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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영회 습작 May 14. 2024

사람도 해를 닮아 살을 뻗어나가는 것이 삶이다

묻따풀 2024: 함께 말 차리기

지난 시간에 이어서 최봉영 선생님의 페이스북 글 ⟪‘살다’와 ‘살리다’와 ‘사람’과 ‘살’⟫을 다루며 묻고 따지고 풀어 봅니다.


순리대로 살리는 힘으로 살아가는 사람

'4. 사람'부터 이어갑니다.

한국말에서 ‘사람’의 옛말은 ‘사라ᆞ감’이고, ‘살리다’의 옛말은 ‘사라ᆞ다’이다. ‘사라ᆞ감(사람)’은 ‘사라ᆞ는(살리는)’ 일을 바탕으로 살아가는 일을 하는 임자를 뜻하는 말이다.

가운데 아를 빼고 '사라감'이라고 읽어 보면 살아가는 행위를 뜻하는 '삶'과 같은 말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주체를 뜻하는 데 쓰여도 뜻이 통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 포기말 단위로 보겠습니다.

‘사람’은 온갖 것이 가진 살리는 힘을 살려 쓰기 위해서 갖가지 것을 짓거나 만드는 따위의 일을 벌여서 살아간다.

<한국사람에게 사람이란?>을 쓸 때 익힌 라임이 그대로 살아납니다.

사람은 콩이 가진 힘을 살려서 두부를 만들고, 쇠가 가진 힘을 살려서 호미를 만들고, 인삼이 가진 힘을 살려서 약을 만들고, 소리가 가진 힘을 살려서 말을 만들어서 살아가는 일에 쓴다.

라임이란 '살려서', '사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는 리듬을 칭합니다. 놀랍게도 원병묵 교수님의 페북에서 발견한 삽화와도 연결할 수 있을 듯합니다. 사람이 지혜를 발휘하면 억지로 욕심을 부리는 대신에 순리대로 힘이 흐르는 방향으로 주변의 다른 쪽을 살릴 수 있도록 살아갑니다.


막강한 허구의 힘이나 허상의 힘을 운반하는 언어

다음 포기말을 읽을 때에서 다른 책들을 읽으며 얻은 생각이 결합합니다.

사람은 온갖 것이 가진 살리는 힘을 살려서 문화를 가꾸고 문명을 일구는 일을 해왔다.

이를 테면 <대체 뭐가 문제야>를 읽고 <허상의 문제로 다루는 힘 그리고 유머라는 지능의 날개>를 쓴 덕분에 살리는 힘 중에서 '허상의 문제로 다루는 힘'이 막강하다는 사실을 떠올립니다.

그 문제를 허상의 문제로 전환하여, 그 상황을 다양한 각도로 바라봄으로써 우리 자신을 문제에서 해방시킬 수 있는 아이디어들을 떠올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또한, 허상과 허구[2]가 음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문제의 본질, 허상의 문제 그리고 유머 감각>을 쓰며 인용했던 <사피엔스>의 한 구절도 떠올려 다시 인용합니다.

우리 언어의 진정한 특이성은 <중략>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는 능력에 있다. <중략> 인지 혁명 덕분에 호모 사피엔스는 이렇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사자는 우리 종족의 수호령이다." 허구를 말할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사피엔스가 사용하는 언어의 가장 독특한 측면이다. <중략> 원숭이를 설득하여 지금 우리에게 바나나 한 개를 준다면 죽은 뒤 원숭이 천국에서 무한히 많은 바나나를 받게 될 거라고 믿게끔 만드는 일은 불가능하다. <중략> 허구 덕분에 우리는 단순한 상상을 넘어서 집단적으로 상상할 수 있게 되었다.


사람은 목숨이 끊어질 때까지 끊임없이 살아간다

다음 포기말을 읽다 보면 '끊임없이'는 분명하지만 '살아가는 일'을 하는 것일지 의문이 듭니다.

사람은 목숨이 끊어질 때까지 끊임없이 살아가는 일을 한다.

또다시 일상(日常)에 대해 생각하던 때가 떠오릅니다. 그때 썼던 글을 찾아보니 <일상은 단편이 아니라 선물처럼 주어지는 시간의 연속이다>에 썼던 표현 중에 '감정을 지켜보며 순간을 운전하기'가 눈에 띕니다. 마음의 소리를 듣다 보면 '살아가는 일'을 하게 되는 것일까요?


