바로 <누리에 때와 틈과 함께 나는 낱낱의 존재>에서 인용했던 다음 포기말[1] 때문입니다.

생명은 해의 힘에 기대어서 나이인 살을 먹어간다. 해는 본디 ㅎ+ · +ㅣ, 곧, '하는 이' 또는 '하게 하는 이'로서 모든 것이 일어나게 하는 바탕과 같다.

日(날 일) 자 풀이에 등장하는 이미지가 의미를 살리는 일에 도움이 되는 듯하여 재인용합니다.


나이는 쌓여간 혹은 지나간 살이다

<사람도 해를 닮아 살을 뻗어나가는 것이 삶이다>를 쓰며 '살이'와 그 주체 '사람'과 '살'의 의미를 떠올렸는데, 거기에 더하여 이번에는 '나이'도 연결되니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 다시 <한국말 '나이'의 바탕에 있는 엄청난 비밀>을 소환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제가 비밀이라 칭한 내용은 바로 다음 다발말[2]입니다.

나이는 나의 모든 것을 통째로 담아내는 말이다. 지금의 나는 흘러가는 시간 속에 있는 한 순간의 나를 말할 뿐이고, 나의 모든 것은 나이에 담겨 있다. <중략> '나고 나서'에서 앞의 '나고'는 처음에 난 것을 말하고, 뒤의 '나서'는 처음에 난 뒤로 이제까지 이어져 온 과정을 말한다. <중략> '나서'와 '나다'와 '나'와 '나이'가 하나로 엮여 있음을 잘 보여준다.

갑자기 흔히 하는 '너 몇 살이야?'라는 말도 범상치 않게 느껴집니다.


이제는 다시 책으로 돌아갑니다.

내가 처음에 몸으로 만들어질 때, 그 속에 마음의 씨앗이 담겨 있어서 몸과 함께 마음도 자라나면서 지각하는 마음과 생각하는 마음을 차례로 갖추게 된다.

임자로서 정신화[3]가 시작되는 절차를 설명한 듯 느껴집니다. 우연적인 해석이지만 다음과 같은 질문이 솟아납니다.

씨앗에 담긴 힘을 밖으로 살려내면 '살'이 되는 것일까?


마음에서 낼 수 있는 힘을 바탕으로 한 살이

다시 책으로 돌아갑니다.

사람은 몸과 마음에서 낼 수 있는 힘을 바탕으로 온갖 것들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온갖 것을 갈래를 쳐서 살펴보겠습니다. 말을 이용하여 마음에 생각들을 만들 수 있습니다.

말로써 마음에 갖가지 생각들, 곧 나비, 별, 개, 돼지, 가다, 오다, 살다, 죽다. 힘, 인력, 척력, 중력, 좋음, 싫음, 맞음, 틀림, 옳음, 그름, 바름, 굽음, 끝이 있음, 끝이 없음, 전생, 내생, 천당, 지옥과 같은 것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오랫동안 묻따풀 한 이유로 자연스럽게 한국말 '녀기다'가 다음 이미지와 함께 떠오릅니다.

두 번째 갈래는 생각을 바탕으로 물질을 다루어 만드는 일입니다.

생각을 바탕으로 물질을 다루어서 옷, 그릇, 가옥, 도로, 자동차, 비행기, 전화, 인터넷과 같은 물건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두 갈래의 행위를 통칭하는 소제목을 붙이려고 시도했더니 이들이 모두 '살이'에 담긴다는 사실을 알고 놀라게 됩니다. 더구나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로 구분하는 제 전공 분야의 지식도 굉장히 편협한 생각이란 점 역시 분명하게 깨닫습니다. 결국 마음속의 생각을 바탕으로 물질로 만들어 낸다는 점에서는 별다를 것이 없습니다.


마지막 갈래입니다.

끝없이 뻗어 나가는 생각을 바탕으로 온갖 재주를 기르고 쓸 수 있게 되면서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만들 수 있는 강력한 힘을 가지게 되었고, 보이는 것을 넘어서 보이지 않는 것이나 볼 수 없는 것까지 만들어 맛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이 글을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지난밤 제 페이스북을 도배했던 GPT-4o 시연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유일신을 믿는 종교인들은 불편할 수 있겠지만, 신이 인간을 만든 것이 아니라 실은 그 반대라는 견해를 펼치는 분은 최봉영 선생님 만이 아닙니다.

모든 것을 다할 수 있는 하느님이라는 존재를 만들어 맛을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일반 인공 지능이라고 하는 AGI 기술을 향한 인류의 도전을 보고 있자면, 하느님이라는 존재 중에 일부는 직접 구현해 보려는 이들이 있는 듯합니다.


마지막으로 하나의 포기말만 더 살펴보고 다음 글로 나머지 묻따풀을 넘깁니다.

한국인은 '나다', '낳다', '내다'를 바탕으로 일구어놓은 여러 가지 낱말들과 중국인이 생生과 출出을 바탕으로 일구어 놓은 낱말들을 가져다가 어울러 쓴다.

영어를 함께 쓰는 우리의 지정학적 위치에 어울리는 유연한 말 태도는 과거에도 다르지 않았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깨닫게 됩니다.


주석

[1] <한국말 말차림법>에서 제안한 문장에 대한 토박이 말입니다. 왜 포기말인지는 <언어에 대한 일반이론>에서 일부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2] <한국말 말차림법>에서 제안한 구절에 대한 토박이 말입니다. 왜 다발말인지는 <언어에 대한 일반이론>에서 일부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3] 정신화란 표현은 <월말김어준> 2024년 4월호에 박문호 박사님께 배운 표현인데,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박문호學의 시작>의 새로운 글을 통해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지난 묻따풀 2024: 함께 말 차리기 연재

(61회 이후 링크만 표시합니다.)

61. 온인 나로 또는 쪽인 나로 마주하기

62. 닫힌 우리에서 유기체들의 조직으로

63. 우리의 네 갈래 그리고 남을 님으로 높이는 일

64. 한국인과는 다른 영국인과 중국인의 우리

65. 누리에 때와 틈과 함께 나는 낱낱의 존재

66. 한국말 살다, 살음, 살기, 삶, -살이와 살리다

67. 사람도 해를 닮아 살을 뻗어나가는 것이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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