다시 최봉영 선생님 글로 돌아갑니다.

한국사람은 사람이 살아가는 일을 하는 것을 크게 두 가지로 말해왔다. 하나는 <사람은 –고 산다>라고 말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사람은 –면서 산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고 산다'가 숨 쉬고 산다와 밥을 먹고사는 일 두 가지로 표현된 점이 어색합니다.

가. 한국말에서 <사람은 –고 산다>는 사람이 살아가는 온갖 일을 대표하는 말이다. 사람들에게 “사람은 어떻게 사느냐?”라고 물으면 <사람은 –고 산다>라고 답한다. 사람들이 <사람은 –고 산다>라고 말할 때, <-고 산다>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사람이 숨을 쉬고 사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사람이 밥을 먹고사는 일>이다.  

생각해 보면 당연하게 중요한 일이지만, 너무나 당연해서 어딘가 허전한 느낌이 듭니다.

# 사람은 숨을 쉬고 산다 : 사람은 숨을 쉬어야 살아가는 까닭으로 사람들은 “숨 좀 쉬자.”, “숨 좀 쉬고 살자.”라고 말한다.

숨은 살려면 반드시 쉬어야 하는 숨을 넘어서 <여유를 만들어, 자신에게 여유를 주라>에 썼던 '여유'[3]까지 의미하는 듯합니다. 이제 와 돌아보니 여유(餘裕)가 차리는 틈을 만들어 준다는 생각이 듭니다.


둘 다 사는데 필수적인데 무슨 차이가 있을까요?

# 사람은 밥을 먹고 산다: 사람은 밥을 먹어야 살아가는 까닭으로 사람들은 “밥 좀 먹자.”, “밥 좀 먹고살자.”라고 말한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숨을 쉬는 데에는 초나 분 단위 시간이 필요하지만, 밥을 먹기 위해서는 수십 분 이상의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끊임없이 살아가는 일의 다양한 양상

두 번째인 '~면서 산다'를 설명하는 다발말[4]을 봅니다.

나. 한국말에서 <사람이 –면서 산다>는 사람이 살아가면서 벌이는 온갖 일을 담아내는 말이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벌이는 온갖 일을 <사람은 –면서 산다>와 <나/너/그/우리/남은 –면서 산다>에 담아서 이렇게 또는 저렇게 말한다.  

평소 예민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던 '~고'와 '~면서'이 구실 차이를 깨달으면서 다시 한번 한국말의 고유한 겿씨말의 힘을 떠올립니다. 제 마음을 읽은 듯이 최봉영 선생님의 예시 문장이 쭉 이어집니다.

# <사람은> <일하면서> <산다>.
# <사람은> <일하면서> <힘들게> <산다>.
# <사람은> <먹고>, <자고>, <놀고>, <쉬면서> <산다>.
# <나는> <그냥> <먹고> <놀면서> 산다.
# <그는> <마냥> <부지런을> <떨면서> <산다>.

차분히 포기말들을 읽어 보는데 <내 일상을 차릴 알고리듬>에 마음이 있어서 그런지 앞서 의문을 가진 숨과 밥 대신에 다른 행동이 들어간다고 느껴집니다. 사는 일을 나누면 그 행위 중에서 숨 쉬고 밥 먹는 일 대신에 일하는 행동, 힘든 꼴 혹은 힘든 것을 참고 계속하는 행동, 자는 행동, 노는 행동 그리고 부지런을 떠는 행동 따위가 대입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살: 어떤 일이 일어나는 것 또는 어떤 일을 벌이는 것

마지막 '살'의 풀이입니다.

한국말 ‘살다’와 ‘살리다’에서 볼 수 있는 ‘살’은 빛살, 햇살, 물살, 화살 따위에서 볼 수 있는 ‘살’과 바탕을 같이 하고 있다. ‘살다’와 ‘살리다’에서 ‘살’은 어떤 일이 일어나는 것 또는 어떤 일을 벌이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어원으로만 존재하는 공통적인 패턴을 느낄 수 있도록 구글링으로 찾은 관련 이미지와 사전의 풀이를 같이 펼쳐 보았습니다.

다시 한번 <허상의 문제로 다루는 힘 그리고 유머라는 지능의 날개>를 효과를 톡톡히 봅니다.

이런 ‘살’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아보려면 “불이 살아 있다.”, “그는 불을 살렸다.”에서 ‘불’이 살아 있는 것과 ‘불’을 살리는 것이 어떤 것인지 살펴보아야 한다. 사람은 불에서 불빛이 나는 것을 보고서 “불이 살아 있다.”라고 말하고, 불에서 불빛이 나게 하는 것을 두고서 “불을 살린다.”라고 말한다. 이때 불에서 나는 불빛은 불이 살아 있는 것을 가름하는 잣대로 구실한다.

위 다발말에 나타나는 불이 눈에 보이는 불이 아닐 때가 많다는 생각을 분명하게 하게 됩니다.


그리고 다음 다발말에 이르러서야 드디어 '살'의 의미를 분명하게 알게 됩니다.

사람이 불에서 나는 불빛을 알아보는 것은 불이 빛의 살을 이루어서 사방으로 뻗어가기 때문이다. 사람은 불이 사방으로 뻗어가는 빛의 살을 보고서 불빛이 난다라고 말한다. 불이 빛의 살을 이루어서 사방으로 뻗어가면 불이 살아 있는 것이고, 불이 빛의 살을 이루어서 사방으로 뻗어가게 하는 것은 불을 살리는 것이다. ‘불이 살아 있다’와 ‘불을 살리다’에서 ‘불’과 ‘불빛’과 ‘빛살’은 하나로 꿰어 있다.

빛이나 불과 같은 힘이 뻗어나가는 모습을 조상들이 '살'이라고 불렀군요. :)


그러니 우리도 해를 닮아 살을 뻗어나가는 것이네요.

목숨을 가진 것이 살아가는 것은 살고자 하는 뜻이 삶의 살을 이루어서 사방으로 뻗어가기 때문이다. 그들은 삶의 살을 사방으로 뻗혀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갖가지 일을 해낸다. 그들은 살고자 하는 뜻을 좇아서 가질 것은 가지고, 버릴 것은 버려서 삶을 이어간다. 그들이 삶의 살을 뻗힐 수 있으면 ‘살아 있다’라고 말하고, 삶의 살을 뻗힐 수 있게 만드는 것을 ‘살린다’라고 말한다. 살아가는 일은 삶의 살이 뻗어 나고, 삶의 살을 뻗어 나게 만드는 일로 이루어진다.


주석

[1] <한국말 말차림법>에서 제안한 문장에 대한 토박이 말입니다. 왜 포기말인지는 <언어에 대한 일반이론>에서 일부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2] 귀찮은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낱말의 뜻을 깊고 넓게 묻고 따지는 일의 소중함>을 실천에 옮기기로 하여 두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봅니다. 먼저 허구의 뜻을 봅니다.

「1」 사실에 없는 일을 사실처럼 꾸며 만듦.

씨말 구성은 虛(빌 허)와 構(얽을 구)가 합쳐진 낱말입니다. 상상에 상상을 엮는 일이네요.

허상은 어떨까요?

「1」 실제 없는 것이 있는 것처럼 나타나 보이거나 실제와는 다른 것으로 드러나 보이는 모습.

虛(빌 허)는 같고, 두 번째 씨말 像(모양 상)이 다른 낱말입니다. 미묘하게 다른 단어지만, <대체 뭐가 문제야>와 <사피엔스> 모두 번역하며 선택한 단어란 점에서 단어 뜻만으로 차이를 말하긴 어려움이 있겠습니다.

[3] 사전을 찾아보면, 餘(남을 여)와 裕(넉넉할 유)가 합쳐진 단어입니다.

「2」 느긋하고 차분하게 생각하거나 행동하는 마음의 상태. 또는 대범하고 너그럽게 일을 처리하는 마음의 상태.

[4] <한국말 말차림법>에서 제안한 구절에 대한 토박이 말입니다. 왜 다발말인지는 <언어에 대한 일반이론>에서 일부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지난 묻따풀 2024: 함께 말 차리기 연재

(61회 이후 링크만 표시합니다.)

61. 온인 나로 또는 쪽인 나로 마주하기

62. 닫힌 우리에서 유기체들의 조직으로

63. 우리의 네 갈래 그리고 남을 님으로 높이는 일

64. 한국인과는 다른 영국인과 중국인의 우리

65. 누리에 때와 틈과 함께 나는 낱낱의 존재

66. 한국말 살다, 살음, 살기, 삶, -살이와 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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